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중과 제국 읽기 세미나+강좌, 20120219, 돌민 네그리,『다중과 제국』, 갈무리, 2011, 203~214쪽


요약(보론1·대항권력)

1. ‘대항권력’ 일반에 대해 말할 때 실제로는 세 가지를 말하는 것이다. 구舊 권력에 대한 저항, 반란, 새로운 권력의 구성적 활력. 저항, 반란, 구성권력은 대항권력의 단일한 본질의 삼위일체적 형상을 나타낸다.
 우리는 다소 정확하게 저항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다. 일상적 삶에서 대다수의 사회적 주체들이 저항을 실천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란에 관해서 말하자면, 그것이 더 어려운 실험에 해당하긴 하지만 한 세대의 기간 안에는 (그리고 여하튼 최근 두 세기에는 30년마다) 그것을 경험할 수 있었다. 우리에게 반란은 대중적 저항 운동이 짧은 시간에 활동적으로 되거나 혹은 어떤 구체적인 한정된 결정된 목표에 집중될 때 띠는 형태이다.
 구성권력은 저항과 반란이 산출한 혁신에 형상을 부여하고 그것에 적실하고 새로우며 목적론적으로 효과적인 역사적 형태를 부여하는 활력이다.

 

2. 전통 좌파의 언어에서 대항권력은 더 간단하고 축소화된 특징을 갖는 용어이다.
 이러한 간단함과 이러한 축소는 오류이다.
 만약 대항권력의 모든 형상에서 저항, 반란, 구성권력의 함축된 연관이 인식되지 않을 경우, 바로 이 구성요소들을 무력화시키고 그 효율성을 제거하거나 혹은 심지어 그것을 지배 권력에 자기도 모르게 양도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관점에서도, 즉 대항권력의 다양한 구성요소들의 구분에 특권을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연관을 찬양하는 관점에서도, 모호한 효과들이 있을 수 있으며 심지어 부정적인 효과들이 있을 수 있다. 이것은 대항권력이 시간적 차원에서, 그리고 여기서는 극히 근시안적인 관점에서 고찰되는 경우이다. 이때 저항, 반란적 활동, 구성권력 사이의 연관은 직접성의 변증법으로 서술될 수 있는데, 이 변증법에서는 각 개별적 계기가 (그리고 대항권력의 활동, 기능, 규정이) 포착될 수 없으며 실행될 수 없다.

 

3. 대항권력의 유효성과 아마도 그것의 정의定義마저 파괴하는 것이 이러한 무無구별적인 시간성만은 아닐 것이다. 대항권력이 행사되고 전개되는 공간의 왜곡 또한 존재할 수 있다. 이 논점을 분명히 하기 위하여 대항권력의 기초적 정의로 되돌아가서 그것을 풍부한 것으로 만들어 보기로 하자.
 파괴하는 ‘대항권력’에 탈안정화하는 ‘대항정부’가 상응해야만 하는 것이다. 셋째로, 구성권력의 능동적 행동이 존재한다.
 이제 우리가 처음에 다루었던 문제로, 즉 대항권력이 그 기능을 온전하게 구현해내지 못할 때 권력이 대항권력의 힘을 재영토화할 (그리하여 폐쇄된 공간에 가두고 궁극적으로는 무력화할) 가능성으로 되돌아가보자.
 다른 한편 대항권력의 효율적인 포섭과 무력화를 보증하는 자본주의 권력의 거대한 전통이 존재하는데, 이는 바로 입헌주의 전통이다.
 하지만 대항권력은 이 모든 것의 정반대이다!

 

4. 대항권력의 개념과 실천에 접근하되 그 형상의 뚜렷한 복잡성에 그리고 그 활력의 독창성에 초점을 맞추면서 접근하기 위해서 우리는 이제 대중의 대항권력과 구성된 권력 사이의 비非상동성이라는 또 다른 논점을 강조해야 한다.
 그래서 군주제적 권력이나 귀족제적 권력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권력 형태를 생각하는 것, 또한 다중의 활력의 기능이라기보다는 여전히 권력 행태 중 하나인 민주제적 권력과도 아무런 관련이 없는 그러한 권력 형태를 생각하는 것이 완전히 가능하다.
 더 분명하게 말하면, 대항권력의 활동은 실존하는 권력의 대체를 그 목적으로 하지 않는 것이 필수적이다. 반대로 그것은 대중의 자유의 다양한 형태 및 표현을 제안해야만 한다.

 

5. 노동운동 및 코뮤니즘 운동의 전통에서 대항권력 개념은 다양한 용도를 가진 극히 모호한 개념으로 기능했다.

 우리는 이러한 이데올로기들에 관해 계속해서 이야기할 수 있다. 하지만 훨씬 더 중요한 것은, 구성된 권력과 상동성을 갖지 않는 형상을 대항권력 개념에 부여하지 못하는 무능력이 무엇보다도 함축된 전제로부터 도출된다는 것을 강조하는 일이다. 다시 말해서, 권력의 사고와 실천의 배후에도 그리고 대항권력의 사유와 실천의 배후에도 존재하는 경제 모델이 가진 잠재적 상동성(‘벽장 속의 해골’)으로부터 도출된다는 것을 강조하는 일이다. 자본주의적 발전 모델이 바로 이 경제 모델이다.

 

6. 이 지점에서 ‘대항권력’의 정의定義를 어떻게 확정할 수 있겠는가? 존재론적 정의가 존재한다. 이것의 핵심은 저항과 반란적 활동이 (잠재적이지만 능동적인) 구성권력을 나타낸다는 사실을, 이는 운동들의 통제(노동력에 대한, 그 동학에 대한, 노동력이 초래하는 전위에 대한 효과적인 제국적 통제의 형성)가 전지구적으로 되기에 더욱 그렇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데 있다.

 

7. 따라서 오늘날 진정한 대항권력은 순전히 국가적 평면에서 움직이는 것을 피해야만 하며, 또 새로운 제국적 입헌주의의 톨로 흡수되는 것을 피해야만 한다.
 그러면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가?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서는, 어떤 확실한 것을 제공하지는 않을지라도 오늘날 대항권력을 구축하기 위해 가야할 경로들을 가리켜주기는 하는, 몇몇 경험들에 대해 성찰하는 것을 좋을 듯하다.
 체 게바라가 우리가 지금 말하고 있는 것을 직관했다는 것을 상기하는 것은 기묘하지만 흥미로우며 또 대단히 시사적이다. 즉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가 거대한 정치적·물리적 혼종화로 변형되어야만 한다는 것, 이를 통해 이전에는 국가들이었지만  오늘날에는 다중들이 주체가 단일한 해방 투쟁으로 통합된다는 것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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