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중과 제국 읽기 세미나+강좌, 20120212, 돌민 네그리,『다중과 제국』, 갈무리, 2011, 168~175쪽

 

요약{보론·다중의 존재론적 정의(定義)를 위하여 168~175쪽}

 

1. 다중은 내재성의 이름이다. 다중은 특이성들의 총체이다. 이러한 인식에서 시작할 경우, 우리는 국민(민중) 개념이 일단 초월성에서 해방된 다음에 남게 되는 실재에 대한 존재론적 정의의 자취를 곧바로 파악할 수 있다.

 

2. 다중은 계급 개념이다.
 다중이라는 계급 개념은 노동계급 개념과는 다른 방식으로 고찰되어야만 한다.
 만일 다중이 계급 개념으로 제시된다면, 착취 개념은 협동에 대한 착취로 정의될 것인데, 이때 협동은 개인들의 협동이 아닌 특이성들의 협동이며, 착취는 특이성들의 총체에 대한 착취, 총체를 구성하는 네트워크 및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총체에 대한 착취이다.
 역사적 이행을 획기적인 것(존재론적으로 획기적인 것)으로 정의할 경우, 이는 한 시대에 유효한 측정 기준 혹은 측정 장치가 발본적으로 논의에 부쳐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이러한 이행기에 살고 있긴 하지만, 새로운 측정 중심 혹은 측정 장치가 제안되었다는 말은 없다.

 

3. 다중은 활력 개념이다. 이미 협동을 분석하면서 우리는 실제로 특이성들의 총체가 척도를 넘어서 생산한다는 것을 밝혀낼 수 있었다. 이 활력은 확장되고자 할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신체를 획득하고자 한다. 다중의 살은 스스로를 일반지성의 신체로 변형하고자 한다.
 우리는 이러한 이행을, 더 정확하게는 활력의 이러한 자기표현을 다음의 세 가지 선을 따라서 고찰할 수 있다.
 가. 근대에서 탈근대로의 (혹은 달리 말해 포드주의에서 포스트포드주의로의) 이행이라는 다중의 계보학.
 나. 일반지성을 향하는 경향.
 다. 내부에 연속성과 불연속성을 포함하는 이러한 혁신적 이행의 자유와 기쁨(또한 위기와 피로).

 

4. 또다시 다중 개념과 국민 개념의 차이가 강조될 필요가 있다.
 우리가 한편으로 다중을 국민과 대조했다면, 다른 한편으로는 대중 및 군중과 대조해야만 한다.

 

5. 권력의 관점에서 다중에 대해 무엇을 할 것인가? 사실 권력이 할 수 있는 것은 정말 아무 것도 없는데, 그 이유는 권력이 관심을 갖는 범주들, 즉 주체의 통일성(국민), 그 구성 형식(개인들 사이의 계약) 그리고 통치방식(분리되어 나타나거나 결합되어 나타나는 군주제·귀족제·민주제)이 다중에게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비물질적 노동력 및 협동하는 산 노동의 헤게모니를 통해 이루어진 생산양식의 저 발본적인 변형 – 진정하고도 고유한 존재론적·생산적·삶정치적 혁명 – 이 ‘선정’善政의 모든 매개변수들을 전복시키고 (자본가들이 처음부터 욕망했던) 자본주의적 축적을 위해 기능하는 공동체라는 근대적 이념을 파괴한 것이다.

 

6. 이와 같이 다중 개념은 실현되고 있는 혁명 안에서 완전히 새로운 세계로 우리는 인도한다. 이 혁명 안에서 우리 자신은 우리 스스로를 단지 괴물로서 상상할 수 있을 따름이다.
7. 그래서 다중의 제1의 질료는 , 다시 말하면 신체와 지성이 일치하고 구별불가능한 살아있는 공통적 실체이다.
 다중이라 불리면 근대의 끝에서 출현한 혁명적 괴물은 우리의 살을 지속적으로 새로운 삶형태로 변형시키고자 한다.

 

8. 우리는 살에서 새로운 삶형태로 나아가는 다중의 운동을 또 다른 관점에서 설명할 수 있다. 이 운동은 존재론적 이행에 내재하며 그것을 구성하는 것이다.
 사실 이 과정은 강도가 경우마다 다소 다른 (뿌리줄기적이라 불리는) 연결이라는 첫 번째 리듬(공시적 리듬)에 따라서, 또 흐름의 수축과 이완, 전개와 위기, 집중과 분산이라는 또 다른 리듬(통시적 리듬)에 따라서 전지구성과 특이성 사이에 펼쳐져 있다. 요컨대 주체성의 생산, 즉 주체가 그 자신을 만드는 생산은 동시에 다중의 공재의 생산인데, 이는 다중이 특이성들의 집합체이기 때문이다.
 ‘다중’이라는 이름은 집단적 실천의 주체인 동시에 산물이다.
9. 다중에 관한 담론의 기원이 스피노자 사상에 대한 전복적 해석에 있음은 명백하다. 이 주제에 대한 논의에서 스피노자적 전제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스피노자와 관련된 모든 주제는 무엇보다도 먼저 신체에 관한 것, 특히 활력있는 신체에 관한 것이다. “우리는 신체가 얼마나 많은 것을 할 수 있는지 알지 못한다.” 이제 다중은 신체들의 다중에 붙여진 이름이다. 우리는 “활력으로서의 다중”을 강조하면서 이러한 규정에 대해 말한 바 있다. 따라서 신체는 계보학에서나 경향성에서나, 또 다른 구성 과정의 국면들에서나 그 귀결에서나 첫째이다. 그러나 이것으로는 충분치 않다. 우리는 지금까지 이루어진 모든 논의를 신체의 관점에서 다시 살펴보아야 한다. 다시 말해 앞서 다룬 1, 2, 3의 논점들로 되돌아가서 그것들을 이 관점에서 보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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