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를 앞두고 <과학의 새로운 정치사회학을 향하여> 출간기념 실시간 저자 화상강연회를 1월 25일 토요일 오후 2시에 <다중지성의 정원> 302호에서 진행하였습니다. 이 출간기념 행사는 <갈무리 출판사>와 <다중지성의 정원>이 함께 준비하고 있으며, 관심 있는 분들 누구나 무료로 참석하실 수 있습니다. 


1월 25일에 진행된 출간기념 저자 강연회의 "신과학정치사회학의 전망과 도전"이었습니다. 미국 풀먼에 있는 이 책의 편저자 스콧 프리켈 교수님이 강연를 해주셨습니다. 강연 및 질의 응답 속기록을 올립니다. 

이 날의 강연 동영상은 다지원 유튜브에서 볼 수 있습니다. 
1) 강연 동영상 1: http://www.youtube.com/watch?v=uLWUz4hGkvs
2) 강연 동영상 2: http://www.youtube.com/watch?v=wozE1uLvFS0
3) 강연 동영상 3: http://www.youtube.com/watch?v=YP9JRMGn4zc


1) 강연 속기록


갈무리 출판사에 한국어판 출간과 강연 준비에 감사한다. 여러분을 만나서 감사합니다. 공동 편저자 켈리 무어 님도 감사해하고 있다. 


이런 연구들이 중요했다. 실험실 위주의 분석에 대해서는 관심을 불러 일으켰지만 과학생산의 구조적 측면에 대한 분석은 부족했다. 저희 문제의식은 미시적 분석은 과학의 배치, 즉 과학에서의 권력과 불평등의 문제에 대해 사고하지 못하게 한다.그래서 정치사회학으로 눈을 돌려, 관심을 과학, 국가, 시민사회에 관심을 확장했다. 과학연구의 지평을 확장하고자 했다. 


이 책의 집필과정에서 사회운동의 사회학, 조직사회학 등의 분석을 통해 현대사회의 과학의 변화양상을 개념화하고자 했다. 2005년의 이 책을 처음 출판하면서 이미 이뤄진 정치사회학에 대한 '정치사회학'이라는 일관적인 명칭을 부여하고자 했다. 이 책은 새로운 것을 시작한 것이 아니라, 구조주의적인 접근법을 보완하고 이를 갱신하는 연구법을 제안하고 했다. 


책의 출간 이후 학계와 대중들로부터 정치사회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미국뿐만 아니라 프랑스, 일본, 유럽 등에서 관심이 높고, 미국에서는 관련 분야 컨퍼런스가 개쵀되었으며 2014년에도 개최될 예정이다. 두 번쩌 컨퍼런스 결과는 '정치 권력과 사회이론'이라는 저널에 소개될 예정이다. 이 저널에는 과학을 사회학적 입장에서 비판하는 글 8편이 실릴 예정이다. 


저는 이런 배경 설명에 이어 다른 저자들과 함께 쓴 '과학과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라는 논문 내용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제가 다루고자 하는 문제는 이 책의 출간 당시처럼 '현대과학에서 무엇이 정치적인가, 정치적인 것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이다. 과학의 정치사회학 분야에서 주요한 세 분야인 첫째 과학에서의 지식경제적 관계, 둘째는 국가과 과학을 통제하고 관리하는 정치적 효과, 셋째는 과학활동을 형성하고 배포하는 시민사회의 중요성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식경제적 관점에서는 대학과 기업의 관계에 관심을 갖고 있다. 지난 수십년간의 연구결과, 대학과 기업 상호 관계에서 수렴이 일어나고 있다. 기업의 문화가 대학에 영향을 주고 있다. 이와 유사하게 대학연구의 규범들(개방성 등)이 기업연구의 규범들에 영향을 주고 있다. 이처럼 서로의 규범들이 상호 영향을 주고 있다. 

이런 연구에서의 결론은, 기업의 이해관계만이 대학에 관철되는 방식으로 비대칭적 수렴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대학의 기업으로의 침입은 기업의 시장성을 강화했지만 기업의 대학으로의 침입은 대학의 자율성을 저해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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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연자 스콧 프리켈 


국가 주도의 과학정책담론이 전문가의 판단에 집중되고, 사회적인 것은 무시되면, 과학적 권위만을 강화한다. 


세번째는 시민사회와 관련이 있다. 데이비드 헤스의 과학적 담론(?)의 인식론적 근대화라는 개념이다. 인식의 근대화는 과학지식 생산과 과학 커버넌스에서 시민사회의 영향력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인식근대화의 관점에서, 사회운동이 힘이 약해지는 국가보다는 기업쪽에 더 관심을 갖고 있다. 사회운동은 또한 대안적인 시장(유기농 시장 등)을 만들고 있다. 또한 사회운동은 '시민과학'에도 참여하고 있다. 이것은 일반 시민들이 과학전문가들과 함께 국가와 기업 들로부터 자유롭게 과학활동을 하는 것을 말한다. 사회운동은 기업이 과학의 상업적 사용에 대해서도 비판한다. 


저희는 이런 세 관점이 일국과 국제적 지평에서 고려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들은 과학의 경제, 과학의 거버넌스, 과학의 정치화이 관련된다. 이 세 경향은 서로 겹쳐서 상호작용하며 공통의 동학을 형성한다. 과학의 정치사회학을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다른 과학적 배경을 갖은 국가들 간의 비교 연구이다. 이렇게 지역에 따른 비교연구가 필요하기 때문에 이 책의 한국어판 출간이 제게 기쁘다. 


경제, 국가, 시민사회가 교차하는 상황은 새로운 경험적인 문제를 도출한다. 제가 관심을 두고 있는 두 개의 주제에 주목하며 오늘 강연을 끝내려고 한다. 과학의 정치사회학에 대한 새로운 문제점을 다루겠다. 첫째는 지식의 부재, 무지이다. 둘째는 재앙의 맥락에서 과학작업과 과학지식의 유통의 문제이다. 


무지에 대해 먼저 말하겠다. 지식생산의 사회적 분배에 관심이 있다. 지식이 제한된 영역에 대해서도 관심이 있다. 제가 매우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왜 어떤 것은 너무 많이 알고, 어떤 것은 너무 적게 아는지에 대한 체계적인 비교분석이다. 무지에 대한 연구 결과, 지식의 부재는 정치권력을 갖은 자들이 의도적으로 지식의 부재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그러나 저는 규범적인 과학실천의 비의도적 결과를 다루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무지의 문제는 매우 특수한 방법론적 문제와 함께 제기된다. 그 문제는 정의상 존재하지 않는 무언가를 연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재앙의 맥락에서 관심을 갖는 것은, 대규모 재장에서 과학지식의 효과를 얻거나 신뢰를 잃은 과정에 대해 관심이 있다. 재앙이 일어나면 과학전문가들에게 묻지는 과학자체에 대해서는 묻지 않기 때문에 과학 자체에 대해 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재앙이 사회적 불평등을 악화시킨다는 것에 대한 분석이 필요하다. 특히 기후변화나 아시아지역의 급속한 산업화, 북미유럽의 산업기반 시설의 노화 등과 관련 있다. 


이것이 제가 과학의 정치사회학에 대해 관심을 갖는 이유이다. 제 강연은 여기까지 하고 괜찮다면 한국 독자들의 의견도 듣고 싶다.


2) 질의응답 속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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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연회 참석자들의 모습입니다.  


질문1: 재앙의 좀 더 읽을 글들이 있는가. 

인식의 근대화에 대한 글, 멕시코만 기름유출사고에 대한 나의 글들이 있다. 강연이 끝나는 대로 논문들을 보내주겠다. 


질문2: 사회학자로써 과학자들이 실제 어떻게 지식을 생산하는 방식을 관찰하는 데 한계가 있었을 것 같다. 필자들이 이 과정을 어떻게 관찰했는지 알고 싶다. 연구방법론에 대한 궁금증이 있다. 과학 밖에 있는 사람들이 과학 안 과정들을 어떻게 알 수 있었는지, 알 수 있을지 궁금하다. 

답: 서론에서는 몇 개의 방법론적 제안을 하고 있다. 과학의 정치사회학적 조직에 관심을 갖는다. 과학이 행해지는 장소들을 민속지적으로 연구할 수 있다. 과학 조직들의 관계를 연구한다. 과학자들의 사회적 연결망을 연구한다. 과학자들의 컨퍼런스 등을 연구한다. 학생 중 한 명은 과학전문가들이 미 의회에서 어떤 활동을 하는지를 연구하기도 한다. 과학자들이 사회적 참여를 할 때 어떻게 발언하고 활동하는지에 관심이 있다. 

위기에 처한 재난피해자들과 과학전문가들이 서로 어떻게 돕는지, 이 상호작용이 서로에게 어떤 영향을 줬는지를 연구하고 관심이 많다. 


질문3: 정치사회학적 연구를 한 구체적 사례를 소개해달라. 또한 과학자 집단을 민속지적으로 관찰할 때 반발하는 과학자들이 있었을텐데 그들과 어떻게 소통했는지 궁금하다. 

답: 과학자들은 제 연구에 모두 협조적이었고, 경험상 과학자들은 자기 경험을 말하는 것을 굉장히 좋아한다. 그리고 연구과정에서도 기술이 있다. 자신보다 사회적 지위가 높은 분야를 연구하는 방식이 있다. 질문을 할 때 미국 사회에서 사회적 지위가 과학자들이 사회학자보다 높기 때문에, 이 지위적 차이를 충분히 인식하며 저는 질문을 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제 경험은 일반적인 것은 아니다. 연구 결과를 통해 과학자들의 연구결과들에 대한 문제점이 밝혀지기도 하기 때문에, 참여연구를 할 때 비정직하면서도 신중하려고 한다. 

멕시코만 연구를 사례를 구체적 사례로 제시하겠다. 이 연구에서 저는 뉴올리언즈 베트남이민자공동체를 연구했다. 이 공동체는 걸프만 기름유출로 심각한 타격을 받았다.이들은 대부분 어부이었기 때문이다. 이후 정부는 해산물이 안전하다고 했지만 공동체는 믿지 않았다. 저와 연구자들은 이 공동체가 자신들이 원하는 연구작업을 할 수 있게 지원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이 공동체의 여섯 명의 사람들과 함께 이 석유유출이 새우잡이 활동에 끼치는 영향을 연구하려고 했다. 실제 새우를 잡아 새우에 이상이 있는지 여부를 확인해주는 연구서를 찾기 힘들었다. [새우가 유해하다는 연구결과로 피해를 입지 않은 연구소를 찾기가 어려웠다.] 이 지역의 새우소비에 대해서도 연구했다. 일부 연구는 미국의 전국적 새우 소비 사용량의 평균을 소개했지만 이 데이터는 이 공동체 사람들에게는 유효한 연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새우가 위험하지 않다'는 연방정부의 평가가 맞지 않고, 이 평가는 이 공동체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것은 규제적 과학이 불균형하게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친다는 사례이다. 

앞의 강연과 연결해보자. 연방정부의 연구는 혜택과 비혜택을 주는 집단이 있음을 말해주고, 과학자들은 비혜택을 받은 집단의 자치적인 연구를 도와주는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질문4: 과학사회학 방법의 전통적인 방법철학에 대한 질문이다. 첫번째 방법론은 구 맑스주의, 두번째는 푸코적 맥락의 방법론, 새로운 제안한 방법철학은 알튀세르 이론에 기반한 것 같다. 그렇다면 뭐가 새로운 것인지 모르겠다. 이미 알튀세르 이론의 한계점은 많이 지적 받았기 때문이다. 

답: 맑스주의자, 푸코주의자를 설득하기 어려운 답변이 될지도 모르겠다. 우리의 과학의 정치사회학이 낡은 맑스주의에 새로운 옷을 입히려는 것이 아니다. 맑스주의와 푸코주의의 절충점을 찾으려고 한 것이다. 구조와 행위자 사이의 관계를 밝히려고 했다. 일정한 목적을 갖고 연구를 하는 것은 아니며, 아직은 연구가 부족하기 때문에 지금 연구가 시발점이다. 


질문5: 국제적 차원에서의 비교 연구가 필요하다고 강연자가 말했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해산물에 대한 걱정이 한국 사회에 많다. 한국에서도 해산물 섭취의 취향과 문화, 계급적 위치에 따라 안전성의 정도와 섭취방식이 다르다. 이런 것에 대한 비교연구가 이뤄진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답: 말씀하신 내용에 매우 동의한다. 후쿠시마 사건은 미국에서도 관심이 높다. 저도 관련 컨퍼런스에 참석했다. 방사능 문제가 아시아 식단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알고 싶다. 펜실베니아 대학에서는 '재난과 과학' 관련 도서들을 출간하려고 준비중이다. 


질문6: 과학자들이 '위부적' 조건들로부터 자유로운 상태에서 과학적 진실을 알아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한국의 광우병 사건이나 천암함 사건을 보면 대중들이 과학적 사실을 파악하는 것이 굉장히 어렵다. 이런 상황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답: 말씀하신 질문이 과학의 정치사회학의 어려움이다. 과학이 순순한 영역이 있는가, 과학이 대중적 사건 등에 영향을 어떻게 끼치는가 이다. 과학자들이 지식생산에 어떻게 참여하는지에 관심이 있다. 순수한 학술적 과학에 관심이 없다. 저는 과학이 준정치적 영역이라는 것과 상대적으로 자율적인 공간이 과학이라는 점이라고 생각하고 여기에 관심이 있다. 


질문7: 한국의 여러 과학적 사건뿐만 아니라 제3세계 등의 사례들에게도 관심을 갖는다면 더욱 다양한 정치사회학적 연구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답: 말씀하신 내용에 완전히 동의한다. 과학의 사회학적 연구가 선진 국가에 집중되는 것은 문제라고 생각한다. 올해 가을에는 아르헨티나에서 과학의 사회학적 연구가 진행될 예정이다. 라틴아메리카에서 아시아에서도 연구가 활발하다. 과학자본이 몇 개의 국가에 집중되기 때문에 이 국가만 연구해야 한다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