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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3월 17일 오후 2시에 다중지성의 정원에서 진행된 『미래의 시를 향하여』 출간기념 저자와의 만남 후기입니다.

초대손님으로 황규관 시인께서 와주셨습니다. 서평 발표를 위해서 김새롬 님과 엄진희 님께서 함께 해주셨습니다. 오늘 행사에는 특히 문학, 예술 분야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많이 오셔서 예술에 관한 더욱 풍성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먼저 <미래의 시를 향하여>에 대한 이성혁 선생님의 말씀을 정리해보았습니다.

삶의 자기가치화 주체로서의 시를 보았습니다. 노동시를 하나의 파로 보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만인이 시인이 되는 것, 시라는 텍스트를 넘어서 비전을 가져보는 것에 대해 말하고 싶습니다.
진정한 정치적인 시는 아방가르드로부터 연원이 됩니다. 아방가르드가 예술로부터 시작을 해서 삶과 예술의 결합, 예술적 변용으로 나아가려고 했다면 그것이 차단되었다는 느낌이 듭니다. 노동시와 아방가르드가 갖고 있는 측면이 같다는 것은 아니지만 어떻게 융합될 수 있을지에 대해 궁금함을 가지고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황규관 시인께서 하신 말씀을 모아서 정리해보았습니다. 시인으로써의 이야기와 삶이 보이는 창을 운영하시면서 느끼게 되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비정규직 없는 세상"이라는 구호를 받아들이기 힘들게 느껴집니다. 정규직이라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노동운동이 꼭 어떤 위치에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요. 그럼에도 노동자들이 계급의 문제를 떠나 노래하는 것이 풍부해졌으면 하는 바람에서, 노동시를 써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삶이 보이는 창으로 투고해오는 노동자  시인들의 시를 보면 예전에 80년대 시대부터 주장해온 것의 여진이 남아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시대를 정리해주는 비평 작업이 없었기 때문에 80년대의 여진이 지금까지도 남게된 것 같습니다. 왜 요즘의 비정규직, 알바 노동자들의 관점에서는 시가 나오지 않을까에 대해 생각하면, 그것은 대학 때문인듯 합니다. 대학이 지나가면서 학생들이 표백되어 나옵니다. 대학을 졸업하면 노동자가 아니라고 느끼는 것입니다. 

비평가가 모든 시를 평론해야 한다면 부조리한 것이 아닐까요. 모든 시를 평론해야한다면 비평가의 관점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조정환 선생님께서도 자리에 함께 해주셔서 귀중한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80년대의 운동에서는 객관성이 당파성 없이는 불가능한 것으로 보아, 당파성에 충실하면 할 수록 진실에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었습니다. 레닌주의적 의미에서의 당파성은 아니라고 할지라도 지배적 현실을 거부하는 당파성은 지금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노동하는 사람이 시를 쓴다고 하는 것은 사람이 글을 쓰는 것이고, 생명체들이 말을 하는 것입니다. 생명체들이 말을 하기까지 근대서부터 걸린 시간을 재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글을 쓰지 못하도록 압력받는 사람들이 글을 쓰는 행위 자체에 대한 조명이 필요합니다. 예술 자체를 제도적으로 해체하는 것으로까지 나아가서, 우리 시대의 다중적인 것을 생각해내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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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새롬 님과 엄진희 님의 서평 발표가 있었습니다. <미래의 시>를 읽으며 느끼신 진지한 생각들을 말씀해주셨습니다.

먼저 김새롬 님께서는 "편협한 작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십자가를 지고 얼마든지 편협해지는 이 작업이 독자로서 매우 소중하게 여겨진다. 이런 분야에서 비평이 활발하게 일어나기를 하는 바람을 가지게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엄진희 님께서는 "타자를 향해 열릴 수 있는 주체라는 것이 재미있게 느껴졌다."고 하시며 이데올로기를 넘어서는 작업을 시인이 하는 것이라면 그것을 다시 보는 작업을 평론가가 하게 되는 것 같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참석해주신 분들의 말씀도 차례차례 들을 수 있었습니다. 말씀해주신 다양한 생각들과 이야기들을 짧게 정리해보았습니다. (말씀해주신 분들의 성함 없이 말씀해주신 내용만 차례대로 정리해보았습니다.^^)

 1 : 노동시에 대해서 돌을 던지다가 만다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돌을 던지다가 팔이 빠질 수도 있지요. 빠지면 어때요. 하다가 마는 느낌이 안타까웠습니다.

 2 : 노동이라는 용어에 대해서 강한 이미지를 갖게 됩니다. 리얼리즘적인 시를 읽다가 다시 덮게 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다시 읽게 되는 것이 있는 것 같습니다.

 3 : 자기의 뇌를 재전유하는 작업의 출발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시읽기, 시일반이 아니라 시쓰기에 혁명적이고 진취적인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4 : 제도 내에서 관성적으로 나오는 평론집과는 정말 다르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목차를 보다가 사서 보게 되었는데요.. ㅎ 지금 현재 진행형의 텍스트와 만났을 때 어려움은 없으셨는지, 이후 텍스트로써 어떤 상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4번 질문에 대한 이성혁 선생님의 답으로 후기를 마치겠습니다^^!

평론 역시 내 글을 쓰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시를 씹어먹고 산문화시키는 작업입니다. 나의 관점을 풀어내는 도구가 되는 것이고, 미약하나 정치적인 활동일 수 있습니다. 앞으로의 작업으로는 젊은 세대들의 시를 읽고 싶습니다.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느끼게 되는 것이 있고요, 공명하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