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좌세미나 『다중과 제국』 읽기, 120129, 돌민 네그리,『다중과 제국』, 갈무리, 2011, 95~112쪽

 

1. 저는 역사적 연쇄의 관점에서 방법론적 주제를 논의하면서 지금까지 얘기된 것을 뒤잇고 싶습니다. 결론은 분명합니다. 역사적 교직물이 새롭게 짜일 때, 이와 함께 인식론적 관점의 전환도 일어나게 됩니다. 앎의 방법과 사실들에 실제로 접근하는 방법이 변형되는데, 특히 실천적인 관점에서, 즉 에피스테메가 실재에 삽입된다고 보는 관점 – 이는 곧 행위의 장치의 관점입니다 – 에서 더욱 그러합니다. 그러므로 역사적 맥락이 변할 때마다 방법 역시 변하는 것입니다.

 

2. 우리가 매우 어려운 이론적 조건에 있음을 강조하는 것으로 강의를 시작하려 합니다. 이 어려움은 우리가 방법을 정의함과 동시에 사태, 즉 분석되어야 하는 상황도 규정해야 하는 데서 옵니다. 현재의 실제적 상황에서 방법이 접근해야만 하는 대상을 포착하는 것은 어려운데, 이는 필시 대단히 중요한 구조적 변화가 일어났기 때문일 겁니다.

 

3. 맑스의 「서설」에는 사실 방법 안에 있으면서 방법을 절대화하는 외부가 여전히 있었는데, 사용가치 개념이 바로 이 외부였습니다. 사용가치는 방법이 실재를 그때마다 새로이 발견하는 모험에 나서기 이전에 자신을 공고히 하는 데 출발점이 되는 정박지와도 같습니다.

 

4. 오늘날 우리는 사용가치가 완벽히 변모되고 개조된 현실에 직면해 있습니다. (이것이 사회적 존재의 존재론과 관련하여 첫 번째로 주목할 점입니다.)

 

5. 방법론적인 동시에 인식의 내용과 관련되는 이러한 가설의 토대는 맑스의 소위 ‘기계에 관한 단상’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6. 결국 노동시간의 측정이 세계의 노동 질서를 고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규범으로서 무의미하게 되는 것입니다.

 

7. 그러므로 우리는 한편에서는 노동시간이 다른 한편에서는 이의 척도(그리하여 가치법칙)가 생산의 중심적·계량적 요소로서 점점 덜 중요하게 되는 그런 상황에 있는 것입니다. 오히려 사회적·집단적 개인이 생산 가치를 규정하는데, 이는 노동이 소통적·언어적 형태로 조직되고 지식이 협동적인 어떤 것인 상황에서는 생산이 지적·언어적 노동을 구성하는 연관들 및 관계들의 통합성에 (즉 이러한 집단적 개인에) 점점 더 의존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8. 이 지점에서 맑스의 통찰의 선은 두 가지로 나타납니다.

 

9. 이 후자는 맑스적 유토피아가 아닙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유토피아로 보일 수 있었던 것이 이제 진실이 되었습니다.

 

10. 여기서 우리는, 앞에서 “더 이상 외부는 존재하지 않으며 심지어 주변적 외부조차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시작했던 맥락과 긴밀한 내적 연관을 가지는 어떤 것을 정의하고 있는 것입니다.

 

11. 명령이라는 주제가 잉여가치 추출에서 핵심적이며 착취를 특징짓는 데 근본적인 것이라고 볼 때, 우리는 이러한 인식을 신비화하지 않도록 대단히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이 문제를 다른 관점에서, 즉 정치적 통제의 관점에서 자본주의 발전을 바라보면서 검토하도록 합시다.

 

12. 기생적 자본이라는 것을 다른 관점에서, 즉 노동의 사회하라는 관점에서 고찰하도록 합시다.
 요컨대 기생적 자본은 특히 지식·협동·언어의 운동을 정지시킴으로써 가치를 추출하는 자본인 것입니다.

 

13. 물론 우리는 기생적 기능으로서의 자본에 관한 고찰을 계속해서 진행시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부터는 사회적 생산의 초과를 낳는 일반지성의 중요성을 상기하면서 자본의 긍정적인 측면을 고찰하고 싶습니다.
 이 경우 특징적인 것은 지적으로 되거나 혹은 여하튼 비물질화된 노동력이 (시초축적의 형태로) 형식적으로는 그 외부에 있는 사람들도 그것의 발전에 포함시키면서 전염병처럼 확장된다는 점입니다.

 

14. 만약 이것이 현재 상황에 대한 서술이라면, 우리의 물음은 (방법의 독립성과 같은  것이 여전히 존재한다면) 이러한 실제적 상태에서 방법은 무엇이며 어떻게 그것이 작동할 수 있는가일 것입니다. 분명 이 지점에서 방법이 가졌다고 볼 수 있는 독립성은 최소의 외재성, 즉 최소의 ‘외부’가 여전히 가용하다고 가정한다면 매우 상대적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자본을 진보적인 힘으로 보는 데서 매우 멀리 떨어졌기 때문에 어떻게 자본이 스스로 존재하기 위해서 가치의 사회적 포획 과정을 봉쇄해야만 하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과정은 자본의 명령 능력을 넘어서는 초과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논의의 배후에 있는 방법 개념은 노동의 인지 활동으로의 변형이 가치화의 극단적 초과 - 지식의 자신의 모든 산물을 초과하는 것 - 로 특징지어진다는 사실을 제시하(고 드러내며 입증하)는 것입니다. 방법은 이러한 초과의 일부이며 이 초과 안에서 그 자신의 상대적 독립성을 획득합니다.

 

15. 그러면 지금까지 말해진 것에 기초하여 재차 이 물음에 답하고 새로운 방법론 해설의 몇몇 요소들을 제공하기로 합시다. 우리가 맑스에게 집요하게 행한 비판이 그의 추론의 구조로부터, 그의 논리의 근본범주들로부터 이탈하는 것이 전혀 아니라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은 흥미롭습니다. 우리의 비판은 그 범주들을 완벽하게 하기 위해 그것들을 문제삼았던 것입니다.
 맑스주의 사유와의 연속성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근본적인 또 다른 요소는 우리 경험에서 이러한 노동이 여전히 착취되는 노동이라는 사실입니다.

 

16. 존재론을 논하기로 한 선택의 배후에는, 유물론에서 존재란 존재하는 것이며 따라서 실재적인 것을 발명할 수 없다는 주장을 진부하게 강조하는 것만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논의에는 (예를 들어 스피노자주의가 전형적으로 나타내는) 근대의 대안적인 유물론에 부합되는, 구성의 관점에서 존재를 철학적으로 인식하려는 시도 또한 존재합니다. 이것이 존재의 해방이라는 상상적인 것 안에서 방법을 사유할 수 있게 합니다. 이때 방법은 모든 초월, 모든 외부가 세계로부터 추방된 것으로 봅니다. 그리고 자율적으로 세계를 생산하고 구축하는 능력을, 사람들이 살아가고 생산하면서 의거하는 가치들을 그 세계 안에 투사하는 능력을 인간에게서 재발견합니다.

 

17. 둘째로 방법은 그 과학적이고 유효한 규정들을 산 노동 개념 안에 통합사는 것을 가능하게 해야만 합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우리는 방법을 지식의 관점에서 즉각 산 노동으로 정의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그래서 그로부터 유래하는 생산과정은 지성이 모든 생산에 제안하는 긍정적 혼종화에 열려있어야 합니다.

 

18. 셋째로 방법은 착취 개념과 착취 현실의 재고찰을 분석의 핵심으로 삼아야 합니다.
 제국은 전지구적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을 모든 수준에서 가치를 표현하는 능력을 세분하고 봉쇄하고 종속시키는 능력에서 구축합니다. 제국적 착취는 바로 이러한 기계가 되는데, 이는 경쟁 시대의 자본주의적·제국주의적 착취와는 대단히 다른 것입니다.

 

19. 이 논점을 마무리하도록 합시다. 우리가 착취에 포함된 주체의 반작용성을 다룰 때 방법은 우리를 전체 과정 안에 있게 해야만 합니다. 특히 그것은 협동적 결정들을 통합해야만 하며 동시에 직접적이고 연속적인 지식의 초과 - 이는 필시 저항이라고도 불릴 수 있을 터인데,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살펴볼 것입니다 - 를 포착하는 데  성공해야만 합니다.

 

20. 사회 운동의 지속적·변형적 인과성이 실로 자본의 개념에 진입하는 것인데, 점점 더 긴밀한 형식으로 그렇게 됩니다. 이러한 운동들은 더 이상 외부를 가지지 않으며 자본의 틀 안에 배치됩니다. 다양한 축적과 실천이 가로지르는데, 이는 그 동학의 귀결이며 궁극적으로는 삶정치적 차원에서, 즉 더 이상 단지 생산에만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 분명 삶 전체에 연결되어 있는 장치에서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러한 결론에 방법론적으로 도달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종종 다시 제기할 가치가 있는 논점과 만납니다.)

 

21. 우리의 방법론적 노력을 전진시키기 위하여, 이제 우리는 삶정치의 정의를 성찰해야 하는데, 푸꼬에게서 그것이 나타나는 방식에서 출발하고자 합니다.
 강의의 이 부분을 전개하면서 저는 주디트 레벨Judith Revel의 요약을 따르고자 합니다.

 

22. 푸꼬는 역사적 관찰에서 출발합니다. 즉 프랑스 절대 왕정의 고전주의 시대부터 권력은 인구의 일반적 재생산 일반 - 건강·위생·영양 등과 연관된 재생산 - 에 관여한다는 의미에서 인구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는 사실에서부터 움직입니다. 그러므로 삶정치 개념은 그것이 나타난 시대의 통치의 정치적·기능적 합리성에 대한 역사적 분석을 포함하는 것입니다.

 

23. 1981년에 바히아Bahia 대학에서 개최된 콘퍼런스에서 푸꼬는 다움과 같이 주장했습니다. “인구의 발견 및 그와 동시에 개인의 발견과 조작가능한 신체의 발견이 서양의 정치 과정의 변형의 중심에 놓여 있는 특수한 테크놀로지의 핵으로 드러난다. 그 순간에, 해부정치auatomopolitics와 대립하는,  삶정치라 불리는 어떤 것이 발명된다.” 우리는 푸꼬를 이어받으면서 훈육으로부터 통제로의 통치 기술의 이행을 강조할 필요가 있습니다.

 

24. 삶정치 개념은 다양한 문제를 제기합니다. 첫 번째 문제는 푸꼬 자신에게 있는 모순과 연관됩니다.
 하지만 이러한 두 번째 정식화로부터 또 다른 문제가 생겨납니다.
 이렇게 해석된 두 번째 관점에서 볼 때 만약 삶이 활력으로 제시된다면, 삶정치라는 주제가 정치 관계를 재정식화하는 데 근본적인 중요성을 가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