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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무리 출판사 신간 안내

2019.05.16 |


보도자료


전환기의 한국사회,
성장과 정체성의 정치를 넘어



제9회 맑스코뮤날레가 2019.5.24.(금)~26.(일), 서강대학교에서 열린다.
이 책은 ‘녹-보-적 연대’의 교착상태에 숨구멍을 내기 위한 집단적 모색이다.



지은이  맑스코뮤날레  |  정가  23,000원  |  쪽수  432쪽  |  출판일  2019년 5월 18일

판형  신국판 무선 (152*225)  |  출판사  도서출판 갈무리

총서명  Mens, 카이로스총서 56

ISBN  978-89-6195-206-4 93300  |  CIP제어번호  CIP2019011587

도서분류  1. 정치학 2. 경제학 3. 철학 4. 문화비평 5. 사회운동 6. 정치사상

보도자료  전환기-보도자료-ver.3.hwp 전환기-보도자료-ver.3.pdf


인터넷서점 바로 가기 : 알라딘 교보문고 YES24 인터파크 반디앤루니스 영풍문고



‘전환기의 한국사회, 성장과 정체성의 정치를 넘어’는 맑스코뮤니스트가 된다는 것이 의미하는 바를 다시 한번 묻고 ‘녹보적 연대’의 교착상태에 숨구멍을 내기 위한 모색의 자리임을 공표하는 것이며, 그와 동시에 향후 맑스코뮤날레가 그런 길을 걷고자 하는 이들의 더 많은 자발적 참여의 장으로 거듭나기를 바라는 소망의 표현이다. 자본의 지배를 철폐하고 가부장체제를 넘어 자연과의 조화로운 삶을 실현해 나가고자 하는 아름다운 이들, 모든 착취·수탈·차별·배제에 반대하여 투쟁하는 이들의 연대와 우애를 바라면서 말이다. 그리고 그 실현 정도에 따라 전환기에 처한 한반도의 평화는 물론 지구화 시대에 걸맞은 진정한 의미의 평화 또한 더 구체적으로 다가오게 될 것이다. ― 「발간사」 중에서



『전환기의 한국사회, 성장과 정체성의 정치를 넘어』 간략한 소개


한국사회는 ‘전환의 시대’를 지나고 있다. 무엇보다 한반도의 평화를 둘러싸고 남-북, 북-미 사이에 일련의 대화가 진행되면서 반공분단체제가 균열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그 협상의 주역들이 이 땅의 안팎에서 착취, 수탈, 차별, 배제의 상태에서 살아가고 있는 이들의 삶을 포괄하는 그 어떤 평화의 밑그림을 디자인하고 실행할 수 있을까? 역사상 그 어떤 권력도 더 많은 평화를 대중에게 자발적으로 준 적이 없다. 지구화 시대에 평화의 구체화는 자기통치적인 자유-평등의 관계들이 기존 국경들을 가로지르며 더 확대, 심화되는 것에 조응한다.

이 사회의 평화를 담보할 내용들은 이미 도래해 있다. ‘미투-위드유 운동’은 성폭력과 차별에 노출되어 있던 여성들 스스로가 더 이상 그런 구조, 관계들을 용인하지 않겠다는 목적의식적인 선언, 그에 대한 연대라는 점에서 이 사회가 그 어떤 변화의 지점에 들어섰음을 강하게 시사하고 있다.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제출된 ‘신고리 5, 6호기 건설중단 공약’을 둘러싼 논란 이후 환경생태 문제가 더 이상 뒤로 미룰 수 없는 문제라는 점에 대한 대중적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다. 전 세계에서 기후변화 이슈를 삶의 긴급한 문제로 제기하는 사람들이 활발하게 목소리를 내고 있다. 맑스코뮤니스트 정치는 기존의 비대칭적이고 불균등한 질서들에 맞서 싸울 뿐만 아니라 그것을 넘어서는 미래의 질서, 따라서 ‘현재-미래의 자유-평등한 질서’의 구축을 고민, 실천하는 것이다.

맑스코뮤날레는 지난 몇 차례의 대회를 통해 ‘녹보적(혹은 보녹적, 적녹보) 연대’를 화두로 제출하였다.
맑스코뮤날레는 ‘맑스(Marx)+코뮤니스트(communist)+비엔날레(biennale)’의 합성어로서, 2003년 5월에 출범하여 2년마다 개최하고 있는 한국 최대의 진보좌파 학술문화 행사이다. 제9회 대회는 “전환기의 한국사회, 성장과 정체성의 정치를 넘어”를 주제로 2019년 5월 24(금)~26일(일)까지 서강대학교에서 열린다. 이 책에는 3개의 메인세션과 2개의 집행위원회 특별세션의 발표문 총 13편을 수록하였다. http://marxcommunnale.net/



책 속 문장으로 톺아보는 “전환기의 한국사회”


1부 녹색자본주의인가, 적색성장주의인가? ― 기후변화와 에너지전환 시대의 변혁전략

경제성장주의와의 결별 없이 대안이 가능한가? (하승우, 더 이음 연구위원)

스웨덴의 청소년 활동가
그레타 튄버그(Greta Thunberg)는 정부가 기후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것을 요구하며 학교 등교를 거부하고 있다. 그레타는 2018년 12월 12일 <유엔 기후변화 협약 당사국 회의> 회의장에서 “여러분은 그 무엇보다도 자녀를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지금 그들의 미래를 눈앞에서 도둑질하고 있습니다.”라고 정치인들을 비판했다. 지구의 온도 상승폭을 1.5도로 제한하는 것은 전지구적인 노력과 국가적인 노력, 개인적이고 사회적인 노력을 함께 요구한다. 따라서 정의로운 전환과 탈성장 전략을 접목하는 것은 향후 한국사회의 매우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계급 정치로 분석한 기후변화의 쟁점들 (김민정, 성공회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연구위원)

지구 생태계는 이상기후로 갈수록 격하게 요동친다. 지구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갈수록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체감할 뿐 아니라 심각성을 인식하고 있다. 프랑스의 노란조끼운동은 아직은 광범위한 사회운동으로 부상하지 않은 한국의 기후운동에 시사점을 전달해준다. 기후변화 해결책이 사회적 불평등 완화를 요구하는 운동과 결합되어야 하며, 무엇보다 몰계급적 해결 방안이 아닌 노동운동과 함께 진전시킬 수 있는 기후 쟁점을 모색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에너지전환, 수동혁명인가 체제 전환의 진지전인가? (김현우,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선임연구원)

에너지전환은 핵에너지와 화석에너지를 재생가능에너지로 기술적으로 바꾸는 것뿐 아니라, 에너지의 생산과 분배 그리고 소비의 방식과 주체를 바꾸고, 또 이를 위한 법과 제도 그리고 관행과 상식을 바꾸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다차원적 전환은 그것에 결부된 경제와 정치 체제의 전환을 요구하고 사회적 긴장을 만들어낼 수밖에 없다.
탈핵과 에너지전환은 민주주의의 급진화, 사회경제적 민주화라는 경로의 시작과 중간, 그리고 끝에 걸쳐있는 과제다. 결국 더 큰 사회경제적 체제 전환의 경로 속에 에너지전환의 진지전이 자리매김되어야 한다.

2부 노동정치인가, 코뮤니즘 정치인가 ― 노동운동은 ‘자본의 파트너’를 넘어설 수 있는가

코뮤니즘의 모색, 노동자계급의 혁명성을 둘러싼 논쟁의 새로운 모색을 위하여  ( 박영균,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코뮤니즘은 원래 노동자계급이 만들어낸 이념이 아니다. 코뮤니즘은 맑스-엥겔스보다 훨씬 이전부터 존재했다. 따라서 그 역사적 형태들도 매우 다양했다. 그럼에도 거기에는 기본적으로 공동체를 이루고 사는 사람들이 서로 돕고 살아가는 상호부조의 원칙과 우두머리 없는 평등한 세상에 대한 염원이라는 정서가 공통적으로 존재했다.
코뮤니즘의 정치는 이미 해체되어 버린 ‘자본 대 노동’이라는 적대의 선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보다 다양해지고 중층화된 사회운동들의 접합을 통해서 ‘적-녹-보라’에 근거한 민주주의의 급진화 전략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비정규직문제와 한국자본주의 종속성  (김정호, 북경대 맑스주의학원 법학 박사)

학계와 사회운동진영에서는 최근 한국사회에서 발생하고 있는 제반 문제들을 신자유주의 탓으로 돌리려는 경향이 존재한다. 우리는 한국사회의 현실 문제를 단순히 신자유주의 일반의 문제로 돌릴 수만은 없다. 같은 신자유주의의 피해를 입는다고 하더라도 각국의 사정에 따라 그 피해 정도는 달리 나타날 수 있다. 지금 한국경제의 발전을 심각하게 저해하고 기술발전을 가로막음으로써 경제잉여의 대량 유출을 낳게 만드는 것은 ‘종속성’이며, 여전히 그것을 탈피하는 것이 한국경제와 한국사회의 주요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이 같은 종속성의 구현체이자 구조화 요인인 재벌체제에 대한 근본 개혁은 바로 지금 시기 한국 변혁운동의 핵심과제이다. 이는 또한 한국 비정규직문제의 해결을 위한 길이기도 하다.

신자유주의 이후 자본축적 : 수탈을 중심으로   (홍석만, 민중언론 참세상 발행인)

구호처럼 외쳐지는 4차 산업혁명은 포화상태에 달한 자본주의 생산체제 내에서 ‘생산성 향상 없는 산업혁명’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새로운 자본축적의 경향은 신자유주의 금융수탈을 넘어 노동자의 노동시간 이외의 시간을 수탈하고 노동관계의 약화 및 해체로까지 몰아붙여 노동의 불안정성을 극대화하기 때문에 생산의 불안정성도 증폭된다. 이미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에서 정치체제의 변화 ― 비주류의 부상, 브렉시트, FTA 등 세계화의 약화, 미중 간 대결 심화 ― 는 이러한 불안정의 정치적 표현으로 현상하고 있다. 더불어 약화된 노동조합운동의 현실과 해체되고 있는 노동관계 속에서 노동자의 계급적 재구성과 조직화의 문제가 어느 때보다도 절실하게 나타난다.

3부 한국사회와 포퓰리즘

막다른 길의 포퓰리즘, 하지만 새로운 사회적 투쟁의 출발점  (서영표, 제주대 사회학과 부교수)

좌파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이렇게 ‘좌파적’으로 드러난 목소리만이 아니다. 극우적 선동에 휘둘리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읽어야 한다. 태극기를 들고 박근혜를 외치며 자유한국당 전당대회를 소란스럽게 하는 ‘그들’의 마음속에 깊이 자리잡고 있는
불만과 좌절을 읽지 못한다면, 그들의 고통과 접속하지 못한다면 도대체 진보란, 사회주의란 무엇이란 말인가? 과거의 협소하고 고정된 계급정치를 복원하자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의 마음속에 깊이 자리 잡은 불만과 좌절을 불규칙적인 집단행동을 통해 증발시키지 않을 수 있는, 즉 다양한 위치와 장소에서 체험되고 있는 충족되지 않은 필요들(needs)이 결코 지금의 체계와 공존할 수 없다는 자각이 모아져 ‘그들’에 맞서 ‘우리’가 정치적으로 구성될 수 있는 사회주의가 요청되고 있다.

뉴미디어와 포퓰리즘 : 포스트트루스 시대 소셜 미디어의 반격  (김상민, 문화사회연구소 소장)

새로운 미디어 포퓰리즘에 기반한 포스트트루스(post-truth) 시대에 대중들의 정치적 신념이나 정치 참여에의 의지는 과연 어떤 방식으로 강화될 수 있을까? 투표장에 직접 나가 자신들을 대신해 정치를 실현할 대리인들을 선출하는 근대적 대의민주주의의 방식이 언제까지 유지될 수 있을까? 이미 자동화된 정치 봇과 소셜 미디어를 통한 자동화된 여론 조작의 수단들이 인간의 실질적인 정치 활동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면 이들에 대한 제도와 규제는 어떻게 마련되어야 할까? 알고리즘이 대중들의 감정과 무의식의 패턴을 발견하고 정치에 반영하지만 포퓰리즘으로 환원되지 않는 새로운 형식의 민주주의가 과연 가능할까? 새로운 미디어가 확산되면서 제기되는 새로운 포퓰리즘의 문제들은 아직 우리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다.

한국 정치 : 신자유주의 포퓰리즘인가 신자유주의 대의 정치-포스트포퓰리즘 균열인가  (정병기, 영남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우리 사회에서 포퓰리즘은 김대중/노무현 정권 시절에 시작해 크게 회자되다가 한동안 잠잠했지만 선거철마다 거르지 않고 다시 대두되고 있다. 특이하게도 우리나라에서 포퓰리즘은 신자유주의와 함께 강화되었다. 신자유주의 도입 시기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지만 외환위기를 전후해 본격화되었다는 점에서는 대부분 동의한다. 한국에서도 이미 엘리트 대의 정치의 한계가 속속 드러나고 있으며, 신자유주의 정치가 양대 정당을 통해 보편화되면서 그 한계는 신자유주의 대의 정치의 한계로 구체화하고 있다. 이러한 배경은 다른 제약 조건들이 약화됨에 따라 포스트포퓰리즘이 강화될 것이라는 예측을 가능하게 한다. 그것은
근대 대의 정치를 지속하려는 신자유주의적 엘리트주의와 대중 직접 정치를 추구하는 포스트포퓰리즘의 대립이라는 새로운 사회 균열이 새로운 정치 균열과 정당 균열로 등장할 가능성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4부 한반도의 평화와 동북아시아의 미래

한반도의 평화 : 6·12 싱가포르선언 이후 북미협상의 교착과 한국외교  (이삼성, 한림대학교 교수)

2018년 4월 27일 남북 정상의 판문점선언, 그리고 6월 12일 북미 정상 간의 싱가포르 공동선언은 “평화협정체제의 구성을 통한 북한 비핵화 구현”이라는 방법론에 한국과 미국의 정상들이 각각 공식 동의한 문서였다. 이것은 당시로서는
한반도 정세의 대전환이라 할 만한 것이었다. 이제 북한의 진정한 비핵화를 이끌어내기 위한 북미협상의 본질이 평화협정 협상의 본격화 여부에 있다는 사실을 명확히 하면서, 미국과 국제사회를 향하여 명분과 전략적 불가피성을 당당하게 밝히며 설득하는 더 적극적인 외교의 시급성을 더욱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그 핵심은 미국이 ‘막무가내식 빅딜’을 내세울 때, 한국은 포괄적이면서도 단계적 동시 행동의 일정표를 담은 일괄타결인 평화조약 형태의 ‘합리적인 빅딜’ 비전을 제시하는 데에 있다.

‘내 품 안’의 개방된 북한 : 미중 협조체제와 중국의 한반도 전략  (박홍서, 한국외국어대학교 정치학 박사)

향후 북핵문제 해결과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과정에 있어 중국을 의도적으로 소외시키려는 행태는 합리적이지 못하다. 한반도 안정과 평화의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인가? 우리가 주장하는 한반도 안정과 평화의 최종 목적은 결국 한반도 주민들의 생존권을 보호하는 데 있다. 한반도 문제를 해석하고 접근하는 데 있어 경직된 국가주의적 시각은 이러한 근본적인 목적을 간과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한 시각은 극단적으로 국가이익을 수호한다는 명분으로 전쟁을 불사하려는 국가권력에 면죄부를 줄 수도 있다. 불행한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한반도의 정책결정자들은 보다 책임감을 가지고 기민하게 움직여야 한다. 아니, 그들이 그렇게 행동하도록 이 땅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강력히 요구하고 저항해야 한다.

북한의 동북아 전략과 한반도 평화 : ‘비가시적 공간’의 전략을 중심으로  (차문석, 통일교육원 교수)

현시기 북한의 동북아 전략의 핵심 키워드는 두 개이다.
하나는 미국이며 다른 하나는 핵이다. 이 두 가지는 서로를 전제하고, 서로를 목표로 삼고 있으며, 서로가 서로의 비전이 되고 있다. 현재 북한은 남북 평화협정보다는 북미 평화협정에 치중하고 있다. 북한은 2007년 남북정상회담 공동성명에서 합의한 사항을 수용해야 한다. 남북기본협정 체결 이후 한반도 평화협정의 체결은 남북한 당사자가 중심이 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러한 토대 위에서 한국은 북한과 미국/일본이 관계 개선을 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매개해야 한다. 주변국의 역할과 관련하여 2005년의 9·19 공동성명과 2007년의 2·13 합의문을 상기하는 것이 좋다.

5부 페미니즘의 전환과 적녹보라패러다임

페미니즘의 전환과 적녹보라패러다임 : M/W 젠더체계와 페미니즘의 변혁 전략  (고정갑희,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집행위원장)

가부장제나 자본주의가 아니라 가부장체제로 현재의 문제를 설정하고 가부장체제를 성종계급체계, 자본군사제국주의체계 그리고 지구지역체계로 정의한 이유는 적녹보라 패러다임에 입각한 사회운동이 사회 변혁을 향해 가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성체계만이 아니라 성종계급 체계를 페미니즘 진영도, 마르크스주의 진영도, 생태주의 진영도 함께 논의한다면 지구지역적 가부장체제의 변혁이 가능할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페미니즘 운동은 성종계급체계와 자본군사제국주의체계 그리고 지구지역체계를 고려하고, 사회주의 운동 또한 이 세 가지 체계로 이름지어진 가부장체제의 변혁을 목표로 간주하고, 생태환경운동 또한 이와 같이 공동의 목표를 설정한다면 각각의 운동이 본래 목표한 지점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지은이 소개


맑스코뮤날레


‘마르크스’ + ‘코뮤니스트’ + ‘비엔날레’의 합성어로, 2003년 5월 이후 격년으로 개최되어온 한국 최대 규모의 좌파 연합학술문화제이다.

고정갑희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집행위원장
김민정 성공회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연구위원
김상민 문화사회연구소 소장
김정호 북경대 맑스주의학원 법학 박사
김현우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선임연구원
박영균 건국대 인문학연구원 및 대학원 통일인문학과 교수
박홍서 한국외국어대학교 정치학 박사
서영표 제주대학교 사회학과 부교수
이삼성 한림대학교 교수
정병기 영남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차문석 통일교육원 교수
하승우 더 이음 연구위원
홍석만 민중언론 참세상 발행인



목차


발간사 6

1부 녹색자본주의인가, 적색성장주의인가? ― 기후변화와 에너지전환 시대의 변혁전략
경제성장주의와의 결별 없이 대안이 가능한가? / 하승우 17
계급 정치로 분석한 기후변화의 쟁점들 / 김민정 46
에너지전환, 수동혁명인가 체제 전환의 진지전인가? / 김현우 80

2부 노동정치인가, 코뮤니즘 정치인가 ― 노동운동은 ‘자본의 파트너’를 넘어설 수 있는가
코뮤니즘의 모색, 노동자계급의 혁명성을 둘러싼 논쟁의 새로운 모색을 위하여 / 박영균 113
비정규직문제와 한국자본주의 종속성 / 김정호 144
신자유주의 이후 자본축적 : 수탈을 중심으로 / 홍석만 178

3부 한국사회와 포퓰리즘
막다른 길의 포퓰리즘, 하지만 새로운 사회적 투쟁의 출발점 / 서영표 221
뉴미디어와 포퓰리즘 : 포스트트루스 시대 소셜 미디어의 반격 / 김상민 249
한국 정치 : 신자유주의 포퓰리즘인가 신자유주의 대의 정치-포스트포퓰리즘 균열인가 / 정병기 278

4부 한반도의 평화와 동북아시아의 미래
한반도의 평화 : 6·12 싱가포르선언 이후 북미협상의 교착과 한국외교 / 이삼성 307
‘내 품 안’의 개방된 북한 : 미중 협조체제와 중국의 한반도 전략 / 박홍서 342
북한의 동북아 전략과 한반도 평화 : ‘비가시적 공간’의 전략을 중심으로 / 차문석 369

5부 페미니즘의 전환과 적녹보라패러다임
페미니즘의 전환과 적녹보라패러다임 : M/W 젠더체계와 페미니즘의 변혁 전략 / 고정갑희 407

저자 소개 431



제9회 맑스코뮤날레 <다중지성의 정원> 세션 소개


■ 주제 : 페미니즘, 정동정치, 그리고 공통장
■ 일시 : 2019년 5월 25일 토요일 오후 1시
■ 장소 : 서강대 정하상관
■ 문의 : 02-325-2102, 010-8408-5263
■  프로그램
- 사회자 : 이수영 (미술 작가)

- 발표와 토론
발표 1 : 공통장 감수성의 징후들과 예술인간-예술체제의 동선 (조정환, 『절대민주주의』 지은이)
토론 1 : 이성혁 (문학평론가, 『미래의 시를 향하여』 지은이)

발표 2 : 여자떼 공포, 여성혐오와 인종 차별의 복합성과 역사적 전개 (권명아, 『여자떼 공포, 젠더 어펙트』 지은이)
토론 2 : 이임하 (성공회대학교, 『조선의 페미니스트』 지은이)

발표 3 : 움직이는 별자리들 : 포스트 대의제의 현장과 문학들 (김미정, 『움직이는 별자리들』 지은이)
토론 3 : 김대성 (생활예술모임 ‘곳간’, 『대피소의 문학』 지은이)

발표 4 : 공통성 없는 자들의 연루:차질, 응축된 반작용, 취약성 (신지영, 『마이너리티 코뮌』 지은이)
토론 4 : 손보미 (다중지성의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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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와 불의 문자들』(조지 카펜치스 지음, 서창현 옮김, 갈무리, 2018)

칼 맑스는 자본주의의 기원에 대해 기술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노동자들을 16세기에 공통의 것이었던 토지, 숲, 물로부터 내쫓기 위해 사용된 ‘피와 불의 문자들’ 속에 있다고 말했다. 카펜치스는 이 책 『피와 불의 문자들』에서, 21세기의 자본주의 연대기에도 마찬가지라고 주장한다. 카펜치스는 전 지구적 자본주의의 사회적 신체를 가로지르며 증식해 온 계급투쟁을 강조하면서 노동/자본 관계 내의 광범한 대립과 적대가 어떻게 노동과정 내부에서 그리고 노동에 맞서서 스스로를 표현하는지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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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주의의 현실성』(브루노 보스틸스 지음, 염인수 옮김, 갈무리, 2014)

공산주의는 유토피아가 아니다. 그것은 사적인 전유를 거부하는 모든 순간과 집단적 재전유의 모든 실행 가운데 이미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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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부장제와 자본주의』(마리아 미즈 지음, 갈무리, 2014)

『에코페미니즘』, 『자급의 삶은 가능한가』의 저자로 알려진 에코페미니스트 마리아 미즈의 고전적 저작. 가사노동, 비공식 영역의 노동, 식민지에서의 노동과 자연이 만들어 내는 생산(물)이 경제의 수면 아래 있는 보이지 않는 부분을 구성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지난 4, 5백년 동안 여성, 자연, 식민지는 문명사회 외부로 축출되고, 가려져 왔다. 『가부장제와 자본주의』는 이 ‘빙산의 보이지 않는 부분’이 왜 가려졌는지, 이 부분의 가치와 비중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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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자본주의의 폭력』(크리스티안 마라찌 지음, 심성보 옮김, 갈무리, 2013)

자율주의의 핵심 사상가 중 한 명인 크리스티안 마라찌의 최근작. 이 책에서 마라찌는 금융자본과 그 논리가 지배하는 오늘날의 경제에서 전지구적으로 끊임없이 반복되는 위기를 포스트포드주의와 생명자본주의, 금융자본주의 맥락에서 다루고 있다. 그는 현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사적 부채를 통한 성장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를 위한 공적 투자를 통해 공통적인 것을 창조하고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2019.05.05 |


보도자료


움직이는 별자리들

잠재성, 운동, 사건, 삶으로서의 문학에 대한 시론



불안정함과 허약함이라는 오늘날 인간의 조건을 다르게 재전유하여
냉소하지 않고 이 시대를 건너기 위한 방법론
여성을 정체성 이전에 함께 만들어갈 공통장으로 이해하기



지은이  김미정  |  정가  24,000원  |  쪽수  496쪽  |  출판일  2019년 5월 1일

판형  사륙판 무선 (130*188)  |  출판사  도서출판 갈무리

총서명  Cupiditas, 아우또노미아총서 66

ISBN  978-89-6195-207-1 03800   |  CIP제어번호  CIP2019013547

도서분류  1. 문학 2. 문학비평 3. 문화비평 4. 철학 5. 사회운동 6. 인문학

보도자료  움직이는별자리들-보도자료-final.hwp 움직이는별자리들-보도자료-final.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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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예술은 생명정치의 시대에 상응하는 듯 보이고, 포스트 대의제는 민주주의에의 열망, 우파 포퓰리즘 모두가 혼재되는 현장인 듯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관계는 일방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인간(예술)은 늘 주어진 세계에 구속되어 있지만 동시에 그 조건을 극복하고 세계를 다시 구축하는 존재다. 우리 시대에는 불안정함, 취약함이 사람들의 상례화된 조건이지만 거기에서 사람들은 오히려 모이고 항의할 조건을 발견하듯, 그리고 생명정치의 조건을 재전유하여 삶예술로 전환시키는 현장들이 그러하듯, 요컨대 주어진 조건에 구속되면서 한편으로 그것을 재조정, 극복하는 존재가 인간, 예술이다. “움직이는 별자리”는 바로 그러한 인간, 그러한 예술을 위해 예비한 말이다.



『움직이는 별자리들』 간략한 소개


이 책은 정동, 페미니즘, 공통장의 문제의식을 통해 한국문학사의 여러 장면들을 읽어가며 근대적 개인의 신화를 질문에 부치고, 포스트 개인(post individual)의 사유를 전개한다. 이 사유는 오늘날 테크놀로지의 조건과 인간을 말할 때 유용하다. 이 책은 거기에서 나아가, 본래 인간이 취약한 존재라는 사실과, 오늘날 인간을 더욱 취약하게 만드는 시대적 조건을 연결시킨다. 그리하여 궁극적으로 이 책이 강조하는 것은, 거기에서 발견되는 연결·연대의 조건들이자, 모든 존재에 깃들어 있을 잠재성에 대한 믿음이다. 이 책에서 정동적 모먼트로 언급되는 2014년 세월호, 2016~17년 촛불, 2016년 강남역 이후는 모두, 주어진 조건들을 사람들 스스로 전유하고 다른 것으로 만들어가는 장면들이다. 이 책이 문학을 통해 사유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우리 안의 잠재성, 사건의 계기들이다.

이 책은
문학이 당대의 문제들과 적극적으로 호흡하고 있는 현장의 기록이다. 특히 문학만의 고유한 언어를 넘어서, 철학, 사회학 등 분과를 넘나드는 문제의식과 언어를 교차시킨다. 분과적으로 조밀해지고 전문화되면서 소통의 어려움을 겪는 인문학의 현장에 이 책이 시사하는 바는 크다. 최근 수년간 한국사회를 뒤흔든 중요한 변화에 관심이 있는 이들, 한국에서의 문학에 어떤 변화가 일어났고 그 추동력이 무엇인지 궁금한 이들 모두에게 이 책의 일독을 권한다.



『움직이는 별자리들』 상세한 소개


‘움직이는 별자리들’이라는 제목

‘별자리’라는 용어가 미학과 철학의 술어로 의미 있게 다가오게 시작한 것은 두 사람의 철학자, 미학자 덕분일 것이다. 먼저 헝가리의 사상가 게오르그 루카치(1885~1971)는 『소설의 이론』이라는 소책자의 서두에서 그리스 시대를 상상하면서, 하늘의 별자리의 인도를 받아 살아갔던 시대의 사람들은 행복했을 것이라고 썼다. 루카치는 자신의 시대(1920년대)를 대단한 격변기로, 반대로 그리스 시대 사람들은 상당히 안정되었던 시대의 사람들로서 인식했다. 루카치의 별자리는 고정된 별자리, 안정을 가져다주는 별자리, 불변성의 이미지를 가졌다. 루카치와 거의 동시대를 살았던 독일의 사상가 발터 벤야민(1892~1940)은 『독일 비애극의 원천』에서 별자리에 다른 의미를 부여한다. 벤야민은 별자리라는 말을 철학에서의 관념과 대상의 관계에 적용하면서, 별자리를 관념으로, 철학적 관념의 대상을 실재로 보았다. 벤야민에게서 실재로서의 대상이 변치 않을 때에도 별자리 즉 관념체계는 바뀔 수 있는 것이다. 루카치의 별자리와 달리 벤야민의 별자리는 가변적이고 이동하는, 움직이는 성격을 갖는다.

김미정의 평론집에서 별자리는 벤야민의 별자리와 유사하게 변동하고, 변화하는 별자리다. 그런데 차이가 있다. 이 책에서 별자리의 움직임은 관념상에서의 변화만을 의미하지 않으며, 현실적 대상세계 그 자체의 움직임도 지시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책을 이해함에 있어서 별자리의 움직임을 사고하기 위해서 관념상에서의 변화와 현실세계 그 자체의 변화를 동시에 추적해야 할 필요성에 직면하게 된다.

포스트 대의제 시대의 문학 ― 문단이라는 대의제 장치의 위기

우리 시대를 규정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인지자본주의 시대, 신자유주의 시대, 4차 산업혁명 시대 등의 용어는 무엇을 우리 시대의 가장 두드러진 특성으로 보느냐에 따라 다를 것이다. 이 책의 저자가 보기에
우리 시대는 포스트 대의제 시대에 가깝다. 그래서 저자는 우리 정치 시스템 속에 지배적인 것으로 자리잡고 있는 대의제, 대표제에 대한 비판을 사고의 중심에 놓고 자신의 논지를 전개한다. 2016~17년의 ‘촛불’에서 시민들은 위임받았으나 대의하지 않는 정치의 정당성을 질문하며 자신의 주권을 직접 표현하고 항의하는 모임을 이어갔고 ‘사건’을 발생시켰다.

이 책은 주로 문학과 문화를 다루기 때문에 대의 정치 그 자체를 직접적으로 시대 규정의 핵심으로 삼지는 않는다. 하지만 저자는
문단이라 불리는 하나의 제도적 문학장을 정치권과 유비시킨다. 그러면서 문학이라는 장 속에서 하나의 대의제적 특징들이 어떻게 나타났고, 어떤 식으로 포스트로 이행하고 있는지에 주안점을 둔다. 포스트 대의제 시대의 문학이라는 말은 문단이 주도적으로 수행해온 문필작업이 사람들의 감성, 감수성, 감각, 정동, 정서 등을 담기에 충분했는지 질문한다. 그리고 현재 새롭게 일어나고 있는 다중의 욕망과 정동이, 문단을 바꾸고 문학의 저변을 넓히는 현장을 구체적으로 조명한다.

교양이라는 프레임의 비밀 : 교양은 ‘성숙한 남성’ 만들기의 서사였다

교양소설을 뜻하는 독일어 Bildungsroman에서 Bildung은 교육, 형성 등을 의미한다. 저자가 보기에 ‘교양소설’이라는 말에서 교양은 젠더, 언어문화권, 계층 등등의 위계를 함축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저자는 이문열, 루이제 린저, 은희경 등을 언급한다. 이문열의 교양주의는 한국문학장의 보편을 향한 욕망의 결정체였다. 또한 ‘작품’이 문학장의 어떤 회로 속에서 탄생하는지 그 역학을 잘 보여주는 인물이기도 했다. 동시에 한국문학이 욕망하던 교양이 누구의, 무엇의 교양이었는지 보여주는 존재이기도 했다.

한국에서
여성 교양문학의 대표적 인물로 알려진 루이제 린저는 좀더 복잡한 맥락을 가진다. 한국에서 루이제 린저는 문예공론장의 언어에서 배제되는 존재였지만, 여성대중독자의 욕망과 정동이 투영된 존재였다. 교양은 남성젠더화된 말이었기에 ‘여성교양소설’이라는 말은 성립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독자들은 ‘여성교양소설의 불가능성’을 파열시킨다. 그녀의 소설은 교양소설로 불려도/불리지 않아도 될 것이었다. 나아가 이 책은 루이제 린저가, 한국에서의 표상에 갇히지 않고 냉전의 상황에서 종횡무진하던 존재임을 밝혀낸다.

『움직이는 별자리』 각 부의 내용 소개

1부 ‘2010년대의 정동적 이행과 사건-문학들’은 2014년 세월호, 2015년 문학장의 스캔들, 2016~17년의 촛불, 2016년 강남역 이후의 문학을 둘러싼 현장과 담론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논의들이다. 1부에는 특히 촛불과 강남역 이후의 문제의식이 문학과 우리 삶과 사회를 바꾸어간 기록이 충실히 기록되어있다. ①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프레임의 함정, ② 페미니즘의 정동이 한국문학을 바꾸어가는 구체적 장면, ③ 대중의 다양한 면모와 자기구성의 중요성 등에 대한 무게감 있는 논의는 이후에도 치열하게 주고받아야 할 주제들이다.

2부 ‘공통장을 이야기하기 위한 예비 작업 : ‘포스트 개인’의 사유를 중심으로’‘개인’의 신화를 질문한다. ‘개인’은 근대 세계의 기본 단위이자, 궁극적으로 추구할 과제로 여겨져 왔다. 이런 문제의식은 테크놀로지의 조건과 인간을 말할 때 유용하지만, 이 책은 나아가, 본래 인간이 취약한 존재라는 사실과, 오늘날 인간을 더욱 취약하게 만드는 시대적 조건을 연결시킨다. 궁극적으로 2부가 강조하는 것은, 개인을 질문하면서 발견하는 연결·연대의 조건들이다. 또한 어두워 보이는 세계 너머에 실낱같더라도 숨어 있을 밝음에 대한 믿음이다.

3부 ‘문학장의 회로와 잠재성들 : 문학을 만드는 장소, 문학이 만드는 장소’문학이 문학장이라는 조건의 산물이자, 나아가 그 조건에 갇히지 않는 창조력을 가진 산물이라는 점을 이야기한다. 문학장은 젠더, 학력, 지역, 언어, 계층 등의 역학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문학이 그런 구체적 조건 속의 교섭의 산물이라는 점은, 이문열이라는 한 시대를 풍미한 작가를 통해 이야기되고 있다. 하지만 3부가 강조하는 것은 그런 조건들을 파열시키면서 등장하는 작품이나 문학현상이다. 역시 한 시대를 풍미한 루이제 린저 같은 작가와 그녀를 둘러싼 한국독자들의 호응도 단적인 사례다. 3부는 문학사회학의 방법을 연상시킬지 모르지만, 이전 시대의 문학사회학이 가지지 못한 잠재성의 사유를 설득력 있게 제안하고 있다.



지은이 소개


김미정

2004년 문학동네 신인평론상을 받으며 평론활동을 시작했다. 현재 창비에서 발행하는 <문학3>을 함께 만들며, 광운대, 숭실대, 서울예대 등 여러 대학에서 학생들과 배움을 주고받고 있다. 제도 밖 장소에서 다양한 삶을 사는 이들과 고민을 나누고 공부하며 『민중이 사라진 시대의 문학』(2006)을 공저했고, 여러 연구자와 함께 『민주주의, 증언, 인문학』(2018), 『문학을 부수는 문학들』(2018)을 썼다. 한편, 도쿄에서 수학하고 생활한 경험의 연장선상에서 『살게 해줘! 프레카리아트, 21세기 불안정한 청춘의 노동』(2011, 2017)을 한국어로 옮긴 이래로, 『전후라는 이데올로기』(2013), 『정동의 힘』(2016), 『군도의 역사사회학』(2017)을 번역했다. 인간, 테크놀로지, 만들어갈 공통장에 대한 관심 속에서 현재 정동 관련 저작을 옮기고 있다.



책 속에서 : 잠재성, 운동, 사건, 삶으로서의 문학


페미니즘과 정동의 사유는 내게 근대적 ‘개인’의 신화를 질문하게 했고, 인간이 근본적으로 취약한(vulnerable) 존재라는 사실에까지 도달하게 했다. 더구나 오늘날 시대의 조건은 그런 인간을 더욱 취약하게 몰고 간다. 사람들은 시대의 불안정함과 취약함 속에서 서로 빈번하게 상처를 주고받는다. 하지만 그렇기에 우리는 결정적일 때 다시 서로를 돌보고 연결하고 관계를 구성한다.

― 서문, 16쪽


처음 글을 익혀 일기를 쓰고 시를 쓰는 순천할매, 칠곡할매의 글쓰기를 괄호 치고 문학을 생각할 수 있을까. 글쓰기와 문학에의 열망을 노인이 되어 수줍게 실현하는 작은 모임의 딜레탕트들을 괄호 치고 문학을 말할 수 있을까. 우리를 미학적으로 감화, 훈련시킨 재현예술의 산물과 그 인류적 유산 못지않게, 그것에 미달/초과하는 무수한 쓰기와 예술의 현장 역시 나란한 사건들로 기억되어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 움직이는 별자리들, 46쪽


문학장을 향해 직접 자신을 발화하고 욕망을 주장하기 원하는 새로운 독자들은, 문학의 여러 제도나 관념과 교섭하기 원할 것이며 실제로 문학의 변화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칠 것이다. 문학의 양식, 범주, 관념에는 재조정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이것을 ‘우리끼리의’ 이야기로 축소하면서 지킬 것은 무엇일까. 발밑의 동요를 듣지 않고 ‘정치적 올바름’ 혹은 ‘자율성’ 등의 논의에 매여서 기존의 미학적 언술을 반복해서 주고받는 사이, 문학은 전문독자의 의사와 무관하게 이미 달라져 있을지 모른다.

― 흔들리는 재현·대의의 시간, 80쪽


벤치의 온기를 기억하는 그녀들은 언젠가 어딘가에서 만나 ‘같이’ 존재하고, 행동하고, 무언가를 창조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것이 반드시 물리적 마주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녀들이 공통적으로 경험하는 ‘불안정함’, ‘허약함’은 오히려 결정적일 때 그녀들을 만나게 할 것이다. 이때 ‘그녀’들은 ‘정체성’으로서의 여성, 소녀, 사회적 약자만은 아니다. ‘그녀’들은 우리가 잇고 만들어가야 할 무언가/누군가이기도 한 것이다.

― 벤치와 소녀들, 196쪽


살아있는 인간이 세상 모든 만물과 어떻게든 연결되어 존재하는 이상, 인간이 누구인지, 무엇인지 묻는 것은 어쩌면 부차적이다. … 그 본질을 질문하고 정의내리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인간이 무엇이 될 수 있을지인 것이다. … 그러므로 필요한 것은 어쩌면, 문명사적으로 더는 잘 작동하지 않는 맹목적 희망과 선에의 의지보다, 놓여 있는 세계 속에서 어떻게 배치를 바꾸며, 어떤 신체를 이룰 것인지를 사유하는 것인지 모른다. 『소년이 온다』에서 궁극적으로 의미를 찾고 싶은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 소년은 왜 ‘꽃 핀 쪽’으로 가라고 말하는가, 273쪽


독자의 손, 눈 등의 신체는, 책이라는 물질성과 활자(活字) 너머의 신체들과 접촉한다. 그리고 그 활력과 마주친 독자의 신체는 다시 제3, 제4의 또 다른 활력으로 이행한다. 정서는 어떤 상태에 고착되어 있지 않다. 고착된 것은 그 정서의 ‘관념’뿐이다. 정서는 늘 유동하고 이행하고 있다. 이 기쁨의 정동은 위의 인용들에서 저자가 말한 “연대의 쾌락”과 연결될 뿐 아니라, 실제로 글을 쓰고 읽는 저자와 독자의 눈, 손, 감각, 감정 등 신체들의 관계 속에서 작용하는 힘인 것이다.

― 현장-신체-정동, 다른 미적 체험의 가능성을 묻는다, 325쪽


이문열이 훗날 “내가 번역된 내 책을 그 나라의 서점 판매대에서 살 수 있는 형태로 번역출판하게 된” 때에 대해 감상적으로 회고하는 것은, 곧 ‘이문열’을 탄생시킨 당시 한국문학장의 소회에 다름 아닐 것이다. 그것이 또한 세계자본주의 체제 내에서의 문학에 내재되었던 운명이자 1990년대가 되어서야 뒤늦게 이곳에 도래한 사건이었음을 특히 강조하고 싶다.

― 「황제를 위하여」와 Pour l’empereur! 사이, 401쪽


확실히 ‘우리’라는 주어는 1990년대 초 현실사회주의의 몰락과 소위 포스트(post) 접두어가 붙는 시대를 맞으면서, 과거 ‘좋았던 시절’의 주어로 이야기되어 왔다. 그리고 그때까지 억압된 측면이 있던 ‘나’를 구출해내기. 말하자면 이것이 1990년대 한국문학이 골몰한 바의 하나이고, 배수아 소설이 출발한 지점의 한 곳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 길, 우연성, 편지, 487쪽



목차


서문 ― 이행의 기록 6

1부 2010년대의 정동적 이행과 사건-문학들
움직이는 별자리들 : 포스트 대의제의 현장과 문학들 20
흔들리는 재현·대의의 시간 : 2017년 한국소설의 안팎 49
‘쓰기’의 존재론 : ‘나-우리’라는 주어와 만들어갈 공통장 83
운동과 문학 : 다시 여성주의라는 의제와 감수성을 통과하며 99
아르키메데스의 점에 대한 상상 : 2015년, 한국문학, 인간의 조건에 대한 9개의 메모 128
불안은 어떻게 분노가 되어 갔는가 : 감수성의 이행으로 읽는 김유진의 소설들 155

2부 공통장을 이야기하기 위한 예비 작업 : ‘포스트 개인’의 사유를 중심으로
벤치와 소녀들 : 호모 에코노미쿠스를 넘어서 179
회로 속의 인간, 회로를 만드는 인간 : 사건, 주체, 역사, 인간에 대해 생각하며 199
마지막 인간의 상상 : ‘개인’의 신화를 질문하며 225
소년은 왜 ‘꽃 핀 쪽’으로 가라고 말하는가 : ‘기억-정동’ 전쟁의 시대, 『소년이 온다』가 놓인 자리 240
수다와 고양이와 지팡이 : 행복을 해방시키기 275
신자유주의 시대에 생각하는 미적 아나키즘 : 구라카즈 시게루의 『나 자신이고자 하는 충동』에 대한 단상 293
현장-신체-정동, 다른 미적 체험의 가능성을 묻는다 : ‘장르 피라미드’를 넘어서 읽는 한 권의 책 313

3부 문학장의 회로와 잠재성들 : 문학을 만드는 장소, 문학이 만드는 장소
‘한국-루이제 린저’와 여성교양소설의 불/가능성 : 1960~1970년대 문예공론장과 ‘교양’의 젠더 339
「황제를 위하여」와 Pour l’empereur! 사이 : 문학장의 역학과 ‘작품’의 탄생 372
한 시절의 문학소녀들의 기묘한 성장에 부쳐 : 2010년대에 다시 읽는 은희경의 소설들 405
무서워하는 소녀, 무섭게 하는 소녀 : 최윤의 「저기 소리 없이 한 점 꽃잎이 지고」의 트릭과 전략 433
문제는 휴머니즘이 아니다 : 윤이형 소설 읽기 443
보론 — 십 년 후, 프롤로그 : 윤이형의 「큰 늑대 파랑」 465
다시, ‘미적 체험’에 관하여 473
길, 우연성, 편지 : 한국문학의 주어 변화와 배수아의 소설들 483



『움직이는 별자리들』에 대한 정치철학자 조정환의 유튜브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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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보면 좋은 갈무리 도서 (표지를 클릭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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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의 힘』(이토 마모루 지음, 김미정 옮김, 갈무리, 2016)

포스트포디즘적 산업구조와 글로벌화의 진행 과정에서 이렇듯 다양한 특이성을 띤 미조직 노동주체들이 존재한다. 이 새로운 집합적인 주체는 종래의 사회시스템의 구조적 틀로는 포섭되지 않는, 제도적 틀을 넘어서 존재하는 사회적 주체이다. 그들은 네그리와 하트가 다중이라고 부른 특이한 사회적 주체와 겹쳐볼 수 있는 존재이다. 지금 이들이 새로운 미디어와 커뮤니케이션의 조건 속에서 강력하게 부상하고 있다. 그들의 정동, 감정, 의견은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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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이 사라진 시대의 문학』(조정환·김미정 외 지음, 갈무리, 2006)

오늘날 민중의 소멸이 근대문학의 종언, 근대문학의 불가능성을 가져오는 것은 자연스럽고 또 필연적이다. 그러나 이것이 문학의 종언으로 될 것인가? 지난 20년간의 문학의 진화에 대한 『민중이 사라진 시대의 문학』의 검토는 우리로 하여금, 문학이 다중의 생성 및 진화의 흐름에 합류하여 그것의 정신적 힘을 표현하려는 노력을 그치지 않는 한에서, 근대문학의 종언은 오히려 문학 진화의 새로운 계기로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기를 주저하지 않도록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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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피소의 문학』(김대성 지음, 갈무리, 2019)

“비평가의 마지막 세대 혹은 새 비평 정신의 첫 세대”로 평가받는 문학평론가 김대성의 두 번째 비평집. 저자는 언제라도, 무엇이라도, 누구라도 무너지고 쓰러질 수 있는 이 세계에서 절실한 것은 미래나 희망이 아니라 오늘을 지켜줄 수 있는 대피소라고 주장한다. 대피소에선 사소하고 별 볼 일 없어 보이는 것이 사람을 살리고 구한다. 한 잔의 물, 한마디의 말, 몸을 덮어줄 한 장의 담요, 각자가 품고 있는 이야기 한 토막, 소중했던 기억 한 자락. 대피소에 당도한 이들은 그제야 마음 놓고 몸을 벌벌 떨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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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떼 공포, 젠더 어펙트』(권명아 지음, 갈무리, 2019)

정동과 페미니즘, 페미니즘과 젠더 정치의 정동 효과들에 대한 이론적 연구이자, 온 힘을 다해 무언가 '다른 삶'을 만들어보기 위해 부대낀 날들의 기록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 페미니즘과 젠더 어펙트에 대한 이론적 탐색과 실천적 개입은 하나의 몸과 다른 하나의 몸이 부대껴 만들어내는 힘.마찰.갈등에서부터, 개별 존재의 몸과 사회, 정치의 몸들이 만나 부대끼는 여러 지점들까지, 그리고 이런 현존하는 갈등 너머를 지향하는 '대안 공동체'에서도 발생하는 '꼬뮌의 질병'을 관통하면서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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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역사(들)』(전성욱 지음, 갈무리, 2017)

이 비평집은 근래에 나온 한국 소설들을 집중적으로 독해함으로써, 문학의 그 질적인 변화에서 역사적 전환의 기미를 포착하고 있다. 비평집의 제목과 목차의 체제는 고다르의 <영화의 역사(들)>을 차용하고 변형하였다. 영화가 쇠퇴의 길로 접어들고 있을 때, 그는 이 영화의 제작에 착수했다. 그에게 영화의 쇠퇴는 단지 한 예술 장르의 퇴락이 아니라, 개인이 세계와 맺는 관계의 근본적인 변화를 야기하거나 반영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래서 저자는 소설의 쇠락을 목도하며 고다르의 역사적 사색을 떠올린 것이다.

2019.04.15 |


보도자료


대피소의 문학

구조 요청의 동역학



‘생명’이 ‘생존’으로 기우는 세계에 불침번을 서는 일, 관棺을 문門으로 바꾸려는 두드림의 문학.
‘하나’만 허락되는 참혹한 세계에서 대피소를 찾고 대피소를 짓는 사람들이 일구는 다른 문학의 별자리



지은이  김대성  |  정가  18,000원  |  쪽수  336쪽  |  출판일  2019년 4월 16일

판형  사륙판 무선 (130*188)  |  출판사  도서출판 갈무리  |  총서명  Potentia, 카이로스총서 55

ISBN  978-89-6195-196-8 03800   |  CIP제어번호  CIP2018042583

도서분류  1. 문학 2. 문학비평 3. 문화비평 4. 철학 5. 사회운동 6. 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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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가’의 마지막 세대이거나 또는 새 비평 정신의 첫 세대일 김대성의 글들로부터 퇴행과 재난의 시대로부터 겨우 헤어 나온 이 세계를 돌아볼 수 있었다. ― 천정환 (성균관대)

생존 이외의 것을 말할 여력조차 없는 대피소의 문학, 생활로 실행되는 예술운동과 증언되고 기록되는 발화된 말로 세운 ‘만나고 나누는’ 공동체야말로 미래와 희망이 도취적 기만이거나 헛된 망상인 이곳에서 가장 적실한 아니 유일한 가능세계이지 않을까. ― 소영현 (문학평론가)

제 생각에 문학은 구원입니다. 김대성 씨의 문門학을 통해서 이것을 느낍니다. ― 한받 (자립음악가)



『대피소의 문학』 간략한 소개


“비평가의 마지막 세대 혹은 새 비평 정신의 첫 세대”로 평가받는 문학평론가 김대성의 두 번째 비평집. 저자는 언제라도, 무엇이라도, 누구라도 무너지고 쓰러질 수 있는 이 세계에서 절실한 것은 미래나 희망이 아니라 오늘을 지켜줄 수 있는 대피소라고 주장한다. 대피소에선 사소하고 별 볼 일 없어 보이는 것이 사람을 살리고 구한다. 한 잔의 물, 한마디의 말, 몸을 덮어줄 한 장의 담요, 각자가 품고 있는 이야기 한 토막, 소중했던 기억 한 자락. 대피소에 당도한 이들은 그제야 마음 놓고 몸을 벌벌 떨 수 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태가 아니라 마음 놓고 몸을 벌벌 떨 수 있는 곳이 필요하다. 대피소의 희미한 불빛은 회복하는 존재들의 몸(flesh)이 어울리며 만들어내는 발열에 가깝다. 누군가의 작은 ‘두드림’만으로도 금세 깨어나는 힘들이 서로를 붙들 때 그 맞잡음이 온기가 되어 대피소를 데운다. 세상의 모든 대피소는 오늘의 폐허를 뚫고 나아갈 수 있는 회복하는 세계를 비추는 등대이기 때문이다.



『대피소의 문학』 상세한 소개


재난이 일상화된 시대

‘생명’이 있어야 할 자리를 ‘생존’이 대체했다. 『대피소의 문학』은 존재의 고유한 삶이 아닌 ‘살아남는 것’이 목적이 되어버린
재난의 일상화라는 상황 인식 속에서 출발한다. 눈앞에서 사람이 죽어가지만 누구도 사람을 구하지 못하는 무력감 속에서 읽고 쓰는 문법도 파괴되어 간다. 이제 문학은 현실을 진단하는 것이 아니라 현장의 목소리를 구해내는 것을 통해 재발명되어야 한다. 『대피소의 문학』은 제도화된 문학장만이 아니라 참사의 현장에서, 가만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알아차리기 어려운 생활의 현장에서 지금 이 순간에도 길어올려지고 있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곳곳의 현장에서 사력을 다해 지켜내고 있는 사람의 말, 그 목소리에 잠재되어 있는 힘이야말로 새로운 문학의 역능이라는 것이다.

현장에서 발현되는 문학과 구조 요청에 응답하는 목소리들

『대피소의 문학』은 참사의 언어라고 할 수 있는 ‘구조 요청’이 가까스로 지켜지고 있는 희망의 목소리임을 문학 내외부 텍스트를 넘나들며 발굴해내고 있다. 즉각적으로 대응하기 어렵고 현실과의 낙차라는 심연을 극복하는 것이 쉽지 않은 기왕의 문학과 달리
현장에서 쓰이고 있는 수많은 기록과 구조 요청에 응답하는 목소리에서 누군가에게 독점되는 것이 아닌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문학적인 것’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또 발명해낸다.

현장에서 발현되는 문학은 작가라는 개별적인 정체성이 아닌 집단적인 기록 노동의 모습으로, 마치 여럿의 목소리가 합창하는 것처럼 사방으로 울려 퍼지며 진동한다. 이 책의
1부즉각적인 응답을 위해 쓰이는 ‘순간 문학’인 르포적인 글쓰기를 주목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르포적인 글쓰기는 장르적인 영역에 국한되지 않고 한국문학장 내부에서도 진동하고 있다. 용산참사 이후 다른 방향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김애란뿐만 아니라 윤이형, 김이설, 이주란, 조해진 등의 소설에서도 참사 이후 기왕의 문학적 질서로는 말할 수 없는 영역을 개척해나가려는 시도를 확인할 수 있다. 『대피소의 문학』은 재난이 일상화된 시대에 문학이 어떤 형질 변화를 일으키고 있는지, 또 어떤 새로운 문학이 요청되는지를 삶의 현장과 문학 내부를 오가며 구체화한다.

한국문학 내부의 ‘추방과 생존’의 구조

언제라도 추방될 수 있다는 공포 때문에 그저 살아남는 생존이 최우선 과제가 되어버린 삶의 조건은 문학의 영역 또한 그 사정이 다르지 않다. 이 책의
2부는 눈에 잘 드러나지 않는 한국문학 내부를 장악하고 있는 ‘추방과 생존’의 구조를 비평가의 실존적 목소리를 통해 선명하게 구현해낸다. 자신의 목소리를 전면에 내세우기보다 작품을 통해서만 겨우 말할 수 있는 기왕의 비평적 글쓰기와 달리 문학성(文學性)이 구성원들을 관리하고 통치하는 장치로 기능하는 구조를 전면화하고 있다.

개별적인 목소리를 지워야만 들어갈 수 있는 문학성(文學城)이 아닌 각자의 고유성을 지켜내면서 현재와 다른 삶으로 이행할 수 있는 가능성을 과감하게 탐색하고 있는 글들은 그 자체로 용기 있는 비평적 시도이기도 하다. ‘주니어 시스템’이나 ‘쪽글’과 같은 모두가 알고 있지만 누구도 말하지 않은 문학제도의 내부적 문제를 가시화하고 이종격투기와 오디션 프로그램, 사무라이 영화, 1인칭 시점의 영화 및 게임과 같은 동시대의 문화적 환경을 접속시키며, 점점 더 왜소해지고 무용한 것이 되어가는 비평 영역을 활성화하고자 하는 비평적 모색은 다른 삶을 요구하고 욕망하는 삶-문학의 실천적 사례로 읽을 수 있다.

부산의 대피소들에서 길어올린 것

이 책의 백미로 읽힐 수 있는
3부재난의 현장에서 발현되는 유토피아의 가능성을 의미하는 ‘재해유토피아’(리베카 솔닛)의 구체적인 사례인 현장의 목소리를 담아내고 있다. 저자가 활동해온 부산에서 오랜 시간 다종한 현장을 누비며 만나고 함께 작업해온 생활예술에 관한 생생한 보고는 1부에서 주목한 르포적인 글쓰기의 실제적인 사례이자 새로운 비평의 언어를 예감할 수 있는 흥미로운 글이다. 전문가가 아닌 생활 속에서 익힌 고유한 이력을 무상으로 나누며 이루어지는 만남과 사귐의 순간을 충실하게 기록하고 그 현장 속에 잠재되어 있는 가능성을 비평적 언어로 길어올리고 있는 글에서 우리는 ‘대피소’가 ‘곳간’이라는 공통장으로 재발견되는 체험을 하게 된다. 3부에 수록된 글엔 퇴거 명령을 받은 재개발 지구에서 한 달간 이어진 재(능)계발의 축제가, 함께 책을 읽고 쓴 문장이 주거지를 지켜내기 위한 투쟁의 현장에서 그들을 지지하고 응원하는 울타리로, 사소해보일 수 있는 각자의 이야기가 모여 전시장에서 고유한 작품으로 재탄생하며, 주거지가 콘서트 현장으로, 각자가 일구고 있는 생활이라는 텃밭이 모두가 자유롭게 어울려 사귐과 나눔을 이어갈 수 있는 마당으로 변화한 이력이 차곡차곡 쌓여 있다.

대피소와 곳간이라는 공통장의 테크놀로지

미래나 희망이 아닌 오늘을 지킬 수 있는 대피소의 필요성을 전면화하고 있는 이 책은 자격을 가진 특정한 이가 아닌 누구나 드나들 수 있고, 드나드는 이가 많을수록 풍족해지는
‘곳간’이라는 이미-도착해 있는 공통장을 발굴하고 또 발명해냄으로써 새로운 문학의 가능성을 생생하게 구현하고 있다. ‘대피소’는 도피를 위한 장소라기보다 그곳에 사람이 있으며 주고받음의 역사를 이어갈 수 있다는 희망의 증표다. 대피소가 존재하는 것은 그곳에 여전히 지켜야 하는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사람 곁으로 다가서려는 애씀과 사람 곁을 떠나지 않고 버텨내려는 안간힘으로 대피소는 구축된다. 수직적인 위계질서가 와해되는 곳, 몫의 재분배와 자리바꿈이 일어나는 곳이기도 하기에 대피소는 분명 정치의 장소다. 바리케이드도, 문턱도, 경계도 없는 대피소엔 생생한 삶과 유동하는 에너지가 있다. 곁(beside)이라는 관계성의 장소가 대피소와 곳간의 결(texture)을 만든다. 이 대피소와 곳간이라는 공통장의 테크놀로지는 문학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저자 인터뷰


1) 문학의 역할이나 소명에 대한 기대가 회의적으로 변하는 시대에 ‘대피소’라는 긴급한 장소와 ‘문학’을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이 책에서 왜 ‘대피소의 문학’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시는지요?

저뿐만 아니라 참사의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이들이 더 이상 읽을 수도, 쓸 수도 없는 무기력을 경험했을 것입니다. 한동안 ‘구조 요청’에 누구도 응답하지 못했다는 부채감 속에서 지냈습니다. 참사의 사회적 의미나 현실을 진단하는 것이 아닌 참사 현장에 관한 글들을 찾아 읽으면서 ‘현실’과 ‘현장’의 온도차가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바깥을 향해 도움을 구했던 이들이 외려 또 다른 누군가를 구해내는 장면을 목격하면서 (가령, 유가족들의 투쟁이나 참사 현장에 관한 증언) 아무도 구하지 못했다는 무기력이야말로 재난 시스템이 재생산되는 구조임을 알아차릴 수 있었습니다. 더불어 2013년부터 부산을 거점으로 생활예술모임 <곳간>이라는 모임을 열면서 만나고 사귀었던 제도 바깥의 현장에서 배우고 익힌 것들에 이름을 붙이는 것이 어려웠는데, 일상과 생활이라는 낮은 자리에서 발현되는 힘들이 기왕의 것과는 다른 장소를 만들어내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참사의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건 자격을 따지지 않고 누구나 기거할 수 있는 ‘대피소’라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기왕의 문학 또한 대피소라는 공통장 속에서 새롭게 발명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대피소의 문학’은 곳곳에 편재한 참사의 현장(아울러 생활예술의 현장)에 이미 도착해 있는 모두의 역량을 가리키는 이름이었습니다.

2) 대피소의 문학은 어떤 작가들에게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지요? 특히 주목할 만한 작가는 누구이며 어떤 작품인가요?

이 책에선 김애란, 윤이형, 김이설, 이주란, 조해진, 조갑상, 가수 김윤아 등을 거론하고 있지만 ‘대피소의 문학’은 작가라는 정체성보다는 익명의 목소리들로부터 출현한다고 생각합니다. 먼저 ‘구조 요청’을 했던 이들의 목소리에 우리가 어떻게 응답했는가라는 물음 앞에 서야 하겠습니다. 한 명도 구하지 못한 ‘416세월호’ 이후를 살아가면서 우리가 여전히 ‘구조 요청’이라는 말을 쓸 수 있는 이유는 도움을 구했던 이들이 먼저 도왔기 때문입니다. 가라앉는 세월호 안에서 그들은 외침에 응답하며 누군가를 구했습니다. 유가족 또한 세월호의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 힘겨운 투쟁을 이어가면서 침몰하는 한국 사회를 구했습니다. 자신의 언어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고 사람들의 목소리를 기록하는 기록 노동자들 또한 ‘대피소의 문학’을 보여주는 사례라 하겠습니다. 작가 중에선 『비행운』(2012)부터 애도의 글쓰기로 이행하는 김애란 소설가의 행보를 주목하고 있습니다. 용산 참사 이후 김애란의 소설은 잘 알지 못하지만 더 이상 이곳에 없는 존재들을 부르는 목소리로 채워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참사 이후를 살아내는 소설가들은 소설이라는 양식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작가의 발언과 같은 절대적인 목소리를 신뢰하지도 않습니다. 잡다한 기록이나 상념을 분산적으로 늘어놓는 이주란의 소설이 어떻게 변모해가는지도 주목하고 있습니다.

3) 책의 3부에는 대피소의 지도들이 부산 지역을 중심으로 그려져 있는데 부산만의 현상인가요, 다른 지역에도 유사한 경향들이 있나요?

지도라고 하셨지만 걷고 있을 때만 나타나는 길처럼 보인다고 할까요, 언제라도 다시 찾을 수 있는 공간과는 다르다 하겠습니다. 모임도 생명과 같아서 누군가가 돌보지 않으면 수명을 다합니다. 물질적인 기반이 충분하지 않거나 제도적인 체제가 갖춰지지 않은 대부분의 모임은 그곳에서 오랫동안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모임 또한 부산의 일부분에 불과하다 생각합니다. 그곳에 입회하지 않는 한 영영 알 수 없는 ‘대피소’가 곳곳에서 명멸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당연히 부산이라는 지역에 국한되지도 않겠지요. 이미 사라진 모임도 많지만 그것이 실패인 것만이 아니라 먼 곳에서 도착하는 별빛처럼 여전히 이곳을 향해 오고 있고, 어두운 이곳을 비추는 희미한 빛의 역할을 하고 있음을 느낍니다. 요즘은 규모가 작은 모임조차 ‘지원사업’이라는 후원 없이 운영하는 것을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국가행정 시스템이 일상적인 현장까지 침투해 있음을 알게 됩니다. 나눔과 증여의 가치가 활성화되었던 자리를 교환과 성과라는 지표가 빠른 속도로 대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 또한 이런 현장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4) 생활예술모임 <곳간>에서 열고 있는 ‘문학의 곳간’이라는 모임 형식은 ‘대피소의 문학’으로서 어떤 의미를 갖고 있나요?

문학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혜안이나 전문가적인 관점이 아니더라도 각자가 살아온 이력을 바탕으로 작품을 읽고, 작품을 경유해 자신의 생활과 삶의 가치를 발굴해 그 가치를 공유하는 것이 ‘문학의 곳간’을 열 때 품었던 생각이었습니다. 문학은 누군가가 독점하는 특권적인 영역이 아니라 저마다의 생활 속에서 길어올린 삶의 이력이 쟁여져 있는 보고이기에 모두가 나눠야 할 ‘공통적인 것’임을 모임을 통해 증명해나가고 싶었습니다. 문학은 저 너머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곁에 있으며, 자물쇠를 채워 독점해야 할 것이 아니라 누구나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읽고 쓸 수 있는 권리는 언제라도, 누구와도 교류할 수 있는 만남의 권리와 이어져 있습니다. 문학을 ‘읽기’의 대상이 아닌 ‘잇기’의 매개로 삼을 때 떨어져 있는 것들을 이어주는 ‘다리’의 역할만이 아니라 제한되고 감금된 현실의 장벽을 뚫어내는 ‘굴착기’로 급진화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5) 어떤 독자들이 이 책을 꼭 읽어주길 바라시나요?

각자의 현장을 보살피며 지켜내고 있는 이들이 읽어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속박과 핍박받는 이들, 결별과 추방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이들에게 작은 힘이 되었으면 합니다. 자립하며 살고자 하는 이들, 축적이 아니 나눔의 방식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가닿았으면 합니다. 더불어 지속적으로 자립하는 살 수 있는 삶의 생태계를 구성하는 데 작은 보탬이 되었으면 합니다. 낯선 이들과도 기꺼이 만나 우정의 장소를 일구는 놀이의 현장과 운동의 현장에서, 또 축제와 투쟁의 현장에서 잠깐의 보금자리로, 대피소로, 곳간으로 자리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지은이 소개


김대성 (Kim Daeseong)

1980년 부산 출생. 2007년 계간 『작가세계』 평론부분에 「DJ, 래퍼, 소설가 그리고 소설」이라는 글로 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부산대 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고 한국 노동자 글쓰기에 대한 박사학위논문을 쓰며 동아대와 한국해양대에서 강의하고 있다. 2013년 생활예술모임 <곳간>을 열어 활동하면서 제도 바깥에서 사람들과 어울리고 부대끼며 사는 삶으로 이행할 수 있었다. 2015년부터 생활글을 근간으로 <회복하는 글쓰기> 모임을 기획 및 진행하고 있으며 구성원들과 함께 『문이야, 무늬야』(chaaak, 2016)를 함께 썼다. 문화이론계간지 『문화/과학』의 편집위원으로 참여하고 있으며 생활예술모임 <곳간>과 모임 <회복하는 글쓰기>의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 『무한한 하나』(산지니, 2016)가 있다. 블로그 : https://transone.tistory.com / E-Mail : smellsound@empas.com



추천사


세계에 대한 비극적 인식은 오늘날 문학의 숙명인 듯하다. “없앨 수도 없고 기왕의 쓸모를 회복할 수도 없는” 문학이라는 것으로, 여전히 외롭게, 그러나 누구보다 명징하게 사유하여 문학의 공동성을 지키려는 젊은 비평정신이 있다. ‘비평가’의 마지막 세대이거나 또는 새 비평 정신의 첫 세대일 김대성의 글들로부터 퇴행과 재난의 시대로부터 겨우 헤어 나온 이 세계를 돌아볼 수 있었다. 그 안에서 무엇이 위선이나 낡은 것이었는지, 또 어디에서부터 새 세대가 나아가려 하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분투에 경의를 표한다.

― 천정환 (성균관대)


대피소 바깥은 없다. 비평-하는 김대성은 이 인정할 수도 부인할 수도 없는 명백한 사실 앞에서 대피소의 문학을 말한다. 문학의 궁극의 임무인 공동체를 상상한다. 대피소는 아토포스로서의 도래할 유토피아가 아니다. 임시적이고 잠정적인 가까스로의 연명을 위한 응급조치의 장소일 뿐이다. 그러나 분명컨대 생존 이외의 것을 말할 여력조차 없는 대피소의 문학, 생활로 실행되는 예술운동과 증언되고 기록되는 발화된 말로 세운 ‘만나고 나누는’ 공동체야말로 미래와 희망이 도취적 기만이거나 헛된 망상인 이곳에서 가장 적실한 아니 유일한 가능세계이지 않을까.

― 소영현 (문학평론가)


제 생각에 문학은 구원입니다. 김대성 씨의 문門학을 통해서 이것을 느낍니다. 맞습니다. 수차례의 망치질로 깨부수어야 할 재개발의 ‘관’이 아니라 손잡이를 돌리고 / 열어서 / 드나들어야 할 ‘문’의 학문으로 서의 ‘문門학’ 말입니다.

― 한받 (자립음악가)



책 속에서 : 구조 요청의 동역학


대피소는 사회적 구속(조건)에서 해방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공간이다. 오늘날의 사회적 구속이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존 명령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생명’이 ‘생존’으로 기울어진다는 것은 ‘함께 살아가는 것’이 아닌 ‘홀로 살아남는 것’이 삶의 기본값으로 설정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죽음의 도미노가 가장 먼저 무너뜨리는 것은 우리가 맺고 있는 관계망이다.

― 머리말, 12쪽


구조 요청에 대한 긴급한 응답은 문제에 대해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 아닌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그것이 흩어지지 않도록 옮겨 쓰는 일을 통해 성립한다. 지금 누군가가 듣지 않으면 이 목소리와 이 이야기가 사라질 수 있다는 긴급함으로 쓰는 일, “여기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리는 일, 그렇게 곁을 지키는 일, 줄여 말해 문제를 함께 살아내는 일. 그러기 위해선 쓴다는 행위의 자의식을 내려놓고 우선 타인의 목소리가 기거할 수 있는 장소를 구축해야 한다. 이것이 르포에 ‘무엇을 쓸 것인가.’보다 ‘누구의 이야기를 들을 것인가.’라는 물음이 앞서 있는 이유다.

― 바스러져 가는 이야기를 듣는 것, 구조 요청에 응답하는 것, 44쪽


누구도 구하지 못했다는 무능과 함께 그 누구도 임박한 미래의 우리를 구하지 않을 것이라는 공포가 모두를 무기력하게 만든다. 그런데 구조 요청은 무기력한 목소리가 아니었다. 4월 16일 세월호에 타고 있던 단원고 학생들의 “여기, 사람이 있다!”는 외침은 구조 요청이 응답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응답을 발명하는 일이라는 것을 증명했기 때문이다. 이들에 의해 구조 요청은 다른 문법을 가지게 되었다.

― 불구의 마디, 텅 빈 장소의 문학, 65쪽


만약 한국문학의 해체를 이야기해야 한다면 나는 우선 사적·공적 관계망을 독점함으로써 개별자들을 엿장수 마음대로, 입맛 따라 선별하며 거덜 내고 있는 문단의 다단계적 구조의 해체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유연한 배제 장치인 ‘주니어 시스템’이 아닌 자생과 연대의 생태를 구축할 방안에 대한 논의가 적어도 종말과 죽음 선고보다 우선시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 한국문학의 ‘주니어 시스템’을 넘어, 124쪽


지금과는 다른 세계를 요청하는 것, 다시 말해 ‘다른 삶’이자 ‘다양한 삶’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에 대한 요구는 ‘공통적인 것’을 회복하고 ‘우리’의 잠재적 능력을 발명하는 것이다. 자본제적 체계가 공고히 하는 사적 소유를 신화화하는 시스템을 기각하는 운동이 필요하다. 예컨대 저작권(copyright)을 공유권(copyleft)으로 바꾸는 것, 사적 소유가 아닌 공통적인 것(the common)을 발명하는 것 … .

― 잡다한 우애의 생태학, 172쪽


도시엔 수많은 종류의 은둔자와 도망자로 넘쳐나지만 정작 숨은 건 도시 그 자신이다. 도시를 가로지르며 다른 공간을 상상하는 것은 생각처럼 쉽지 않겠지만 ‘도주’와 ‘추격’이 아닌 방식으로 이곳을 걸어내는 일은 해볼 만한 일이다. 아무리 도시가 제 살을 갉아먹으며 파괴와 증식의 이중주로 미쳐 날뛴다 해도 도시의 욕망 바깥으로 외출해보는 ‘산책’이라는 삶의 양식은 고장 난 세상을 고장 난 상태로 걷는 것을 지속하는 일상적 실천의 하나다.

― 고장 난 기계, 268쪽


『이창근의 해고일기』(오월의 봄, 2015)를 읽으면 누구나 이런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싸움과 투쟁의 현장에서 ‘글’을 쓴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다급하고 절박한 현장에서 아무짝에도 쓸모없을 것 같은 글을 쓰는 일은 무력감과 절망의 증표가 아니다. 싸움과 투쟁의 현장에서 ‘쓴다는 것’은 ‘아직’ 절망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 을’들의 잠재성, 310~311쪽


속박과 핍박받는 이들의 회복을 돕는 장소, 결별과 추방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이들이 흘러드는 곳, 가야할 곳이 어디인지 알려주지는 않지만 지금 머물 수 있는 곳이 어디인지를 알려주는 곳. 지금까지 옭아매왔던 사회적 구속이나 제한에서 일시적으로나마 해방될 수 있는 곳에 대한 염원이 만들어낸 장소가 ‘대피소’다.

― 나가는 글, 330쪽



목차


머리말 7
들어가는 글 : 도움을 구하는 이가 먼저 돕는다 15

1부 대피소의 건축술 : 구조 요청의 동역학
바스러져 가는 이야기를 듣는 것, 구조 요청에 응답하는 것 28
익사하는 세계, 구조하는 소설 46
불구의 마디, 텅 빈 장소의 문학 64
아무도 아닌 단 한 사람 73
거인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 83
‘두 번’의 이야기 : 발포하는 국가, 장전하는 시민 92
“괴물이 나타났다, 인간이 변해라!” 106

2부 대피소 너머 : 추방과 생존
한국문학의 ‘주니어 시스템’을 넘어 113
‘쪽글’의 생태학 : 비평가의 시민권 126
생존의 비용, 글쓰기의 비용 : 우리 시대의 ‘작가’에 관하여 148
잡다한 우애의 생태학 169
아직 소화되지 않은 피사체를 향해 쏘아라 : 1인칭 Shot, 리얼리티 쇼와 전장의 스펙터클 177
박카스와 핫식스 197

3부 대피소의 별자리 : 이 모든 곳의 곳간
세상의 모든 곳간(들) 206
Hello stranger? Hello stranger! : 새로운 우정의 물결, 코뮌을 향한 열정 233
이야기한다는 것, 함께 살아가는 힘을 기른다는 것 250
고장 난 기계 261
텃밭과 마당 270
모두가 마음을 놓고 빛/빚을 내던 곳에서 : <생각다방 산책극장>을 기리며 278
발견하고 나누고 기록하는 실험의 순간들 : 생활예술모임 <곳간>을 경유하여 284
2가 아닌 3으로 292
곳간의 사전, 대피소의 사전 301
‘을’들의 잠재성 : <데모:북> 1회를 열며 310
어딘가에 있을 또 다른 우리들의 존재 : <데모:북> 2회를 열며 315

나가는 글 ― 대피소 : 떠나온 이들의 주소지 327
김대성의 구원의 문(門)학에 부쳐 _ 한받(자립음악가) 332
수록글 출처 335



『대피소의 문학』에 대한 정치철학자 조정환의 유튜브 동영상


      http://bit.ly/2IksbbB



함께 보면 좋은 갈무리 도서 (표지를 클릭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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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로스의 문학』(조정환 지음, 갈무리, 2006)

문학이 '객관현실'의 관념에 묶이지 않으면서도 삶을 치유하고 건강하게 하는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자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지은이는 민족문학, 민중문학, 노동문학, 노동해방문학의 삶문학(bioliterature)으로의 재구성, 리얼리즘의 해독제로서의 버추얼리즘(virtualism)의 가능성에 대한 탐색을 보여준다. 또한 1990년대 이후 최근까지 문학장의 핵심 쟁점(리얼리즘-(포스트)모더니즘 논쟁, 분단체제 논쟁, 민족문학 논쟁, 문학권력 논쟁, 문학 위기 논쟁 등)에 비판적으로 개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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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떼 공포, 젠더 어펙트』(권명아 지음, 갈무리, 2019)

정동과 페미니즘, 페미니즘과 젠더 정치의 정동 효과들에 대한 이론적 연구이자, 온 힘을 다해 무언가 '다른 삶'을 만들어보기 위해 부대낀 날들의 기록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 페미니즘과 젠더 어펙트에 대한 이론적 탐색과 실천적 개입은 하나의 몸과 다른 하나의 몸이 부대껴 만들어내는 힘.마찰.갈등에서부터, 개별 존재의 몸과 사회, 정치의 몸들이 만나 부대끼는 여러 지점들까지, 그리고 이런 현존하는 갈등 너머를 지향하는 '대안 공동체'에서도 발생하는 '꼬뮌의 질병'을 관통하면서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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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히 정치적인 외로움』(권명아 지음, 갈무리, 2012)

1980년대에서 2000년대까지 지난 20여 년간의 변화와 낙차(落差)를 살펴보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저자는 슬픔, 외로움, 사랑, 위기감, 불안 등 정념의 키워드들을 통해 영화, 소설, 드라마 등 다양한 문화들을 넘나들며 조망한다. 더불어서 시대를 초월한 여성 문인들의 삶과 작품들을 새롭게 조명하며 지난 20여 년간 한국 사회에서의 ‘정치적인 것’을 둘러싼 변화를 통합적이며 힘 있게 그려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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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시를 향하여』(이성혁 지음, 갈무리, 2013)

저자는 신자유주의와 금융자본주의의 위기 속에서 문학의 잠재성과 가능성을 탐구하며 활발한 평론을 해오고 있다. 그는 이번 평론집에서 아방가르드 예술운동과 노동시에 대한 새로운 분석을 시도하며 우리 시대의 시, 문학, 예술과 혁명에 대한 깊이 있는 사유를 제시하고 있다. 평론집 제목인 '미래의 시를 향하여'는 "19세기의 사회 혁명은 과거로부터는 그 시를 얻을 수 없고 오직 미래로부터만 얻을 수 있다."('루이 보나빠르뜨의 브뤼메르 18일')라는 맑스의 말에서 빌려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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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역사(들)』(전성욱 지음, 갈무리, 2017)

이 비평집은 근래에 나온 한국 소설들을 집중적으로 독해함으로써, 문학의 그 질적인 변화에서 역사적 전환의 기미를 포착하고 있다. 비평집의 제목과 목차의 체제는 고다르의 <영화의 역사(들)>을 차용하고 변형하였다. 영화가 쇠퇴의 길로 접어들고 있을 때, 그는 이 영화의 제작에 착수했다. 그에게 영화의 쇠퇴는 단지 한 예술 장르의 퇴락이 아니라, 개인이 세계와 맺는 관계의 근본적인 변화를 야기하거나 반영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래서 저자는 소설의 쇠락을 목도하며 고다르의 역사적 사색을 떠올린 것이다.

2019.03.18 |


보도자료


역사의 시작

The Beginning of History



가치 투쟁과 전 지구적 자본

역사의 종말(후쿠야마)인가 역사의 시작(데 안젤리스)인가?
신자유주의가 선언하는 ‘역사의 종말’에 맞서 투쟁이 만들어가는 ‘역사의 시작’을 탐구한다
재개발과 젠트리피케이션에 맞서, 시장경제, 사회적 시장경제, 공유경제를 넘어 공통장으로!
공통장(commons) 활동가와 연구자들의 필독서



지은이  맛시모 데 안젤리스  |  옮긴이  권범철  |  정가  25,000원  |  쪽수  488쪽

출판일  2019년 3월 18일  |  판형  신국판 무선 (140*215)  |  도서 상태  초판

출판사  도서출판 갈무리  |  총서명  Mens, 아우또노미아총서 65

ISBN  97889-6195-201-9 93300   |  CIP제어번호  CIP2019006918

도서분류  1. 정치학 2. 경제학 3. 철학 4. 문화비평 5. 사회운동 6. 정치사상

보도자료  역사의시작-보도자료-최종-qr추가.hwp 역사의시작-보도자료-최종-qr추가2.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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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시작』은 창조성을 반자본주의 사상의 핵심으로 데려가며, 이를 통해 아나키즘, 사회주의, 코뮤니즘의 개념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 실비아 페데리치, 『캘리번과 마녀』 지은이

『역사의 시작』은 그 자체로 일종의 지적 혁명이며, 엄밀하면서도 흥미롭다. ― 데이비드 그레이버, 『부채, 그 첫 5,000년』 지은이

이 책은 반자본주의 이론의 중대한 성과다. ― 조지 카펜치스, 『피와 불의 문자들』 지은이



『역사의 시작』 간략한 소개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는 ‘역사의 종말’이라는 사고를 수용한다. 그러나 지구 곳곳에서 일어나는 공통장과 존엄을 위한 다양한 투쟁들은 역사의 시작이라는 다른 실재를 드러낸다. 이 책은 이 투쟁의 전선을 분석한다. 한편에서는 자본으로 불리는 하나의 사회적 세력이 끝없는 성장과 화폐 가치를 추구한다. 다른 한편에서는 다른 사회적 세력들이 자신의 관점에서 삶의 망을 재배열하려고 노력한다. 이 책은 대안지구화 운동이 최근 제기한 대안적인 공동생산 양식들을 다루면서 이 운동들이 무엇과 맞서고 있는지를 검토한다.

열정으로 가득한 이 책은 획기적으로 새로운 비판 정치경제학 이론을 모색하고 급진적인 사회 변화를 일으키는 데 있어 그 이론의 역할을 탐구한다. 이 책은
모든 정치 활동가와 정치 이론 학생들의 필독서다.



『역사의 시작』 상세한 소개


『역사의 시작』은 역사의 종말이라는 사고에 도전한다.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냉전의 종식과 더불어 자유민주주의가 “인류의 이데올로기 진화의 종점”이라고 주장하며 “역사의 종말”을 선언했다. 사실상 자본주의의 최종적인 승리를 선언하는 이러한 사고에서 세계의 수많은 문제들은 자본주의 자체의 결함이라기보다 그것의 불완전한 실행에서 비롯된 문제로 이해된다. 그러므로 더 이상 새로울 것은 없다. 우리는 이미 최종적인 단계에 도달했으므로 그것의 보다 완전하고 광범위한 실행만이 남았을 뿐이다. 이것은 특정한 가치, 즉 이윤, 경쟁, 무한 축적 등이 보편화되어 사회 곳곳에 스며든 세계를 의미한다.

그러나
저자는 ‘역사의 시작’이라는 문제를 제기하면서, 역사의 종말이라는 이미지로 세계를 구축하는 것을 거부한다. 이 역사의 시작이란 “다른 가치들을 상정하는 것이며, 화폐로 부패된 민주주의, 살림살이를 위협하는 경쟁으로 부패된 사회적 공동생산 그리고 비시장 공통장을 종획하는 구조조정과는 다른 지평들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렇게 다른 가치를 상정하고 실천하는 것은 지배적인 가치에 대한 도전과 적대이자, 자본주의를 넘어선 창조의 구성적 과정일 수밖에 없다. “다른 삶의 차원들의 생산, 즉 행위하고 관계 맺는, 가치화하고 판단하는, 살림살이를 공동 생산하는 다른 양식들의 생산일 수밖에 없다.” 요컨대 지구 전역에서 자본의 폭력에 맞서 일어나는 다양한 투쟁들이 다른 가치를 상정하고 실천하며 다른 삶을 창조하는 과정이기에 역사는 끝난 적이 없다. 역사는 언제나 다시 시작한다.

우리가 사는 세계는 자본주의가 아니다

역사가 종말을 맞이했다는 생각은 자본주의의 최종적인 승리를 말하지만 데 안젤리스에 따르면
우리가 사는 사회적 관계들의 체계는 자본주의가 아니다. 우리의 세계는 자본주의보다 훨씬 더 거대하며, 자본주의는 “훨씬 더 광범위하고 모든 것을 아우르는 어떤 것, 즉 사회적 재생산 체계에 속한 하나의 하위체계에 불과하다.” 이 말을 따른다면 우리는 자본주의라는 하나의 체계가 모든 것을 에워싼 세계가 아니라 다양한 체계들의 상호관계로 구성된 세계를 떠올릴 수 있다.

이렇게 저자는
이 세계를, 상호작용하는 다양한 가치 체계들의 집합으로 이해한다. 일반적으로 ‘가치’라는 것이 우리가 우선시하는 어떤 것이라면, 가치들은 전체 사고 구조로 함께 결합하여 가치 체계를 낳는다. 따라서 이 가치 체계란 “우리가 세계를 이해하는 하나의 개념 격자다. 그것은 무엇이 좋고 무엇이 나쁜지, 무엇이 정상이고 무엇이 비정상인지, 우리가 무엇을 단념해야 하고, 무엇이 바뀔 수 있는지 (심지어 무의식적으로) 정의한다.”

세계를 만드는 ‘가치 실천’

데 안젤리스는 이
가치 체계들이 상호작용하는 과정을 그려내기 위해 가치 실천이라는 개념을 도입한다. 이 가치 실천은 “가치 체계에 입각해 있을 뿐 아니라 결국 그것을 (재)생산하는 행동과 과정과 관계망”을 의미한다. 이 가치 실천은 “무엇이 ‘좋고’ 무엇이 ‘나쁜지’를, 개념적으로 그리고 담론적으로 선별할 뿐만 아니라 실제로 이 선별에 기초하여 행동함으로써” 특정한 가치 체계를 형성한다. 그러므로 가치 체계는 주어져 있다기보다 사람들의 행동을 통해 (재)생산되며, 상이한 가치들의 추구가 상이한 ‘사회들’을 (재)생산한다.

예를 들어 주택소유자의 가치 체계에서 임대료 상승은 ‘좋은 것’이고 하락은 ‘나쁜 것’이다. 반대로 세입자의 가치 체계에서 임대료 상승은 ‘나쁜 것’이고 하락은 ‘좋은 것’이다. 주택소유자들은 가격을 담합하고 이른바 혐오 시설의 입주를 저지하며 임대주택 공급을 반대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이 가치화하는 것(임대료 및 주택 가격 상승)을 추구함으로써 ‘부동산이 불패하는’ 사회를 재생산한다. 이러한 사회에서 부동산 투자는 가치 체계를 넘어 하나의 가치 프로그램이 된다. 저자가 인용하는 맥머트리에 따르면 “하나의 가치 체계 혹은 윤리 체계는 상정된 자신의 가치 구조가 자신을 넘어서는 사고를 배제할 때 하나의 프로그램이 된다.” 즉 프로그램은 하나의 ‘정상’이 된 사고 체계다.
하나의 프로그램이 된 부동산 투자는 화폐를 향한 공통의 욕망 위에서 번성한다.

자본의 외부 : 공통장(commons)

그러나 우리는
임대료와 주택 가격의 상승이 아닌 다른 가치를 추구하면서 다른 사회를 만들 수도 있다. 우리는 ‘부동산이 불패하는’ 사회 안에서 건물주의 일방적인 임대료 인상을 거부하고 강제 집행에 맞서며 다른 사회를 구성한다. 그러한 일은 필연적으로 지배적인 가치 체계와의 갈등을 유발한다. 그렇게 상이한 가치들이 충돌할 때 하나의 전선이 형성되고 그곳에서 다른 사회가, 자본의 외부가 만들어진다.

저자는 그렇게
“자본과 다른 것이 되는” 과정, 즉 외부를 공통장(commons)이라고 부른다. 이 공통장은 어디에나 존재할 수 있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많은 공통장들이 이미 사회 내에 잠재해 있으며, 우리가 우리의 삶과 지식을 재생산하기 위해 필요한 도움과 자원의 많은 부분을 공급하는 수로 역할을 한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하나의 공통장에서 태어난다.” 우리는 다른 가치를 추구하여 다른 사회를 만듦으로써 우리가 자본 외부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자본은 그러한 외부를 자신의 울타리로 에워싸려 한다. 그 과정이 바로 종획(enclosure)이다.

자본은 종획한다

자본주의가 하나의 체계라면, 자본은 이 체계를 출현시키는 사회적 세력이다. 저자가 말하는 사회적 세력이란 어떤 지향점을 가진 힘들이 연결된 상태를 가리킨다. 자본의 지향점은 바로 무한한 축적이다. 이것을 지향하는 사회적 세력, 자본은 “인간 및 비인간 삶의 모든 영역에 침투하여 스며들기를 열망하며 그 모든 영역을 자신의 행위 양식으로, 따라서 특유의 사회적 관계로, 즉 사물을 가치화하고 그 결과 사물의 질서를 만드는 자신의 방식으로 식민화한다.” 요컨대 자본은 자신의 외부에 있는 모든 것을 에워싸려 한다. 즉 종획한다.

전통적인 맑스주의는 종획을 자본주의의 ‘시초’에 일어난 지나간 일로 치부하고 ‘정상적인’ 축적 과정, 즉 ‘자본 논리’를 강조하지만
저자에게 종획이란 ‘자본 논리’의 지속적인 특징이다. 우리가 세계를 객관적인 법칙이 아니라 다양한 가치 실천들 간의 투쟁에서 출현하는 것으로 이해할 때, 자본은 자기 보전과 무한한 증식을 위해 끊임없이 외부 세력을 종획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저자의 강조점은 역사를 시작하기 위해 분투하는 세력들이 반대하는 것, 즉 자본주의보다는 그 세력들이 대면하는 것, 즉 자본과 자본의 가치 실천에 맞추어져 있다.

사회 문제를 가치 실천들의 갈등으로 이해해야 한다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수많은 문헌들이 신자유주의와 지구화된 시장이 가져온 참담한 효과를 나열한다. 그것을 상이한 가치 실천들 간의 충돌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지 않고 해결해야 할 ‘문제’로만, 싸워야 할 ‘적’으로만 이해하기 때문이다. 가령 ‘빈곤과의 싸움’을 언급하는 이들의 발표자료 속에서 빈자는 무기력한 피해자로만 재현되고, 빈곤은 자본의 세례를 아직 받지 못한 ‘저발전된’ 상태로만 나타난다. 즉 빈자들의 주체적인 실천과 투쟁은 지워지거나 심지어 범죄화되고, ‘역사의 종말’이란 사고를 우리에게 주입시키는 자본은 자신을 그 ‘문제’의 ‘해결책’으로 제시한다. 실상 그 자신이 그 문제의 원인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렇게 사회 문제를 가치 실천들의 갈등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지 않고 손쉽게 ‘해결책’, ‘정책’을 제시하는 과정에서 공통장도 자본으로 흡수될 수 있다. 오늘날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이른바
공유경제는 대표적인 예로 보인다. 도시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한다고 하는, 혹은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한다고 하는 그 사업들 대부분이 오히려 새로운 문제가 되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 사업들은 공유, 협력, 나눔 등의 가치를 내세우고 도시민들의 마주침을 조직하여 그 과정에서 생산되는 공통의 부를 전유한다. 그 부를 생산한 공통인들(commoner) 혹은 공동체는 자신들이 생산한 부로부터 배제된다. 따라서 이 소위 공유 사업들은 이름과는 정반대로 새로운 종획의 사례다.

그러나 그 종획의 과정에서 또 다시 투쟁이 일어나고 새로운 전선이 그어진다. 공유경제뿐 아니라 재개발, 젠트리피케이션 등의 사례에서 어김없이 볼 수 있는 것처럼
오늘날 도시는 공통의 부를 둘러싸고 끊임없이 전투가 벌어지는 전장이다. 저자는 그 전장에 뛰어든 혹은 뛰어들 우리에게 꼭 필요한 관점을 이 책을 통해 보여 준다.



지은이·옮긴이 소개


지은이
맛시모 데 안젤리스 (Massimo de Angelis, 1960~ )

이스트런던 대학교 정치경제학 교수이며, 웹 저널 『공통인』(The Commoner)을 2001년에 설립하여 현재까지 편집자로 활동하고 있다. 밀라노 대학교에서 정치학을 공부했고 유타 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연구 분야는 정치경제학 이론부터 현대 지구적 자본주의와 위기의 정치경제, 사회 운동과 공통장까지 여러 분야에 걸쳐 있다. 최근의 관심사는 오늘날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에 내포된 다양한 위기 국면 안에서 사회적 체계로서의 공통장과 그것의 설계, 회복력, 지속가능성 및 발전 전략을 탐구하는 것이다. 오랫동안 그는 현대의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에 대한 이론과 역학뿐 아니라 전 세계의 사회 운동들이 만들어 낸 무수한 파열과 대안의 순간에 초점을 맞추어 왔다. 특히 대안지구화 운동에 주목하면서 미래의 유토피아가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대안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지 찾아다니기 시작했고 그와 더불어 공통장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이 시대에 만연하게 된 “역사의 종말”이라는 정신에 도전하기 위해 2007년에 『역사의 시작』(갈무리, 2019)을 출간하였다. 이후 10년간 현대 자본주의적 체계에 대한 비판적 분석을 유지하면서 그 배경에 있는 공통장을 드러내는 연구에 주력하여 『모든 것은 공통적이다』(2017)를 출간했다. 이 책에서는 자율주의적 맑스주의, 에코페미니즘, 진화생물학, 체계 이론 및 복잡성 이론을 혼합하여 사용하면서 공통장이 단순히 그 속의 자원만이 아니라, 자신의 환경에서 기업, 국가, 다른 공통장 및 사회 운동과 같은 다른 체계들과 상호작용하는 하나의 사회적 체계라고 주장한다. 또 케인스주의 경제학의 출현을 1920년대 이후 강력한 사회운동의 결과물로 해석한 『케인스주의, 사회 갈등, 그리고 정치경제학』(2000)을 썼다.


옮긴이
권범철 (Kwon Beomchul, 1978~ )

<예술과 도시사회연구소> 연구원. 서울시립대학교에서 「도시 공통계의 생산과 전유」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메트로폴리스의 공간과 예술에 대한 연구와 관련 활동을 하고 있다. 『Art of Squat. 점거 매뉴얼북』(오아시스프로젝트, 2007)을 함께 편집했으며, 『텔레코뮤니스트 선언』(갈무리, 2014)과 『빚의 마법』(갈무리, 2015), 『로지스틱스』(갈무리, 2017)를 옮겼다.



추천사


『역사의 시작』은 탈근대 자본주의를 “외부”가 없는 총체적인 체계로 바라보는 하트와 네그리의 『제국』에 도전한다. 데 안젤리스에게 “외부”는 공유와 공생공락 그리고 공통성의 공간 속에서 건재하다. 이것은 삼림 공유지를 보호하는 제3세계 마을의 여성 농부부터 “자유” 소프트웨어와 “안티카피라이트” 라이선스를 만드는 인터넷 활동가에 이르는 지구 전역의 투쟁들에 의해 계속 창조된다. 『역사의 시작』은 이 창조성을 반자본주의적 사고의 중심으로 가져오며, 이를 통해 아나키즘과 사회주의 그리고 코뮤니즘이라는 개념에 새로운 의미를 불어넣는다.

― 실비아 페데리치, 『캘리번과 마녀』 저자


맛시모 데 안젤리스는 자율주의 사상가 ― 이 전통은 네그리와 비르노 같은 인물을 배출한 바 있다 ― 의 새로운 세대에서 가장 뛰어나다는 명성을 쌓았다. 이제 우리는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역사의 시작』은 엄밀할 뿐 아니라 흥미진진하며, 그 자체가 일종의 지적 혁명이다.

― 데이비드 그레이버, 『부채, 그 첫 5,000년』 저자


맛시모 데 안젤리스의 『역사의 시작』은 반자본주의 이론에서 큰 발전을 이룬 책이다. 데 안젤리스는 공통장, 종획, 자율, 사회적 재생산 같은 개념들을 그러모아서 자본주의가 자신에 맞선 투쟁에 직면하여 어떻게 살아남고 축적하는지 밝힌다. 이와 동시에 그는 가치, 시초 축적, 자본 같은 맑스주의의 대상화된 개념들을 탈물신화하고 그것들의 살아 있는 정수를 드러낸다. 그는 21세기의 사고와 행동에 유용한 맑스주의 이론을 만들어 낸다. 독자는 반지구화 운동의 슬로건인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에 대한 풍부하고 선명한 비판과 함께 이 책을 덮는다. 데 안젤리스가 다른 세계, 반자본주의적 세계가 이미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 조지 카펜치스, 『피와 불의 문자들』 저자



책 속에서 : 가치 투쟁과 전 지구적 자본


이탈리아와 미국에서 대학을 다닐 때 나는 1980년대와 90년대에 독재 정권과 저임금에 저항했던 한국의 노동자 및 사회 운동의 투쟁에서 영감을 받았다. 그 후 한국은 지구화의 결정적인 마디다.

― 한국어판 지은이 서문, 6쪽


역사의 시작이란 문제계는 역사의 종말이란 이미지로 세계를 구축하는 것에 대한 거부다. … 자본주의를 넘어선 실재의 사회적 구성 과정은 창조일 수밖에 없다. 다른 삶의 차원들의 생산, 즉 행위하고 관계 맺는, 가치화하고 판단하는, 살림살이를 공동 생산하는 다른 양식들의 생산일 수밖에 없다.

― 1장 역사의 시작, 23쪽


자본주의가 우리의 세계가 아니라면 그것은 우리의 세계의 부분 집합이다. 실제로 일반 체계 이론은 어떤 체계도 부분적 전체라고 말한다. 이것은, 만일 그 체계 내에서 본다면 그것은 하나의 전체로 나타나고, 외부에서 보면 그것은 더 크고 더 포괄적인 체계의 부분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상이한 규모의 체계들은 서로 맞물려 있고 서로 위계 관계 속에 있다.

― 3장 하나의 사회적 세력으로서의 자본, 86쪽


자본과 구별되며, 생산하는 신체의 필요와 욕망에 뿌리를 둔 가치 실천들의 관점에서 보면 아이들과 노는 것과 요리를 하는 것은 결혼식에서 악기를 연주하거나 소프트웨어를 설계하거나 혹은 철로를 까는 일만큼이나 한 ‘공동체’의 재생산에 기여한다. 이 모든 경우에 우리는, 맑스의 말을 바꾸어 표현하면, 자연의 생산을 우리의 욕구에 적응시킨 형태로 전유하고 있다.

― 5장 생산과 재생산, 123쪽


나는 무역이 훈육을 하는 세 가지 상호 연관된 방식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의 사후 영향을 통해서, 사전 위협을 통해서 그리고 이 두 가지의 상호작용에서 생겨나는, 주체성의 물질적 기반의 연속적인 재구성 과정으로부터.

― 9장 전 지구적 노동 기계, 241쪽


종획은 상품화 과정에서 출현하지만, 공통장 회복과 상품화 반대 투쟁에 대한 대응으로 출현하기도 한다. 가령 ‘사유화’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전략으로, 혹은 공통장과 공동체를 생산하는 실천 전체에 종획을 다시 씌우는 계급 전략으로 말이다.

― 11장 한계 없는 종획, 274쪽


가치는 사람들이 행동에 부여하는 중요성이며 담론적으로 그리고 문화적으로 주어진 척도 단위를 사용하여 측정된다. 상품 가치는 이 중요성이 뒤집어진 것이다. 그것은 사람들이 자기 행동의 생산물에 부여하는 중요성이다.

― 13장 자본의 가치화와 측정, 335쪽


사실 역사의 시작은 살아져야 한다. 오직 살아 있는 주체들만이 상호 관계 양식의 구성에 참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개별 특이성들/파편들과 전체 사이의 관계 양식은 역사의 시작이라는 문제계의 가장 중요한 핵심이다. 오직 살아 있는 주체들만이 자본의 가치 실천과 그 훈육 시장 외부로 나가는 것의 의미를 그들 사이에서 파악할 수 있다.

― 17장 공통장, 437쪽



정치철학자 조정환의 『역사의 시작』 소개 유투브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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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한국어판 지은이 서문 6
그림 차례 12
표와 상자 차례 12
서문 13

1장 역사의 시작 22
다른 차원들 22
전선과 대안 29
적대의 발현 34
그릇된 양극단들 39
책의 구조 44

1부 방향 설정 : 경합 지형으로서 살림살이의 공동 생산

2장 가치 투쟁들 51
일시적 시공간 공통장 51
하나의 윤리 체계로서의 시장 61
외부를 상정하기 69
가치 투쟁들 75

3장 하나의 사회적 세력으로서의 자본 80
하위체계로서의 자본주의 80
자본 88
텔로스, 충동 그리고 코나투스 90

4장 한계가 없는 98
자본의 무한함 98
전 지구적 M-C-M′ : 고전적 실례 104

5장 생산과 재생산 113
순환 결합 113
임금 노동과 비임금 노동 그리고 비가시적인 것의 영역 122

6장 생산, 재생산 그리고 전 지구적 순환고리 139
전선 : 코나투스들의 절합 139
국제 노동 분업 150

2부 전 지구적 순환고리들 : 현대 노동 기계에 대한 몇 가지 탐구

7장 종획과 훈육적 통합 158
세대와 항상성 158
개념 지도 163
통치성 172

8장 전 지구적 순환고리들 200
신자유주의적 지구화 200
지구화 211

9장 전 지구적 노동 기계 223
전 지구적 생산 네트워크와 초국적 기업들 223
훈육 무역 229
공간적 대체가능성과 ‘계급 구성’ 240

3부 맥락, 경합, 텍스트 : 담론과 그것의 충돌하는 실천들

10장 맑스, 그리고 우리가 직면한 종획 252
자본은 종획한다 252
맑스와 종획의 지속적인 성격 259
지속성, 사회적 갈등 그리고 대안들 266

11장 한계 없는 종획 271
전선으로서의 종획 271
종획의 유형 274

12장 ‘가치법칙’, 비물질 노동, 그리고 힘의 ‘중심’ 285
전 지구적 시장과 가치 실천들 285
‘가치법칙’이란 무엇인가? 292
‘가치법칙’에 대한 비판적 접근 297
힘의 ‘중심’ 322

13장 자본의 가치화와 측정 328
측정과 피드백 328
상품 가치 333
측정과 투쟁 354

14장 시장 자유와 감옥 : 하이에크와 벤담 360
방향 설정 360
시장질서 364
파놉티시즘 372
시장과 파놉티시즘 : 중첩되는 두 질서들 381

15장 프랙털 파놉티콘과 편재하는 혁명 393
시장질서와 파놉티시즘 393
파놉티시즘을 넘어서 407

4부 ‘물으면서 걷기’ : 탈구의 문제

16장 ‘외부’ 411
역사의 시작 411
‘외부’ 414
종획, 강탈 그리고 외부 419
제국주의로의 아주 짧은 우회 426
디트리터스-코나투스 429

17장 공통장 434
공통장의 생산 434
자유, 공동체 … 437
… 그리고 공통장 443
아나키즘, 코뮤니즘, 사회주의 445

옮긴이 후기 451
참고문헌 461
다른 웹 문헌 478
인명 찾아보기 479
용어 찾아보기 4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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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해리 클리버 지음, 조정환 옮김, 갈무리, 2018)

1979년에 저자는 “『자본』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그 세미나실들 안으로 “『자본』을 정치적으로 읽기”라는 기폭장치를 설치했다. 『자본』 1장을 철저하게 정치적으로 읽음으로써 그는 『자본』이 학자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노동자들을 위해 쓰였으며 우리가 이제 노동자라는 범주를, 주부, 학생, 실업자 그리고 여타의 비임금 노동자들까지 포함할 수 있도록 확장해야 할 필요가 있음을 보여준다. 이 책은 『자본』의 모든 범주들을 자본과 노동이라는 쌍방, 즉 두 계급의 정치적 갈등과 투쟁의 범주로, 이 갈등과 투쟁 속에서 생성되고 소멸하는 역사적 범주로 읽어가는 “정치적으로 읽기”의 방법을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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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빠띠스따』(해리 클리버 지음, 조정환‧서창현 옮김, 갈무리, 1998)

북미자유협정(NAFTA)의 발효에 때맞추어 1994년 1월 1일 멕시코의 치아파스 주에서 봉기하여 1997년 8월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는 사빠띠스따 투쟁의 성격과 의미, 그리고 그것의 영향을 밝힌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흔히 '원주민 게릴라들'이라고만 알려져 있는 사빠띠스따들이 전지구적 자본주의의 지배하에서 자신들의 공동체적 삶의 양식과 세계관을 어떻게 지키고 또 발전시켜 나가는지, 또 그들이 자신들의 투쟁을 전 세계에 유통시키기 위해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사이버스페이스를 어떻게 활용하는지를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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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와 불의 문자들』(조지 카펜치스 지음, 서창현 옮김, 갈무리, 2018)

칼 맑스는 자본주의의 기원에 대해 기술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노동자들을 16세기에 공통의 것이었던 토지, 숲, 물로부터 내쫓기 위해 사용된 ‘피와 불의 문자들’ 속에 있다고 말했다. 카펜치스는 이 책 『피와 불의 문자들』에서, 21세기의 자본주의 연대기에도 마찬가지라고 주장한다. 카펜치스는 전 지구적 자본주의의 사회적 신체를 가로지르며 증식해 온 계급투쟁을 강조하면서 노동/자본 관계 내의 광범한 대립과 적대가 어떻게 노동과정 내부에서 그리고 노동에 맞서서 스스로를 표현하는지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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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번과 마녀』(실비아 페데리치 지음, 황성원, 김민철 옮김, 갈무리, 2011)

자본주의의 역사에 있어서, 남성이 임금 노동자로 탈바꿈된 것 만큼 여성이 가사노동자이자 노동력 재생산기계로 되었다는 점 역시 중요하다는 것을 역설하는 페미니즘 역사서이다. 저자는 자본주의의 물질적 토대를 닦았던 이 폭력적인 시초축적 과정에서 마녀사냥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건이었음을 밝힌다. 이 책에서는 공식적인 역사서나 맑스주의적 관점에서 쓰인 역사책에서도 다뤄지지 않는 산파 여성들·점쟁이 여성들·식민지의 원주민 여성 노예들·여성 마술사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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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자본주의』(조정환 지음, 갈무리, 2011)

'인지자본주의'는 인지노동의 착취를 주요한 특징으로 삼는 자본주의이다. 우리는 이 개념을 통해서 현대자본주의를 다시 사유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노동의 문제설정을 새로운 방식으로 제기할 수 있다. 이 개념을 통해서 우리는, 금융자본이 아니라 인지노동이 현대세계의 거대한 전환과 사회적 삶의 재구성을 가져오는 힘이라는 생각을 표현할 수 있고, 그 노동의 역사적 진화와 혁신의 과정을 중심적 문제로 부각시킬 수 있다.

2019.02.12 |



보도자료


여자떼 공포, 젠더 어펙트

부대낌과 상호작용의 정치



누가, 왜 여성과 소수자를 두려워하며 배제하는가?
어떻게 근대 공론장의 한계를 넘어 부대끼는 몸들의 공통장을 구성해 나갈 것인가?



지은이  권명아  |  정가  24,000원  |  쪽수  464쪽  |  출판일  2019년 2월 11일

판형  사륙판 (130*188)  |  도서 상태  초판  |  출판사  도서출판 갈무리

총서명  아프꼼총서 5  |  ISBN  978-89-6195-198-2 03300   |  CIP제어번호  CIP2019000620

도서분류  1. 페미니즘 2. 여성학 3. 문학 4. 문학비평 5. 사회학 6. 철학 7.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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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공론장의 주체에게 젠더화된 타자들은 ‘벌레, 홍수, 떼거리’로, 위협적이며 제압하고 다스려야만 하는 존재로 인지되었다. ‘벌레, 홍수, 떼거리’라는 표상은 문화와 지역을 막론하고 근대 체제에서 정동의 힘이 ‘이성적 주체’와 ‘다스림의 주체’에게 인지되고 포획되는 방식이었다. 이광수나 염상섭 같은 근대 공론장 주체에게 근대 도시를 무너뜨리며 범람하는 ‘홍수’는 식민지 토목 권력의 힘을 통해서 혹은 문명개화를 통해서 반드시 다스려져야 하는 ‘미개’와 ‘야만’의 상징이었다.

미투 운동의 도래는 이러한 의식주체의 정신혁명과 대결해온 페미니즘 정치사상과 발본적 유물론의 궤적 속에서만 이해가 가능하다. 정신혁명의 상속과 계승이 ‘혁명’의 자리를 독식하는 바로 이 시점에서 봉기한 미투 운동이야말로 지금까지 한 번도 도래하지 않은 신체의 유물론 정치, 그 발본적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여자떼 공포, 젠더 어펙트』 간략한 소개


여자떼 공포, 젠더 어펙트는 정동과 페미니즘, 페미니즘과 젠더 정치의 정동 효과들에 대한 이론적 연구이자, 온 힘을 다해 무언가 ‘다른 삶’을 만들어보기 위해 부대낀 날들의 기록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 페미니즘과 젠더 어펙트에 대한 이론적 탐색과 실천적 개입은 하나의 몸과 다른 하나의 몸이 부대껴 만들어내는 힘·마찰·갈등에서부터, 개별 존재의 몸과 사회, 정치의 몸들이 만나 부대끼는 여러 지점들까지, 그리고 이런 현존하는 갈등 너머를 지향하는 ‘대안 공동체’에서도 발생하는 ‘꼬뮌의 질병’을 관통하면서 진행된다.

여성, 소수자로서의 신체적 경험은 페미니즘 사상이 출발하고 나아간 가장 큰 기반이었다. 정동 이론이 페미니즘과 젠더 이론에서 가장 많은 영향을 받은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정동 이론은 신체에 대한 새로운 유물론이자, 신체들과 신체들의 연결과 부대낌 즉 사회적인 것에 대한 새로운 이론이다. 그리고 신체에 대한 유물론적 사유와 실천에 거의 유일한 지적 원천은 바로 페미니즘과 젠더 이론이다. 또한 젠더 연구는 경험을 신체의 유물론의 차원에서 고찰하는 연구 방법을 축적해왔고, 정동 이론은 젠더 연구의 이러한 경험 연구 역시 이어받고 있다. 정동 연구는 공통적인 것을 둘러싼 긴 투쟁의 산물이다.

이 책은 정동에 대한 논의의 역사를 따라 18세기까지도 올라가지만, 주요 연구 대상은 박근혜 정권이 성립되던 시점에서 시작해서
세월호 사건, 백남기 님 살해 사건, 역사 교과서 국정화, ‘최종적 불가역적인’ 12·28 한일 위안부 합의, 페미니즘 운동의 부상, 문화계와 문단 등 <○○계 성폭력 해시태그 운동>의 부상, 시사인 절독 운동, 메갈리아 파동, 촛불집회, 탄핵, 대통령 선거, 정권 교체, ‘촛불 혁명’ 이후, 그리고 미투 운동을 경유하는 시기의 한국 사회의 여러 사건들을 다루고 있다.



『여자떼 공포, 젠더 어펙트』 상세한 소개


“여자 셋이 모이면 접시가 깨진다”

페미니즘 운동을 통해 “여자 셋이 모이면 접시가 깨진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와 같은 속담이 여성차별적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았다. 그런데 이런
여성차별적인 표현을 뒤집어 보면 단순한 표현 이면에는 ‘여성의 불가해한 힘’에 대한 공포가 자리 잡고 있다. 남자 셋이 모이면 시국과 정치를 논하기는 하지만, 접시를 깰 수는 없다. 시국과 정치에 비해 ‘접시’는 사소한 가정사를 비유하는 것이긴 하지만, 동시에 여자들은 단지 모이는 것만으로도 접시를 깰 수 있고, 울기만 해도 집안을 망하게 한다.

여성은 모이면 힘이 세지고, 그 힘은 ‘파괴적’이다. 인류의 역사를 통해 여성은 모이면 힘이 강해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부단히 모여서 힘을 행사해왔다. 그러나 그 힘은 항상 ‘파괴적’인 것으로 매도되고, 이런 매도와 가치의 전도를 통해 여성의 힘은 평가절하되거나 뿌리 뽑혔다. 이 책은 이렇게 여성의 힘이 ‘파괴적인 것’으로 매도되어온 역사가 현재의 페미니즘 운동에 대한 공격에서 어떤 식으로 나타나는지를 분석한다.

여자떼의 무한한 힘을 재해석하고 새롭게 가치 정립하기

이 책의 목적은 역사적 분석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이 책에서 역사적 분석은 바로
여성의 연결과 연결을 통해 발생하는 힘을 재해석하고 새롭게 가치 정립하기 위한 실천적 시도이기도 하다. 여성이 모이면 힘이 세지고, 그 힘이 무언가를 파괴한다고 인류 역사를 통해 반복해서 인식했다는 말은, 달리 말하면 그만큼 여성에게 잠재된 힘이 무한하다는 뜻이다. 그러나 아무리 무한한 힘을 지니고 있어도, 그 가치가 매도되고 평가절하되는 일이 ‘일상’이 되고 자연스러운 일이 되면, 그 누구도 스스로의 힘을 긍정할 수 없다. 그래서 무엇보다 먼저 바로 여성의 힘을 파괴적인 것으로 매도하고 평가하는 그 가치부여의 체계 그 자체를 전복해야만 한다. 이 책은 여성의 힘을 파괴적으로 매도해온 과정에 대한 역사적 해석을 통해 여성의 힘을 평가하고 가치부여하는 이론적인 전복을 시도하고 이를 통해 소수자 운동의 새로운 가능성을 실천적으로 타진하려는 목표를 갖고 있다.

페미니즘이 다시 부상한 시대라고 하지만,
‘미투운동’은 음모론, ‘꽃뱀론’으로 여전히 매도된다. 기존 권력 구조의 지배적 카리스마를 비판하는 성폭력 고발운동은 ‘진보 진영’을 파괴하려는 음험한 힘으로 모욕당한다. 여성차별적인 담론 구조를 비판하는 목소리는 ‘군중 검열’이나 무지몽매한 ‘메뚜기 떼’가 자행하는 ‘지식 테러’라고까지 공격받는다. 평생 ‘위안부’ 문제를 고발하고 전시성폭력을 비판해온 위안부 피해자들에게도 유사한 공격이 반복된다. 이 책은 현재 진행 중인 페미니즘 운동, 차별 반대 운동과 이에 대한 공격과 매도를 여성의 힘에 대한 공포가 축적된 역사의 지평에서 해석한다.

여성의 잠재적 힘에 대한 공포는 ‘민주주의’의 근원적 딜레마

여성의 힘에 대한 공포는 인류 역사상 반복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에서 마르크스까지 인간이 함께 모여서(사회적) 힘을 만드는(정치적) 존재라는 것은 인간의 존재 이유라고 논의되었다. 그러나 여성은 모이면 ‘파괴적’이 된다.

근대 민주주의 정치사상은 사회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 그리고 민주주의의 의미를 재구성했지만, 오히려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사회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의 사상 그 자체를 통해 여성의 힘에 대한 공포를 합리화했다. 여성이 참정권에 제한을 받고, 여성들의 집합적 행동이 파괴적인 것으로 가치 절하되는 것은 이런 맥락과 관련이 깊다.

근대 체제에 이르러 이런 여성의 잠재적 힘에 대한 공포는 ‘민주주의’의 근원적 딜레마로도 자리 잡는다. 여성이 근대 시민적 이성과 합리성에 미달하는 ‘감정적’ 존재라는 점에서 참정권에 제한을 받았지만 이는 단지 이성과 감성의 대립의 산물만은 아니다. 중세의 ‘마녀사냥’이 여성이 지닌 불가해한 힘과 지식, 열정에 대한 공포의 전형적 산물이고 이를 정당화한 것은 종교와 봉건제였다. 반면
근대 민주주의에서 이 공포는 여성의 힘을 ‘광기’(정신의학), ‘범죄’(법학, 사회학, 범죄학, 행동심리학 등)로 규정하는 근대 지식과 ‘문란’을 외치는 근대적 윤리에 의해 합리화되었다.

성찰적인 공론장 주체 vs. 파괴적인 군중

여성의 힘에 대한 공포는 역사적으로 소수집단의 힘을 억압하는 패러다임으로 확산되었다. 부르주아 남성은 모여서 ‘민주주의’를 만들지만, 하층 남성은 모이면 ‘사회질서를 파괴한다’고 매도되었고, 서구의 백인 주류 집단이 모인 광경은 민주주의의 ‘장관’으로 보이지만, 비서구 비백인 집단이 모인 장면은 ‘난장판’이나 잠재적 테러집단의 떼거리로 공포를 자아내는 우려스러운 문제적 현장이 된다.

근대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공론장은 모여서 힘을 만드는 것이 정당화된 집단에 의해서만 구성 가능한 것이었다. 이성과 성찰의 주체는 모여서 민주주의를 만들지만, 정체를 알 수 없는 떼거리들은 모여서 파괴적인 ‘군중심리’를 형성할 뿐이다. 성찰적인 공론장 주체와 파괴적인 군중이라는 범주의 차별적 구성은 여성, 하층 남성, 비백인 인종 집단 등 소수 집단의 집합적 힘을 가치 절하하고 근절하는 ‘합리적 근거’가 되었다.


오늘날 페미니즘이 ‘공론장’을 파괴하는 폭도나 ‘극단주의’, 잠재적 범죄자라고 공격하는 논리는 그런 점에서 전혀 새롭지 않은 역사의 반복이다.



지은이 소개


권명아 (Kwon Myoung A)

“삶-연구-글쓰기의 인터페이스” 아프꼼의 래인커머(來人comer)이다. 동아대학교 한국어문학과에 재직 중이며 젠더 어펙트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파시즘과 젠더 정치,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한국 근현대사와 문화, 문학을 해석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1990년대 페미니즘 정치를 다룬 『맞장뜨는 여자들』(2001)은 단독자로서의 여성 주체가 부상하는 역사적 순간을 기록한 책이다. 단독자로서 여성 주체가 부상했던 짧은 정치적 순간은 외환위기로 인해 급격하게 진부한 삶의 양태로 회귀했다. 『가족 이야기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2000)는 이 퇴행과 반복의 한국사를 다룬 책이다. 이후 젠더 정치로 본 한국 근현대사 3부작인 『역사적 파시즘 : 제국의 판타지와 젠더정치』(2005), 『식민지 이후를 사유하다』(2009), 『음란과 혁명 : 풍기문란의 계보와 정념의 정치학』(2013)을 냈다. 파시즘과 젠더 정치 연구는 매혹, 열광 등 파시즘과 정념의 특별한 관계를 해명하는 일이기도 했다. 『음란과 혁명 : 풍기문란의 계보와 정념의 정치학』이 『무한히 정치적인 외로움 : 한국 사회의 정동을 묻다』(2012)와 짝을 이루는 연구서인 이유다. 『여자떼 공포, 젠더 어펙트 : 부대낌과 상호작용의 정치』는 이런 필자의 연구 여정의 결과이자, 다른 삶을 향한 발명과 실패의 개인적이고도 집단적인 실험의 결과이다. 『여자떼 공포, 젠더 어펙트』는 헤이트 스피치(혐오발화)와 젠더 정치에 대한 후속작과 나란히 읽혀지면 더 좋겠다.



책 속에서 : 부대낌과 상호작용의 정치


불법촬영은 ‘재미, 장난 또는 정신 차려야 할 일’ 정도로 합리화되고, 성적인 노예화가 사랑 혹은 동의에 의한 성관계로 정당화되기를 반복한다. 마찬가지로 안희정 전 지사에 대한 무죄 판결은 성폭력을 ‘다시 태어나야 할 일’ 정도로 정당화하고, 권력관계의 위력을 통해 노동력을 착취하는 것을 넘어 애정, 헌신, 보살핌, 전심전력의 수발을 노예적으로 강요한 것을 ‘존경’에 의한 행동으로 합리화했다.

― 1부 1장 미투 운동과 페미니즘의 신체 유물론, 27쪽


페미니즘에 대한 분할 통치와 적폐에서 스스로를 면죄하면서, 국가와 자본의 힘에 편승하여 자신을 확대하는 문단 문학 주체는 종말의 역사를 반복하고 있다. 그러나 역설적이지만 문단 문학이 종말을 고하는 시점마다, 문학의 정치성을 새롭게 구축하고 발명한 것은 페미니즘 운동이었다.

― 1부 3장 해시태그의 정동이 재구축한 페미니즘 문학, 85쪽


오늘날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여자떼 공포와 공론장 부재에 대한 위기감은 단지 ‘메갈’이라는 새로운 인종의 탄생에서 비롯된 것도, 그 집단의 실태 조사로 판단될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오히려 최근 페미니즘을 둘러싼 일련의 사태야말로, 여성을 비롯한 소수자의 역능을 문란, 퇴폐, 부적절함, 근본주의적 불순분자로 배제하면서 구축된 근대적 주체성과 공론장의 한계를 되돌아보는 ‘근본적’이고도 발본적인 이론의 재구성을 요청하는 사태이다.

― 2부 1장 여자떼 공포와 다스려질 수 없는 자들의 힘, 157쪽


이른바 혁명의 시대가 종지부를 고하고 ‘욕망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어떤 선언들은 우리가 마치 갈등과 계급투쟁을 넘어서 욕망이라는 새로운 유토피아라도 발견한 것처럼 떠들어댔다. 그러나 욕망의 시대와 함께 도래한 것은 자유도, 유토피아도 아닌, 새로운 빈곤 사회였다.

― 2부 4장 정치경제학 너머의 빈곤, 209쪽


최근 한국 사회에 나타난 성폭력 생존자들의 해시태그 운동도 온라인 담론 공간을 일시적으로 점거하면서, 이를 통해 기존의 물질적인 제도(문학 제도, 문화 제도 등)에 저항하는 오큐파이 운동의 한 사례로 자리매김될 필요가 있다. 또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가 1992년부터 계속 진행하고 있는 수요 집회 역시 점령당한 신체를 애도하는 저항적 오큐파이 운동의 세계적인 사례이다.

― 3부 2장 증강 현실적 신체를 기반으로 한 반기념 정치 구상, 294쪽


이렇게 홀로 여럿인 주체 양태는 응답을 듣지 못한, 아니 응답에 대한 간절함에 하나이자 유일한 자신조차 상실한 결과이기도 하다. 아무도 응답하지 않으니, 스스로 자신의 삶과 폭력의 경험과 그 모든 의미를 찾아내야 하는 상황이 평생 지속된 결과 김복동이라는 한 존재는 묻는 자, 응답을 찾는 자, 자신의 죄를 묻는 자, 살피는 자, 자신을 보살피는 자, 전생의 복동, 이곳저곳의 전장으로 끌려 떠도는 복동, 아이를 꿈꾸던 복동, 전생에 아이를 잃은 복동 … 등으로 여럿으로 나뉘고 자리를 바꾼다.

― 3부 3장 홀로-여럿의 몸을 서로-여럿의 몸이 되도록 하는, 시적인 것의 자리, 301쪽


마음을 놓을 수 있는 마주침에서 촉발되는 안심의 정동이란 비참에서, 불안에서 놓여남을 의미한다. 마음을 놓는다는 것은 이러한 놓여남의 다른 표현이다. 따라서 마음을 놓는 과정, 불안에서 안심으로 이행되는 과정은 수동에서 능동으로 변형되는 과정이며, 낭시의 표현을 빌자면 영혼이 펼쳐지는 과정이기도 하다.

― 4부 1장 마음을 놓다, 352쪽


문제는 임박한 파국, 혹은 정동적 현실이 전송하는 신호들(불안과 위기, 혹은 특정의 정념들/수동들)을 통해 또다시 소유자로서의 주체라는 위치를 다시 공고히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를 통해 공통적인 것을 발명할 수 있는, 다른 신체들을 사유해 나가는 길일 것이다. 그렇게 구축된 신체에 더 이상 ‘인문학’이라는 이름이 걸맞지 않다고 해도 그리 슬퍼할 만한 일은 아닐지 모른다.

― 4부 5장 정동적 전환과 인문의 미래, 421쪽



목차


들어가는 말 6

1부 페미니즘의 신체 유물론과 젠더 어펙트 : 몸들과 카리스마의 재구축 23
1장 미투 운동과 페미니즘의 신체 유물론 24
2장 골품제 사회의 적자 재생산 구조와 권력형 성폭력 61
3장 해시태그의 정동이 재구축한 페미니즘 문학 71
4장 소녀의 죽음과 퀸의 미로 : 박근혜와 여성 카리스마의 교착 86

2부 여자떼 공포와 시민성의 경계 : 어펙트, 민주주의, 젠더 정치 117
1장 여자떼 공포와 다스려질 수 없는 자들의 힘 128
2장 정동의 과잉됨과 시민성의 경계 158
3장 사촌과 아이들, 토대 상부 구조론을 질문하다 189
4장 정치경제학 너머의 빈곤 200
5장 정동 네트워크와 정치, 사랑과 환멸의 ‘대중탕’ 211

3부 서로-여럿의 몸들과 ‘기념’을 넘어선 페미니즘 정치 : 증강 현실적 신체와 부대낌의 복잡성 218
1장 전쟁 상태적 신체와 슬픔의 공동체 237
2장 증강 현실적 신체를 기반으로 한 반기념 정치 구상 270
3장 홀로-여럿의 몸을 서로-여럿의 몸이 되도록 하는, 시적인 것의 자리 297
4장 대중 혐오와 부대낌의 복잡성 304

4부 마음을 놓다 : 함께하기의 막장과 앓는 몸의 정치 317
1장 마음을 놓다 323
2장 현장은 낮은 곳이 아니다 354
3장 이행과 해방의 결속체들 : 대안적 인문학 운동의 곤경과 실험들 377
4장 부대낌과 나아감 : 막장의 실험 397
5장 정동적 전환과 인문의 미래 406
6장 무한한 상호작용, 데모 423

나가는 글 439
후주 443



저자 강연회 : “여자가 모이면, 뭐라도 바꾼다!! ― 여자떼, 여성 집단행동의 역사”


『여자떼 공포, 젠더 어펙트』 출간을 기념하는 저자 강연회를 아래와 같이 개최합니다.

◆ 강연 주제 : 여자가 모이면, 뭐라도 바꾼다!! ― 여자떼, 여성 집단행동의 역사
◆ 강연 : 권명아 (『여자떼 공포, 젠더 어펙트』 지은이, 동아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 일시 : 2019.2.25.(월) 저녁 7시30분
◆ 장소 : 다중지성의 정원 (문의 02-325-2102)
◆ 신청하기 : http://bit.ly/2BzfDY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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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히 정치적인 외로움』(권명아 지음, 갈무리, 2012)

이 책은 1980년대에서 2000년대까지 지난 20여 년간의 변화와 낙차(落差)를 살펴보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저자는 슬픔, 외로움, 사랑, 위기감, 불안 등 정념의 키워드들을 통해 영화, 소설, 드라마 등 다양한 문화들을 넘나들며 조망한다. 더불어서 시대를 초월한 여성 문인들의 삶과 작품들을 새롭게 조명하며 지난 20여 년간 한국 사회에서의 ‘정치적인 것’을 둘러싼 변화를 통합적이며 힘 있게 그려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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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 이론』(멜리사 그레그, 그레고리 J. 시그워스 엮음, 최성희, 김지영, 박혜정 옮김, 갈무리, 2015)

아프 꼼 총서 2권. 정동 연구라는 이제 막 발아하는 분야를 정의하는 시도이자, 이 분야를 집대성하고 그 힘을 다지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저자들은 정동 이론의 주요 이론가들을 망라하고 있다. 정동이란 의식적인 앎의 아래와 곁에 있거나 그것과는 전반적으로 다른 내장[몸]의 힘으로서, 우리를 운동과 사유, 그리고 언제나 변하는 관계의 형태들로 인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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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번과 마녀』(실비아 페데리치 지음, 황성원, 김민철 옮김, 갈무리, 2011)

자본주의의 역사에 있어서, 남성이 임금 노동자로 탈바꿈된 것 만큼 여성이 가사노동자이자 노동력 재생산기계로 되었다는 점 역시 중요하다는 것을 역설하는 페미니즘 역사서이다. 저자는 자본주의의 물질적 토대를 닦았던 이 폭력적인 시초축적 과정에서 마녀사냥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건이었음을 밝힌다. 이 책에서는 공식적인 역사서나 맑스주의적 관점에서 쓰인 역사책에서도 다뤄지지 않는 산파 여성들·점쟁이 여성들·식민지의 원주민 여성 노예들·여성 마술사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2019.01.22 |



보도자료


있지도 않은 자유를 있다고 느끼게 하는 거짓 자유

시민을 위한 정치 입문서



대통령, 국회의원 300명, 판사 3,000명이 국가의 핵심 권력인 행정, 입법, 사법권을 독점한다.
내가 아닌 남이 모든 중요한 것을 대신 결정하는 사회에서 우리는 주인의 자유를 누릴 수 있을까?
우리 시민이 진정 이 사회의 주인으로 자유를 누릴 방법은 무엇일까?



지은이  엄윤진  |  정가  17,000원  |  쪽수  320쪽  |  출판일  2019년 1월 21일

판형  사륙판 (130*188)  |  도서 상태  초판  |  출판사  도서출판 갈무리

ISBN  978-89-6195-197-5 03330   |  CIP제어번호  CIP2019000429

도서분류  1. 인문학 2. 사회학 3. 정치학 4. 문화비평

보도자료  거짓자유-보도자료-fin.hwp 거짓자유-보도자료-fin.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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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로부터 이념과 제도에 의해 제약되어 온 자유를 급진적으로 해방시키는 이 저서는 향후 시민의 지식사회에 파장을 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 사실 개인의 자유야말로 동서양을 넘어 인간행동의 근원적 가치임이 틀림없다. 그것은 지금 지난 세기말 새로운 자유주의라는 오염으로 인해 인간 간 평등이라는 가치가 더욱 훼손됨으로써 크게 도전받고 있다. 그러므로 인간이 점점 소외되어 온 세계로부터 탈피할 수 있도록 시민의 자유를 확대해야 하며, 이와 함께 국가에 대한 새로운 구상과 시민참여를 포함한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

― 김영규, 인하대학교 명예교수, 『시장의 실패 자본의 실패』 지은이


교실 속 정치 교과서에 규정된 문제에서만 답을 선택했던 우리에게, 작가는 ‘여전한’ 귀족정치의 실체와 시스템에 철학적 질문을 하도록 우리를 이끕니다. 또한 그 질문은 오늘날 불통의 대의민주제의 한계를 넘는 즐거운 상상과 확장된 답들을 우리에게 던집니다.

― 이경주, 한겨레TV 김어준의 파파이스 기획·연출



『있지도 않은 자유를 있다고 느끼게 하는 거짓 자유』 간략한 소개


대통령, 국회의원 300명, 판사 3,000명이 국가의 핵심 권력인 행정, 입법, 사법권을 독점한다. 소수 지배 엘리트는 ‘시민의 지배’라는 민주주의의 의미를 아무렇지 않게 무시하고, ‘대의 민주주의’라는 그럴듯한 이름으로 자신들의 지배를 은폐했다. 삼권의 독점은 분명 민주주의가 아니라 지배다. 이들의 뻔뻔한 지배를 감추는 수단이 얼마나 탁월하고 은밀했으면 우리가 이들의 지배를 눈치채지 못했을까? 공동체의 주인인 우리 시민이 헌법과 법률을 스스로 정해야 하며, 법률의 위반 여부까지 스스로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는 자명한 진실을 왜 우리는 그동안 보지 못했을까? 내가 낸 세금의 사용처에 대해 일절 발언권도 없는데 왜 우리는 지금까지 자신을 공동체의 주인이라고 여겼을까? 내가 아닌 남이 모든 중요한 것을 대신 결정하는 사회에서 우리는 주인의 자유를 누릴 수 있을까? 우리 시민이 진정 이 사회의 주인으로 자유를 누릴 방법은 없을까?

이 책은
대의 민주주의와 신자유주의가 지배체제를 떠받치는 핵심적인 두 축임을 1부에서 다룬다. 2부는 이런 소수의 지배를 은폐한 여러 제도의 민낯을 드러낸다. 교육, 사법제도, 자유와 경쟁과 같은 지배 이념이 어떻게 지배를 은폐함과 동시에 민주주의로 둔갑시키는지를 분석한다. 3부는 소수의 지배를 해체하는 방식과 대안을 다룬다. 경제적인 자유와 정치적인 자유를 모든 시민에게 보장하는 개헌의 방향이 3부의 주제이자 이 책의 결론이다.



『있지도 않은 자유를 있다고 느끼게 하는 거짓 자유』 상세한 소개


삼권 분립은 소수 엘리트가 삼권을 독점한 현실을 교묘히 은폐한다.

이 책은 다음과 같은 현실을 직시해보자고 말한다. 전체 한국인 중의 0.0006%에 속하는 300명이 한국 사회의 규칙인 법률을 만든다. 그리고 이 법을 3천 명의 법관만 해석 권한을 가진다. 우리는 없는 돈에 매년 세금을 내는데 대통령과 관료 집단만 이 돈을 어디다 쓸지를 결정한다. 이런 정치 제도를 삼권 분립이라 한다. ‘견제와 균형’이라는 표현으로 학교에서 달달 외웠다. 오천여 명 즉
전체 인구의 대략 0.01% 내외의 사람들이 공동체의 규칙을 정할 권리, 그 규칙의 위반 여부를 해석할 권리, 그리고 공동체 운영을 위해 필요한 세금을 어디에 쓸지를 결정할 권리를 사실상 독점한다.

입법, 사법, 행정권의 독점은 어떤 결과를 낳았는가?

이 책에 따르면, 국회에 탁월한 접근성을 가진
소수 자본 권력이 국회를 접수한 지 오래다. 그래서 중소기업이나 영세 자영업자의 밥줄을 끊지만, 대기업의 배를 불리는 법을 만들어도 주권자인 시민은 이를 제지할 수단이 없다. 자식을 잃은 부모가 단식하며 법을 만들어 달라고 사정해도 무시하면 그만인 사회에 살게 되었다. 다른 한편, 판사라고 하는 사람들은 법을 자의적으로 해석해 노동자의 헌법적 권리를 무시하고, 사장의 손해 배상 청구권을 더 중시해 판결한다. 헌법 정신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뭉개버린다. 최근 전범 기업을 편들어 행정부와 재판 거래를 해온 실체가 드러났는데, 이 책에 따르면 이런 현상도 그동안 권력의 시녀 역할을 충실히 했던 사법부로서는 자연스러운 생존 방식이다. 시민이 이에 분노해 전직 대법원장과 전, 현직 대법관을 구속 수사하자고 하면 법관들은 보란 듯이 구속영장을 기각한다. 법의 해석 권한을 위임받은 법관들이 헌법을 위배해도 시민이 이를 징계하거나 제지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 시민이 정말 이 사회의 주인이 맞긴 하는가?

우리가 세금으로 낸 돈을 4대강 사업이란 이름으로 대기업에 몰아주는 대통령이 있어도, 대통령이 시민의 세금으로 만든 공기업을 소수 대기업에 헐값에 팔아도 그
돈을 낸 시민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냐고 저자는 질문한다. 시민인 우리는 납세의 의무가 있다고 배워 한 해도 빠짐없이 충실히 세금을 낸다. 그런데 이 사회의 주인인 시민은 세금의 사용 결정 과정에 일절 발언권이 없다. 상황이 이러한 데도 우리는 이것이 민주주의라 배웠고 예산 편성과 집행은 행정부의 고유 권한이라고 열심히 외웠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질문한다. 이래도 우리가 이 사회의 주인이 맞는가?

시민들이 이런 삼권분립이 민주주의가 아니라 실상 귀족주의의 돌연변이 형태인 사실을 깨달아 참정권을 요구할 때면, 권력과 자본은 플라톤의 중우정치 운운하며 민주주의는 사실 많은 위험성을 가진다고 시민을 윽박지르곤 한다. 말이 중우정치지 시민 다수가 자신의 운명을 결정하지도 못할 정도로 어리석다는 말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저자에 따르면 권력과 자본은 과학기술 혁신은 무한하다고 하면서 이상하게도 정치제도는 혁신할 수 없는 것처럼
대의 민주제를 유일한 정치제도라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정말 우리 시민은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지 못할 정도로 어리석은 무리인가?

정말 우리는 어리석어서 4년마다 제대로 손 한 번 잡아 보지 못한 남에게 규칙을 정할 권리(입법권)와 내 돈인 세금을 사용할 권리(예산 편성권)를 넘겼을까? 우리 시민은 정말 어리석어 소수의 법관에게만 법률의 해석 권한을 맡겨야 하는가? 저자는 이렇게 질문을 던진 후, 아무리 밟아도 짓눌리지 않는 우리의 자존감은
우리가 어리석다는 말에 절대 동의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이처럼 실제로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먼 삼권분립을 주요한 특징으로 하는 귀족제도를 민주주의라 믿고 그동안 속아온 이유는 무엇일까? 견제와 균형이란 표현 혹은 직접 민주주의는 비효율적이라는 말에 속았을까? 핵심적인 입법, 사법, 예산 편성 권한을 합법적인 선거로 소수에게 다 뺏겨 놓고도, 그 권리의 위임으로 사실상 지배당하고 있는데도 우리 시민이 그동안 스스로 주인이라고 어떻게 믿을 수 있었을까? 정말 우리 시민은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지 못할 정도로 어리석은 무리인가? 이 책의 저자는 그렇지 않다고 주장한다. 이 책은 민주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시민이라면 한 번쯤 물을 수밖에 없는 이 모든 질문에 대한 저자의 고민의 결과를 담고 있다.



장별 내용 소개


1부 지배를 위한 최적의 제도

1장 시민의 입법권 요구를 틀어막는 플라톤의 『국가론』 - 공동체의 구성원인 시민 누구나 그 공동체의 규칙 제정에 참여할 권리가 있단 사실을 반박할 수 있는 논리가 있을까?

2장 시민을 노예와 바보로 만드는 대의 민주주의 - 고대 그리스의 아테네에서 바보(idiots)는 사적인 삶에만 관심 있고 공적인 국가의 일에 무관심한 사람을 일컫는 말이었다. 고대 아테네에서 어떤 계층의 사람들이 이렇게 공적인 영역인 정치에 관심이 없었을까?

3장 보이지 않는 제국주의인 대의 민주주의와 신자유주의 - 위대한 제국이었다고 부르는 것들의 민낯은 살인과 약탈을 통한 부와 권력의 집중이었다. 소수가 다수가 누릴 정치적인 권리를 독점하게 하는 대의 민주제와 시장에서 강자가 정부의 규제 없이 약자를 무참히 짓밟아 부를 독점하게 하는 신자유주의 둘 다 제국주의와 닮지 않았는가?

4장 지배와 불의에 대한 저항의 싹을 자르는 공포 정치 - 소수의 지배에 저항하는 시민의 의지를 공권력(사법기관과 경찰력)을 활용해 겁박하는 지배 행태가 공포정치 혹은 국가 테러다. 공권력을 동원해 공공의 안전과 사회의 질서를 지키겠다는 권력자의 속내는 무엇일까?

2부 지배를 숨기는 제도와 방법

5장 지배에 복종하게 하는 교육제도 - 지배당하는 다수 시민이 지배체제에 스스로 동의하게 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학교나 언론을 통해 시민에게 현 제도를 상세히 설명하고 그것을 외우게 하면 시민의 무의식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까?

6장 지배에 스스로 동의하게 하는 사법제도 - 뒤로는 불평등을 유지하고, 앞에서는 그 불평등의 수호를 질서를 지키는 것으로 위장하는 사법부의 이중성과 모순은 어쩔 수 없는 것일까?

7장 규칙과 법에 복종하게 하는 이념 - 공산주의든 자본주의든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이념이 필요하다. 공산주의 이념은 지난 세기말 종말을 고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자본주의를 지키고 작동하게 하는 이념은 사라졌을까? 아니면 지금도 소리 없이 자본주의를 지키고 있을까?

8장 자유와 해방을 스스로 거부하게 하는 대중문화 - 현 제도가 지배를 위한 것임을 인식하지 못하게 하는 가장 은밀하면서도 확실한 방법은 상식을 시민에게 주입하는 것이다. 지배 이념으로서의 상식의 작동 방식과 이 상식을 대중의 의식에 소리 없이 심는 대중문화의 본성은 무엇일까?

9장 시민이 봐서도, 생각해서도 안 되는 대안 문화 - 다수 시민을 루저로 만드는 획일적 기준을 해체할 대안적 대중문화, 예술은 어떤 의미를 담아야 할까?

10장 있지도 않은 자유를 있다고 느끼게 하는 거짓 자유 - 그동안 아무 의심 없이 시민이 소중히 여기며 외쳤던 자유는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이었나? 헌법이 보장한 주거, 교육, 예술 등의 이름뿐인 자유를 진정으로 보장하게 하는 자유는 무엇일까?

3부 지배체제를 해체할 제안과 개헌

11장 예수와 맑스가 전하는 시민의 저항 방식 - 다수 시민의 경쟁 상대는 소수 지배 계급이다. 예수와 맑스는 경쟁에 몰두하다 지친 우리에게 어떤 말을 할까?

12장 존 듀이가 전하는 시민의 교육철학 - 지배와 갑질에 시민이 저항하게 하고, 지식과 정보의 홍수 속에서 그 지식과 정보의 가치를 제대로 판단케 하는 교육 철학은 어떠해야 할까?

13장 불안을 잠재우는 유럽의 다양한 복지 제도 - 사립 중학교 입시를 준비하는 초등생부터 노후의 절대적 빈곤을 두려워하는 중년의 남성을 포함해 헬조선에 사는 모든 연령대의 사람들을 불안이 움켜쥐고 있다. 이런 불안을 사라지게 할 복지제도는 정말 공짜인가? 시민은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세금으로 공동구매해 저렴하게 이용한다. 그렇다면 왜 대학교육, 의료 서비스, 아파트는 공동구매할 수 없을까?

14장 4차 산업 혁명과 복지국가에 대한 모순된 전망 - 전문가 집단은 과학 기술의 혁신으로 인간은 화성에 거주할 수 있고, 심지어 영생할 수도 있다고 한다. 그런데 정치 분야 전문가들은 왜 정치 제도의 혁신은 일어날 수 없다고 말할까?

15장 기본 소득과 경제적 자유 - 인공지능, 나노공학, 양자 컴퓨터의 융합으로 일어나고 있는 4차 산업 혁명은 분명 만드는 일자리보다 없애는 일자리가 많을 것이다. 일이 없는 시대에 우리는 무엇으로 먹고살아야 할까?

16장 개헌과 정치적인 자유 - 소수 엘리트가 독점한 행정, 입법, 사법부의 권력을 시민이 견제할 방법이 있을까? 소수가 독점한 권력을 시민과 공정하게 나누는 방법은 과연 없을까?



지은이 소개


엄윤진 (Eom Yun-Jin)

감리교신학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하고 독일 본 대학에서 ‘예수 운동’에 대한 논문으로 종교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귀국 후 2013년부터 2019년 1월 현재까지 인문 학원 <생각공장>을 개원해 운영하고 있다. 옥스퍼드 대학 출판부에서 발간하는 ‘매우 간략한 개론 시리즈’(Very Short Introduction Series)를 주요 텍스트로 인문과학 분야뿐만 아니라, 사회, 자연, 응용과학의 최신 연구 결과들을 초중고생과 일반인에게 강의하고 있다. 사회적 약자인 비정규직 노동자와 우리 사회의 소수자인 성 소수자, 종교적 소수자, 인종적 소수자가 처한 현실에 대한 분석과 대안에 관한 연구를 계획 중이다.



책 속에서 : 거짓자유를 고발한다!


신자유주의는 전 세계적인 경제적 번영이라는 약속을 이룬다. 이 경제적 번영은 99%와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1%인 초고액 자산가만의 경제적인 번영이었다. 그들의 선전과는 다르게 선진국과 후진국 모두에게 엄청난 소득 불평등을 ‘선물’했다.

― 3장 보이지 않는 제국주의인 대의 민주주의와 신자유주의, 60쪽


대통령과 국회의원에게 몰아줬던 권력을 시민과 공정하고 정의롭게 나누는 방향으로 헌법을 개정해야 한다. 적어도 독점한 권력을 시민이 견제할 수 있게 하는 제도적 수단을 개헌안에 포함해야 한다.

― 6장 지배에 스스로 동의하게 하는 사법제도, 121쪽


드라마는 성공한 소수를 항상 승자로 묘사하고, 나머지 다수는 자신을 패자로 느끼게 한다. 이런 드라마는 인간의 존엄 자체를 짓밟는 폭력 그 자체다. 그래서 나는 드라마의 미학을 ‘폭력의 미학’이라고 부른다.

― 9장 시민이 봐서도, 생각해서도 안 되는 대안 문화, 182쪽


초등학교, 중학교 교육과 현재의 의료보험과 같은 것을 세금으로 공동 구매했기 때문에, 우리가 이런 서비스를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었던 거다. 그러면 고등학교와 대학 등록금, 암과 같은 중증 질환 치료비, 실업급여, 출산 지원(산후조리원 등), 아파트, 노후 연금도 훨씬 싸게 공동 구매해 달라고 정부에 요구해야 하지 않을까?

― 13장 불안을 잠재우는 유럽의 다양한 복지 제도, 247쪽


대한민국 대법원에 서 있는 정의의 여신은 안대를 쓰지 않는다. 대놓고 피고와 원고 뒤에 누가 서 있는지를 보겠다는 거다. 힘센 쪽에 유리한 판결을 내리겠다고 공공연하게 과시한다. 문제는 사법부가 이렇게 안하무인이어도 우리에겐 징계할 수단이 없다는 데 있다.

― 16장 개헌과 정치적인 자유, 300쪽



목차


서문 : 자신의 삶과 사회에서 진정한 주인으로 살아가길 원하는 시민에게 4

1부 지배를 위한 최적의 제도
1장 시민의 입법권 요구를 틀어막는 플라톤의 『국가론』 13
2장 시민을 노예와 바보로 만드는 대의 민주주의 31
3장 보이지 않는 제국주의인 대의 민주주의와 신자유주의 48
4장 지배와 불의에 대한 저항의 싹을 자르는 공포 정치 69

2부 지배를 숨기는 제도와 방법
5장 지배에 복종하게 하는 교육제도 87
6장 지배에 스스로 동의하게 하는 사법제도 113
7장 규칙과 법에 복종하게 하는 이념 129
8장 자유와 해방을 스스로 거부하게 하는 대중문화 146
9장 시민이 봐서도, 생각해서도 안 되는 대안 문화 170
10장 있지도 않은 자유를 있다고 느끼게 하는 거짓 자유 187

3부 지배체제를 해체할 제안과 개헌
11장 예수와 맑스가 전하는 시민의 저항 방식 209
12장 존 듀이가 전하는 시민의 교육철학 224
13장 불안을 잠재우는 유럽의 다양한 복지 제도 237
14장 4차 산업 혁명과 복지국가에 대한 모순된 전망 249
15장 기본 소득과 경제적 자유 268
16장 개헌과 정치적인 자유 284

후기 : 『있지도 않은 자유를 있다고 느끼게 하는 거짓 자유』를 마치며 309

후주 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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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민주주의』(조정환 지음, 갈무리, 2017)

군주제적 대의민주주의에서 대의 정치가들이 전유하고 향유해온 정치지대는 다중의 보편적 기본소득으로 재전유되고 사회화되어야 할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절대민주주의는 대의민주주의를 민주화하고, 직접민주주의를 민주화하며, 집회민주주의와 일상민주주의를 민주화하는 힘으로 기능할 것이다. 모든 사람의 절대적 구성역량과 헌법의지에 의한 모든 민주주의의 민주화, 이것이 촛불다중혁명이 가리키는 이정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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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해리 클리버 지음, 조정환 옮김, 갈무리, 2019)

맑스는 철학이나 정치경제학을 역사적 지배 이데올로기로 보면서 『자본』을 ‘철학 비판’을 잇는 ‘정치경제학 비판’으로 저술했다. 제2인터내셔널 이후의 맑스레닌주의와 알튀세르주의 전통은 『자본』을 다시 ‘정치경제학’이나 ‘철학’의 하나로, 즉 하나의 분과학문으로 거꾸로 읽어 왔다. 이 책은 『자본』의 모든 범주들을 자본과 노동이라는 쌍방, 즉 두 계급의 정치적 갈등과 투쟁의 범주로, 이 갈등과 투쟁 속에서 생성되고 소멸하는 역사적 범주로 읽어가는 ‘정치적으로 읽기’의 방법을 제안한다.

2019.01.02 |



보도자료


깊이 읽는 베르그송

Henri Bergson



이제는 고전이 된 프랑스 철학자 블라디미르 장켈레비치의 대표작!
이 책은 질 들뢰즈의 『베르그송주의』와 더불어 베르그송에 대한 가장 위대한 두 권의 저작 중 하나이다.
장켈레비치는 1923년에 베르그송을 만난 뒤 이 책을 쓰기 시작했고 1930년에 출판했다.
이 책은 ‘회고성의 착각’의 중요성을 제시하고 ‘전미래’의 가능성에 대해 말하며
무(無)의 비판의 중심적인 특성을 알린다.



지은이  블라디미르 장켈레비치  |  옮긴이  류종렬  |  정가  21,000원

쪽수  400쪽  |  출판일  2018년 12월 28일  |  판형  신국판 무선 (152*225)

도서 상태  초판  |  출판사  도서출판 갈무리  |  총서명  Mens, 카이로스총서 54

ISBN  978-89-6195-193-7 93160   |  CIP제어번호  CIP2018041346

도서분류  1. 철학 2. 서양철학 3.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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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그송주의 전체는, 새롭게 반짝이는 서광 아래서, 그 철학자의 계속된 저술들 속에서, 그리고 마치 플로티노스의 유출설에서 위격들(위상들)이 각 위격을 그리는 것처럼 그려진 것이다. 게다가 똑같은 방식으로 라이프니츠가 자신의 저술들 각각에서 자신의 총체적 철학을 제시했었다 : 모나드들은 각각이 각각의 개별적 관점에서 전 우주를 표현하지 않는가? 전 우주는 단자론의 물방울 속에서도 스스로를 비추지 않는가? 왜냐하면 소우주는 우주의 작은 모형이기 때문이다. 생성 안에 있는 또 다른 철학자인 셸링이 쓰기를 “내가 고려하는 것은 항상 총체성이다.” ― 본문 중에서



『깊이 읽는 베르그송』 간략한 소개


프랑스 철학자 블라디미르 장켈레비치의 대표작. 이 책은 질 들뢰즈의 『베르그송주의』와 더불어 앙리 베르그송에 대해 쓰여진 가장 위대한 두 권의 저작 중 하나라고 평가받는다. 장켈레비치는 1923년에 베르그송을 만난 뒤 이 책을 쓰기 시작했고 1930년에 출판했다. 이 책은 ‘회고성의 착각’의 중요성을 제시하고 ‘전미래’의 가능성에 대해 말하며 무(無)의 비판의 중심적인 특성을 알린다. 베르그송주의는 탐구의 이론들이 탐구 자체와 뒤섞여 있는 매우 드문 철학들 중의 한 철학이다. 지속의 경험은 그것의 진실하고 내재적인 스타일을 규정한다. 그 경험 속에서 우리는 ‘무한히 단순한’ 이미지를 재발견하는데 그 이미지는 진실로 베르그송 명상의 생생한 근원이다.

다발 진화와 직선 진화 사이에 중요한 차이, 그것은 전자 속에는 새로움과 내재성을 동시에 설명하는 무엇인가가 있다는 것이며, 반면에 후자는 목적론적 또는 기계론적 독단주의의 도식들 속에 기입되어 있고, 심지어는 그 계기들의 상호 침투과정을 통하여 잃어버린 예측불가능성을 되찾지도 못한다는 것이다.
생성의 철학은 진실로 서로 조화된 모순들의 만남이다. 마치 이타성이 거기서 이 내용과 더불어 서로 조화를 이루듯이, 새로움은 내재성과 더불어 서로 조화를 이룬다.

베르그송에게 자주 행해졌던 이원론이라는 어리석은 비난에 대해 어느 때보다 더 분명한 대답이 있다. 지성과 신비적 직관을 부여한 것도 동일한 생명이다. 마찬가지로 동일한 도약이 있는데, 그 도약은 자기로 향하면서, 순환적 사회들을 내려놓고, 그리고 공간에 매료된 원을 중단시키고, 영웅주의를 낳는다. 두 가지 실체는 없다. 유일한 생명이 있을 뿐이다. 생명은 운동이며 경향성인데, 앞면에서 또는 뒷면에서 시작한다.



『깊이 읽는 베르그송』 상세한 소개


:: 앙리 베르그송(Henri-Louis Bergson, 1859~1941)은 누구인가?

1859년 10월 18일 파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폴란드계 유대인으로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였고, 어머니는 영국인으로 종교적 신심이 두터운 분이었다. 베르그송은 어려서부터 모든 과목에 뛰어난 성적을 보이며 각종 상을 휩쓸다시피 했고, 특히 고교 수학 경시대회에서 1등을 한 그의 문제 풀이는 이듬해 수학 잡지에 실리기도 했다. 프랑스 엘리트들의 집합소인 파리 고등사범학교(ENS)에 입학해서는 프랑스 정신주의, 스펜서의 진화론 철학, 과학철학 등에 관심을 갖고 몰두했다. 22세에 교수 자격시험에 합격하고, 30세에 파리 소르본 대학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앙제, 클레르몽페랑, 앙리 4세 고등학교 교수를 거쳐, 콜레주 드 프랑스의 철학 교수, 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 국제연맹 국제협력위원회(유네스코 전신) 의장을 역임하고, 최고의 레지옹 도뇌르 명예 훈장과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였다. 1941년 2차 세계대전 중 폐렴으로 사망하였다. 그가 생전에 출간한 저서로는 우선, 그의 박사학위 논문이자 그의 철학의 요체인 지속 이론을 정초한 『의식에 직접 주어진 것에 관한 시론』(1889), 기억의 지속을 통해 물질과 정신의 관계를 규명한 『물질과 기억』(1896), 생명의 약동에 의한 창조적 생성의 우주를 그려 보인 『창조적 진화』(1907), 인류의 미래에 대한 준엄한 통찰과 열린 사회로의 도약 가능성을 역설한 『도덕과 종교의 두 원천』(1932) 등 그의 핵심 사상을 보여주는 4대 주저가 있다.

블라디미르 장켈레비치와 앙리 베르그송

장켈레비치의 첫째 저술인 이 책은 그가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하던 시절에 썼다. 그리고 이 책이 발간된 때는 베르그송의 『도덕과 종교의 두 원천』(1932)과 『사유와 운동자』(1934)가 나오기 전이었다. 또한 장켈레비치는 베르그송의 강의를 직접 들은 것이 아니라, 베르그송이 강의에서 손 떼고 난 뒤(1921), 국제지식인 협력위원회에서 활동을 시작한 시기에 베르그송을 만났다(1922).
장켈레비치는 러시아계 유대인 가계에서 태어나, 1922년 파리고등사범학교에 입학하여 철학을 공부하였고, 1922년 학계를 은퇴한 베르그송을 1923년에 만나 죽 편지 교환을 했다. 그는 1926년에 철학 교수자격 시험을 1등으로 통과한 수재였다. 1932년 박사학위 논문을 셸링에 관하여 썼다. 파리고등사범학교에 갓 입학한 젊은 철학도(스무 살)가 예순셋의 노숙한 베르그송을 만나고 편지 교환도 할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을 것이다. 스물여덟에 장켈레비치는 첫 저술로서 베르그송 사상을 옹호하는 글을 낸 것이다. 그는 우선 베르그송 사유에서 총체성, 자유, 기억, 생명에 주목하면서, 주로 수학과 논리 그리고 천문학과 물리학의 공간을 통한 인식은 베르그송의 시간(지속)과는 전혀 다른 차원이라는 것을 밝히고 있다.

베르그송의 철학을 음악의 선율처럼 이해해 보라

『깊이 읽는 베르그송』은 러시아계 출신으로 프랑스 철학자인 장켈레비치가 썼다. 그는
베르그송의 사상의 주요 주제를 ― 긴 연결에서 매듭을 설정하듯이 ― 뽑아내어서, 그 매듭을 중심으로 동심원의 파동을 그리듯이 넓게 확장하며, 음악, 문학, 수학, 과학을 넘나들며 설명하고, 게다가 러시아 문화에서 중요한 개념들을 가져다가 사용하기도 한다. 베르그송의 사상의 다양한 측면을 부각하였는데, 그는 베르그송의 어휘를 다른 표현 문구로 바꾸기를 서슴지 않고 있다. 그런데 베르그송의 사상이 이원론이라기보다 이중성의 강조에 있었듯이, 저자는 개념들이 서로 대립되는 측면보다 하나가 다른 하나를 표출하는 방식에 더 주목한 것 같다. 이는 상층과 심층의 대립이 아니라, 심층에서 상층으로 풀려나가는 방식이며, 이런 점에서 그도 베르그송도 유대인의 동적(動的) 사유의 길을 따라간 것으로 읽힌다.

풀려가는 선들 속에서 또는 그물망 속에서 전체와 부분은 따로 떨어져 있지 않아서, 서로 연결하여 읽기에 ― 마치
음악에서 음표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한 음악의 선율을 총체적으로 이해하듯이 ― 주의하라고 한다. 그래서 그의 설명과 해설들은 베르그송의 주요 주제가 속한 저술에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베르그송 사유 전반에서 이리저리 연결하여 설명하고 주를 달았다. 게다가 저자 본인도 자신의 사유에 맞게 여러 어휘를 자유롭게 선택하여 사용하였다. 이러한 점들은 이방인으로서 읽기에 불편함이 있지만, 저자 본인으로서는 자기 조국(러시아)과 민족(유대인)의 애정이 끈끈히 묻어나 있다. 한 가지 덧붙여야 할 것은 아셰키나제 유대인이 초월적 대상에 대한 사고에 더 많이 관여한다면, 세파라드 유대인은 연대와 확장에 더 관심을 표현하는데, 베르그송이 아셰키나제 가계이지만 파리 태생으로 세파라드 유대인이듯이, 저자는 아셰키나제 출신으로 활동을 세파라드 유대인으로 하였다는 점에서 동류의식이 있다는 것이다.

분할, 분리, 절단이 아닌 측면에서 사유한다는 것

베르그송의 사유의 기본은 지속이다. 그것은 표면의 현상이나 초월의 절대성과 연관이 없다. 그것은 어쩌면 자연이 오랫동안 거쳐 온 과정에 대해 그리고 인류가 생각을 확장하면서 연속성을 유지하는 것에 관한 것이다. 분할, 분리, 절단이 아닌 측면에서 사유한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그리고 베르그송의 이런 사유에는 문제제기의 올바름이 필요하고, 그리고 실증적 경험을 통한 정확성이 철학에도 요구된다고 한다.

주지주의적 사고와 유일 신앙의 창조적 관점에는 회고적 시각이 있어서 그 자신들에 맞는 것들만을 관념적으로 또는 논리적 귀결로서 정합적인 것들만을 논리실증으로 받아들인다. 이에 비해 베르그송은 자연의 긴 역사, 생명의 긴 역사에서 생성과 과정, 발전, 특히 진화라는 측면에서 실증적으로 정확히 규명해 보자고 한다. 이때 베르그송은 많은 문제들이 문제제기만 잘해도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고, 그리고 올바른 문제제기는 문제-해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문제의 해소에 이르는 것이라는 점을 생각하고 있었다.

“우주는 신들을 만드는 기계다”

기존의 서양 철학사가 주지주의, 초월주의, 절대주의를 중요시하는 사고라면, 베르그송은 역동론과 작동(l’acte)을 강조한다. 자연이 전자의 사고에서는 수동성인 데 비해, 후자의 사유에서는 능동성과 자율성을 지닌다. 인간은 자연(la nature)이라는 자신의 본성(sa nature)을, 지구의 자연 역사 45억 년과 생명 진화 역사 35억 년의 불가분의 과정에서 안으로(내재성으로)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장켈레비치는 ‘내재성’이라는 용어를 쓰지 않았으며, “안에서부터(dedans)” 철학을 하자고 한다. 그리고 그 연속이 잘리지 않고, 지속하고 있는 철학을 하자고 한다. 그의 연속의 철학은 그의 소크라테스에 대한 관점이나, 플로티노스에 대한 강의록에서 드러난다. 베르그송에 관한 역자 류종렬의 3부작 중 첫째 번역 『처음 읽는 베르그송』(바르텔미-마돌)이 플라톤주의에서 본 베르그송이라면, 둘째 번역 『깊이 읽는 베르그송』(장켈레비치)은 플로티노스와 연관을 잘 보여 준다. 셋째 책(이후 출간될 류종렬의 저서 『달리 읽는 베르그송』)에서는, ― 스피노자의 견해가 자연 즉 신이라는 관점에서 자연이 수학적으로 접혀 있는 것을 풀어보려고(ex-pliquer) 했듯이 ― 베르그송은 생물학과 심리(영혼)학, 즉 생리심리학을 통해서 자연 즉 신에서부터 생명을 풀어내는 과정(생성)을 설명하려 했다고 본다. 따라서 베르그송은 자신의 마지막 저술 『도덕과 종교의 두 원천』의 마지막 구절에서 “우주는 신들을 만드는 기계”라고 한다. 요컨대, 자연은 신적인 인간들(생명체)을 만드는 도구이며 기계라고 할 수 있다.



지은이·옮긴이 소개


지은이

블라디미르 장켈레비치 (Vladimir Jankelevitch, 1903~1985)

프랑스 철학자, 음악학자로, 1903년 프랑스 부르주에서 태어났다. 그의 가족은 러시아계 유대인으로 박해를 피해서 프랑스로 왔다. 1922년에 파리고등사범학교(ENS)에서 철학을 공부했으며, 그의 스승은 브랑슈비끄(Léon Brunschvicg)다. 1923년에 베르그송을 만나서 편지 교환을 시작하였다. 1926년 교수자격 시험을 1등으로 통과, 다음 해부터 1932년까지 프라하 프랑스연구소에서 강의하며 셸링에 관한 학위 논문 『셸링의 만년의 철학에서 의식의 오디세우스』(L’Odyssée de la conscience dans la dernière philosophie de Schelling, 1933)를 작성했다. 1936년 툴루즈 대학을 거쳐 릴 대학 도덕철학 교수로 강의하였다. 독일 점령하에 비시 정권에서 유대인이란 이유로 파면당했다. 그 후 군에 입대했으나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툴루즈에서 가명으로 학생들을 가르치며 레지스탕스에 가담했다. 전후에 릴 대학을 거쳐 1951년에서 1979년까지 소르본에서 도덕철학 교수를 지냈다. 1968년 5월 소르본에서 그는 학생들의 편을 들었다. 많은 저술 가운데, 철학 저술로는 『제1철학 : ‘거의’의 철학 입문』 등이, 음악 저술로는 『음악과 말할 수 없는 것』 등이 있다. 우리말로는 『죽음에 대하여』가 번역되어 있다. 그가 영향을 받은 인물로는 베르그송(H. Bergson), 짐멜(G. Simmel), 체스토프(Léon Chestov), 셸링(Schelling), 플로티노스(Plotin)이며 그가 영향을 준 인물로 제르파뇽(Lucien Jerphagnon), 퐁뜨네(Élisabeth de Fontenay) 등이 있다.


옮긴이

류종렬 (柳鍾烈, 1953~ )

안동 출생. 여러 대학에서 철학 강의를 하였다. 베르그송 사상에서 생명을, 즉 ‘불’의 내재성과 들뢰즈의 다양체를 탐구해 왔고, 이 양자를 연결하고자 한다. 학위 논문은 「베르그송 철학에서 인간본성에 관한 연구」이다. 번역으로 『프랑스 철학사』(공역), 『르네의 일기』, 『스피노자』, 『파스칼』(공역), 『처음 읽는 베르그송』 등이 있다. 논문으로「베르그송의 자유, 그리고 들뢰즈의 반복」, 「자아의 근원과 정체성에 관한 고찰」, 「새로운 인간관의 탄생」 등이 있다. 역자의 블로그 : 마실에서 천사흘밤 cafe.daum.net/milletune



책 속에서 : 베르그송 깊이 읽기


베르그송 사유에서 스피노자주의는 실체적으로든 의식적으로든 사물들에 관한 성찰과 구별되는 방법이 아니라, 그 방법은 오히려 성찰에 내재해 있다. 그 방법은 어느 정도로는 성찰에 대한 일반적 진행방식을 묘사하고 있다. 베르그송은 많은 검토를 거쳐서 이데올로기적인 환영들(유령들)의 무상함에 관해 이전부터 강조했다.

― 제1장 유기적 총체성, 14쪽


자유 행위는, 한 인간이 저자인 모든 저작품들 중에서 그에게 가장 본질적으로 속하는 하나의 저작품이다. 그는 예술가가 자기 예술품에서 인정하는 것보다 더 잘 스스로를 그 저작품 안에서 인정하고 있고, 아버지가 자기 자식을 인정하는 것보다 더 잘 스스로를 인정하는 것이다. 그것은 보다 깊은 부성父性 이며, 능력 있고 내밀한 공감이다. 자유는 총체적 과거로부터 자유로워진다.

― 제2장 자유, 108쪽


정신은 자연의 찬양할 만한 변이성에게 자신이 밀어냈던 간략한 노래 부르기를 강요하지 않는다. 정신은 자기 자신으로부터 나오면서 자기의 고유한 이미지와는 다른 사물을 만나기를 원했으리라.

― 제3장 영혼과 신체, 175쪽


본능은 생명 자체이다. 따라서 본능은 자신의 고유한 영역에서 절대적 인식이며 신지학적 방식이다. 생물학자들은 사실상 어떤 쇼펜하우어와 어떤 드리쉬의 형이상학 안에 포함된 본능의 신비에 반대하여 작동하는 경향성을 갖는다.

― 제4장 생명, 204쪽


가차 없이 냉혹한 명철함으로, 베르그송은 합금들을 적발해 내고, 또는 그가 말한 대로, 반대되는 실재성들 사이에서 서로 작동되는 교환들을 알아챈다. 그러나 베르그송주의의 고유함은 합금은 합금이라는, 구체적인 것은 또한 불순한 것이라는 관점을 결코 잃지 않는다는 것이다.

― 제5장 영웅주의와 성스러움, 261쪽


그러나 특이한 숙명은, 자기의 크기가 긍정되는 작동 자체 안에서 정신이 자기의 고유한 소멸에 휴식 없이, 작업하기를 원한다. 진화는 이런 비극을 요약한다 : 즉 생명은 온전하게 되기 위하여 가능적인 것으로 나와야 한다. 왜냐하면 실재적인 것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 제6장 개념들의 무와 정신의 충만, 300쪽


따라서 논리적 계열은 살아왔던 질서가 끝나는 곳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하나의 시작(l'alpha)은 다른 하나의 끝(l'oméga)에 걸려 있다. 논리학은 생명의 되돌릴 수 없는 질서를 반대 방향으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제작과정의 중첩할 수 있는 도식을 자기 위에 다시 포개지도록 전력을 기울인다. 그러나 논리학은 셀 수 없을 정도의 양을 나열하기에도, 소진할 수 없는 양을 소진하는데도, 또 차후에 지속의 무한소의 운동들을 재구성하는 데도, 이르지 못한다.

― 제7장 단순성, 그리고 환희에 대하여, 305쪽


시간론적, 연속론적, 내재론적, 그리고 특히 다원론적 학설은 히브리의 유일신론과 공통점들이 없는가? 베르그송주의와 유대주의 사이에 근본적인 차이들 중에서 몇 가지 차이들은 시간에 관한 것이고, 다른 몇 가지 차이들은 종말론과 초월론에 관한 것이다. 베르그송주의는 근원적으로 윤리적 소명의 철학이 아니었다.

― 부록 1 : 베르그송과 유대주의, 349쪽


유기체주의들에 대해 말하자면, 우리는 이렇게 말하자 : 총체성들만이 있다. [현재로] 있는 모든 것은 꽉 차 있으며, 완전하게 생명적이고 전체적이며, 자기에게 자족한다. 그럼에도 그 충만은 항상 동등하게 꽉 차 있는 것 같지도 않고, 경박하고 나쁜 또 보잘것없는 피상적인 인간은 항구적으로 총체화되는 것 같지도 않다. 영혼 전체가 각각의 동기에서 모여질 때, 우리가 다시 반투명하게 되는 것은? 자유로운 작동에서이다.

― 부록 2 : 영혼 전체와 더불어, 372쪽



목차


서문 8

제1장 유기적 총체성 13
제1절 전체와 요소들 15
제2절 회고적 시각과 전미래의 신기루 25

제2장 자유 43
제1절 활동가와 구경꾼 45
제2절 생성 55
제3절 자유로운 현실태[자유 작동] 83

제3장 영혼과 신체 110
제1절 사유와 두뇌 111
제2절 추억과 지각 132
제3절 예지작업 147
제4절 기억과 물질 156

제4장 생명 177
제1절 목적성 178
제2절 본능과 지성 193
제3절 물질과 생명 220

제5장 영웅주의와 성스러움 241
제1절 갑작스러움 244
제2절 닫힘[폐쇄]와 열림[개방] 249
제3절 베르그송의 극단론 254

제6장 개념들의 무와 정신의 충만 265
제1절 제작작업과 유기체작업 : 데미우르고스의 예단[선입견] 266
제2절 가능적인 것에 대하여 285

제7장 단순성, 그리고 환희에 대하여 302
제1절 단순성에 대하여 303
제2절 베르그송의 낙관주의 322

부록 334
부록 1 : 베르그송과 유대주의 335
부록 2 : 영혼 전체와 더불어 372

참고문헌 386
옮긴이 후기 388
인명 찾아보기 393



출간 기념 역자 특강 안내


깊이 읽는 베르그송 출간을 기념하는 역자 특강을 아래와 같이 개최합니다.

◆ 깊이 읽는 베르그송 출간 기념 역자 특강
강연 주제 : 앙리 베르그송과 유대주의
강연 : 류종렬 (옮긴이)
일시 : 2019.2.17.(일) 오후 2시
장소 : 다중지성의 정원 (문의 02-325-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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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그손, 생성으로 생명을 사유하기』(황수영 지음, 갈무리, 2014)

현대 프랑스 철학의 역동성을 보여주는 한 사유의 흐름을 밝은 빛 아래서 조명하는 책이다. 그것은 단순히 각 철학자들에 대한 이론을 소개하는 차원을 넘어서 이들을 서로 대면시키고 그들이 전력을 다해 씨름한 문제들을 공통의 시험대에 올려놓는다. 독자는 이 책에서 베르그손이 20세기 초반 프랑스 철학에 던져 놓은 씨앗이 흩어져 결실을 맺는 과정 혹은 이 결실을 통해 새로운 씨앗이 던져지는 과정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들의 사유가 베르그손에게서 나온 가지들을 매개로 서로 접속하는 과정을 따라가 보는 흥미를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2018.12.06 |


보도자료

객토문학 동인 제14집

『봄이 온다』



지은이  객토문학 동인  |  정가  8,000원  |  쪽수  128쪽

출판일  2018년 11월 28일  |  판형  사륙판 (130×188)

도서 상태  초판 / 무선철  |  출판사  도서출판 갈무리  |  도서분류  마이노리티시선 50

ISBN  978-89-6195-189-0 04810

보도자료 봄이온다-보도자료.hwp 봄이온다-보도자료.pdf


인터넷서점 바로 가기 : 알라딘 교보문고 예스24 인터파크 반디앤루니스 영풍문고



이유도 모른 채 / 죽음의 바다로 끌려간 / 괭이 바다 양민학살사건 / 그 67년의 넋을 기리는데
연극을 잘한다는 것인지 / 아픔을 잘 나타낸다는 것인지 / 지난 세월의 상처와 아픔 / 묻히고 잊히고 사라져가는 / 오늘
그 관객의 “잘한다”는 / 어떤 울림으로 남을까 / 그 어떤 기억으로 남아야 할까

― 이상호, 「잘한다 ― 괭이 바다 연극제에서」 중에서



『봄이 온다』 출간의 의미

 

오십 번째 마이노리티 시선으로 <객토문학> 동인 14집 『봄이 온다』가 출간되었다. 이번 동인지에서는 동인들이 마음을 모아 첫발을 내디딘 후 문학을 통해 실천하고자 했던 일들에 대해 돌아보고 있다. 작은 것에서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심정으로 동인들이 서 있는 지역의 불행하고 아픈 역사의 현장을 직접 탐방하고 그 결과를 시로 만들어 함께 낭송하고 그 의미를 되새겨보고 있다.

‘김주열과 3.15, 그리고 4.19’라는 제목으로 김주열 열사 시신 인양지에서 진행된 제1차 객토문학 스토리텔링에서는 3.15와 4.19라는 역사의 수레바퀴에서 ‘김주열’이 갖는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노민영 시인은 “살벌한 겨울을 물리고/피 끓는 봄이 솟구치는/출렁이는 마산의 거리”는 “3.15가 데리고 온 그 봄”이라고 노래하였다.

나아가 동인들은 한국전쟁과 민간인 학살 문제를 다루기 위해 ‘전쟁과 평화, 인간의 두 얼굴’이라는 제목으로 마산합포구 진전면 곡안리에서 미군에 의해 자행된 민간인 학살사건을 되짚어보았다. 그러면서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에 부닥친 인간의 참모습을 짚어보고, 인간이 전쟁을 핑계로 저질러 놓은 민간인 학살의 아픔을 함께하였다. 박덕선 시인은 “겨우 두세 살의 아기 묘지가 햇살 아래 옹알이하며 뛰어다닐 것 같”다며 “묘비를 쓰다듬으며” 울 수밖에 없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마산에서 3.15와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부마항쟁’이다. 동인들은 1979년 부산과 마산에서 일어난 부마항쟁을 되돌아보고 있다. ‘항쟁, 아래로부터 피어난 핏빛 역사의 꽃’이라는 제목으로 항쟁의 의미와 지역에 남아 있는 기념물 등을 답사하고 기념하였다. 오늘의 민주주의가 그냥 온 것이 아니라 기나긴 역사의 아픔이 점층되어 왔음을 최상해 시인은 “하나의 촛불이 두 개의 촛불이 되고/두 개의 촛불이 세 개 네 개의 촛불로/거대한 횃불이” 된 그 뿌리에 대해 적확하게 노래하였다.

이처럼 이번 동인지는 스토리텔링을 통해 지역의 아픈 현대사 속으로 직접 들어감으로써 좀 더 현실감 있는 작품을 만들어 내었다. 이제 그 작품들을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독자들도 동인과 함께 걸으며 역사의 아픔을 같이 느끼고 치유해 보면 좋겠다.

2부에서는 동인들의 다양한 시 세계가 펼쳐지고 있다. 사는 모습이 다르고 먹고사는 방법이 다를지라도 시라는 하나의 매개를 통해 펼쳐지는 삶의 모습은 서로 별반 다를 것 같지 않다. 그런 관점에서 동인들의 시를 읽다 보면 시를 통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14집을 내며


다시 길을 나서며 신발 끈을 묶는다. 시인에게 운명이 있다면, 그것은 주어진 길을 뚜벅뚜벅 걷는 것이다. 걷다 보면 어떤 결론에 도달할 것이라는 믿음이 바로 시인이 가진 운명이라고 말해도 되지 않을까. 이런 믿음을 버리지 못하고 손안에 가슴속에 품고는 끝내 가던 길을 멈춘 시인이 어디 한둘이겠는가. 설사 우리가 이 길에서 우리가 걸으며 실천하고자 했던 일들이 좀 부족하더라도, 그 끝이 어딘지는 모르지만 가 닿지 못할지라도, 그것 역시 우리에게 주어진 운명으로 받아 안는 것이 시인의 길이라고 해도 될 것이다.

우리는 그런 의미에서 지금까지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되돌아보고 반성해야 하며, 어떤 방향으로 걸어갈 것인지에 대한 깊은 고민은 언제나 유효한 일이라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올해는 동인들이 매년 행했던 시화전 대신 우리 지역에서 있었던 불행하고 아픈 역사의 현장을 직접 탐방하고 공부해서 함께 이야기해 보는 사업을 통해 작은 실천을 해 보았다.

세 번에 걸친 스토리텔링은 첫 번째로 ‘김주열과 3·15, 그리고 4·19’라는 제목으로 김주열 열사 시신 인양지에서 시를 읽고 3·15와 4·19라는 역사의 수레바퀴에서 ‘김주열’이 갖는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았으며, 두 번째로는 한국전쟁과 민간인 학살 문제를 다루기 위해 ‘전쟁과 평화, 인간의 두 얼굴’이라는 제목으로 마산합포구 진전면 곡안리에서 미군들에 의해 자행된 민간인 학살사건을 통해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에 부닥친 인간의 참모습을 짚어보고, 인간이 전쟁을 핑계로 저질러 놓은 민간인 학살에 대해 작은 마음으로나마 추도하는 시간을 가져 보았다. 세 번째로 우리 지역에서 3·15와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부마항쟁’일 것이다. 1979년 부산과 마산에서 일어난 부마항쟁을 ‘항쟁, 아래로부터 피어난 핏빛 역사의 꽃’이라는 제목으로 항쟁의 의미와 지역에 남아 있는 기념물 등을 답사하고 시 낭송을 하는 시간을 가져 보았다. 무엇보다도 스토리텔링을 통해 조금이나마 지역의 굵직한 현대사 속으로 걸어 들어간 시간은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이처럼 작지만, 우리 스스로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 객토는 쉬지 않고 걸어갈 것이다.

이번 14집에는 스토리텔링을 통한 결과물을 1부 <함께 걷는 길>과 3부 <객토문학 스토리텔링>이라는 제목으로 선보인다. 그리고 일상적으로 시작 활동을 한 결과물을 2부 <시로 말한다>에 싣는다. 오랜만에 정은호 동인이 신작을 내놓았다. 시인이 시를 버릴 수 없듯, 시인은 현실을 외면할 수 없다. 눈을 약간만 옆으로 돌려 보면 아직도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머리띠를 두른 사람들이 많다. 또한 하루를 먹고 살기 위해 버티는 사람들의 손이 너무나 허전하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들의 손을 누가 잡아줄 수 있을까. 시인은 시를 통해 화가는 그림을 통해 가수는 노래를 통해 그들의 삶을 우리라는 울타리 속에서 함께 아우르는 세상을 꿈꿔본다. 그런 꿈을 꾸는 게 시인이지 않을까.


2018년 10월
객토문학 동인



객토문학 동인 소개


객토문학 동인은 1990년 경남 마산 창원에서 노동자들이 중심이 되어 시를 쓰는 모임으로 출발을 하였지만, 아이엠에프 이후 다양한 직업을 가진 모임으로 거듭났습니다. 2000년 첫 동인지를 출간하기까지 소책자 『북』을 발행하였으며, 그 후 해마다 동인지를 묶어냈습니다. 또한 시대의 첨예한 현실을 주제로 한두 권의 기획시집을 묶어냈으며, 지역과 지역을 넘어 삶의 목소리를 전달하기 위해 공통의 주제를 선정하여 동인 개개인의 개성을 살린 작품을 생산해 내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각자의 위치에서 열심히 땀 흘리는 사람이 쓴 글이 많아져야 세상이 좀 더 나아지리라 확신하며 더욱 열심히 일하고 글을 쓰려고 합니다.
현재 참여하는 동인은 다음과 같습니다. 노민영, 박덕선, 배재운, 이규석, 이상호, 정은호, 최상해, 표성배, 허영옥입니다.



대표시 ― 「봄이 온다」(노민영)


짓밟히고 다져진 땅속에
숨 고르던 생명이 일제히
햇살을 향해 싹이 솟구치는 봄날

부정한 것을 부정하다고 외치며
마산의 봄은
독재를 뚫고 3·15에 솟았다.

총부리에 꺾인 3·15가 가라앉고만
마산 앞바다의 4월 11일
참을 수 없는 억울함으로 출렁이다
시퍼렇게 멍든 파도는
돌덩이를 매단 주검의 김주열을
건져 올렸다.

이 망극한 울분을 외치고 외치며
독재와 부정의 항거를 위해
마산은 거센 파도로 솟구쳤다.

마산의 봄은
앞바다에 꽃잎이 떨어지면
시퍼런 파도가 출렁거리며 데리고 온다.

마산 앞바다는 파도는
가라앉힌다고 품을 수 없고
억누른다고 출렁이지 않을 수 없는
혼이 실린 봄을 부르는 바다
죽어서도 용서치 못할
김주열이 시퍼렇게 파도친다.

3·15가 데리고 온 그 봄
꽃샘추위에 잠시 머뭇거릴 뿐
봄은 기어코 온다.



목차


14집을 내며

제1부 함께 걷는 길

<김주열과 3·15, 그리고 4·19>
정은호 마산에는 3·15 국립묘지가 있다 13
노민영 봄이 온다 14 / 죽어서 흙밥이나 될 바에는 16
허영옥 꽃샘추위 17
박덕선 등대, 타오르지 않아도 18
이규석 도화선 20
이상호 바다는 22
최상해 그 이름 김주열 24
표성배 마산 2018년 26 / 자유 27

<전쟁과 평화, 인간의 두 얼굴>
허영옥 없어져야 할 말 29
노민영 대숲 소리 30
박덕선 우리 아기 죄명은 통비분자 32
이규석 아직도 산은 말이 없고 34
이상호 잘한다 36
최상해 1950년 8월 11일 38
표성배 전쟁과 괴물 40 / 악마 42

<항쟁, 아래로부터 피어난 핏빛 역사의 꽃>
표성배 봉화산은 매일매일 45 / 馬山 10·18 그리고 46
노민영 긴급조치시대 멸망의 물결 48
이규석 봄은 그냥 오는 것이 아니다 50
허영옥 장마 52
이상호 아직도 54
최상해 대한민국 56
박덕선 혁명의 흔적 58

제2부 시로 말한다

노민영 배냇저고리 60 / 전생 61 / 은비늘 62 / 수평선 64 / 물고기처럼 사는 법 65
박덕선 하행선 노상매장에 앉아 66 / 백두산 아리랑 68 / 녹색 동지 권혜반 70
배재운 봄날에 73 / 첫선 74 / 빈자리 75 / 환생 76 / 빨간 티이 77
이규석 바가지 78 / 불량 79 / 오십견 80 / 계룡산 82 / 허기 84
이상호 비상 85 / 소록도 86 / 뜬금없이 87 / 창동예술촌에서 88 / 줄 89
정은호 목 백일홍 90 / 하늘같이 91 / 능소화 92 / 촌철살인 94 / 쓸어가라 96
최상해 강아지똥 97 / 모순 98 / 식목일 99 / 사라지다 100 / 안부 101
표성배 봄비 102 / 야외음악회 103 / 불효자 104 / 등 105 / 2018년 4월 27일 판문점 도보다리에는 106
허영옥 유목민 107 / 울란바토르 달동네 108 / 몽골에서 별 헤는 밤 109 / 호상 110 / 변비 걸린 고양이 111

제3부 객토문학 스토리텔링

제1차 객토문학 스토리텔링 114
제2차 객토문학 스토리텔링 118
제3차 객토문학 스토리텔링 122

객토문학 동인지 및 동인의 책 126

2018.12.01 |



보도자료 


자본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Reading Capital Politically



정치경제학적 읽기, 철학적 읽기를 넘어 정치적 읽기로

『자본』을 정치적으로 읽자!

이 책은 『자본』의 모든 범주들을 자본과 노동이라는 쌍방, 즉 두 계급의 정치적 갈등과 투쟁의 범주로,
이 갈등과 투쟁 속에서 생성되고 소멸하는 역사적 범주로 읽어가는 ‘정치적으로 읽기’의 방법을 제안한다.



지은이  해리 클리버  |  옮긴이  조정환  |  정가  21,000원

쪽수  392쪽  |  출판일  2018년 11월 30일  |  판형  신국판 변형 무선 (140*215)

도서 상태  초판  |  출판사  도서출판 갈무리  |  총서명  Mens, 아우또노미아총서 64

ISBN  97889-6195-188-3 93300   |  CIP제어번호  CIP2018034604

도서분류  1. 정치학 2. 경제학 3. 철학 4. 문화비평 5. 사회운동 6. 정치사상

보도자료  181202-자본을어떻게읽을것인가-보도자료.hwp 181202-자본을어떻게읽을것인가-보도자료-FINAL.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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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는 무엇보다 전 지구적 노동기계이며 우리의 삶을 노동에 끝없이 종속시키는 것에 기반한 사회 시스템이다. 여기서 노동은 자본이 우리에게 명령을 할 수 있도록 자본과 권력에 의해 조직된다. 노동의 부과 ― 이것은 항상 임금노동뿐만 아니라 비임금 노동의 부과도 포함한다 ― 는 여전히 자본주의의 기본 특성으로, 그리고 우리의 대부분의 문제들의 계속적인 근원으로 남아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는 신자유주의 정책들도 노동을 부과하는 자본주의의 능력을 침식하는 우리의 투쟁 능력에 대한 대응으로 사람들에게 노동을 다른 방식으로 재부과하려는 전략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자본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간략한 소개


맑스는 철학이나 정치경제학을 역사적 지배 이데올로기로 보면서 『자본』을 ‘철학 비판’을 잇는 ‘정치경제학 비판’으로 저술했다. 분과 학문으로서의 정치경제학에 대한 비판을 통해 『자본』은 자본주의의 위기 및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필연성을 논증하는 과학으로서의 지위를 얻는다. 그런데 제2인터내셔널 이후의 맑스레닌주의와 알튀세르주의 전통은 『자본』을 다시 ‘정치경제학’이나 ‘철학’의 하나로, 즉 하나의 분과학문으로 거꾸로 읽어 왔다. 맑스적 ‘비판’의 제거와 실종은 상품, 화폐, 가치, 잉여가치, 이윤, 이자, 지대, 축적 등 『자본』의 여러 범주들을 역사적 범주가 아니라 실증적 범주로 인식하게 만들었다. 그 결과 『자본』은 현실 사회주의 체제나 그에 종속된 사회주의 운동의 이데올로기적 장치로 사용되었고 운동과 혁명이 자본주의 사회의 범주들을 재생산하는 것으로 귀착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 책은 『자본』 읽기의 이 오랜 전통들을 철저하게 비판하면서 『자본』의 모든 범주들을 자본과 노동이라는 쌍방, 즉 두 계급의 정치적 갈등과 투쟁의 범주로, 이 갈등과 투쟁 속에서 생성되고 소멸하는 역사적 범주로 읽어가는 ‘정치적으로 읽기’의 방법을 제안한다.



『자본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상세한 소개


1970년대 후반에 사회운동이 약해졌을 때 맑스에 대한 연구는 마치 그 나름의 생명을 갖는 것처럼 보였다. 구조주의자, 포스트구조주의자, 해체론자 들이 미국과 유럽의 저널과 세미나실에서 꽃피었다. 이 맑스주의자들과 그 해석자들은 세계를 해석하기 위해 투쟁했고 때로는 맑스를 해석하기 위해 투쟁했다. 이 과정에서 이들은, 문제는 세상을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변혁하는 것이라는 맑스의 금언을 잊어버렸다. 1979년에 해리 클리버는 ‘『자본』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그 세미나실들 안으로 ‘『자본』을 정치적으로 읽기’라는 기폭장치를 설치했다. 『자본』 1장을 철저하게 정치적으로 읽음으로써 그는, 『자본』이 학자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노동자들을 위해 쓰여졌으며 우리가 이제 노동자라는 범주를, 주부, 학생, 실업자 그리고 여타의 비임금 노동자들까지 포함할 수 있도록 확장해야 할 필요가 있음을 보여준다. 『자본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는 1960년대 유럽의 새로운 사회적 투쟁, 1970년대 이탈리아의 아우또노미아 투쟁, 1990년대 멕시코 사빠띠스따들의 투쟁, 그리고 2000년대 라틴아메리카 원주민들의 투쟁, 2010년대의 전 지구적 반란들 사이의 이론적·역사적 다리를 제공한다. 1장에 배치되어 있으면서 독립성을 갖는 그의 서론은 『자본』이 출판된 이후에 전개된 노동자 계급 투쟁에 대한 훌륭하고 간결한 개요를 제공한다. 각각 2000년, 2012년에 추가된 그의 영어판 서문, 독일어판 서문은 이 책의 핵심적 내용과 역사적 의미를 체계적으로 설명하며 2018년에 추가된 한국어판 서문은 촛불혁명 이후의 한국 현실에서 이 책이 갖는 보편적이고 지속적인 의미를 친절하게 역설한다.

한국에서의 맑스의 『자본』의 역사

칼 맑스의 『자본』(Das Kapital)은 150여 년 전인 1867년에 그 첫 권이 출간되었고 2권과 3권은 맑스 사후에 엥겔스의 편집을 거쳐 1885년과 1894년에 각각 출간되었다. 한국에서 『자본』이 우리말로 읽히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해방공간에서 1947년부터 1948년 사이에 최영철, 전석담, 허동 공동번역으로 『자본』(서울출판사)이 2권까지 출간되었지만 분단은 사실상 『자본』을 한국에서 (그리고 북한의 ‘주체’화 이후에는 한반도 전체에서) 추방하는 계기로 작용했다.

한국에서 『자본』은 오랫동안 ‘읽기’ 이전에 ‘출판’ 그 자체가 과제였던 금지된 도서로 남아 있었다. 완역 출판에 이르는 긴 해금의 과정은 탄압을 피하기 위한 비실명 출판뿐만 아니라 출판사(이론과실천, 백의) 대표들이 투옥을 무릅쓰고 감행한 저항과 투쟁을 포함하는 과정의 결과이기도 했다. 그것의 완간이 1990년 전후 베를린장벽의 붕괴, 소련의 해체, 그리고 맑스레닌주의 퇴조의 시기와 겹쳤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맑스는 『자본』을 노동자들에게 읽힐 목적으로 썼지만 한국에서 『자본』은 대학으로 복귀한 진보지식인들을 매개로 진보적 사상을 뒷받침하는 분과학문(경제학)의 텍스트로 자리 잡아 갔다.

맑스 200주년,『자본』을 “정치적으로” 읽는다는 것

해리 클리버의 책 Reading Capital Politically(2000)는 누구나 알 수 있다시피 알튀세르와 발리바르 등의 책 Reading Capital(『자본론을 읽는다』(두레, 1991), 불어본 1965; 영어본 1970)을 염두에 두고 그것에 ‘Politically’를 덧붙인 제목이다. 후자의 제목이 ‘읽기’ 그 자체에 강조점을 두고 있다면 전자의 제목은 읽기의 방법, 즉 ‘어떻게’에 강조를 둔 점에서 전자와 차이가 난다. 그런데 방법의 관점에서 볼 때 알튀세르와 발리바르 등의 Reading Capital은 단순한 읽기가 아니라 『자본』 읽기의 새로운 방법을, 즉 ‘정치경제학적으로 읽기’ 대신 ‘철학적으로 읽기’를 제안한 것이라고 클리버는 해석한다.

해리 클리버는 이론적 실천의 상대적 자율성을 확립하려는 알튀세르의 이 시도가 결과적으로는 경제 결정론을 재추인함과 동시에 계급투쟁을 역사의 중심무대에서 삭제하는 효과를 낳았다고 비판적으로 평가한다. 이런 인식 위에서 쓰여진 Reading Capital Politically는 알튀세르가 Reading Capital에서 사용한 ‘철학적으로 읽기’의 방법이 봉착한 한계 지점에서 ‘『자본』 읽기’를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따라서 『자본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의 ‘정치적으로 읽기’는 ‘정치경제학적 읽기’와 ‘철학적으로 읽기’와는 다르게, 그것에 대항하고 그것을 넘어서는 『자본』 읽기의 방법론으로 제안된다.

이 책은 맑스 탄생 200주년을 맑스에 대한 회의로 맞이하는 청산주의적 시류를 거부하면서 지금 필요한 것은 맑스 청산이 아니라 오히려 맑스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에 있음을 환기시키고 있다.

『자본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40년, 발행과 번역의 역사

정확히 40년 전인 1978년에 영어로 처음 발행되었던 해리 클리버의 이 책은 역사적 과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중요한 계기마다 끊임없이 다시 주목되었고 여러 나라 언어로 번역되거나 재출간되었으며 2000년에는 영어 개정판이 출판되었다. 이 책의 초판은 스페인어(1981, 멕시코), 한국어(1986)로 번역 출판되었고 개정판은 스웨덴어(2007), 터키어(2008), 폴란드어(2011), 독일어(2012), 그리스어(2017) 등 7개 언어로 번역 출판되었다. 2012년에는 인도에서도 영어로 개정판이 출판되었다. 주목할 것은 초판이 멕시코와 한국과 같은 당대의 제3세계권을 중심으로 출판되었음에 반해 개정판은 중동, 동구, 서아시아, 북유럽, 남유럽 등 세계의 폭넓은 지역에서 출판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출판 초기보다 2000년대 이후에 이 책이 세계인들의 더 광범위한 관심을 끌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한 사실이다. 1986년 전두환 독재체제하에서 이 책의 초판이 한국어로 번역되었지만(한웅혁 옮김, 풀빛) 정통 맑스레닌주의 전통을 비판하고 자율주의적 맑스주의 흐름을 새롭게 발견하고 구축하려 한 이 책은 두 가지의 장애에 직면했다. 하나는 전두환 정권의 법적 금서 지정이며 또 하나는 당시의 주류 운동이었던 정통 맑스레닌주의 운동과 주체사상이 만들어 낸 정치적 기피다. 이후 1990년대 소련의 해체와 신좌파적 관심의 부상이 이 책을 수용할 수 있는 긍정적 환경을 만들어 냈지만 이번에는 새로운 장애가 나타났는바, 책의 절판이 그것이다.

이 책 『자본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는, 2000년 영어개정판을 새로이 완역한 후, 특히 최근의 정치적 상황과 이론적 지형 속에서 이 책이 갖는 지위와 의미에 대한 포괄적이고 요약적인 서술을 담은 장편 서문인 독일어판 서문, 그리고 문재인 정부의 등장 속에서 한국 독자들에게 이 책(의 노동가치론)이 갖는 특별한 의미를 담은 한국어판 서문을 포함했다. 이로써 한국어는 초판과 개정판을 모두 번역 출판한 첫 번째 언어가 되었다.

자본주의는 무엇보다 우리 삶을 노동에 끝없이 종속시키는 것에 기반한 사회 시스템이다

저자에 따르면 이 책은 칼 맑스의 『자본』 1권 1장에 대한 상세한 연구를 통해 맑스의 가치 분석을 재검토하고자 한다. 이 연구의 목적은 1장의 추상적 개념들을 자본주의 사회의 계급투쟁에 관한 맑스의 전반적 분석 속에 위치시킴으로써 가치 분석의 정치적 유용성을 도출해 내는 것이다. 클리버는 지난 반세기 동안 『자본』은 이런 방식으로 거의 읽히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런 독해 방식은 거의 무시되었다고 본다. 이 책이 읽힐 때에도, 여러 경향의 맑스주의자들에 의해 정치경제학, 경제사, 사회학, 심지어 철학 분야의 작품으로 간주되어 왔다는 것이다. 이처럼 이 책은 정치적 도구라기보다 학술적 연구의 대상이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이 책의 본문은 맑스의 가치 분석을 정치적으로 읽음으로써 『자본』 전체를 정치적으로 읽는 것에 기여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책에서 그 재해석은, 『자본』에서 맑스가 제시한 노동가치론이 자본에 대한 노동의 가치론(a theory of the value of labor to capital)으로 이해될 수 있으며 자본에 대한 노동의 가치란 무엇보다 사회를 조직하고 우리를 통제하는 근본적인 수단으로서의 노동가치임을 강조한다.

* 노동가치론이란?
상품의 가치는 그 상품을 생산한 노동이 만들어내고, 가치의 크기는 상품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노동시간이 결정한다는 학설. 인간의 주관적 만족도가 상품가치의 기준이 된다는 효용가치설과 대립된다. 리카도, 스미스 같은 고전학파의 노동가치론을 맑스가 비판적으로 계승하였다.(나무위키, 두산백과 참조)

노동가치론에 대한 이해는 자본주의에서 모든 것은, 그것이 목표를 성취할 때이건 목표를 성취하지 못할 때이건 간에, 사람들의 삶이 자본주의적 노동에 어느 정도로 종속되고 또 반대로 사람들이 그 종속으로부터 자신을 해방시키는 데 어느 정도로 성공하는가를 둘러싼 적대적 투쟁의 양상이라는 점에 우리의 주의를 집중시킨다. 정치경제학적 읽기와 철학적 읽기는 모두 생산대상, 생산수단, 생산물을 3대 요소로 하는 자본주의적 ‘노동’을 모델로 삼는다. 해리 클리버에게 ‘정치’는 무엇보다도 이러한 ‘노동’ 모델에 대한 비판이다. 노동은 전적으로 생산수단 소유자들(즉 자본가들)에 의한 강제의 산물이다.

이 책의 구성과 각 장별 내용

서론은 세 가지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다. 하나는 미국에서 나타난 맑스주의에 대한 관심의 놀랄 만한 만개에 대한 간략한 분석이다. 그 만개는 전후 케인스주의 시대를 위기에 던져 넣은 투쟁주기 동안에, 즉 1960년대 말과 1970년대 초에 나타났다. 또 하나는 맑스주의 전통의 주류 노선에 대한 해설이다. 그 조류들에는 특히 (알튀세르의 작업을 포함하는) 정통 맑스레닌주의와, 프랑크푸르트학파에서부터 그것의 더욱 현대적인 표현들에 이르는 비판이론이 포함된다. 저자가 보기에 이 전통들은 자본주의 착취의 메커니즘에 초점을 맞추면서 노동계급의 자기활동성을 이론화함에 있어서는 무능력을 드러내고 있었다. 세 번째 부분은 그러한 일방성을 다양한 방식으로 극복했다고 생각되는, 그리고 저자의 작업과 유사성을 갖고 있거나 그의 작업에 직접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되는 맑스주의 전통의 자율주의적 흐름들에 대한 이야기로 구성된다.

맑스를 읽는 이 여러 접근법들에 포함된 『자본』 읽기를 정치경제학적 읽기, 철학적 읽기, 정치적으로 읽기로 구분한 후 클리버는 정치적 읽기의 방법에 따라 『자본』 1장을 분석한다. 이 책 2장에서는 맑스가 상품 분석에서 시작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본 정치적 이유를 논의한다. 왜냐하면 저자가 보기에 상품형태야말로 자본주의적 노동 부과의 기본 형태이고, 따라서 계급투쟁의 기본 형태이기 때문이다. 3장에서는 가치의 실체를 자본이 강제한 노동으로 본 맑스의 분석을 해석하고 가치의 척도, 즉 사회적 필요노동시간의 근저에 놓여 있는 노동시간을 둘러싼 투쟁에 대해 논의한다. 이어서 4장에서는 다양한 형태들(단순 형태, 확대 형태, 일반 형태 및 화폐형태)의 가치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계급 관계를 표현하는 방식들을 분석하고 그것들이 노동계급 투쟁과 관련하여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교훈이 무엇인지를 논의한다.

이 책의 세계경제적, 국제정치적 의미

독재 정권의 억압적 정책들에 대한 반란들인 아랍의 봄(2011년)은 금융 붕괴의 부담을 그것을 야기한 사람들(은행, 다른 금융 투기업자, 그리고 정부 정책 입안자들)로부터 금융 위기의 파고 속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사람들(직장, 주택, 저축, 보험 및 미래에 대한 희망을 모두 잃은 노동 대중들)에게 전가시키려는 시도에 대한 반란으로, 즉 유럽과 미국의 가을로 이어졌다. 튀니지, 이집트, 리비아에서의 아랍 봉기가 아랍 세계 내의 다른 곳에서의 반란을 촉발시켰고 <유럽연합>의 긴축 정책에 반대하는 그리스의 반란이 아테네에서 스페인까지 그리고 그 너머까지 유통된 것처럼, 로어맨해튼에서의 월스트리트 점령도 수 주 내에 미국 전역과 전 세계에 걸쳐 수많은 유사한 점거를 촉발했다.

비록 이 책은 1970년대에 쓰여졌지만, 저자는 이 책을 신자유주의가 등장한 첫 10년 동안에 썼다고 밝힌다. 저자가 작업한 맑스주의 이론의 재해석은 부분적으로 그 당시에 새로운 것이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그 새로움이란 ‘발전된 나라들’에서 채택된 자본주의 전략이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자본주의 형태(케인스주의)로부터 오늘날 우리가 신자유주의라고 부르는 매우 억압적인 종류의 경제 정책으로 이행한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금융 위기를 영구적으로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은, 화폐와 금융이 필수적인 구성계기인, 사회의 부르주아적 조직화를 폐지하는 것이다. 사회의 부르주아적 조직화를 폐지한다는 것은 삶의 노동에로의 끝없는 종속을 폐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해리 클리버는 ‘2012년 독일어판’ 서문에서 이러한 방향의 핵심이 상품화, 화폐, 금융이 지배 하는 공간인 시장으로부터 독립적인 공통장(commons)의 발명으로 나아가는 것이라는 생각을 내놓는다. 클리버는 기존 사회에서 발견되는 공통장의 사례로 공유지를 보존하고 확보하여 자치적 문화 활동의 기반으로 삼는 투쟁, 공동체 농장이나 사회센터와 같은 자치공간 확보 투쟁, 도시농업이나 수경재배처럼 새로운 테크놀로지를 자치적으로 이용하려는 노력, 인터넷에서의 정보·지식·음악·예술·경험의 자유로운 공유, 공통장을 전유하여 축적의 도구로 삼고 공통장의 성장을 저지하려는 자본의 지적재산권 기획을 무력화하려는 투쟁, 타흐리르 광장이나 주코티 공원에서 벌어진 점거투쟁처럼 인클로저를 역전시키는 작은 공통장들의 창출, 그리고 사빠띠스따들이 보여 주었던 자기가치화 투쟁 등을 예시한다.



지은이·옮긴이 소개


지은이

해리 클리버 (Harry Cleaver, 1944~ )

미국의 학자, 맑스주의 이론가, 미국 텍사스 오스틴 대학 경제학과 명예교수. 1994년부터 멕시코 치아빠스주의 사빠띠스따 운동과 함께해 왔다. 1962년 안티오크 대학에 입학하여 1967년 경제학 학사를 취득했고, 대학생 시절 미국 시민권 운동으로 정치적 행동주의에 입문했다. 1964~65년 프랑스 몽쁠리에 대학에서 공부하면서 <전국학생연합>(Union Nationale des Étudiants de France) 활동을 했다. 1967년에 스탠퍼드 대학에서 경제학 박사과정을 시작했고, 베트남전쟁에 반대하는 학생 활동가로서 스탠퍼드연구소와 미국 국방부의 연계 의혹에 항의하는 활동을 벌였다. 이러한 활동은 녹색혁명과 사회공학의 관련성을 연구하는 그의 박사논문으로 이어졌다. 1971년 캐나다 몬트리올의 셔부르크 대학 조교수로 임용되었고, 1974년부터 3년간 <새로운 사회연구소>(New School for Social Research) 경제학과의 방문 조교수로 재직했다. 1976년부터 2012년 퇴임하기 전까지 36년간 텍사스 오스틴 대학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저서로 Rupturing the Dialectic (갈무리, 근간), 『자본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갈무리, 2018), 『사빠띠스따』(갈무리, 1998) 등이 있고, “Circuits of Struggle”(2016), “Background: from Zerowork #1 to Zerowork #2”(2014), “Work Refusal and Self-Organization”(2011) 등 수십 편의 논문이 있다.


옮긴이

조정환 (Joe Jeong Hwan, 1956~ )

서울대학교와 대학원에서 한국근대문학을 연구했고, 1980년대 초부터 <민중미학연구회>와 그 후신인 <문학예술연구소>에서 민중미학을 공부했다. 1986년부터 호서대, 중앙대, 성공회대, 연세대 등에서 한국근대 문예비평사와 탈근대사회이론을 강의했다. 『실천문학』 편집위원, 월간 『노동해방문학』 주간을 거쳐 현재 다중지성의 정원[http://daziwon.com] 대표 겸 상임강사, 도서출판 갈무리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 『민주주의 민족문학론과 자기비판』, 『노동해방문학의 논리』, 『지구 제국』, 『21세기 스파르타쿠스』, 『제국의 석양, 촛불의 시간』, 『아우또노미아』, 『제국기계 비판』, 『카이로스의 문학』, 『미네르바의 촛불』, 『공통도시』, 『인지자본주의』, 『예술인간의 탄생』, 『절대민주주의』 등이 있고 수십 권의 공저서, 편저서, 편역서, 번역서가 있다.



책 속에서 : 자본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최근 한국에서는 노동시간 단축을 위한 근로기준법 개정이 이루어졌다. 이것은 모든 한국인들에게 칼 맑스의 생각을 연구할 새로운 이유를 준다. … 문재인 대통령은 과도한 노동이 개인들의 생명을 어떻게 파괴하는지를 인정할 뿐만 아니라 과도한 노동이 자신들의 회사의 생산성과 이윤을 침식할 수 있는 여러 방식들에 기업 경영자들이 얼마나 자주 맹목적인가를 인정한다.

― 2018년 한국어판 지은이 서문, 7쪽

 

산업적 방법들이 체계적으로 적용되어 온 분명한 예는 학교들이다. 학습의 장소라고, 개인적 발전과 시민적 책임의 열쇠라고 떠벌려지고 있지만, 자본가들은 실제로 학교를 공장으로 만들어 자생적으로 호기심에 가득 차 있고 무한한 에너지로 충만한 어린 인간들을, 그들에게 주어지는 도구들을 가지고 몇 시간이고 계속해서 가만히 앉아서 매일, 매주, 매년, 시키는 대로 하는 어른들로 변형시키기 위해 개입했다.

― 2018년 한국어판 지은이 서문, 13쪽

 

노동계급이 무대에 등장할 때는 언제나, 외부로부터 나타나 방어적 싸움을 치르는 희생자들로 등장한다. 바로 이것이 내가 이 이론들에서 사용되는 맑스주의적 또는 네오맑스주의적 범주들이 ‘물화되었다’(reified)고 규정하고자 하는 이유이다.

― 1장 서론, 119~120쪽

 

알튀세르가 독자들에게 “침묵들”과 “비가시성들”의 분석에 관해 강의하기 시작할 때 우리는 필연적으로 알튀세르에게서 노동계급의 실제적 투쟁과 혁명적 시행착오에 대한 전적인 침묵을 발견하게 된다. 알튀세르에게 그러한 역사 같은 것은 없다. 그에게는 오직 “역사의 과학”만이 있다. 역사를 완전히 무시하면서 알튀세르가 구축하려는 이 “과학”이 도대체 무엇일까? 그것은 영묘한 이론적 구조라는 비역사적이고 얼어붙은 개념화의 구축이다. 이는 낡은 교조주의의 재구축이다.

― 1장 서론, 132쪽

 

계급투쟁은 자본가계급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상품형태를 강제하는 방법을 둘러싸고 벌어진다는 사실을 이해해야만 한다. 상품형태를 강제하기 위해 자본가계급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생존을 유지하고 또 사회적 부에 대한 약간의 접근권을 얻기 위해 자신들의 삶[생명활동]의 일부를 상품 노동력으로 팔도록 강제한다.

― 2장 상품형태, 196쪽

 

우리는 ‘멋진’ 집을 갖거나 ‘훌륭한’ 교육을 받는 것이 개인이나 가족에게 이익이 된다는 자본의 선전의 이면에서, 삶을 노동력으로 재생산하고자 하는 [그들의] 욕망을 보아야 한다.… 가사노동과 학업은 둘 다 노동력의 가치를 낮게 유지하는 데 기여하도록 의도되어 있다. 가정에서 여성들이 더 많은 일을 할수록 노동자들이 일정한 수준으로 자신을 재생산하기 위해 자본으로부터 받아야 하는 가치는 줄어든다.

― 3장 가치의 실체와 크기 : 1장 1절, 196쪽

 

주부들이 자본으로부터 직접 임금을 요구할 때 그들은 자본이 강제하려고 하는 남성의 매개를 우회하면서 직접 K―W를 수립하고 있는 것이다. 또는, 학생들이 전쟁을 끝내라고 요구하기 위해 또는 예산삭감 반대를 요구하기 위해 대학 본부를 기습할 때, 그들은 교수들의 매개를 우회하면서 A―S, 즉 그들 자신과 자본 사이의 직접적 대치를 도입하고 있는 것이다.

― 5장 가치형태 : 1장 3절, 331쪽

 

임금에 대한 요구는 임금과 비임금이라는 자본주의적 분할을 극복하기 위한 것이며 모든 노동자들을 대등하게 만들어서 모든 사람이 노동에 반대하는 소득(income against work)을 위해 투쟁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 6장 결론, 346쪽



목차


2018년 한국어판 지은이 서문 7
2000년 영어 개정판 지은이 서문 18
2012년 독일어판 지은이 서문 43

1장 서론 77
『자본』을 정치경제학으로 읽기 94
맑스를 철학적으로 읽기 125
『자본』을 정치적으로 읽기 149
1장 읽기 188

2장 상품형태 194

3장 가치의 실체와 크기 : 1장 1절 221

4장 노동의 이중성 : 1장 2절 284

5장 가치형태 : 1장 3절 298

6장 결론 344

감사의 말 349
옮긴이 해제 351
참고문헌 365
인터넷 자료 377
해리 클리버 연보 380
인명 찾아보기 382
용어 찾아보기 385



출간 기념 역자 특강 안내


『자본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출간을 기념하는 역자 특강을 아래와 같이 개최합니다.

◆ 맑스 탄생 200주년, 『자본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출간 기념 역자 특강
강연 주제 : 자본/권력은 다중지성 공통장을 왜, 그리고 어떻게 범죄화하는가?
             ― 자율주의적 맑스주의 시각에서 본 미네르바, 홍가혜, 드루킹, 그리고 08_hkkim 정의를 위하여
강연 : 조정환 (옮긴이, 다중지성의 정원 대표)
일시 : 2018.12.15.(토) 오후 3시
장소 : 다중지성의 정원 (문의 02-325-2102, 참여신청 http://bit.ly/2KP7RNV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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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빠띠스따』(해리 클리버 지음, 조정환‧서창현 옮김, 갈무리, 1998)

북미자유협정(NAFTA)의 발효에 때맞추어 1994년 1월 1일 멕시코의 치아파스 주에서 봉기하여 1997년 8월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는 사빠띠스따 투쟁의 성격과 의미, 그리고 그것의 영향을 밝힌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흔히 '원주민 게릴라들'이라고만 알려져 있는 사빠띠스따들이 전지구적 자본주의의 지배하에서 자신들의 공동체적 삶의 양식과 세계관을 어떻게 지키고 또 발전시켜 나가는지, 또 그들이 자신들의 투쟁을 전 세계에 유통시키기 위해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사이버스페이스를 어떻게 활용하는지를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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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와 불의 문자들』(조지 카펜치스 지음, 서창현 옮김, 갈무리, 2018)

칼 맑스는 자본주의의 기원에 대해 기술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노동자들을 16세기에 공통의 것이었던 토지, 숲, 물로부터 내쫓기 위해 사용된 ‘피와 불의 문자들’ 속에 있다고 말했다. 카펜치스는 이 책 피와 불의 문자들에서, 21세기의 자본주의 연대기에도 마찬가지라고 주장한다. 카펜치스는 전 지구적 자본주의의 사회적 신체를 가로지르며 증식해 온 계급투쟁을 강조하면서 노동/자본 관계 내의 광범한 대립과 적대가 어떻게 노동과정 내부에서 그리고 노동에 맞서서 스스로를 표현하는지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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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정치의 정치학』(워너 본펠드 지음, 해리 클리버 외 지음, 김의연 옮김, 갈무리, 2014)

‘전복적 이성’의 저자 워너 본펠드가 편집하고 안또니오 네그리, 존 홀러웨이, 해리 클리버 등 9명의 자율주의 저자들이 참여한 탈정치의 정치학에는 사회민주주의와 맑스레닌주의라는 20세기의 두 가지 거대한 실정적 기획을 넘어서 ‘공통적인 것’의 발명으로 나아가려는 저자들이 열망이 담겨 있다. 필자들은 출현하고 있는 전지구적 투쟁들을, ‘잠재적인 것’의 형태로 실재하는 ‘공통적인 것’을 현실 속에서 구체화하는 혁명적 코뮤니즘의 산 실험장으로 간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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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자본주의』(조정환 지음, 갈무리, 2011)

'인지자본주의'는 인지노동의 착취를 주요한 특징으로 삼는 자본주의이다. 우리는 이 개념을 통해서 현대자본주의를 다시 사유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노동의 문제설정을 새로운 방식으로 제기할 수 있다. 이 개념을 통해서 우리는, 금융자본이 아니라 인지노동이 현대세계의 거대한 전환과 사회적 삶의 재구성을 가져오는 힘이라는 생각을 표현할 수 있고, 그 노동의 역사적 진화와 혁신의 과정을 중심적 문제로 부각시킬 수 있다.

2018.10.29 |



보도자료 


투명기계

Transparent Machine



화이트헤드와 영화의 소멸

이 책은 영화의 밀림에서 길을 잃은 사람들을 위한 이정표다.
투명하다는 것, 그것은 단지 보이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것은 합생과 변환의 과정 이외엔 더 숨길 것도, 더 보여줄 것도 없다는 의미다. 예술영화든, 상업영화든, 공포영화든, SF영화든, 실험영화든, 신파영화든 상관없다. 모든 영화는 투명하다. 변신 이외에 다른 정체성이 없기 때문이다.



지은이  김곡  |  정가  45,000원

쪽수  840쪽  |  출판일  2018년 10월 26일  |  판형  신국판 무선 (152*225)

도서 상태  초판  |  출판사  도서출판 갈무리  |  총서명  Cupiditas, 카이로스총서 53

ISBN  978-89-6195-186-9 93680   |  CIP제어번호  CIP2018028527

도서분류  1. 영화 2. 철학 3. 미학 4. 예술 5. 정치

보도자료  181029-투명기계-보도자료-fin.hwp 181029-투명기계-보도자료-fin.pdf


인터넷서점 바로 가기 : 알라딘 교보문고 YES24 인터파크 반디앤루니스 영풍문고



“단언할 수 있다. 이 책은 화염병처럼 쓰여졌다. 이 책을 쓴 김곡은, 아마도, 아마도 틀림없이, 집어던지는 심정으로 썼을 것이다. 그래서 영화에 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건 당신의 책상을 순식간에 불바다로 만들어버릴 것이다. … 영화는 세계를 다시 한 번 시작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을까? 김곡은 망설이지 않고 맞받아칠 것이다. 물론이죠. 믿지 않는 당신을 향해서 이 책은 달려든다.” ― 정성일 (영화평론가)



『투명기계』 간략한 소개


영화가 또 하나의 철학일 수 있을까? 단지 철학적 해석의 대상이 아니라, 그 자체로 영사되고 감상되고 심지어 편집되는 빛의 철학일 수 있을까? 『투명기계』는 그 대답이다. 라이프니츠, 니체, 화이트헤드, 맑스 등을 가로지르며, 소비에트, 네오리얼리즘, 누벨바그, 뉴저먼 시네마 등 영화사의 굵직한 사조들을 아우른다. 장르영화(공포, SF)뿐 아니라 실험영화(애니메이션, 구조주의)도 다룬다. 한국영화도 놓치지 않았다. 유현목과 베르히만, 임권택과 타르코프스키의 비교뿐만 아니라, 한국 뉴웨이브와 신파에 대한 최초의 철학적 접근. 영화의 세기에 영화의 홍수 속에서 표류하던 사람들이 애타게 찾고 있던 책이 드디어 출판되었다. 이제부터 이 책을 읽지 않고 영화에 대해 논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투명기계』 상세한 소개


이 책은 아주 구체적인 경험으로부터 시작한다. ‘영화를 본다’는 결코 추상적이지 않고, 구체적일뿐더러 어제도 오늘도 또 내일도 체험하는 상황이다. 스크린 앞에 앉아보라. 막이 오르고, 이미지가 투사되면, 내 온몸과 정신이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 내 신체와 내가 속한 세계가 잠시 잊히는 것과 같이, 나의 시간은 소멸되어 영화의 시간 속으로 그야말로 ‘빨려들어 간다.’ 혹은 ‘흡수된다.’ 이 ‘빨려들어 간다’는 사태를 지시하기 위해 우리는 ‘분위기’라는 아주 좋은 단어를 이미 가지고 있다. 분위기는 스크린에 풍경을 실질적으로 펼쳐냄으로써, 다른 예술장르(문학, 연극, TV … )와는 차별화되어, 영화만이 가지는, 진정 영화적인 요소다. 이 책은 바로 저 사태로부터 영화사를 다시 한번 읽어내려는 시도다.

영화가 또 하나의 철학일 수 있을까?

이 책은 ‘영화가 또 하나의 철학일 수 있을까?’라는 질문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단지 철학적 대상이 아닌, 그 자체로 영사되고 감상되고 심지어 우리 머릿속에서, 혹은 우리의 몸과 함께 편집되는 빛의 철학일 수 있을까?’라는 질문.

저 질문에 답해왔던 책들이 없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저 질문에 좀 더 엄격하게 답해보려 한다면, 영화의 철학은 매우 비본질주의적 철학이어야 할 것은 분명해 보인다. 왜냐하면 영화에서는 시간마저 편집되며, (그것이 샷이든, 몽타주든) 순수한 관계만으로 직조되는 예술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때문에 ‘시간은 지속이다’라는 익숙한 정식을 버리고(왜냐하면 그것은 아직 시간을 실체로 남겨놓고 있기 때문이다), ‘시간은 소멸이다’라는 정식으로부터 영화를 다시 읽고자 한다. 그것이 바로 이 책이 화이트헤드의 철학에 호소하는 이유다. 화이트헤드의 철학이야말로 세계에 어떤 실체도 남기지 않으려는, 순수한 관계의 철학, 비본질주의 철학이기 때문이다.

화이트헤드의 시간론 : 시간은 소멸이다.

‘시간은 소멸이다’라는 화이트헤드의 시간론은 다른 어떤 시간론보다도 영화의 시간성을 가장 잘 해명한다. 영화의 몸통이라 할 수 있는 필름스트립이 바로 ‘시간=소멸’의 메커니즘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표면과 표면이 부딪혀서 운동을 창발해내는 메커니즘으로서, 최소한 근대 이후엔 원자론이란 이유만으로 탄압당해 온 시간의 구도다.

이 책은 그것을 영화에서 다시 찾으려 한다. 그러니까, 이 책은 영화를 하나의 원자론으로 다시 읽으려는 책이기도 하다. 단, 원자론의 정수가 ‘시간=소멸’과 동의적인 ‘원자들에는 마지막 원자가 없다’라는 비본질주의적 정식이라는 한에서 말이다.

최소한 베르그송의 사상이 유행하기 시작한 이후, 우리는 이제껏 영화의 시간을 지속으로 사유해 왔다. 이 사유습관에 비추어 보면 영화의 몸통이 필름스트립이란 이유만으로 영화사를 원자론적으로 재해석한다는 것은 매우 어색한 일이며, 심지어 불쾌한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인식이 사실보다 앞설 순 없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가 그동안 열광했고 또 투쟁했던 수많은 영화들이 얼마나 원자론적이었나, 우리가 느꼈던 그 흥분과 비애는 또 얼마나 ‘시간=소멸’이라는 정식에 입각해 있었나를 분석해 보려고 한다.

영화사를 수놓았던 표현들에 이름을 붙인다

이 책은 영화사를 수놓았던 수많은 표면들에 이름을 하나씩 붙여보고자 한다. 또 가능하다면, 그 유형들을 분류하여 시간의 상이한 회로들을 분류해보고, 또 그 각각 안에서 유사하거나 대립하는 작가들을 다시 분류해 보고자 한다. 이 분류법이 또 다시 어색할 순 있겠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시간의 네 가지 회로다(과거, 현재, 미래, 영원). 우리는 영화의 시간을 네 가지 회로들(폐쇄, 스트로크, 병렬, 변신)로 나누었고, 영화사를 각각의 회로에 대응하는 사조나 장르로 분류하고, 또 그 안에서 세부분류될 수 있는 작가나 작가군으로 재차 분류하였다. 각각의 회로는 특유의 표면양태(각각 퇴행, 모방, 평행, 변신)를 가질 뿐만 아니라 끊임없이 변주되는 일반적 문법(각각 풋티징, 플릭커, 프린팅, 이멀전) 또한 가진다. 반대로 각 영화는 각자만의 존재론적 회로와 그 고유한 기법들로 각기 상이한 시간의 실현에 참여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평론집이 아니라, 유형학 혹은 계통학에 가깝다. 단 그것은 원자론적 유형학이다.

변신은 모든 영화의 공통패턴이며, 영화철학은 연극철학으로 귀결된다

아마도 이 네 가지 회로가 공통적으로 지시하는 구체적 사태는 아마도 ‘시간=지속’보다는 ‘시간=소멸’로서 더 잘 해명되는 ‘변신’이라는 사태일 것이다. 변신은 모든 영화의 공통패턴으로서, 비록 그것이 기억, 위장, 전이, 변형 등 상이한 양태로 나타날 손 치더라도, 어떤 영화의 어떤 회로도 직조하는 영화의 가장 근본적인 핵심속성이다. 비록 4부에서 본격적으로 다루게 되겠으나, 변신은 우리가 고전 몽타주에서도 그 흔적과 징후를 찾을 수 있으며, 또 그것이 어떻게 고전몽타주에서 현대몽타주로, 그리고 네 가지 회로들을 횡단하는지를 관찰할 수 있을 것이다.

변신이라는 테마가 이르는 영화적 결론은, 불행히도 영화적이라기보다는 연극적이라는 게 이 책의 또 다른 결론 중 하나다. 왜냐하면 변신은 배역과 무대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영화철학이 끝내 연극철학으로 귀결된다는 사실이 또 다시 어색하고 불쾌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역시 우리가 스크린이 상상과 실재, 이미지와 세계, 배우와 관객, 결국 순간과 지속을 나누는 차단막이라는 본질주의적 구도에 익숙하기 때문이지, 결코 영화의 본성이 연극적이지 않아서가 아니다. 반대로 영화는 연극적일 때, 그의 시간을 가장 잘 소멸시킨다. 그때 가장 잘 변신하기 때문이다. 이 변신을 지시하기 위해 우리가 택한 단어가, 화이트헤드가 자신의 가능태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썼던 그, “투명”이란 개념이다.

모든 영화는 투명하다

모든 원자가 투명한 것처럼, 모든 영화는 투명하다. 변신을 너무 잘하기 때문이다. 투명하다는 것, 그것은 단지 보이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것은 합생과 변환의 과정 이외엔 더 숨길 것도, 더 보여줄 것도 없다는 의미다. 변신 이외에 다른 정체성이 없다는 의미다. 이런 의미로라면, 심지어 우리가 으레 경멸조로 말하는 신파영화마저 투명하다.

편집되고 미장센 되는 과정으로서의 시간의 회로 안에서, 그것이 펼쳐내는 투명성 안에서 잘난 영화와 못난 영화의 구분 따위는 없다. 소위 예술영화뿐만 아니라, 상업영화와 실험영화도 최대한 포괄하려고 노력했다. 또한 어떤 측면에서도 서구영화들에 결코 뒤지지 않을, 동양의 영화들도 최대한 포괄하려고 했다(특히 한국 : 유현목, 김수용, 김기영, 임권택, 이원세, 이유섭, 박윤교, 변장호, 심우섭, 남기남, 하길종, 이장호, 배창호, 장길수, 이명세, 정지영 … ).

큰 틀에서 이 책은 리얼리즘에 반대하고, 연극학에 동의한다. 또한 모더니즘 비평에 반대하고 무속학에 동의한다. 후자 쪽이 네 가지 회로의 공통목표인 ‘변신’을 더 잘 해명하기 때문이다. 고로 이 책의 부대목표는 영화와 함께 화이트헤드 철학이 얼마나 현대 퍼포먼스 인류학에 가까웠나를 보여주는 것이다.



저자 인터뷰


Q. ‘투명기계’라는 제목이 강렬하고 인상적인데 그것의 의미에 대해 독자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기계’란 말은 이제 익숙합니다. 생명과 비생명의 경계를 가로지르거나, 그 둘 모두를 아우르는 개념입니다. 문제는 ‘투명’일 것입니다. 이 책에서 투명이란 말은 단지 안 보인다는 그런 통례적 용법으로 쓰이고 있지 않습니다. 이 책에서 투명은, 항구적 변신을 지칭하는 개념으로서, 변함이라는 사태 이외엔 어떤 다른 정체성을 지니지 않음을 의미합니다. (화이트헤드는 이 개념을 가능태의 실현방식에 관련해서 사용했는데요, 이 책에선 그것을 가능태의 한 속성처럼 업그레이드해서 쓰고 있습니다.) 영화는 너무 투명합니다. 변신을 너무 잘하기 때문이죠. 영화는 투명기계입니다.

Q. 책이 목차만 훑어보아도 대작이라는 느낌을 줍니다. 영화세계에 관해 거의 전면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이 작품을 쓰게 된 동기가 무엇인가요?

영화가 단지 철학적 대상이 아닌, 또 하나의 철학일 수 있을까? 라는 질문에 많은 저자들과 책들이 대답해 온 건 사실입니다. 허나 대부분이 ‘시간=지속’이라는 구도 속에서 그런 생각들을 전개하였습니다. 이 책은 반대로 ‘시간=소멸’이라는 구도로부터 시작하고자 합니다. 그러한 시간관이 변신이라는 사태를 더 잘 해명하기 때문입니다. 변신은 이전의 정체성을 소멸시키지 않으면 일어나지 않는, 매우 운명적인 사태입니다. 영화는 그걸 너무 잘합니다.

Q. 영화를 투명기계로 사유하는 이 책을 접하거나 읽는 독자가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책은 들뢰즈의 『시네마』일 것 같습니다. 들뢰즈의 『시네마』는 각 장마다 베르그송을 전유하고 응용하면서 스크린을 불투명한 것으로, 우주의 빛이 투과하지 못하는 불투명한 막으로 사유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저자께서는 이 책에서 화이트헤드를 주요한 준거로 삼는데 그 이유가 무엇이며 들뢰즈 『시네마』와의 차이는 무엇인지요?

영화의 시간은 지속되기 전에 편집되기 때문입니다. 변신하기 위해섭니다. 그런 점에서 영화는 베르그송적이기 전에 화이트헤드적입니다. 영화의 몸통을 이루는 필름스트립은 정확히 그 구조로 짜여 있습니다. 여러 장의 스냅사진들이 운동을 창발하는 형식으로. 영화의 본성이 지속이고 그 고유함이 베르그송적이라고 말하려면, 영화의 이 물질적 조건을 사상한 뒤 출발해야 합니다. 이 책은 그러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반대로 모든 것을 그로부터 시작하려고 합니다. 불쾌한 유물론의 혐의를 뒤집어쓰더라도.

분명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나진 않습니다. 하지만, 굴뚝의 구조에 따라 연기의 색깔이 달라지지, 결코 그 역이 아닙니다.

Q. 국내외에서 출간된 다른 영화 서적들과 비교할 때 이 책 『투명기계』가 갖는 차별점, 이 책의 특이성과 고유함도 설명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글쎄요. 이 책이 지시하고자 하는 영화의 본성, 투명성에 거의 예외가 없음을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그 예외 없음은 단지 경우의 수가 많다는 것이 아닌, 우리가 단지 실용적이거나 때로는 권력적인 목적을 위해서 작위적으로 나누어놓은 범주들(리얼리즘/판타스틱, 예술영화/상업영화, 극영화/실험영화 … )의 경계선을 무력화시킴을 의미합니다.

이 책이 소비에트 영화, 독일 표현주의부터, 미국건국영화들(서부극, 느와르 … )과 현대 할리우드 영화들(SF, 공포, 액션 … ), 반대로 종교적이거나 금욕적인 예술영화로부터 도발적이고 혁명적인 실험영화까지 모두를, 같은 식으로 서양영화뿐만 동양영화까지 아우르려고 한다면, 그것은 단지 모든 영화가 평등한 투명기계임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관점에서만이 우리 스스로 영화에 대해서 양산해내는 편견과 경멸, 먹물 먹고 맴맴 하는 자의식 엘리트주의에 저항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우리가 경멸조로 말하곤 하는 신파영화조차, 그것이 영화로서는, 르느와르와 타르코프스키의 영화만큼 똑같이 투명하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영화의 투명성, 이 앞에서 예술영화와 상업영화, 극영화와 실험영화, 리얼리즘영화와 장르영화의 구분 따위는 없습니다. 그건 영화가 불투명하다고 쉽게 가정해버리는 이들의 머릿속에서나 가능한 사태입니다.

이 책은 이론적으로 접근하는 책들이 범하기 쉬운 오류들은 무조건 피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서양영화에 너무 매몰되지도 않고, 그렇다고 섣불리 오리엔탈리즘으로 도망치지 않으려 분투했습니다. 실제로 영화는 그 둘 중 어느 것으로도 작동되지 않으며, 단지 우리의 펜촉과 뇌세포, 그리고 입버릇이 그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강요할 뿐입니다.

또 하나, 영화의 본성이 우리가 통상적으로 생각해오던 영화적이란 개념과는 너무나 다름을, 심지어 그것은 연극적임을 강조하려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연극학의 도움은 필수적이었고, 특히 통일성을 피하면서도 이야기를 직조하는 현대적 몽타주의 경향에 주석을 위해선 동양연극학, 특히 한국민속극의 참조가 불가피했습니다. 일례로, 다시 오리엔탈리즘에 회귀하는 일 없이도 펠리니의 영화가 어찌 마당극적이라 말할 수 없을지요?

또 하나, 영화의 가장 기본적 본성 중 하나인 변신을 설명하기 위해 인류학과 무속학의 도움도 받았습니다. 빙의는 단지 귀신영화에서나 일어나는 일에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영화엔 빙의가 있으며, 반대로 빙의가 없는 영화는 없습니다. (어떤 영화도 선험적인 공포영화라는 테제는 바로 이 빙의 개념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입니다.) 같은 까닭으로 빙의는 우리가 극장에서 영화를 볼 때 가장 먼저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또 하나, 예술영화와 상업영화, 극영화와 실험영화, 리얼리즘영화와 장르영화의 선재적 구분들에 저항하려고 했습니다. 그러한 범주들은 우리의 머릿속에나, 혹은 권력으로 점철된 지식의 강단에서나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투명성으로서의 영화는 어떤 장르, 어떤 형식, 어떤 스타일, 어떤 예산규모를 편애하지 않습니다. 그것의 역사는 어떤 조건이 주어져도 아름답게 생존해내는 생물의 진화과정과 같습니다.



영화평론가 정성일의 추천사


단언할 수 있다. 이 책은 화염병처럼 쓰여졌다. 이 책을 쓴 김곡은, 아마도, 아마도 틀림없이, 집어던지는 심정으로 썼을 것이다. 그래서 영화에 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건 당신의 책상을 순식간에 불바다로 만들어버릴 것이다. 영화에 바쳤던 자신의 청춘에 대한 가책과 원한, 분노로 가득한 행간들. 그런 다음 김곡은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승리를 향해 밀고 나아가기 시작한다. 어떤 승리? 이 책의 마지막 문장. “다시 한 번, Da Capo!” 영화는 세계를 다시 한 번 시작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을까? 김곡은 망설이지 않고 맞받아칠 것이다. 물론이죠. 믿지 않는 당신을 향해서 이 책은 달려든다. 얼핏 보면 지식의 도구상자처럼 보이지만 속으면 안 된다. 누구보다도 화이트헤드. 영화라는 ‘과정’, 세계라는 ‘실재’. 그 둘 사이를 오가는 ‘느낌’의 명제들. 아니, 차라리 선언들. 김곡은 자유자재로 수많은 영화 장면들을 ‘등위적 분할’ 하고 난 다음 스크린이라는 ‘평탄한 장소’ 위에서 흥미진진하게 ‘연장적 결합’을 한다. 그러면 거기서 달려드는 수많은 영화제목들이, 정말 많은 이름들이, 끝도 없이 등장하는 개념들이, 영화에 관한 거의 모든 용어들이, 마치 드릴처럼 당신의 뇌를 뚫고 들어가기 시작할 것이다. 맙소사! 그러니 이 책을 붙잡기 전에 주의하기 바란다. 행여 여기서 어떤 지식도 훔쳐갈 생각을 하지 마라. 김곡은 이 책을 당신에게 집어던지기 전에 웅변하는 것만 같다. 나는 이제 동굴을 떠납니다. 미래를 밝히는 화염병, 그림자와의 격투. 부디 이 책을 한밤중에 읽지 마시길. 당신은 퇴각로를 찾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훌륭한 적이라는 친구를 곁에 두어야 한다” 니체의 그 유명한 말. 이 책은 그 말을 훔칠 자격이 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지은이 소개


김곡 (Kim Gok)

본업은 영화감독이다. 공동작업자 김선과 함께 ‘곡사’라는 이름으로도 활동한다. <자본당 선언>, <고갈>, <방독피> 등으로 베니스 영화제, 베를린 영화제, 밴쿠버 영화제, 부산 영화제, 모스크바 영화제, 로테르담 영화제, 서울독립영화제에 초청된 바 있으며, 상업영화로는 <화이트>, <앰뷸런스>, <기계령>(<무서운 이야기> 시리즈) 같은 공포영화들을 연출하였다. 2006년 국가인권위원회 인권영화 프로젝트에 참가하였으며,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은 <자가당착>(2010)으로 영상물등급심의위원회와 소송 투쟁하기도 했다. 현재 독립영화와 상업영화를 포함한 다수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전공은 철학이다.



책 속에서 : 『투명기계』와 영화의 투명성


실상 영화는 단지 우리 눈앞에서만 일어나는 사태가 아니다. 그건 우리 눈 뒤에서도, 뇌 안에서도 일어나는 일이며, 엄밀히 말해선 스크린에 견주어도 하나도 꿀릴 것 없는 우리의 망막, 피부, 필름과 나 사이의 그 간극, 보이지 않지만 너무나 충만한 표면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내부와 외부 어디에도 독점적으로 속하지 않음으로써 그 둘을 접붙이는 그들의 공통경계로서의 표면에서.

― 들어가기, 6쪽


반대로 베르그송은 영화를 혐오했다. 원자론을 혐오했기 때문이다. 그에게 개념에 있어서건 이미지에 있어서건 “영화적 환영”을 준다는 점에서 원자론과 영화는 그렇게 한통속처럼 보였다. 반면 “지속”은 원자화될 수 없는 것이었다.

― 1부 1장 소멸의 원자론 : 화이트헤드, 베르그송, 필름, 27쪽


브루스 엘더는 에이젠슈테인 체계에서 러시아 상징주의, 중세 신비주의, 심지어 오컬티즘의 흔적까지 찾아서 보여준 적이 있다. 하지만 이는 에이젠슈테인이 과학을 포기하고 신비주의자가 되었음을 의미하기보다는, 외려 그가 가장 유물론적 수준으로부터 가장 우주론적 수준으로까지 연역과 종합의 논리를 창출해냈음을 의미할 터다. 다른 소비에트 작가들과 견주어봤을 때 에이젠슈테인의 독창성은 여기에 있다.

― 1부 3장 표면의 초기 형태들, 67쪽


신화는 바보들의 놀잇감이다. 그것은 사소한 승패에 열중할 때의 흥겨움, 편을 나누고 역할을 교대하는 도취감, 내기해 놓고 기다릴 때의 설렘으로만 존재하는 대상이다. 하길종은 완벽한 장면을 보여준다. 신문팔이 소년이 거스름돈을 고스란히 가지고 돌아오는지 내기 걸어보는 믿음 놀이가 그것이다(<바보들의 … >). 이밖에도 달리기 놀이(<병태와 영자>), 이장호의 보쌈놀이(<바보선언>)가 있을 수 있고, 배창호의 시간멈추기 놀이(<고래사냥 2>)가 있을 수 있다.

― 1부 8장 역사의 신화, 179쪽


다큐멘터리 영화야말로 모방의 장르에 속한다. 그것은 세상을 더욱 엄격하게 모방하기 때문이다. 베르토프가 한편으로는 소비에트의 거시적 몽타주와 거리를 두었다면 그가 다큐멘터리 전통에 속하기 때문이며, 다른 한편으로 이후의 다큐멘터리 작가들과 이론가들이 그에게 이끌렸다면 그가 매우 엄밀한 개념을 통해서 다큐멘터리의 존재론을 정의하고 또 실천해 보였기 때문이다.

― 2부 3장 다큐멘터리, 242쪽


히치콕은 뉴턴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었다. 신과 사물 사이에 편재하는 절대공간(vacuum)처럼, 관객은 연출자와 등장인물 사이에서 “신의 감각중추”(sensorium Dei)가 되므로 그는 물리적 용량이 더 허용되는 만큼 도덕적 책무를 더 져야 하는 셈이다.

― 2부 6장 화이트헤드의 두 번째 모험 : 프레이밍 이론, 305쪽


갱스터 영화보다 2틈 위상의 특성을 잘 보여주는 장르는 없다. 갱스터는 쌍곡선(과장hyperbole)의 인간이기 때문이다(권세 확장, 부의 축적, 힘의 과시 등). 그 불법성은 도시와의 계약을 문제로 삼을 뿐 여기엔 아직 그 평면의 반전이 포함되어 있진 않다. 반전은 그 과장된 행동선들이 꺾이고 또 함입해서 주체 자신을 향할 때 일어난다. 갱스터 장르의 2틈은 ‘배신’이다.

― 3부 2장 내러티브의 비유클리드적 변형, 385쪽


모든 것은 <E.T.>와 함께 달라졌다. 스필버그는 더 이상 외부에 낯설게 남아있지 않고, 인간과 친구가 되고 소통하는 외계인을 보여준다. 또한 외계인은 초대되거나 이미 여기에 와있고(<미지와의 조우>), 인간의 연인이자 친구이다(카펜터 <스타맨>, 로빈스 <8 번가의 기적>). 테크놀로지 역시 더 이상 인간을 위협하는 외부가 아니라 온전히 인간 공동체의 역사를 이루며(트럼벌 <사일런트 러닝>, 와이즈 <스타 트렉>), 미래 역시 낯선 시대가 아니라 친숙한 것들의 잡종짬뽕이다(리들리 스콧 <블레이드 러너>).

― 3부 3장 미래의 내러티브, 461쪽


자유간접화법은 신학적인 동시에 정치적 문제다. 모든 말들을 신의 간접화법으로 전락시키는 로고스의 체계는 교회뿐만 아니라 가부장제와 파시즘에 들어앉아 모든 궁핍을 정신 탓으로 돌리며 정작 그 자신은 육체를 좀먹고 있기 때문이다. 파졸리니가 ‘미메시스’를 말한다면 이를 비판하기 위해서다.

― 4부 2장 영원과 육체, 567쪽


공포영화를 정의하는 단 하나의 술어, 그것은 전염(contagion)이다. 원한, 살의, 광기, 트라우마, 무엇보다도 그 고통이 전염된다. 물론 전염을 항상 물질적인 것이라 볼 수 없다. 그러나 전염이 정신적인 양상을 띨 때조차 공포영화의 전염은 육체적이다. 전염은 이물異物 과의 접촉이기 때문이다.

― 4부 3장 공포영화, 595쪽


김기영이 결국 보여주려고 하는 것은, 맑스주의의 용어법 그대로 소멸충동과 불멸충동의 공존이라는 “모순적 법칙”과 그 “내적 모순들의 전개”다. 하녀들은 독점자본주의 그 자체다. 그리고 축적이 한계에 다다라 과농축된 불멸소의 무게 자체가 장애물이 될 때, 하녀는 마지막 소멸을 결단해서 불멸을 보존해야 한다.

― 4부 5장 김기영, 667쪽


영화에서 데모스의 이상적인 형태는 투명기계다. 샤먼기계 혹은 리미노이드 기계. 친구와 적들 사이에서 그의 평판은 변신 이외에 다른 현존방식을 모르는 변신바보다. 그는 개헌밖에는 자신의 재현법을 모르는 입법바보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것이 다시 ‘절차의 투명성’과 같은 형식적 민주주의의 가치를 의미하진 않는다. 이때 투명성은 지식과 행정의 투명성이 아니라 권력과 변전의 투명성이기 때문이다.

― 4부 9장 결론, 776쪽



목차


들어가기 6

1부 과거와 소멸 : 표면과 몽타주에 대하여

1. 소멸의 원자론 : 화이트헤드, 베르그송, 필름 17
1-1. 화이트헤드와 필름스트립 17
1-2. 베르그송과 필름스트립 27
1-3. 연장적 연속체 : 원자적 연극, 가분적 음악, 이행적 사진 34

2. 프레임, 샷, 몽타주 43
2-1. 프레임 43
2-2. 샷 45
2-3. 몽타주와 플랑세캉스 49

3. 표면의 초기 형태들 55
3-1. 그리피스와 에이젠슈테인 55
3-2. 독일 표현주의와 블랙홀 67
3-3. 프랑스 유체역학파와 순간 72

4. 기억상실의 대륙 80
4-1. 지표면 : 서부극 80
4-2. 지층면 : 맨키비츠 87
4-3. 시층면 : 웰스 90

5. 운동과 소멸 97
5-1. 네오리얼리즘 : 로셀리니, 데 시카, 안토니오니, 펠리니 97
5-2. 오즈 야스지로, 여백의 예법 105
5-3. 여백의 변주들 : 미조구치와 구로사와 110

6. 화이트헤드의 첫 번째 모험 : 이중노출 이론 121
6-1. 잔상과 잠상의 구분 : 트래블링이란 무엇인가 121
6-2. 고고학자들 : 르느와르, 오퓔스, 레네 127
6-3. 폐쇄회로 : 얇기와 퇴접 134

7. 퇴행영화 139
7-1. 파편화와 물신화 : 비더, 로지 139
7-2. 미국 언더그라운드 : 데렌, 앵거, 스미스, 마르코풀로스 등 145
7-3. 군중과 신화 151

8. 역사의 신화 157
8-1. 신화변주의 네 가지 테제들 : 지버베르크, 워홀, 얀초, 매딘 157
8-2. 역사의 세 가지 평면화 : 폴란드 유파 164
8-3. 미시군중의 세 가지 행동 : 남미와 한국, 하길종, 이장호, 배창호 173

9. 파운드 푸티지 188
9-1. 법의학 : 시체와 검시 188
9-2. 정치학 : 바이러스와 임계깊이 194
9-3. 연금술 : 유령과 플릭커 203

2부 현재와 속도 : 틈새와 프레이밍에 대하여

1. 몽타주의 급변 209
1-1. 고전 몽타주의 전제들 209
1-2. 네오 몽타주의 초기증상들 : 카게무샤, 스파게티, 페킨파 211
1-3. 절단면에서 반사면으로 : 네오웨스턴의 두 가지 과장법 219

2. 마리오네트 224
2-1. 모방의 형상 : 채플린 224
2-2. 전반사 : 맑스 형제들, 스크루볼, 타티 등 230
2-3. 난반사 : 고다르 236

3. 다큐멘터리 242
3-1. 모방의 체험 : 베르토프, 플래허티, 그리어슨 242
3-2. 네 가지 간격 : 이벤스, 민족지영화, 일본 풍경론, 콜라주
다큐멘터리 등 245
3-3. 허주(虛主)의 윤리학 252

4. 모방과 소유 257
4-1. 스톱모션 : 체코 애니메이션과 스반크마예르 257
4-2. 플래시 몽타주 : 네 가지 틈집법(闖輯法) 265
4-3. 스톱-몽타주 : 라이프니츠, 타르드, 두 가지 동시성 276

5. 막간 285
5-1. 땅 : 로크와 소유 285
5-2. 바다 : 칸트와 약탈 287
5-3. 하늘 : 러셀과 테러 292

6. 화이트헤드의 두 번째 모험 : 프레이밍 이론 297
6-1. 두 속도의 구분 : 클로즈업이란 무엇인가 297
6-2. 해석학자들 : 히치콕, 드 팔마, 이명세 303
6-3. 스트로크 회로 : 넓이와 탈접 318

7. 폭탄 영화 323
7-1. 탄도 영화 : 키튼, 로이드 323
7-2. EMX 영화 : 플릭커 영화, 일본 핑크영화들 327
7-3. 폭탄극 영화 : 데라야마, 큐브릭, 크로넨버그, 코엔 형제 330

8. 구조 영화 338
8-1. 미국 구조주의 : 기어, 스노우, 샤릿츠, 프램튼 등 338
8-2. 영국 구조주의 343
8-3. 메타 프레이밍 352

9. 시간의 몰락 356
9-1. 완전영화와 무한영화 356
9-2. 바깥의 증상 359
9-3. 내러티브의 분기 362

3부 미래와 평행 : 풍경과 내러티브에 대하여

1. 내러티브의 평행성 366
1-1. 3틈 구조 : 표면에서 평행면으로 366
1-2. 닫힌계 : 기계신, 아리스토텔레스, 그레마스 368
1-3. 디제시스의 문제 372

2. 내러티브의 비유클리드적 변형 374
2-1. [S∪O] ≃ [Dr∪O∪Dre], 표준렌즈와 멜로드라마 374
2-2. [Dr∪Dre] ≃ [S∪O], 광각렌즈와 슈퍼히어로 382
2-3. [Dr∩S∩Dre] ≃ [Dr∩O∩Dre], 망원렌즈와 토니 스콧 391

3. 옵티컬 프린팅 406
3-1. 평행의 형상: 리히터, 피싱어, 매클래런 406
3-2. 옵티컬 프린터 : 오닐, 아놀트, 이토 409
3-3. 옵티컬 내러티브 : 퀘이 형제, 보카노프스키, 마투시카,
체르카스키 421

4. 다이렉트 시네마 432
4-1. 평행의 체험 : 루쉬, 페로, 하라 카즈오 432
4-2. 다이렉트 극 : 클라크, 키아로스타미, 코스타, 도이치 437
4-3. 카사베티스와 배우 자신 445

5. 미래의 내러티브 453
5-1. 초현실주의 : 하스, 보로브치크, 조도로프스키, 버튼 453
5-2. SF 영화 : ILM, 프로그램, 사이보그 459
5-3. 미래의 자율성: 터미네이터, 미래주의, 네그리 474

6. 화이트헤드의 세 번째 모험: 평행우주론 480
6-1. 잠재성과 영원성의 구분 : 초점화란 무엇인가 480
6-2. 평행현실주의자들 : 부뉴엘, 알트만, 린치 488
6-3. 병렬회로 : 두께와 병접 498

7. 파라시네마 502
7-1. 미시군중과 병렬군중 502
7-2. 반사의 세 가지 변주: 드니, 하네케, 키에슬롭스키 506
7-3. 흡수의 세 가지 변주: 카우리스마키, 차이밍량, 홍상수 512

8. 풍경의 무게 519
8-1. 서사에 있어서 풍경의 기능 519
8-2. 역사의 무게 : 허우샤오시엔, 이창동, 지아장커, 봉준호 520
8-3. 버텨냄의 예법 : 에드워드 양 527

9. 개체화의 풍경 530
9-1. 풍경과 배우 530
9-2. 개체화 연기술 : 현, 과잉지속, 솔라리제이션 532
9-3. 성장영화 : 뿌리, 먹구름, 빗방울 537

4부 영원과 변신 : 막과 무대에 대하여

1. 아브라함아, 네가 어디에 있느냐? 547
1-1. 영원성의 고전적 표상 : 드레이어, 드밀 547
1-2. 종교개혁 : 타르코프스키, 앙겔로풀로스, 소쿠로프 550
1-3. 상징에서 지표로 558

2. 영원과 육체 565
2-1. 신의 실어증 : 자유간접화법, 파졸리니, 장선우 565
2-2. 자유간접화법의 육체적 변주 : 뉴 저먼 시네마와 미국 B 무비 577
2-3. 시간의 환지통 : 마카베예프, 쿠스트리차, 페라라, 비글로우 586

3. 공포영화 594
3-1. 피부와 내장 : 브라우닝, 피셔, 고어, 시체성애 594
3-2. 자가면역과 자가전염 : 좀비, 여귀, 태국유물론 605
3-3. 뇌와 척추 : 비체화, 아르젠토, 카펜터 620

4. 제헌환과 끌개 629
4-1. 삶의 피드백 : 나루세 미키오, 한국 신파, 김수용, 이원세 등 629
4-2. 죽음의 피드백 : 오시마와 이마무라 638
4-3. 죽음충동 비판 : 남기남과 변신교습법 642

5. 김기영 647
5-1. 정충의 잉여가치론 : c + v + s 647
5-2. 계약의 정치경제학 : s / c + v 654
5-3. 공멸의 공황론 : s/v / (c/v + 1) 663

6. 화이트헤드의 네 번째 모험 : 투명막 이론 671
6-1. 표면과 막의 구분 : 흡수란 무엇인가 671
6-2. 합생학자들: 막의 계보학 678
6-3. 변신회로 : 결과 잉접 688

7. 영화의 살결 694
7-1. 점탄성 : 가야코, 사르트르, 마른 공간과 젖은 공간 694
7-2. 색깔 : 괴테, 바바, 퇴색공간과 탈색공간 701
7-3. 할라이드 : 레블, 브래키지, 브라운, 이행준, 분자충동과
분자지성 707

8. 영화의 연극성 724
8-1. 배역과 무대 724
8-2. 무대의 원자화 : 확장영화, 즉흥, 보이지 않는 방 735
8-3. 배우공동체 : 올리베이라, 이오셀리아니, 초인은 하나인가
여럿인가? 741

9. 결론 757
9-1. 원뿔의 합생 : 네 가지 회로 757
9-2. 연극과 영화 : 마늘장아찌와 대표제 민주주의 758
9-3. 영화와 민주주의 773

부록
참고문헌 778
용어표 800
인명 찾아보기 808
영화 찾아보기 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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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공간 ― 동시대 한국 다큐멘터리 영화의 미학적 실천』(이승민 지음, 갈무리, 2017)

한국 다큐멘터리 영화의 어제와 오늘을 ‘공간’을 키워드로 하여 비평하고 재편성하였다. 이 책은 ‘왜 공간이 부상하기 시작했을까?’에 대한 거시적 물음에서부터 ‘재개발 투쟁과 은폐된 역사를 파헤치는 비판 정신에서 출발한 한국 다큐멘터리 영화에서 공간은 지금 어떤 기능을 하고 있을까?’라는 로컬적 질문까지 아우르면서 한국 다큐멘터리 영화의 역사를 공간으로 재편성하는 동시에 2010년 이후 부상한 영화의 공간(들)을 정리해서 공간의 의미를 펼치며 다양한 함의를 부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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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만 관객의 영화 천만 표의 정치』(정병기 지음, 갈무리, 2016)

대선에서 경쟁력 있는 제3후보가 적어도 한 명이라도 출마한다면, 1,000만이라는 숫자는 유효 투표의 약 3분의 1에 해당해 당선 확정에 근사한 수치다. 2005년 이후 천만 관객을 넘은 한국 영화들은 권력과 관련되는 내용을 다루었거나 그렇지 않을 경우에도 사회 부조리와 관련된 이슈들을 주로 다루었다. 1,000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한 영화는 한국 사회의 정치 문화를 반영하는 대표적인 문화적 사건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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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뢰즈의 씨네마톨로지』(조성훈 지음, 갈무리, 2012)

씨네마톨로지란 영화(cinema)와 증후학(symptomatology)의 합성어로 들뢰즈가 <시네마> 1권, 2권에서 제시한 이미지 분류학을 말한다. 이미지를 질적 차이에 따라 어떻게 분류할 수 있을까? 그러한 분류학은 우리 삶에 어떤 함의를 가질까? 이것이 이 책의 문제의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