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6월 1일 토요일 저녁 7시 다지원에서 르페브르의 <리듬분석> 집단서평회가 열렸습니다. 

아래는 1층에 세워둔 윤**씨가 만든 안내간판 ^^ (사진이 좀 흔들렸네요;;)

몸빼바지와 ajumma 선캡을 즐겨 착용하는 윤**씨는 앞으로도 다지원 행사 안내간판 제작을 담당할 예정입니다.

날로 발전하는 스킬..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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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다섯 분께서 <리듬분석> 서평을 발표해 주셨습니다.

1. 권범철 (예술과 도시사회연구소)

2. 김진호 (안동대 음악과 교수)

3. 오정학 (월간 <환경과 조경> 편집장)

4. 이성혁 (문학평론가, <미래의 시를 향하여> 지은이)

5. 임태훈 (문학평론가, <우애의 미디올로지> 지은이)


권범철 선생님과 오정학 선생님 서평은 <자율평론 NOW>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도시를 듣자>(권범철) http://waam.net/xe/arnow/334507

<시간과 공간을 ‘다르게’ 그리고 ‘함께’ 사고하는 것>(오정학) http://waam.net/xe/arnow/330662


이성혁 선생님, 임태훈 선생님, 김진호 선생님 서평도 곧 온라인에 게재될 예정입니다.. SNS를 통해 소식 알려드리겠습니다.

(다지원 트위터 daziwonM , 페이스북 facebook.com/daziwon )


귀한 시간 내주신 다섯 분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아래는 각 서평에서 한 문단씩 발췌해 보았습니다~ 


권범철 선생님 서평 중에서

우리가 도시의 리듬을 듣는 일을 단지 음악 감상과 같은 차원에서 생각하는 게 아니라면, 리듬을 파악하는 것으로는 충분치가 않다. 새로운 리듬을 형성하는 것이, 시간을, 공간을, 전유하는 에너지가 ‘되는’ 일이 중요한 것이다. 우리가 사건이다. 이런 맥락에서 이 책의 마지막 문장은 의미심장하다. “사유는 그것이 실천 속에 진입하는 순간 완성된다. 즉, 사용되어야 한다.” (...) 우리가 도시를 들어야 하는 건, 그것의 리듬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고, 그건 우리가 가시성의 체계에 함몰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가 알지 못하는 리듬이 분명히 어딘가에서 요동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건 우리가 발견해야 하는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그것이 되어야 하는 문제, 즉 발명의 문제이다. 그때 우리는 리듬분석이라는 르페브르의 개념을 새로운 리듬의 구성으로 다르게 들어야 하는 건 아닐까?


김진호 선생님 서평 중에서 

르페브르의 『리듬분석』이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러한 20세기의 현대음악에 제시된 시간개념들과 이후 블레즈 등의 현대음악가들과 현대음악학자들이 그의 타계 이후 발전시킨 리듬에 대한 ("일반이론"까지는 되지 못할지 모르겠지만) 중범위 이론의 성과를 잘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한편으로 그가 1991년 타계한 것이 못내 아쉬울 뿐이며 다른 한편으로 그 기간까지 이미 발전되어온 현대음악의 이론들에 대해 그가 여유를 갖고 있지 못한 것이 역시 아쉽다. (...) 르페브르는 조화리듬성에 대해 좋게 이야기하고 부정리듬성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은 평가를 내리는 것 같다. 부정리듬성에서는 르페브르 말마따나 리듬들이 서로 분리되고, 변형되고 탈 동기화한다. 그런데 이 탈 동기화 상태를 르페브르는 "병적인 상태"라고 평하며, "이런 때는 상황에 맞춰, 갑작스럽지 않은 방식으로 리듬을 통해 개입하는 것이 좋다"(194쪽)고 말하고 있다. 탈 동기화 상태가 병적인 상태라고 하는 것은 자연과학의 영역에서라면 몰라도 예술의 영역에서는 지나쳐 보인다. 자연과학의 진실에 예술의 진실이 기대는 것은 가능하다. 하지만 자연과학의 진실이 곧바로 예술의 진실이 될 수는 없지 않을까. 대부분의 음악에서 음악의 중간부분이 이런 부정리듬성을 표상한다. 그리고 그런 상태는 그대로 끝나는 경우가 드물다. 대부분의 음악에서 이런 상황은 긴장을 유발하는 상황이고 때론 병적인 느낌을 주기도 한다. 따라서 이렇게 유발된 긴장과 대립의 느낌은 음악의 후반으로 이끄는 역동적 동력이다. 그 동력에 따라 중간부분의 긴장상태 혹은 절정상태가 조화리듬에 기반을 한 음악의 후반부로 이행하고 그렇게 긴장이 해소가 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것도 음악의 고전주의적 관념일 뿐이다. 19세기 중반 이후 낭만주의의 음악의 발전과 그 적자인 현대음악에서는 해결되지 않는 긴장상태에 의한 음향이 새로운 음악적 아름다움의 지평을 열어주고 있다. 요컨대 부정리듬성이 곧바로 병적이라고 한다면 지나칠 수 있다는 것이다. 조화리듬성에 대해 좋게 이야기하고 부정리듬성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은 평가를 내리는 르페브르는 내가 보기에 훌륭한 윤리학자이다.  


오정학 선생님 서평 중에서

정치권력이 공간지배를 모색한다는 그의 경고는 의례가 권력 구축의 한 기제임을 감안할 때 충분히 개연성이 있는 대목이다. 기념물과 광장은 스펙터클의 대명사로서 카리스마적 권력의 전형적인 유형이다. 그러나 궁전과 교회가 하나의 의미, 정치적 목적들을 지닌다고 했을 때, 시민-도시인들은 그 목적들을 우회한다고 보았다. 즉 시민들은 이 공간을 비정치적으로 전유하고, 시간을 일정한 방식으로 전용함으로써 국가에 저항한다는 것이다. 이제 전유를 둘러싼 투쟁이 벌어진다고 그는 보았다. 그리고, 바로 그 속에서 리듬들이 중심적인 역할을 수행한다고 주장함으로써, 리듬분석의 의미를 높였다. 의례에는  ‘믿는 체하는’요소가 있음을 강조한 하위징아식으로 본다면 결국 시민들이 알면서도 속아주는 연기를 할 수 도 있는데 전유는 그러한 과정을 거쳐 나타나지 않을까?

여의도 광장과 광화문 광장, 서울광장이 떠올랐다. 여의도 광장은 이미 사라졌고, 광화문 광장은 새롭게 만들어졌으며, 서울광장은 창조되었다. 본래 모래톱이었던 여의도 광장은 70년대와 80년대에 온갖 퍼레이드가 펼쳐졌다. 힘의 과시이자 스펙타클의 장소였다. 그 후 90년대에 깃발과 만장을 앞세운 시민들의 저항의 공간이기도 했다. 시민들이 다른 방식으로 전유하자 광장은 곧 19세기적 풍경으로 시간을 되돌렸다. 콘크리트 구조물과 강한 대비를 이루는 자연풍경식 공원은 르페브르의 논리를 빌리면 자연을 차용한 권력의 반격이 된다.


이성혁 선생님 서평 중에서

앙리 르페브르의 유작 『리듬분석』이 출간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제목부터가 나의 흥미를 끌었다. 시 이론서라고 한다면 그렇게 놀랍지는 않았을 것인데, 도시 및 공간이론과 일상생활 이론으로 저명한 사회철학자인 르페브르의 저작 제목이 ‘리듬분석’이라고 하니, 어떤 내용이 담겨 있을지 궁금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 책에 대한 소개문을 조금씩 접하면서, 아니나 다를까 일상생활의 시공간 속을 관통하고 있는 리듬에 대한 분석을 시도하는 책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실 우리는 어떤 리듬을 느끼면서 살아가고 있지 않는가. 생리적인 리듬뿐만 아니라 행위 역시 리듬을 통과하면서 이루어지고 있다. 그렇지만 그 리듬을 분석할 생각을 해본 적은 없다. 리듬은 삶에 용해되어 있어서 분석 대상이 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시는 말의 리듬을 전경화하기 때문에, 곧잘 리듬 분석의 대상이 되곤 한다. 음악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일 수 있겠다. 그러나 생활의 수준에서 창출되는 리듬은 분석 대상이 되지는 못했던 것 같다. 사회나 생활의 리듬을 전면적으로 분석한 책이 있는지? 그런데 말년의 르페브르는 미개척 영역에 과감하게 투신하여 이 책을 남겨놓은 것이다. 


임태훈 선생님 서평 중에서 

『공간의 생산La Production De L'espace』을 완성하기 전인 1966년에서 1973년 사이, 앙리 르페브르(Henri Lefebvre, 1901~1991)는 여러 도시를 옮겨 다니며 도시 문제에 관한 사유에 몰두했다. (....) 그가 서울에서 머물며 1972년 10월 17일의 비상계엄령과 유신 체제 선포를 목격할 수 있었다면, 이 체험은 도시에 관한 오랜 탐구에 어떻게 반영되었을까. 르페브르에게 만에 하나 방한 계획이 있었다고 해도, 프랑스 공산당원이었으며 1958년 탈당 이후에도 일평생 좌파적 비판의 편에 섰던 경력을 문제 삼아 당국이 입국허가를 내줬을 것 같진 않다. ‘리듬 분석’에 대한 그의 구상은 1981년 발표한 『일상생활비판』 3권에서 또 다시 이야기된다. 이 무렵의 한국도 그가 반드시 와봤어야 할 장소였다. 특히 1982년 1월 6일 자정을 전후로 통금(通禁)이 철폐되었던 일은 ‘리듬 분석’의 과제로 치면 금맥이나 마찬가지였다. 세계 최장 기간인 36년간 통금에 묶여 있던 사회에 새로운 일상의 리듬이 구조 변동했던 시점이었다. 중고생의 교복, 두발 자율화 조치도 이 시기에 단행됐다. 36년간이라는 시간은 묘하게도 일제 통치 기간과 맞먹지만, 잃어버린 밤을 되돌려받았다고 해서 ‘해방’의 감격까지 떠올릴 형편은 아니었다. 세대교체 된 쿠데타 정권이 ‘정의사회 구현’을 외치던 시기였다. 그들의 사회에선 1972년 유신 헌법과 함께 상실한 국민의 기본권 회복은 ‘정의’의 문제가 아니었다. 빼앗긴 권리를 되돌려 받기 위한 1987년 광장의 투쟁도 한국 사회의 ‘리듬 분석’을 위한 빼놓을 수 없는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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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발표가 끝난 뒤.. 자유토론 시간에 오고 간 논의들을 간단히 소개하겠습니다. 부정확한 내용들이 있으면 꼭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여기에 미처 담지 못한 소중한 의견들 주신 모든 참가자 분들께도 미리 양해를 구합니다.


서평회 전체영상은 곧 갈무리/다지원 유투브를 통해 공개될 예정입니다.

>> 갈무리/다지원 유투브 계정에서 그간의 출간기념 이벤트 영상들을 보실 수 있습니다 http://www.youtube.com/user/galmuridaziwon


1. 르페브르를 한 마디로 소개한다면 어떤 사상가일까? 

임태훈 선생님 답변 : 르페브르가 굉장히 열린 선생님이셨다고 한다. 공산당 경력이 있던 사람이 교수가 된 것은 당시 흔한 일이 아니었다. "열려 있고, 생산력 강했던 노대가"라는 표현이 적절할 것 같다. 


2. "공간의 시간화"라는 표현이 잘 와 닿지 않는다. 공간과 장소의 차이는 무엇인가? 

오정학 선생님 답변 : 공간에 시간성이 스며들 때 공간이 장소성을 띠게 된다. 자연과학에서 공간은 물리적인 대상이다. 그 외에는 아무것도 아니다. 공간이 사람의 생활과 접맥될 때, 어떤 역사적인 의미를 가질 때 그것을 장소화시킨다고 한다. 장소로서 특정한 성질을 갖게 되는 것. 공간은 물리적인 용어, 생명성이 없는 것. 장소는 거기에 숨결을 불어넣어준다. 생명을 넣어준다. 


3. 맑스주의자인 앙리 르페브르가 일상세계에 관심을 가진 이유는 무엇이며, 그가 일상세계에 대해서 주장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임태훈 선생님 답변 : 요즘은 맑스주의자가 일상에 관심을 갖는 게 당연하게 여겨진다. 그러나 르페브르가 활동할 당시에는 맑스주의자가 일상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은 부르주아적이고 경멸 받을 일이었다. 그러나 르페브르는 우리의 실체적인 활동이 이루어지는 공간 안에서 인간의 몸이 특정한 형태로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 문제제기를 한다. 사람들의 몸을 움직여서 세상을 바꿀 방법은 무엇인가를 사유하는 데 필요한 작업들을 해냈다. 지금은 당연히 여겨지지만 당시로서는 새로운 것이었다. 


4. 리듬이라는 표현이 내포하듯이.. 시각적인 것에 대한 대안으로서 청각적, 촉각적인 것에 주목하는 책들이 있는지.. 현대사회가 지나치게 외모중심사회, 외양중심사회이기 때문에 그에 대한 대안으로서 촉각적, 청각적인 것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 

김진호 선생님 답변 : 맥루한이 시각적 합리주의가 갖는 편향성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국내에도 번역된 머레이 쉐이퍼의 <사운드스케이프>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의 저자는 환경론자이자 음악가이다. 랜드스케이프란 단어는 풍경을 말한다. 사운드스케이프는 귀로 듣는 풍경이라는 개념이다. 전 세계 여러 곳에서 소리와 관련된 풍경을 들을 수 있다. 환경이 파괴되면서 랜드스케이프가 파괴되듯이, 사운드스케이프도 파괴될 수 있다. 그래서 녹음기 등으로 저장을 하고, 그 장소에서 들을 수 있는 소리를 그 자리에서 계속 들을 수 있게 보존해야 한다는 주장을 한다.  

임태훈 선생님 답변 : 디디에 앙지외 <피부자아>라는 책이다. 소리를 들을 때 피부가 울린다. 라캉은 자아는 거울이라고 했는데, 이 분은 자아는 피부라고 말한다.


5. 공간이론가라고 해서 그 부분에 관심을 갖고 책을 읽었는데. 자본이나 음악 얘기를 많이 하고 공간에 대한 이야기는 좀 적지 않았나 싶다. 추상에서 구체로 가겠다고 했지만 추상에 머물렀던 것 같다. 이 책의 내용을 공간과 접목시킬 수 있는 지점이 더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지. 

임태훈 선생님 답변 : 르페브르는 <공간의 생산>에서 공간에 대해 엄청나게 많은 이야기를 했다. 시시콜콜한 사례부터 거시적인 맥락까지 촘촘하게 분석했다. <리듬분석>에서의 과제는 오히려 공간을 시간과 통합적으로 이해하는 것이었다. 


6. 리듬분석은 몸을 바꾸는 데 어떻게 중요한가. 르페브르의 혁명관은 어떤 것인가.

이성혁 선생님 답변 : 이미 우리에게 덧씌워진 리듬들이 있고, 그 리듬들이 삶을 경직되게 만드는데, 이런 것들을 분석을 통해서 무력화하면서 활력의 리듬을 살아나게 만드는 분석이 리듬분석이다. 자본과 권력의 리듬이 우리 몸을 조직하고, 무력한 상태에 빠뜨리고 있기 때문에.. 좋은 삶을 위해서.. 리듬분석이 필요하다고도 할 수 있다. 르페브르의 혁명론은 영구혁명론인 듯하다. 문화를 삶을 풍부하게 만드는 쪽으로 계속 조직해야 한다는 것. 


임태훈 선생님 답변 : 1972년 이후로 세계 자본주의는 정보자본주의로 되었고 전 세계 화폐의 대부분이 데이타베이스화된 자본이다. 이 데이타 자본의 리듬이 우리를 휘감고 있다. 그런데 그것이 고장나지 않으면 우리는 그게 있는지도 모른다. 파국이 오기 전에는 리듬을 인식하지 못한다. 아주 감각적인 차원에서 "왜 나를 이렇게 살게 하는가, 왜 우리는 양계장의 삶을 살고 있는가"를 알게 하기 위해서 리듬분석이 필요하다. 혁명을 실천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파악하는 데 필요한 것이 리듬분석이다. 


7. 리듬분석처럼 선율분석도 통섭적으로 가능한가

김진호 선생님 답변 : 선율을 무엇으로 정의를 내리느냐에 따라서 다를 것이다. 이 책에서는 리듬이 통섭적으로 정의되어서 이 책의 내용 역시 통섭적으로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왜 리듬인가. 이 책 83쪽에 그 답이 있는 것 같다. 르페브르는 세계 안에 움직이지 않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말한다. 그래서 리듬을 연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선율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르페브르가 83쪽에서 리듬에 대해 말한 바를 조금만 바꾸어 보면 "세계 안에 선율이 없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높고 낮은 매우 다양한 선율들만 있을 뿐이다"도 가능하다. 이런 서술이 가능하다면 선율분석도 가능하다. 

르페브르가 말하는 것처럼 리듬은 역사적으로 음악에서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았다. 리듬이 몸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었기 떄문인데, 중세에는 몸을 천대시 했다. 그런데 사람들은 몸을 통해 사물을 파악을 한다. 느낌을 받는다. 그것이 더 고도화되면 감정이 된다. 또 더 고도화되면 지각, 인식, 개념작용이 된다. 94쪽에서 르페브르는 리듬분석가는 우선 자신을 교육해야 한다고 말한다. 감정들은 개념과 조화를 이루는 방식으로 변형될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은 감정, 느낌이 중요하다고 한다. 교수님들은 개념도 중요하다고 말한다. 둘다 중요하다고 르페브르는 말한다.. 세상을 살아나가기 위해서 감정, 개념, 직관, 느낌 다 필요하다. 세상은 아는 만큼 들리고 보이는 것이다. 개념을 공부하면 세상은 달리 보이고, 달리 들릴 수 있지 않을까. 그러면 그것의 응용도도 높아질 것이고. 혁명을 하고자 한다면 또 혁명에 이 개념이 유용할 수 있을 것이다. 


8. 리듬을 바꾸고 싶어서 이 책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다르게 사는 것이 리듬을 바꾸는 것이라면.. 내가 시간을 전유하는.. 온전히 내 시간을 사는 것, 그것은 사건을 일으키는 것 속에서 가능할 것이다. 그런데 분석의 방법으로 대중과 함께할 수 있을까. 문제의식을 가진 존재가 사건이 되면 그것이 다른 리듬을 만들기 때문에 가능할 것 같은데 그런 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어떤 사례가 있을까?

임태훈 선생님 답변 : 국내 여섯, 일곱 군데가 슬로시티가 있다. 모든 것을 느리게 하자는 취지이다. 막상 거기에서 결제할 때는 (엄청나게 빠른) 신용카드로 결제한다. 물론 사회의 전형적인 패턴들로부터의 이탈도 이상한 형태로 진행되고 있긴 하지만.. <리듬분석>이 92년에 출간되는데 그가 분석과 자기 재생산의 문제를 다룰 때 겨냥한 사람들이 독자 일반일까? 르페브르가 뜨끔하게 듣기를 바랐던 사람들은 당대의 맑스주의자가 아닐까. 


9. 일반인들이 이해하기에는 어려운 이야기만 오가는 것 같다. 이론에 머무는 것뿐 아닌가. 당장의 실천에 이런 내용이 반영될 수 있는가. 임태훈 선생님 답변 : 인문학 강좌 기획 활동을 하는데 "왜 지금 당장 내가 이해할 수 있게 강의를 하지 않느냐"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그 리듬에 대해서도 문제제기할 필요 있다. 왜 자판기의 리듬 같은 이해를 바라는가? 강의자가 강의를 하면 머리 속에 쏙 들어오는. 르페브르가 리듬분석을 하기 위해서 든 시간이 반세기가 넘는다. 오히려 공명의 순간들이 중요하다. 이런 내용에 대해서 감각적으로 흥미를 느끼거나 하는. 주요한 개념에 대한 이해가 아닌데도 내 삶의 어떤 지점들과 함께하는. 내가 지불한 것에 대해서 원하는 속도로 이해할 수 있게 해라는 것만이 아니라 이런 내용들이 오랜 세월에 걸쳐서 전달되는 것.. 대안공간들은 그런 리듬들이 가능한 장소들이 되어야 한다.


참가자 의견 : 활동가라서 서평회 자리에 많이 오지 않는다. 집단서평회라고 하여 형식에 대한 궁금증이 있었다. 얼마나 난잡한 집단서평회일까. 여러 의견들이 자유롭게 나오는 것으로 봐서 이런 집단서평회가 있고 단 한 명이라도 질문할 수 있게 열어 놓는 자리가 곧 새로운 리듬이 만들어지는 과정이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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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난잡하고 풍요로운 집단서평회를 만들어주신 참가자 여러분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_ 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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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행사 공지 * 


갈무리 출판사에서는 신간 출간 후 매월 1회, 집단서평회나 저역자 강연의 형식으로 무료 이벤트/특강을 열고 있습니다.

(메일로 소식을 받기를 원하시면 galmuri@galmuri.co.kr로 메일을 한 통 넣어주세요) 


오는 6월 26일에는 <노동하는 영혼>, <봉기>의 저자 프랑코 비포 베라르디의 방한 특강이 열립니다. 

그의 책들을 읽으며 궁금증을 쌓아두셨던 분들은 꼭 참석하셔서 의견 나눠주세요. 

자세한 시간과 장소는 곧 다시 공지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