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미나강좌, 120205, 돌민 네그리,『다중과 제국』, 갈무리, 2011, 145~156쪽

 

1. 이 강의에서는 다중 개념 정의의 방법론적 전제를 다루고 그 다음 구성권력 개념 정의의 방법론적 전제를 다룰 것입니다.

 

2. 주지하듯이 다중 개념은 스피노자의 작업에서 가장 의미심장한 정식화의 형태로 탄생하는데, 스피노자는 이 용어를 일정한 형태로 배열되어 있는 특이성들의 다양체로 이해합니다.

 

3. 그래서 다양체의 조직화 및 민주주의의 문제를 제기할 때 스피노자는 내재론적 평면에서 그 문제를 제기합니다. 즉 다중이 스스로를 직접적으로 조직할 수 있는 방식을 (더 정확하게는 현실적으로 조직될 수 있는 방식을) 묻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다중은 이전에는 없었던 것을 모두 자기 자신으로부터 산출하는 개념입니다. 원인이 행위이자 과정으로 되며, 민주주의는 다중이 (특이성들의 상호작용을 통해서) 공통의지를 표현하는 형식인데, 공통의지는 외부를 갖지 않으며 전적으로 자율적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절대적 의지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결론을 말하면, 마키아벨리즘이 강력한 민주주의론으로 제시되는데, 그 민주주의론은 프로테스탄트 종파들에서 응용과 발전의 영역을 발견하고, 그 다음 중부 유럽과 영국의 혁명 운동에 자양분을 제공하며, 결국 대서양을 횡단하여 미국 헌법을 정초하는 데까지 관여합니다. 이것은 포콕Pocok에 의해서 폭넓게 연구되었습니다. 우리의 관심사는 이러한 전개에서 스피노자가 가지는 중심성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4. 스피노자에게는 또한 또 다른 대단히 중요한 요소가 있습니다. 그 요소는 니체의 공헌을 경유하여 현대에 와서는 들뢰즈와 푸꼬의 철학 속에서 표현되었습니다. 이 요소는 바로, 주체성을 – 가장 초보적인 주체성 개념으로서의 정치적 주체성을 – 관계들의 총체의 산물로서 정의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체를 정의할 때 그 정의를 형이상학적 요소 위에 정초할 가능성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특히 자기의식의 그 어떤 요소도 다중의 노동에 비하면, 특이성들 사이의 관계의 산물에 비하면 부차적인 것입니다. 특이성은 분명 그 고유의 힘을 유지하지만, 자기 자신과 전체를 동시에 구축하게끔 하는 관계들의 동학 안에서 그것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5. 이런 방식으로 주체는 전체와의 관계를 통하여 정의되는데, 그것은 (반복하지만) 주체가 관계 안에서만 존재하며, 오직 상호작용의 놀이에 의해서만 주체에게 사법적·정치적 자격이 생긴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컨대 소유 개념이 특이성들 사이의 관계에 종속되는 것입니다. 현대의 공화주의 사상은 사실 전유(소유)의 원천을 개인에게서 보는 사고방식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정치사상사의 관점에서 볼 때 근대의 구성 과정의 중심에 이러한 개인주의를 위치시킨 것은 바로 홉스입니다.

 

6. 그런데 이 지점에서 개인들에게는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요? 권력을 양도한 순간 개인들은 국민(신민), 즉 주권자가 승인한 권리의 담지자들의 총체가 됩니다. 그래서 국민 개념이 근대에 국가의 산물로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7. 이제 다중 개념으로 되돌아갑시다.
 사실 다중 개념의 재구축이 가능한 것은 이 개념이 노동 조직의 새로운 형태 및 사회의 새로운 형태와 대면하게 되는 순간입니다. 다시 말해서 계급의 기술적·정치적 구성의 어떤 형태로서 다중이 분석될 때에만 다중 개념은 재구축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때 다중 개념은 (16세기에서 18세기까지 공화주의 조류에서 그러했듯이) 단순히 정치적 관점에서만이 아니라, 바로 자본주의 발전, 사회 발전, 그리고 – 더 중요하게는 – 주체성 발전의 새로운 국면에 관한 물질적·존재론적 표지로서 재구축되는 것입니다.

 

8. 탈근대적 국면에서 다중 개념은 비물질노동을 행하는 다중의 역량에 의해 그리고 비물질노동을 통해 (활동을 통해) 생산을 재전유하는 활력에 의해 정의되는 특이성의 존재와 연관됩니다. 우리는 탈근대적 노동력이 다중의 형상으로 주어진다고 (그리고 결과적으로 탈근대적 생산의 정치적 형상이 절대적 민주주의의 형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9. 이제 논의를 요약하면서 개념화해 봅시다. 우리가 다중에 대해 말할 때, 우리는 근본적으로 세 가지를 주장하는 것입니다. 사회학적 관점 및 사회철학적 관점에서 우리는 다중을 무엇보다도 총체라고, 주체성의 다양체라고, 더 정확하게는 특이성의 다양체라고 말합니다. 둘째로 우리는 다중의 비非노동 사회계급이라고 말합니다. (이 경우 주된 연관을 갖는 것은 포드주의로부터 포스트포드주의로의 이행에서, 물질노동의 헤게모니로부터 비물질노동의 헤게모니로의 이행에서 일어난 노동 변형의 경험입니다). 마지막 셋째로 다중을 말할 때 우리는 뭉개져 대중으로 되어버리지 않은 다양성을, 자율적이고 독립적이며 지적인 발전이 가능한 다양성을 언급하는 것입니다. 이는 곧 노동의 활력의 발전인데, 이 발전은 노동력으로 하여금 노동수단 및 협동 장치의 재전유를 통해서 예속과 주권의 변증법을 종식시킬 수 있게끔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는 이 주제를 정치적 용어로 옮겨서 민주주의적 활력으로서의 다중이라는 가설을 제시할 수 있는데, 이는 다중이 자유와 노동을 한데 엮어서 ‘공통적인 것’의 생산에서 결합시키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말할 경우 정치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 생산성과 삶의 윤리 사이의 모든 구별이 소멸된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이와 같이 정의된 다중은 열려 있는 역동적·구성적 개념으로 제시됩니다. 우리는 삶정치적인 것 안에 있습니다. 다중 개념도 전적으로 삶정치적인 것 안에서 살아가기 시작합니다.

 

10. 생산 범주에서 정치 범주로의 이행은, 다중 개념의 정의에 관한 한 역사 과정과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11. 이제 지금까지 전개된 논의가 이 글에서 다루어지지 않았던 몇몇 이론적 귀결들 및 다른 관련된 개념들을 심화시키도록 해줍니다.

 

12. 이 지점에서 예를 들어 다중의 정의에서 나온 바의 ‘공통적인 것’의 개념(과 그것과 연관된 모든 용어들)을 더 분명히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특히 공통적인 것을 동일성 그리고/혹은 합의와 결부시키는 몇몇 전통적 독해들을 넘어서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기서 분명 우리는, 공통적인 것을 통해서 그리고 공통적인 것의 정의 안에서, 종종 다중 개념과 교직되는 개념들과 대면합니다.

 

13. 나중에 우리는 우리가 언어적 기능에서 의미를 표현할 동등한 가능성을 가질 뿐만 아니라, 또 의미가 언어적 협동에서 태어나고 그 협동성에서 형성된다는 것을 인식할 가능성 또한 가진다는 점을 살펴볼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는 생산 혁명과 언어 혁명의 교직을, 존재론적 생산 변형의 진행을 식별해낼 수 있는데, 이 변형에서는 생산적 가치와 언어적 의미가 공통을 궤적을 구축합니다.

 

14.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논의를 진전시키는 데에는 다중 개념 분석을 더 심화시키는 것이 유용할 것입니다. 다중 개념은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의 저자들에 의해서도 다양한 관점에서 전개되었는데, 우리는 이러한 다양한 관점들과 대면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철학 영역에서 일어났던 일일 뿐만 아니라, 권리론에도 강력하게 적용되었습니다.

 

15. 또 이러한 철학적·정치적 인식에서 도출되는 또 다른 입장이 있습니다. 공동체주의적 유형의 서사를 다시 도입하는 저자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