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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중지성의 정원

시대의 ‘뿔’을 위한 잠재적 ‘다중’의 공동체


권혜린_인문쟁이

 

 

다지원 외관(낮) 다지원 외관(밤)

▲ ‘다중지성의 정원’의 공간 ‘뿔’의 낮과 밤

 

'작지만 강한' 공간

2015년 11월 5일에 새롭게 독립공간 ‘뿔’로 이전한 ‘다중지성의 정원’을 방문했다. 뿔의 형상을 닮은 외관부터가 독특한데 낮과 밤의 매력이 각각 달랐다. ‘뿔’을 설계한 더함건축의 조한준 건축사의 말을 빌면 ‘뿔’은 자신이 지금까지 설계했던 건물 중에서 가장 작다고 한다. 19평밖에 되지 않은 작은 땅에 “작지만 강한 건물”을 지은 것으로, 그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진입로가 협소해서 공사 차량 이동이 불편하고, 자재 보관이 어려웠으며, 논이었던 지질의 특성상 펄이 있어 공사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또한, 자금조차 충분하지 않은 데다 민원까지 잦아 여러모로 어려웠다고 한다. 이렇게 ‘작은 건축의 큰 이야기’를 담은 ‘뿔’은 담당자의 말에 의하면 홍대 지역의 상승하는 임대료와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에 저항하면서 활동을 이어나가기 위한 행동의 결실이다.

 

▲ 3층의 전경(정치철학연구소, 세미나실)

▲ 3층의 전경(정치철학연구소, 세미나실)

 

‘뿔’은 지하 1층이 강의실, 1층이 ‘다중지성의 정원’ 사무국과 세미나실, 2층이 도서출판 갈무리의 사무국이자 갈무리 활동가들의 연구 공간, 3층이 조정환 대표의 정치철학연구소이자 세미나실로 이루어져 있다. 건물 외관의 뿔 모양(옥상)에 해당하는 뾰족한 부분에도 책이 가득 차 있다. 또한 긴 건물의 특성상 계단도 많은데 깊이 있는 공간감을 지닌 계단은 자유로운 지식의 탑을 오르내리는 느낌을 준다. 벽을 가득 채운 책들도 책이 곧 벽인 것 같은 풍성함을 자아낸다.

‘다중지성의 정원’에서는 강의뿐 아니라 세미나와 서평회가 활발하게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그 맥락과 맞닿아 있다. 특히 이것이 갈무리 출판사와 웹진정원 자율평론과도 연계되어 있어 ‘사적 소통/공적 소통’을 넘나드는 활동이 가능하다. 도서출판 갈무리는 1994년 3월 3일에 창립된 독립 출판사로서 20년 동안 200여 종의 책들을 출판하였다. 담당자의 말에 따르면 ‘지금 이곳’에서의 자율적 사색의 표현이자, 사회적 노동자의 한 구성인자로서의 발성(voice)을 담는다고 한다. 특히 자본과 외부적 권위에서 독립적인 삶을 살면서 ‘가슴과 두뇌’로 사고하고자 하는 모든 사람은 출판 활동의 기획자, 편집자, 기고자로 참여할 수 있다고 한다. 또한 신간이 출간되면 서평회나 저자 화상강연 등 참가비가 없는 행사들을 열어 독자들과 만나고, 모든 행사를 촬영하여 온라인에서 공개하며 웹진정원 자율평론에 ‘다중지성의 정원’의 활동과 사상을 담아낸다고 담당자는 전했다. 이렇게 두뇌뿐 아니라 가슴으로도 활동하는 뜨거운 공간인 ‘다중지성의 정원’은 인문학의 ‘뿔’ 역할에 잘 어울렸다.

 

‘영화, 친밀한 삶’ 김성욱 선생님

▲ ‘영화, 친밀한 삶’ 김성욱 선생님

 

‘영화, 친밀한 삶’ 수강생들

▲ ‘영화, 친밀한 삶’ 수강생들


♣인터뷰_다중지성의 정원 할동가 김정연

 

문_강의나 세미나, 서평회 등 ‘다중지성의 정원’과 관련된 활동을 소개해 주세요.

답_‘다중지성의 정원’은 연구정원(waam.net), 강좌정원(daziwon.net), 출판정원 갈무리(galmuri.co.kr), 메타블로그 자율광장(daziwon.org), 웹진정원 자율평론 (http://waam.net/xe/arnow) 등 다섯 개의 정원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각의 마디 (node)들은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습니다. 한 해에 네 번의 분학기로 철학, 정치, 사회, 문학, 언어, 예술 등 다양한 분야의 강의를 개설하며 기획세미나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어요. 현재 들뢰즈 사후 20주년을 기념하는 들뢰즈 집중 세미나 (『천 개의 고원』, 『안티 오이디푸스』, 『시네마』, 『차이와 반복』), 플라톤에서 홉스, 스피노자, 맑스, 레닌, 그람시 등 정치철학의 고전들을 함께 읽으며 고전의 현재성을 숙고하는 정치철학 고전 읽기 세미나, 함께 시를 낭독하고 평하면서 삶을 공유하는 시 읽기 모임, 출판을 목적으로 영어 원서를 조정환 선생님과 함께 강독하고 번역하는 The Wealth of the Commons, #Accelerate 번역 세미나 등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정원들은 우리 자신의 능력에 새로운 힘들이 결합하여 만들어진 모임이며, 누구든지 강좌와 세미나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특정 분과 학문에 갇히지 않도록 상호 접속하고, 공통의 즐거운 지식/행동들을 생성하는 공간으로 발전해 나가는 길에 동참하고 싶으신 분은 언제든 환영입니다.

 

문_‘다중지성의 발생적 분산성’에 대해 긍정하면서도 이를 연결하는 구심점이 되는 것이 결국 ‘다중지성의 정원’의 역할일 것 같은데, 이러한 ‘네트워크’와 관련하여 앞으로의 목표는 무엇인가요?

답_세월호 이후 쉼 없이 싸움을 이어가고 있는 가족대책위원회, 홍대 앞 ‘사막의 우물’로 주거권 운동의 주요한 한 페이지를 쓴 두리반 투쟁, 밀양 할매들의 송전탑 건설 반대 투쟁, 강정마을 주민과 활동가들의 해군기지 반대 투쟁 등은 새로운 감성 및 지성 운동의 중요한 지류들입니다. 뿐만 아니라 올해 세계를 놀라게 한 일본 청년들의 평화 헌법 개정 반대 투쟁, 정부의 등록금 인상 정책에 맞서 무상 대학교육을 요구하며 17개의 대학을 점거하여 일시적으로 문을 닫게 만든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학생들의 전국적 봉기, 미국 경찰의 인종 학살에 분노하는 미국 시민들의 인종차별 반대 운동, 그리고 안전한 삶을 찾아 국경을 넘는 난민들의 발걸음은 모두 새로운 지성의 전지구적 지류들입니다. 

이러한 지성적 흐름들을 ‘다중 지성’이라 여기고 이것을 확대하기 위해 공동체의 이름으로 삼았습니다. 대학이 부패 속에서 수익성 척도에 따라 서열화되고 협소하게 격자화된 관심을 논리화한 전문지성을 양산한다면, 반대로 다중지성은 그 격자 속에 갇힐 수 없는 삶의 존재론적 가치를 강조하는 협력적․창조적인 움직임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인 에피쿠로스는 아테네 교외에 ‘정원’을 꾸려서 지식인은 물론이고 매 춘부, 아이들, 거지들이 함께 대화하며 공통의 의미를 생산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철학을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한 활동’으로 여기고 공부를 지속한 것입니다. ‘다중지성의 정원’도 이와 같은 ‘21세기형 정원’이 되고자 합니다. 오늘날의 새로운 상황 속에서 학생, 교사, 교수, 비정규직 노동자, 이주 노동자, 가사 노동자, 성노동자, 실업자, 사무직 노동자, 서비스직 노동자, 연구원들, 아이들, 주민들 등이 함께 모여 현재의 질서를 넘어설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꾸리고 그것을 새로운 의미평면 위에서 조직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또한 서로 다른 국지적․우발적․특이적 투쟁들이 연결 지점을 찾으면서 제3의 투쟁으로 변신해 나가는 생성의 소용돌이를 만드는 것이 ‘다중지성의 정원’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문_만약 과거로 시간여행을 한다면 한번 만나 보고 싶은 철학자나 사상사가 누구인가요.

답_다양한 사회적 상상력의 실험실이었던 1970년대 이탈리아를 가보고 싶습니다. 당시 이탈리아에서는 갈무리의 저자이기도 한 실비아 페데리치 같은 여성주의 활동가들이 ‘가사노동을 위한 임금 지급’을 요구하는 운동을 펼쳤는데 이 운동은 전지구적 캠페인이 되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자본주의에서 여성의 불불 노동이 담당하는 역할, 자본주의 체제 자체가 자신의 재생산을 위해 성별 분업과 여성의 착취를 필수적으로 요구한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혁명의 영점』 같은 책에서 당시 활동가들의 열기와 문제의식의 첨예함, 치열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와 폭력의 문제는 여전히 심각하며, 여성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자신들의 노동과 삶에 대한 저평가 속에서 하대 받으며 온갖 종류의 폭력에 노출돼 있다는 점에서 1970년대의 자율주의적 페미니즘이라는 새로운 흐름을 살펴보는 것이 오늘날에도 유효할 것입니다. 특히 실비아 페데리치, 마리아 미즈, 마리아로사 달라 코스따 같은 당시의 이론가/활동가들은 아직 생존해 있고, 갈무리 출판사에서도 그들의 저작을 꾸준히 출판하고 있습니다. 실비아 페데리치를 화상으로 몇 차례 만나 볼 기회가 있었던 것을 큰 행운으로 생각하고 있는 만큼, 그들과 시간여행으로 접속할 기회가 생긴다면 오늘의 현실을 살아 나가는 데 힘을 얻을 것 같습니다.



 ‘다중지성의 정원’ 간판

▲ ‘다중지성의 정원’ 간판. ‘히드라’ 모양의 로고가 돋보인다. 


잠재성의 다중, 잠재성의 공동체, 잠재성의 인문학

공동체의 이름에 들어가 있는 ‘다중(multitude)’의 잠재성은 공동체의 잠재성, 인문학의 잠재성과도 연결될 수 있을 것이다. 담당자의 말에 의하면, ‘다중’은 오늘날 새로운 주체(성)들의 이름으로서 국가․자본 질서에 대항하며 새로운 흐름을 만드는 ‘잠재적이면서도 끊임없이 현실화되는 특이한 힘’이다. 특히 물리적인 신체뿐만 아니라 정서․감각․지각․마음까지 포섭하는 인지자본주의(cognitive capitalism) 시대에 다중의 정보적․정동적․행동적․소통적 능력들은 자본주의와의 생산적인 관계를 모색하는 데 유효할 수 있다.

이는 갈무리의 상징인 ‘히드라’ 와도 연결될 수 있을 것 같다. 기존의 지식 체계에서 나타나는 ‘히드라(무질서, 불의)/헤라클레스(정의, 선)’의 관계는 ‘다중지성의 정원’에서는 다르게 생성될 수 있다. 중앙집권․위계․질서 부과를 상징하는 헤라클레스와 달리, 히드라를 여러 개의 머리를 가질 뿐만 아니라 잘린 머리에서 새로운 머리가 생겨나는 것으로 보면서 다양성․생성․흐름들의 연합으로 보는 것이다. 이는 오늘날의 창조적 힘으로서 저항․생성․연합의 주체성을 상징하며 다중적인 잠재력을 통해 가능하다. 이렇게 기존의 질서 안에 존재하는 ‘안전한’ 인문학에서 벗어나서, ‘아래로부터의’ 인문학으로서 다양한 도전들을 하며 다양한 접합점을 구성하는 ‘잠재성의 인문학’을 고민하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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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중지성의 정원

서울시 마포구 동교로18길 9-13

☎ 02-325-2102

daziwon@gmail.com

 

권혜린

필자_권혜린
권혜린은 서울 흑석동에서 산다. 주로 집과 학교를 왔다 갔다 하지만 ‘바깥’으로 나가는 일도 좋아한다. 대학원에서 현대소설을 전공하고 있으며, 창작과 비평에 관심이 많다. 평범함이 콤플렉스인 특성을 상쇄해 줄 특이한 사람, 딴소리 하는 사람, 재미있는 사람에 관심이 많다. 우연히 알게 되었지만, 필연이 될 것 같아 인문쟁이에 지원했다. ‘온몸으로 하는 인문학’ 을 체득하고 싶다. 
lingi3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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