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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03 |




보도자료 


노예선

The Slave Ship



인간의 역사

조지 워싱턴 북 프라이즈, 미국 역사가협회 멀 커티 어워드,
미국 역사학회 제임스 A. 라울리 프라이즈 등을 수상한 “빛나는 걸작”


대서양의 아래로부터의 역사를 연구하는, 현존하는 가장 중요한 역사가 마커스 레디커는
노예선에 승선했던 아프리카 노예, 선원, 선장의 이름과 사연을 풍부한 사료를 토대로 상연함으로써
노예선을 자본주의의 테러와 아래로부터의 연대가 역동적으로 펼쳐지는
구체적인 인간극의 현장으로 그려낸다.
“노예선은 현대적 의식의 첨단을 항해하는 유령선이다.”



지은이  마커스 레디커  |  옮긴이  박지순  |  정가  26,000원  |  쪽수  488쪽

출판일  2018년 3월 30일  |  판형  신국판(152x225) 무선

도서 상태  초판  |  출판사  도서출판 갈무리  |  총서명  Potentia, 아우또노미아총서 60

ISBN  978-89-6195-179-1 03900  |  CIP제어번호  CIP2018008555

도서분류  1. 인문학 2. 역사 3. 세계사 4. 인류학

보도자료  180408-노예선-보도자료.hwp 180408-노예선-보도자료.pdf


인터넷서점 바로 가기 : 알라딘 교보문고 YES24 인터파크 반디앤루니스 영풍문고



『노예선』은 예상하지 못한 거대한 정서적 충격을 주었다. … 모든 아메리카인과 더불어 서양 세계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실제로 수세기 동안 지속되어 현재에 이르기까지 노예무역의 끝없는 야만성을 통해 이득을 얻었거나 고통을 받았으며, 이 책은 그들에게 주어진 가장 중요한 숙제이다. 중간항로를 견디고 살아남아 불굴의 영혼과 광휘를 신세계로 옮겨온 존경하는 선조인 아프리카인들에게 백인, 서양인, 부유한 사람들이 행한 끔찍한 현실을 이해하고 논의하지 않고는 우리의 세상에 균형을 가져올 수 없다.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 공동의 해답을 내어놓기 위해서 필요한 단 하나의 질문이다.

― 앨리스 워커, 『더 컬러 퍼플』의 저자



『노예선』 간략한 소개


노예선은 아프리카 해안에서 수백만 명의 사람을 싣고 대서양을 가로질러 그들을 신세계로 데려갔다. 노예무역과 미국 농장체제에 관해서는 많은 것이 알려졌지만, 이를 가능하게 한 노예선에 관해서 알려진 것은 거의 없다. 뛰어난 수상 경력의 역사학자인 마커스 레디커는 『노예선』에서 해양기록에 관한 30년간의 연구를 정리하여 이 전례 없는 함선에 관한 역사를 만들어 냈으며 함선의 흔들리는 갑판 위에서 격동하는 인간의 드라마를 그려냈다. 그는 상어를 꼬리처럼 끌고 다니는 “떠다니는 지하 감옥”에 타고 있는 선장, 선원, 노예의 삶과 죽음 그리고 공포를 냉혹하게 재구성했다.

마을에서 납치되어 이웃 부족에 의해 노예상에게 팔린 젊은 아프리카인에서부터 노예선 선원이 되었다가 자신이 본 악마에 의해 겁에 질려 성직자가 되려고 했던 사람, 그리고 “스스로 만든 지옥”에 흡족해하는 선장까지, 그는 역사에 흔적을 남기지 못한 사람들의 삶을 조명했다. 이 이야기는 비극과 공포의 이야기이지만, 회복과 생존 그리고 완전히 새로운 것의 창조를 다루는 서사이다. 여기에서 저자 마커스 레디커는 노예선을, 농장과 더불어 노예제도가 형성된 장소로, 그리고 인종과 계급 그리고 근대 자본주의가 탄생한 심오한 역사의 장소로 다룬다.



『노예선』 출간의 의미


자본주의 탄생의 숨은 주역, 노예선을 함께 탔던 노예, 선원, 선장의 이야기

미국의 저명한 역사학자 마커스 레디커가 쓴 이 책은 1700년대부터 1800년대 초반 사이에 대서양을 사이에 두고 아메리카와 유럽 그리고 아프리카 사이를 항해한 노예선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노예선의 여정은 아프리카의 육지에서 시작하여 아프리카 해안과 중간항로를 거쳐 아메리카의 대농장에 도착하였다. 그 과정에서 수백만 명의 아프리카인이 신대륙으로 끌려와 대농장에 노동력을 제공하며 세계 자본주의 부상의 밑거름이 되었다.

우리는 이미 과거에 노예제도가 존재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고 다양한 매체를 통해 노예의 모습을 보아왔다. 고난을 겪는 노예와 비윤리적이고 잔인한 노예 주인의 모습은 많은 매체에 고정적으로 나타나는 일종의 클리셰(cliché)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이러한 클리셰의 이면에는 어떤 이야기가 담겨있을까?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노예와 노예제도에 관한 이야기에서는 많은 부분이 숨겨져 있다. 특히 우리는 이러한 역사의 당사자라고 할 수 있는 노예, 선원, 선장 그리고 노예무역상인들의 이야기는 거의 접할 기회가 없었으며 윌버포스나 존 뉴턴 같은 ‘위대한’ 업적을 남긴 인물의 이야기를 통해 노예와 노예제도를 이해하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승리자”들의 이야기만으로 역사를 이해할 수는 없다. “승리자”의 이야기에서 “패배자”의 이야기는 언제나 훼손되어 왔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마커스 레디커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생존자”의 이야기는 더 큰 가치를 갖게 된다.

수치(數値)와 추상의 폭력이 감추어온 역사에 구체적인 표정을 부여하다

이 이야기에서 우리는 아프리카인이 노예가 되어가는 과정에서 겪은 고난과 노예선에서 겪은 테러를 이해함으로써 고향을 떠나 징용과 착취에 시달리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노예와 선원의 관계, 선장과 선원의 관계, 노예와 노예의 관계 그리고 마지막으로 대도시 자본가와 노예무역 폐지론자들의 관계를 살펴봄으로써 대서양 노예무역을 다각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아프리카인을 “검은 황금”과 같은 상품으로 대하며 노예 공장, 노예 거래소를 거쳐 노예선이라는 “떠다니는 감옥”에 가두어버린 자본주의의 횡포, 유럽과 아프리카 그리고 미국을 연결하는 삼각무역으로 이익을 극대화하고자 했던 노예무역 상인들의 욕망, 낯선 곳에서 질병과 외로움 그리고 폭력을 견디며 목숨을 걸었던 선원들의 고난, 뱃동지로서 공통의 언어와 문화를 이룩하고 함께 저항한 노예들 간의 얽힌 운명, 노예들의 저항을 무력화하기 위한 선장과 선원의 테러가 모두 연결되며 하나의 이야기를 완성하고 있다.

노예선이라는 장엄한 연극이 현대인에게 남긴 숙제는 무엇인가

이렇게 하나의 이야기를 완성한 마커스 레디커의 업적은 마치 ‘책 사냥꾼’과 같은 모습이다. 그는 노예무역 “생존자”들이 남긴 수많은 “일차적 기록”을 수집하고 분석하였으며 이를 통해 가족과 민족의 이별에서부터 새로운 문화의 탄생에 이르는 긴 여정을 그려냈다. 그리고 이러한 긴 여정의 끝에서 이 책은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또 다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 이야기의 “악당과 선인”이 누구이며 “피해자와 가해자”가 누구인지 물어보는 단순한 질문으로 시작해서 자본주의가 정착된 이 시대에 노예들이 제공했던 노동력에 빚을 지고 사는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이들이 겪은 고난과 테러를 배상해야 하는지에 대한 복잡한 질문까지 이어지는 일련의 질문은 모두 쉽게 답하기 힘든 문제이다.

저자는 이야기를 마무리하면서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으로 돈의 셈법이 아닌 인류애와 정의를 강조한다. 노예무역을 창조했던 게임의 규칙인 자본주의적인 해답은 정답이 될 수 없다. 이 이야기의 마지막에는 카리브해에서 병들고 죽어가던 선원을 보살펴준 노예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저자는 이 이야기에 가득 담겨있는 “인간성”이라는 개념이 노예선의 “장엄한 연극”에 새로운 미래를 가져올 것이라고 예견하며 이 이야기를 마친다.



저자 마커스 레디커가 말하는 이 책의 집필동기와 핵심주장
* 아래 인터뷰는 다음 링크에 실린 2013년 12월 12일의 인터뷰에서 발췌하였습니다.
(원문 : http://www.booksandideas.net/On-Board-The-Slave-Ship.html )


질문 : 어떻게 노예선에 대한 책을 쓸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까?

레디커 : 제가 이 책을 처음 착상한 것은 한 사형수를 만나면서였습니다. 저는 사형제도 폐지 운동을 수년 동안 계속해왔고, 정부가 시민을 죽일 수 없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에서 사형제와 교정체제는 매우 인종화되어 있습니다. 수감된 인구와 사형수 중에서 소수자의 비율이 지나치게 높다는 뜻입니다.

(프랑스에는 매우 잘 알려져 있고 저와 수년간 작업을 함께해온) 사형수 무미아 아부-자말과 대화를 나누던 중에 그가 사형집행영장을 처음 받은 날, 자신이 죽게 될 날짜가 찍힌 종이 한 장을 처음 받은 그날에 관해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인종과 테러가 연결되는 순간이었습니다. 블랙팬서당 당원인 아부-자말은 수년간 필라델피아 경찰의 박해를 받았습니다. 필라델피아 경찰은 정치적인 이유에서 그를 정말로 죽이고 싶어 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듣는 순간 저는 “인종과 테러의 연결의 기원을 연구할 수 있겠구나, 인종과 테러의 관계는 노예선에서 시작되었구나”라고 깨달았습니다. 연구에 실제로 착수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는데 저에게 너무도 벅찬 도전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이 책은 펜실베니아의 한 사형수와의 만남에서 실제로 기원합니다.

많은 수감자들이 이 책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점을 개인적으로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펜실베니아의 감옥들의 수감자들로부터 이 책을 시설 내 도서관에 기부해 달라는 편지 여러 통을 받았고 저는 언제나 기꺼이 그렇게 했습니다.

코넬 대학 방문교수로 있을 때 어번 교도소에서 “교정시설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소규모 인원을 대상으로 해적을 주제로 이야기를 하러 갔는데 행사가 끝나갈 때쯤 수감자 중에서 선배이면서 동료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한 사람이 ‘다시 한번 방문해서 노예선에 대해서 좀더 많은 사람들에게 강의를 해줄 수 있는지’를 묻더군요. 저는 “물론입니다”라고 답했지만 실제로 다시 가게 되리라고는 생각치 않았습니다. 강의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다른 수감자 한 명이 제게 다가와서 “그거 아세요. 우리는 이곳이 현대판 노예선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역사의 연속성이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순간이라고 느꼈습니다. 그곳에서 다시 강연을 하기까지 몇 번의 제재가 있었고(몇몇 수감자들은 강연을 듣고 싶어 하는 사람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제재가 있었다고 보았습니다) 결국 80명 정도에게 강연을 하게 되었습니다. 강연이 끝나고 한 수감자가 질문을 했는데, 제가 지금껏 들어본 질문 중에서 가장 좋은 질문이라고 생각하는 것 중 하나입니다. 질문자는 소위 “백인 수감자”였는데 이렇게 물었습니다. “좋아요. 그래요. 폭력적인 강제수용이 미국의 서사에서 핵심이라는 점은 잘 알겠습니다. 노예선에서부터 바로 지금, 바로 여기 어번 교도소까지요. 그런데 이걸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요? 이게 미국사에 어떤 의미를 갖나요?” 우리는 남은 시간 동안 이 주제를 가지고 토론했고 그건 분명 제가 경험했던 최고의 토론 중 하나였습니다.

질문 : 15세기 말부터 19세기 초까지 1,400만 명이 노예가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500만 명 정도가 아프리카에서의 징발 과정, 중간항로, 그리고 아메리카로 온 첫 해에 사망했습니다. 정말 참혹한 비극입니다만, 책의 초반에 쓰셨듯이 통계는 납치, 노예화, 고문, 조사(早死) 등의 폭력을 지워버립니다. 그렇기 때문에 노예선에 대한 선생님의 민족지가 있는 것이고 선생님이 쓰신 “인간의 역사”가 있는 것이겠죠. 선생님은 수치와 그래프로 비인간화된 역사의 인간성을 되살리고자 하셨나요? 선생님이 서술한 폭력이 “추상성의 폭력”이라는 또 다른 폭력에 대한 해독제인가요?

레디커 : 아프리카에서 노예가 된 1,400만 명의 사람들 중에서 중간항로에서 500만 명 정도가 사망했고 산 채로 아메리카로 배송된 숫자는 900만 명에서 1,000만 명 정도입니다. 이것은 근대사의 핵심에 있는 엄청난 잔인성과 폭력의 사건입니다. 따라서 질문은 다음과 같이 제기될 것입니다. “대서양을 횡단하는 노예무역이라는 이 엄청난 주제에 통계적 접근을 하는 것은 인간적 비극에 가면을 씌움으로써, 그리고 현실에 대한 (일종의) 위생화로서 그 폭력에 참여하는가?”

제가 『노예선』에서 내린 답은 “그렇다, 통계적 접근은 그렇게 하고 있고 그렇게 해왔다”입니다. 흥미롭게도, 현대적인 통계 수단들은 용적 톤수와 화물을 계산했던 상인들의 시대의 통계에서 기원합니다. 상인들은 자신들이 만들어내는 인간적인 잔혹행위들로부터 스스로 격리되기 위해서 통계를 활용했습니다. 저는 오늘날까지도 지속되고 있는 노예무역의 인간적 결과들과 투쟁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역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매일같이, 서구의 모든 나라들에서, 그리고 분명 아프리카의 모든 나라들에서, 노예무역에 어떤 방식으로든 관여했던 모든 나라들에서 노예무역의 결과와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질문 : 노예제가 폭력, 모욕, 테러의 세계를 열었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선생님께서는 『노예선』에서 아프리카인들이 노예선의 갑판에 발을 내딛자마자 이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는 점을 보여주셨습니다. “채찍”, 엄지손가락 나비나사, 수갑, 배를 둘러싸고 헤엄치는 상어가 폭력을 상징하였습니다. 그러나 노예들은 봉기하기도 했습니다. 배에서의 끔찍한 폭력에도 불구하고 노예들은 어떤 종류라도 주체성(agency)을 가지고 있었습니까?

레디커 : 노예제가 처음부터 끝까지 폭력과 테러에 기초하였다는 사실을 모두가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서아프리카에서 처음 노예가 되는 순간에서부터, 노예선 위에서, 항해 도중, 그리고 농장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노예선 선장과 선원이 수백만 명의 아프리카인을 신세계로 싣고 오면서 극한의 폭력을 사용했습니다. 폭력의 형태는 구교묘 채찍, 엄지손가락 나사, 그 밖의 각종 고문 도구들, 수갑, 족쇄, 목에 두르는 사슬, 제가 “속박의 도구”라 부른 것들이었습니다. 이것들은 모든 노예선의 운용에서 매우 결정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제 책이 밝힌 사실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이렇게 계산된 테러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상상할 수 있는 가장 가혹한 조건 속에서도 하갑판의 아프리카인들이 저항했다는 점입니다. 사실 노예선이라는 비극에서 이 점이 유일한 만회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배를 쫓는 상어들에게 매일같이 시체를 던지는 등 온갖 테러에도 불구하고 아프리카인들의 자유롭고자 하는 의지와 투지를 실제로 위협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이 점이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는 지점은, 승리할 가능성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봉기를 해서 설사 배를 장악하는 데 성공하더라도 아프리카인들은 배를 항해하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아프리카인들은 계속 투쟁했습니다. 이들은 혼령이라도 고향인 아프리카로 돌아갈 수 있도록 집단 자살을 하기도 했습니다. 포로로 잡힌 모든 이를 지배하려는 이 극단적인 폭력과 테러의 논리에 맞서서 아래로부터의 강력한 주체성(agency)의 표현이 있었습니다.



책 속에서 : 우리가 알지 못했던 『노예선』의 표정들


저는 이 책을 읽는 한국의 독자들이 이 책을 통해 피로 얼룩진 자본주의의 부상을 더 깊이 이해하는 동시에 이에 대항한 용감하고 다면적인 저항을 알게 되기를 바랍니다. 노예선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항해 중이기 때문에 이러한 지식이 참으로 필요합니다. 미국과 대서양 연안의 수많은 지역에서 우리는 여전히 노예무역과 노예제도의 결과를 안고 매일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 한국어판 지은이 서문, 11쪽


배는 심오한 일련의 경제적 변화의 중심에 있었고 자본주의의 융성에 필수적으로 작용하며 새로운 영토의 장악, 수백만 명의 징용과 경제적 성장 시장으로의 재배치, 금과 은의 채굴과 담배와 사탕수수의 재배, 장거리 상거래 시장의 동반 상승, 마지막으로 세상 누구도 본 적 없던 자본과 부의 계획적 축적을 모두 이루어 냈다. 느리고 변덕스러우며 평탄하지 않지만 의심할 여지없는 저력으로 세계 시장과 국제적 자본주의 체제가 등장했다.

― 2장 노예선의 진화, 62쪽


기나긴 중간항로는 크게 두 개의 단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 단계는 아프리카 내륙이나 수로(이 사례에서는 부속선이었지만 일반적으로는 카누)를 통해 이동하며 해안의 노예선으로 향하는 것이다. … 두 번째 단계아프리카 항구에서 아메리카의 어느 곳으로 중간항로 항해를 하는 해상의 노예선 안에서 발생한다. 이 두 단계를 합쳐서 그들은 대서양 한편에서의 징용을 다른 편에서의 착취와 연결했다. … 일부 선원으로 돌아오는 경우를 제외하고 대부분 노예는 일단 아프리카를 떠나는 항해를 시작하면 영원히 돌아올 수 없었다.

― 3장 중간항로를 향한 아프리카적 행로, 97쪽


올라우다 에퀴아노라는 이름은 노예선에서 빼앗겨버렸고 이 이름을 되찾는 데 35년이 걸렸다. 그는 “아프리카에서 스노우급 함선을 탔을 때 나는 마이클이라고 불렸다”고 기록했다. 다음의 버지니아로 향하던 슬루프급 함선에서 그의 이름은 제이콥이었다. 마지막으로 부지런한 꿀벌호에 승선했을 때 그의 새로운 주인 파스칼 선장은 그에게 구스타부스 바사라는 네 번째 이름을 주었다.

― 4장 올라우다 에퀴아노 : 놀라움과 공포, 155쪽


그중에 가장 야만적이고 포악한 영혼은 나무 세계의 통치자이자 “절대적인 명령권을 가진” 선장에게 깃들었다. 노예무역을 “보면서 자란” 이들은 지식을 얻는 과정에서 마음마저 함께 담금질했다. 뉴턴은 “많은 선장이 이 사업을 보며 자랐고 노예선의 주인이 되기 전에 견습 선원에서 평선원과 항해사라는 몇 단계를 겪으면서 무역에 관한 지식과 함께 점점 잔인한 성향을 얻었다”라고 설명했다. 잔인함을 습득하는 것은 무역 자체를 배우는 것의 본질과도 같았다.

― 7장 선장이 만든 지옥, 256쪽


불가사의했던 노예선은 이제 그들 스스로 “검은 민족”이라는 정체성을 발견한 이들이 창의적인 저항을 이어가는 곳이 되었다. 막강한 권력의 변증법을 통해 노예선에 승선하여 고통받는 인간의 공동체는 도전적이고 탄력적이며 단연코 생명이 넘치는 아프리카계 아메리칸 문화 그리고 범아프리칸 문화의 탄생을 낳았다.

― 9장 노예에서 뱃동지로, 365쪽


노예선의 갑판에서 진행된 이 연극은 노예선과 아주 멀리 떨어져 있던 사람들의 자본과 권력으로 인해 시연 가능했던 것이며 어떤 이들은 심지어 이것이 계획된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는 점이다. 노예선에 승선했던 선장과 선원 그리고 아프리카 노예들이 그려낸 연극은 사실 전 세계에 불어 닥친 자본주의의 부상과 발전이라는 더 큰 연극의 일부에 불과했다.

― 후기 : 끝없는 항해, 415쪽



추천사


3세기가 넘는 시간 동안 노예선은 수백만 명의 아프리카인을 납치하여 대서양을 건너왔다. “나무로 만든 세계”에서 선원과 노예들은 모두 함께 난파와 전염병 그리고 굶주린 상어에 대한 공포에 항상 노출되어 있었다. 전쟁과 상업을 위한 잔인한 도구인 노예선은 서구 사회의 형성을 도왔지만, 아직도 그 실상은 비밀에 묻혀 있다. 마커스 레디커는 18세기에 물 위를 “떠다니는 지하 감옥”의 가장 어두운 구석을 밝히면서 그 생생한 고통과 생존의 이야기를 통해 바다 위에서 태어난 아프리카계 미국 문화를 그려 내고 있다.

― 『LA 타임스』 북 리뷰


저자는 이 기념비적인 업적을 통해 노예제도의 유산 중 사라진 것과 여전히 남아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시기적절하고도 강렬하게 그리고 있다.

― 『더 네이션』 지


레디커는 온 힘과 열정을 다해 네 개의 노예선 드라마를 완성했다. … 그는 어둠의 한가운데에서 ‘근대 의식의 첨단을 항해하는 유령선’을 통해 인종과 계급 그리고 노예제도의 유산을 탐구했다.

― 『볼티모어 썬』


절묘하고 기괴한 이야기

― 『뉴욕 썬』


마커스 레디커는 선장과 선원 그리고 노예가 남긴 글을 풍부하게 발굴하여 ‘추상성의 폭력’을 피해 노예선의 역사를 그릴 수 있었다.

― 『시카고 트리뷴』


노예선은 근대성을 완성시킨 기계였다. 노예선이 대서양을 건너가면서 세상은 변하였고 유럽과 아프리카 그리고 아메리카들이 연합하였다. 이에 따라 막대한 부와 말로 다 할 수 없는 비극이 생겨났으며 이 지옥의 항해는 여전히 우리의 삶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대서양 해양사에 관한 걸출한 역사가인 마커스 레디커는 물질적 변화와 그에 따른 도덕적 불화에 관한 놀라운 지식으로 역사를 풀어냈다. 『노예선』은 깊이 연구되었고 훌륭하게 공식화되었으며 도덕적으로 잘 갖추어진 최고의 역사이다.

― 아이라 벌린, 메릴랜드 대학교 종신교수


이 책에 대한 나의 존경심은 쉽게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이다. 이 책의 중심에는 나무로 만들어진 기관과 밧줄 그리고 돛으로 채워진 테러의 도구, 노예선이 있다. 이 어둠의 중심에서 마커스 레디커는 4세기에 걸친 시기와 세 개의 대륙을 아우르는 이야기를 펼친다. 그는 헌신적인 연구와 깊은 인류에 관한 염려 그리고 높은 수준의 서사적 힘을 결합하여 자신의 과업을 완성했다. 그는 개인 경험의 현실성을 강조함으로써 공포에서 벗어나 추상성의 편안함에 머무르려는 인간의 경향성을 이겨냈다. 우리는 모두 이러한 점에서 그에게 큰 빚을 진 것이다. 광범위한 내용과 인간성을 다루는 그의 태도로 볼 때 대서양 노예무역에 관한 이 책의 내용은 쉽게 대신할 자료를 찾기 힘들 것이다.

― 배리 언스워스, 『신성한 굶주림』의 저자


『노예선』은 예상하지 못한 거대한 정서적 충격을 주었다. 책을 읽으면서 4세기에 가까운 기간 동안 노예선을 타고 끌려왔던 나의 아프리카 선조와의 끊을 수 없고 변화하는 유대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의 용기와 지성, 자긍심 그리고 자유를 향한 격한 몸부림(또한, 잔인하게 얽매인 채 공동체를 형성하려는 노력)에 나는 오랫동안 깊이 감동해서 침대에서 책을 놓을 수도 없었다. 나는 탐욕의 광기와 사슬에 얽매인 존재에게 절대적인 위력을 휘두르는 가학성 그리고 선천적인 자유를 지배하고 점유하고자 하는 폭력에 관해 생각해 보았다. 모든 아메리카인과 더불어 서양 세계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실제로 수세기 동안 지속되어 현재에 이르기까지 노예무역의 끝없는 야만성을 통해 이득을 얻었거나 고통을 받았으며, 이 책은 그들에게 주어진 가장 중요한 숙제이다. 중간항로를 견디고 살아남아 불굴의 영혼과 광휘를 신세계로 옮겨온 존경하는 선조인 아프리카인들에게 백인, 서양인, 부유한 사람들이 행한 끔찍한 현실을 이해하고 논의하지 않고는 우리의 세상에 균형을 가져올 수 없다.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 공동의 해답을 내어놓기 위해서 필요한 단 하나의 질문이다.

― 앨리스 워커, 『더 컬러 퍼플』의 저자


『노예선』은 『나를 운디드니에 묻어 주오』라는 책처럼 우리가 역사와 우리 자신을 보는 방식을 변화시킨다. 이 놀라운 작품에서 마커스 레디커는 불가능할 것처럼 보이는 것을 이루어 냈다. 그는 우리가 수세기에 걸쳐 상상할 수도 없었던 잔인함을 상상해 볼 수 있도록 해 주었다. 또한, 그는 우리가 노예제도의 폐지를 이끈 저항에 관해 상상해 볼 수 있도록 해 주었다. 자서전을 통해 중간항로 항해의 시련을 기록한 노예 올라우다 에퀴아노와 반-노예제도적 태도를 가진 선원이자 시인 제임스 필드 스탠필드, 노예선 선장에서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작곡한 폐지론자로 변모한 존 뉴턴과 같은 잊지 못할 인물의 이야기가 그려졌다. 레디커는 학자의 섬세함과 시인의 눈 그리고 반란군의 심장으로 글을 썼다. 그는 괴물 같은 불의의 이야기를 통해 정의를 실현하였다.

― 마틴 에스파다, 『시의 공화국』의 저자


『노예선』은 진정 장엄하면서도 혼란스러운 책이다. 혼란스러움의 이유는 단지 이 책이 인류가 맞이하고 있는 자유 시장의 폭력과 야만성을 자세히 그렸기 때문만이 아니라 노예선 선원을 포함해서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모든 배우가 실제 인간이라는 점을 우리에게 상기시켜 주고 있기 때문이다. 『노예선』은 편한 마음으로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지만, 과거에 노예선을 타고 항해를 떠난 수백만 명의 사람과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선택권은 없다. 우리가 근대와 인종주의 그리고 세계화된 경제가 어떠한 착취를 배경으로 형성되었는지 이해하고자 한다면 이 역사를 받아들이는 법을 배워야 한다.

― 로빈 D. G. 켈리, 『자유의 꿈 ― 흑인에 관한 급진적인 상상』의 저자


『노예선』은 노예무역의 현실을 그 어느 때보다 생생하고 설득력 있게 전하는 역작이다. 나는 사람들이 근대 세계의 탄생에 관한 중요한 이야기를 이해하고자 하는 한 이 책은 계속해서 읽힐 것이라고 확신한다.

― 로빈 블랙번, 『신세계 노예제도의 탄생』의 저자


아름다운 문장으로 쓰이고 철저하게 연구된 이 책은 노예선이라고 알려진 특별한 형태의 지옥에 함께 모인 선장과 선원 그리고 노예에 관한 잊을 수 없는 초상을 제공한다. 이것이 바로 최고의 대서양 역사이다.

― 로버트 함스, 『근면』의 저자


마커스 레디커는 18세기 대서양 세계에 관한 가장 저명한 역사가 중 한 사람이며 노예선을 통해 해상 노동자에 관한 탁월한 지식과 자본주의 부상에서 노예무역의 역할에 관한 깊은 이론적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

― 스티븐 한, 퓰리처 상을 수상한 『발아래의 국가』의 저자


이 대서양의 서사는 노예선이 인간 화물을 노예선으로 변모시키는 ‘거대한 기계’라는 점을 훌륭하게 밝혀내고 다양한 아프리카인의 삶에서 자유인과 노예, 선택과 절박한 투쟁의 이야기를 정확하게 묘사했다.

― 패트릭 매닝, 『노예제도와 아프리카인의 삶』의 저자


마커스 레디커는 기존에 견줄 데 없었던 허먼 멜빌과 같이 대항해 시대에 대양을 항해하던 비좁은 함선에서 일어나는 삶의 당면한 인간극과 세계적인 맥락을 모두 잘 이해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진기한 능력을 활용해 우리를 노예선의 하갑판으로 초대했으며 중간항로의 비인간적인 고난을 겪는 인간의 표정을 우리에게 보여 주었다.

― 피터 H. 우드, 『새롭고 이상한 땅 ― 식민지 아메리카의 아프리카인』의 저자


대서양의 아래로부터의 역사를 연구하는 가장 중요한 역사가의 수작이 탄생했다. 우리는 이 책에서 고통스러운 비명과 상실의 신음, 반란의 함성을 들을 수 있다. 마침내 노예였던 사람들이 버려진 선원들에게 놀라운 은총을 베푸는 장면에 이르면 이 감명 깊은 책에서 정의와 회복에 대한 요청이 터져 나온다.

― 피터 라인보우, 『마그나카르타 선언』의 저자



지은이·옮긴이 소개


지은이

마커스 레디커 (Marcus Rediker, 1951~ )

미국의 교수이자, 역사가, 활동가이다. 반더빌트 대학을 자퇴하고 3년 동안 공장 노동을 했으며 1976년 버지니아 커먼웰스 대학에서 공부했다. 펜실베니아 대학에서 역사학으로 석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피츠버그 대학 역사학과에서 대서양사 강의를 하고 있다. 아메리카 초기의 역사, 대서양사, 해양사, 해적의 역사, 사회사와 문화사 이론 등의 분야에서 다수의 논문과 저서를 냈다. 2001년 『히드라』(갈무리)로 국제노동사협회의 국제노동사 상과 1988년 『악마와 검푸른 바다 사이에서』(까치)로 존 호프 프랭클린상 등 다수의 상을 수상했다. 저서로 Villains of All Nations(2005), The Amistad Rebellion(2012), Outlaws of the Atlantic(2014), The Fearless Benjamin Lay(2017), 『노예선 : 인간의 역사』(갈무리, 2018) 등이 있고, 공저로 Who Built America?(2007), Many Middle Passages(2007), Mutiny and Maritime Radicalism in the Age of Revolution(2013) 등이 있다. 2014년에는 영화제작자 토니 버바와 함께 저서 The Amistad Rebellion을 기초로 한, 시에라리온의 여행 기록을 담은 다큐멘터리 <아미스타드의 유령>을 제작했다. 그는 아미스타드호의 아프리카인들을 배에 싣고 신세계로 출항했던 노예무역 공장 롬보코의 잊혀진 폐허와 관련된 지역의 조사를 진행하고 기억에 관해 마을 원로들을 인터뷰하였다. www.marcusrediker.com


옮긴이

박지순 (Park Ji Soon, 1983~ )

대구대학교에서 재활심리학을 전공하며 박사학위를 받았다. 장애인을 위한 차별금지 및 심리적 지원에 관한 연구를 주로 진행하였으며 현재는 부산대학교 교육학과 BK21사업단의 연구교수로 일하며 장애인과 빈곤가정 학생의 교육적 평등에 관한 국제적 쟁점을 다루는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또한 인종과 지역, 성별, 장애와 같은 다양한 차별 요소와 관련된 주제의 글을 주로 번역하고 있다.



목차


한국어판 지은이 서문 9
서막 17

1장 삶과 죽음 그리고 공포의 노예무역 31
톰바 대장 32
“갑판장” 34
무명 34
“사라” 36
사환 사무엘 로빈슨 38
선원에서 해적으로, 바솔로뮤 로버츠 40
선원에서 하찮은 무역상으로, 니콜라스 오웬 41
윌리엄 스넬그레이브 선장 43
윌리엄 왓킨스 선장 45
제임스 프레이저 선장 47
선장에서 상인으로, 로버트 노리스 49
상인 험프리 모리스 51
상인 헨리 로렌스 54
“탐욕스러운 강도” 56

2장 노예선의 진화 60
말라키 퍼슬스웨이트 : 노예무역의 정치산술, 1745년 65
조셉 마네스티 : 노예선 건조, 1745년 69
안소니 폭스 선장 : 노예선의 선원, 1748년 76
토마스 클락슨 : 노예무역 함선의 다양성, 1787년 82
존 릴랜드 : 노예선에 대한 묘사, 1801년 87

3장 중간항로를 향한 아프리카적 행로 94
아프리카에서의 노예무역 97
세네감비아 100
시에라리온과 바람막이 해안 104
황금 해안 107
베냉만 110
비아프라만 113
서부 중앙아프리카 117
포로의 사회적 초상 121
대약탈 : 루이스 아사-아사 125
납치 : 우콰소우 그로니오소우 127
돌아올 수 없는 시점 129

4장 올라우다 에퀴아노 : 놀라움과 공포 131
에퀴아노의 고향 133
납치 137
미지의 선상에서 141
중간항로 144
바베이도스 147
긴 항해 149
흑과 백의 공포 152

5장 제임스 필드 스탠필드와 떠다니는 지하 감옥 157
영국의 뱃사람이 된다는 것 159
사슬 엮기 162
야만적인 규율 집행 167
잔인한 악마 169
“자랑스러운 베냉”에서 171
중간항로 175
어느 끔찍한 비명 180
진정한 계몽 181

6장 존 뉴턴과 평화의 왕국 185
반란 선원에서 기독교인 선장으로 188
첫 항해, 1750년~1751년 193
두 번째 항해, 1752년~1753년 204
세 번째 항해, 1753년~1754년 211
길을 잃은 자와 찾은 자 215

7장 선장이 만든 지옥 218
배에 이르는 길 220
상인 자본 222
“노예선의 의장” 232
깡패 짓 236
장사꾼 240
형제 선장 244
교도관 247
노예무역의 야만적 영혼 252

8장 거대한 선원 집단 273
항구에서 배로 277
일반 선원의 문화 282
뱃일 284
선원, 노예 그리고 폭력 292
사망자 명단 297
반란과 탈주 301
항해의 끝 304
폭동 : 리버풀, 1755년 307
춤추던 선원의 이야기로 돌아가서 313

9장 노예에서 뱃동지로 317
승선 320
작업 323
싸움 326
죽음 329
바벨탑 쌓기 332
하갑판의 의사소통 335
노래 338
저항 : 음식 거부 340
배 밖으로 뛰어내리기 344
폭동 348
아프리카로의 귀향 358
결속 361

10장 노예선 브룩스호의 긴 항해 366
왜 브룩스호였을까? 368
첫 번째 그림 : 플리머스 370
전이 : 필라델피아와 뉴욕 373
개량된 그림 : 런던 376
“일차적 해양 지식” 378
브룩스호에 관한 논쟁 386
새로운 논쟁 391
충돌 395
마지막 항구 401

후기 : 끝없는 항해 404
“가장 장엄한 연극” 재고 409
아래로부터의 화해 412
죽음의 셈법 414

감사의 말 419
옮긴이의 말 423
후주 425
그림 출처 477
인명 찾아보기 479
용어 찾아보기 4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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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드라 : 제국과 다중의 역사적 기원』(마커스 레디커, 피터 라인보우 지음, 정남영, 손지태 옮김, 갈무리, 2008)

제국주의 초기 식민지 건설과 노예제 상황을 역사적 사료를 통해 밝혀낸 역사서이다. 공식적인 역사서에서는 만날 수 없는 ‘장작 패고 물 긷는 사람들’, 흑인 하녀들, 혁명적인 해적 선장, 아프리카 노예들, 진정한 아메리카 혁명의 주역인 잡색 부대 등을 만날 수 있다. 히드라는 ‘헤라클레스 신봉자’들에게 맞서 싸운 선원들, 노예들, 평민들 즉 다중(multitude)에게 붙여진 이름이다. 17세기 초 영국 식민지 확장의 시작부터 19세기 초 도시중심의 산업화에 이르기까지, 지배자들은 점점 세계화·지구화되는 노동체계에 질서를 부과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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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그나카르타 선언 : 모두를 위한 자유권들과 커먼즈』(피터 라인보우 지음, 정남영 옮김, 갈무리, 2012)

저명한 역사가 E. P. 톰슨의 제자인 미국의 역사학자 피터 라인보우의 대표작. 인류의 역사 속에서 오랫동안 전제(專制)를 제한해 온 방책들 ― 인신보호영장, 배심재판, 법의 적정 절차, 고문 금지 그리고 커먼즈(the commons) ― 이 어떻게 축소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1215년 이후 이러한 방책들의 원천인 마그나카르타의 역사적 궤적을 제시하면서, 사유화의 탐욕, 권력욕, 제국의 야망이 국가를 사로잡을 때마다 예의 오래된 권리들이 어떻게 무시되는가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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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번과 마녀 : 여성, 신체 그리고 시초축적』(실비아 페데리치 지음, 황성원, 김민철 옮김, 갈무리, 2011)

자본주의의 역사에 있어서, 남성이 임금 노동자로 탈바꿈된 것 만큼 여성이 가사노동자이자 노동력 재생산기계로 되었다는 점 역시 중요하다는 것을 역설하는 페미니즘 역사서이다. 저자는 자본주의의 물질적 토대를 닦았던 이 폭력적인 시초축적 과정에서 마녀사냥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건이었음을 밝힌다. 이 책에서는 공식적인 역사서나 맑스주의적 관점에서 쓰인 역사책에서도 다뤄지지 않는 산파 여성들·점쟁이 여성들·식민지의 원주민 여성 노예들·여성 마술사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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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지스틱스 - 전지구적 물류의 치명적 폭력과 죽음의 삶』(데보라 코웬 지음, 권범철 옮김, 갈무리, 2017)

로지스틱스(logistics)는 비즈니스의 물류와 전쟁의 병참을 가리키는 말이다. 로지스틱스는 상식적인 수준에서뿐만 아니라 로지스틱스에 대한 학술적 연구에서도 상품을 이동시키는 순수 기술적인 문제로 다루어져 왔다. 그렇다면 이 책은 두 분야, 즉 전쟁과 비즈니스 중 무엇을 다룬 책일까? 이 책은 유통 기술에 대한 책이 아니며 전쟁술에 대한 책도 아니다. 저자는 로지스틱스가 순수 기술적인 방편이 아니라 “완전히 정치적인” 기획이라고 주장하며 로지스틱스를 현대 세계의 중심적인 문제로 다룬다.

2018.02.27 |




보도자료 


부채 통치

Gouverner par la dette



현대 자본주의의 공리계

『부채인간』의 저자 마우리치오 랏자라또의 부채론 2부작의 완결판!
부채가 현대 자본주의의 공리계가 되어 통치 원리로 기능한다는 것을
체계적으로 그리고 설득력 있게 서술하고 있는 책

위기의 시기에 빚을 진 인간은 어떻게 되는가? 그의 주된 활동은 무엇인가?
답은 아주 간단하다. 그는 빚을 갚는다.
자본주의에서 부채는 무한하고 상환 불가능하게 되었으며, 예속과 종속이라는 정치적 관계를 표현한다.



지은이  마우리치오 랏자라또  |  옮긴이  허경  |  정가  18,000원  |  쪽수  304쪽

출판일  2018년 2월 23일  |  판형  신국판 변형(139x208) 무선

도서 상태  초판  |  출판사  도서출판 갈무리  |  총서명  Mens, 아우또노미아총서 59

ISBN  978-89-6195-178-4 93300  |  CIP제어번호  CIP2018005324

도서분류  1. 사회과학 2. 사회학 3. 경제학 4. 정치학 5. 철학

보도자료  180308-부채통치-보도자료.hwp 180308-부채통치-보도자료.pdf


인터넷서점 바로 가기 : 알라딘 교보문고 YES24 인터파크 반디앤루니스 영풍문고



『부채 통치』에서 랏자라또는 질 들뢰즈, 펠릭스 과타리, 안또니오 네그리, 미셸 푸코에서부터 데이비드 그레이버, 칼 슈미트에 이르는 광범한 분야의 사상가들과 대면하면서, 극도로 비참한 현 상황에 대한 집단적 거부를 하기 위해 우리가 연합할 때가 왔다고 주장한다.



『부채 통치』 간략한 소개


모든 전문가, 정치가, 언론인이 한목소리로 말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단언이다. 부채가 공적 재정을 파탄시키고, 성장을 저해하며, 실업을 야기한다! 시장을 살리고 번영을 구가하고 싶은 국가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부채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그러나 마우리치오 랏자라또의 진단은 이와는 정반대이다. 자본주의 체제하에서의 부채는 결코 경제적·재정적 문제에 그치지 않으며, 늘 예속화·종속화로 귀결되는 하나의 정치적 관계이다. 부채는 무한한 것, 상환 불가능한 것, 결국 조절 불가능한 것이 되어, 사람들을 길들이고 구조개혁을 강요하며 권위주의적 통치를 정당화하는 도구, 달리 말해 자본의 이익을 따르는 ‘기술적 통치’의 이름으로 민주주의를 억압하는 도구로 기능한다.

2008년의 경제 위기는 조세 정책을 통한 사회적 부의 거대한 몰수 행위를 조직적으로 수행하는 ‘새로운 국가 자본주의’의 형성을 촉진했을 뿐이다. 양차 대전 직전의 불안한 상황으로 복귀하는 듯이 보이는 오늘의 상황에서, 실로 모든 것은 ― 교육의 경우처럼 ― 이제까지는 상대적 자율성을 누리던 영역마저도 삼켜버리며 자신을 삶 그 자체와 동일시하는 데에 이른 금융 자본에 의해 전적으로 통제되고 있다. 오늘날 눈앞에 가시화되는 위기와 재앙에 직면한 우리에게 자본주의적 가치화 그 자체로부터의 근본적 일탈이 긴요하고도 시급한 문제로 떠올랐다. 이는 우리의 삶, 실존, 기술을 다시금 우리의 것으로 되돌리기 위해, 거부의 가능한 전선을 재구축하기 위해, 실로 필요불가결한 일이다.



『부채 통치』 출간의 의미


하느님에 대한 죄(부채)와 은행에 대한 죄(부채)

마우리치오 랏자라또의 『부채통치』는 니체의 『도덕의 계보』를 잇는 책이다. 니체는 무엇을 말했는가? 니체는 중세의 하느님에 대한 죄(부채)가 근대에 들어서면서 사회에 대한 죄(부채)가 되었다가, 오늘날 은행에 대한 부채(죄)로 바뀌었다고 말한다.

중세의 인간은 하느님의 은혜로 태어나서 살다가 ‘어리석게도’ 죄를 짓는다. 죄를 지었으니 갚아야 한다. 그것이 벌이다. 그는 생전 지상의 온갖 불행을 겪고 사후의 지옥을 가게 될 것이다. 하나님이 없는 근대의 인간은 사회의 은혜로 태어나 살다가 ‘악하게도’ 죄를 짓는다. 모두가 다 같이 잘 살고자 만들어놓은 사회의 규칙을 어떤 개인이 어기는 죄를 범한 것이다. 이는 기본적으로 자기만 잘 살고 타인을 배려하지 않으려는 이기심에서 나온 것이니 악한 것이다. 따라서 악한 인간은 공공의 적이다. 공공의 적은 사회 외부의 적과 마찬가지로 사회를 파괴하고 공격하는 자이다. 우리가 사회 외부의 적들에게 관용을 베풀지 않듯이 우리는 사회 내부의 적들에게 관용을 베풀어서는 안 된다. 사회 내부의 적인 악한 개인들은 모두가 합의한 사회계약의 위반이라는 가장 큰 죄를 지었으니 벌을 받아야 한다. 그는 감옥에 가게 되거나 또는 목숨을 잃게 될 것이다.

중세의 신과 근대의 사회계약을 모두 부정한 니체 이후, 오늘날 사람들이 죄(부채)를 짓는 대상, 따라서 죄(부채)를 갚아야 할 대상은 은행이다. 오늘날 죄를 지은 자들, 곧 부채를 가진 자들은 어리석은 자들이자, 악한 인간이자, 그 무엇보다도 ‘한심한’ 인간이다. 한심한 인간인 오늘의 개인 곧 채무자는 은행 곧 채권자에 대해 자신의 죗값, 곧 빚을 갚아야 하는 한심한 인간이다. 그가 한심한 이유는 오늘날 현대세계의 은행이 가정하는 인간, 곧 경제적 인간(homo economicus), 달리 말해 스스로와 타인, 그리고 세계를 관리하는 인간, 합리적 인간이 되지 못한 죄를 지었기 때문이다. 부채를 진 자, 곧 채무자는 경제적 인간, 곧 관리하는 인간이자 합리적 인간이어야만 할 자신의 의무를 다하지 못한 자이다.

죄인을 만드는 기준에 대해 질문을 던져 보자

이제 빚을 진 자에게는 온갖 종류의 비난이 쏟아진다. 자기 돈, 자기 씀씀이도 관리하지 못한 자, 자기 관리도 못하면서 그저 자기 욕망의 즉물적 충족에 눈이 먼 자, 욕망의 노예, 아직 정신 못 차린 자, 현실을 모르는 자, 따라서 그는 어리석은 자이자, 부도덕한 자, 한마디로, 여러 모로 한심한 놈이다.

그러나 니체를 따라 이렇게 생각해보자. 아니, 이런 질문을 스스로, 그러니까 나의 힘으로, 던져 보자. 나는 신의 자식인가, 나를 신이 창조한 것이 맞나? 신이 자신들의 권력을 정당화하기 위한 사제 계급의 장치라면? 나는 나를 착취하는 자들의 신을 믿고 그들에 의해 원죄를 지었다고 심판받고 결국은 그들의 신 앞에서 벌까지 받아야 하는 것일까? 내가 원죄를 짓긴 지었나? 나는 따라서 벌을 받아야 하나? 아니 하느님이란 게 확실히 있긴 있나? 이렇게 말하는 자는 사회의 평범한 정상인들에 의해 죽임을 당했을 것이다. 근대의 사회계약론에서도 프랑스 바칼로레아 철학시험을 보는 고3처럼 질문을 던져 보자. 내가 계약을 한 적이 있나? 그 계약은 누가 했나? 내가 북한에 태어났으면 나는 그 사회의 계약을 믿고 준수하고 따라야만 하는가? 질문을 던지면 왜 안 되나? 그러나 여기는 남한이니 그렇게 세뇌된 조작이 아니라 모두가 자유롭고 민주적으로 합의한 것이므로 경우가 다른가? 그런데, 그건 누가 정했나? 어떤 기준으로 어떻게 정해진 걸까? 실은 사회계약이 신 없는 사회의 자기 정당화 장치가 아닐까? 진실과 정의 그리고 민주주의에 대한 해석의 독점, 자연과 당연에 대한 해석의 독점이야말로 민주주의적이지도 자유롭지도 평등하지도 않은 방식으로 이미 정해져 내게 부과되는 것이 아닐까? 민주주의에 대하여 나와 다른 정의를 가지고 있으면 민주주의자가 아닐까? 나와 다른 방식으로 사랑하면 사랑하는 게 아닐까? 민주주의와 사랑에 대하여, 자유와 정의와 평등에 대하여, 너는 나와 다른 정의를 가지면 안 되는 것일까?

빚진 자에 대한 비난은 정당한가?

오늘날 은행에 대하여 부채를 진 자들은 어떨까? 상환능력이 한 달에 500만 원인 사람에게 1000만 원의 한도를 갖는 카드를 발급해주고 1년 후 결국 이 사람이 카드 값을 내지 못해 신용불량자가 되는 것은 그가 경제적 인간, 합리적 인간이 못되어서만 그런 것일까? 또는 이 사람이 신용불량자가 되기 직전에 장기 대출, 카드론 대출을 받아 일단 위기를 넘기고 향후 상당기간 동안, 오로지, 엄청난 이자가 붙는 이 카드론 대출을 갚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삶, 저녁이 없는 삶을 사는 것은 온전히 이 사람만의 책임일까? 또는, 그 결과를 정확히 모른 채, 이 사람이 자기 아파트를 사기 위해, 또는 대학을 들어가기 위해, 다니기 위해, 졸업하기 위해 학자금 대출을 받아 졸업을 하고 10년 동안 그 빚을 갚는 것은 남의 돈을 썼으니 갚아야 하는 것, 그러니까 당연한 일일까? 혹은 이 똑 같은 사람이 부모님과 자식이 아프고 정말 급한 돈이 당장 필요하여 다급한 심정, 그러니까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제2금융권’ 대출을 받아 평생을 그늘에서 살며 주민등록이 말소되어 조폭들에게 쫓기며 산다면, ‘주제 파악도 못하고’ 대학을 간 이 사람, ‘자기 욕망을 조절하지 못하고’ 미리미리 충분한 저축을 못해 놓은 이 사람은 다만 어리석고 한심한 판단력을 가졌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일까?

99%가 빚쟁이인 사회의 구조적 원인은 무엇일까

신자유주의는 경제적 자유주의의 확장 버전이다. 신자유주의는 삶의 일부인 경제적 부분의 가치를 삶의 여타 영역 모두에 대한 전면적인 평가 기준으로 격상시킨다. 이러한 논리에 따르면, 다음과 같은 논리가 성립한다. 오늘 네가 경제적 안정을 갖지 못했다면, 너는 비합리적인 삶을 살아왔다. 또는 너는 비합리적 인간이다. 경제적 합리성이 없다는 것은 현실 감각이 없다는 것이고, 현실감각의 결여는 이 경우 경제적 합리성, 나아가 합리성 자체의 결여와 같은 말이다. 너는 비합리적이다. 그러므로 너는 할 말이 없다. 네 죄는 네가 잘못해서 일어난 일이므로 온전히 네가 갚아야 한다. 아무도 너에게 그런 일을 강요하지 않았다. 네가 한 일은 온전히 네가 한 일이다. 소비도 네가 한 것이고, 대출도 네가 받은 것이다. 너는 자유고 네가 한 모든 일은 너의 책임이다. 그러니 네게 일어난 모든 일, 너의 현실은 온전히 오롯이 너의 책임, 너만의 책임이다.

그런데, 이런 논리에 무슨 문제라도 있다는 말인가? 조금 야박하기는 하지만, 그럼 자기가 자기 소비 규모를 관리를 못하는 자, 자기 수입 이상의 돈을 쓴 자, 갚을 수 있는 능력 이상의 돈을 먼저 빌려 써놓고 갚지 못하는 자를 어쩌란 말인가? 그것이 신의 책임인가, 국가와 사회의 책임인가, 그것도 아니면 은행의 책임인가? 결국 당사자의 책임이 아닌가? 이러한 합리적 질문에 대해 랏자랏또는 이렇게 말한다. 좋다, 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신용불량자가 한 사회의 1% 또는 5%가 아니라, 20%, 30%, 50%, 나아가 대다수라면, 그래도 이것이 오직 개인의 문제인가? 가난한 가족은 일을 안 하고 놀기만 해서 가난한가? 가난한 나라는 일을 열심히 안 하고 놀아서 못 사는가? 이미 수십, 수백 년, 아니 수천 년 동안 쌓여 온 사회와 국가 내부의, 또는 국가들 사이의 구조적 문제는 아닌가?

은행과 부자의 안위를 최우선하는 사회에 문제제기를 하자

은행이 가장 좋아하는 고객은 돈을 빌리지 않는 고객이 아니라, 돈을 많이 빌리고 (원금은 물론이고, 특히, 이자를, 이자까지) 착실히 갚는 고객이다. 그러나 실은 갚지 못하더라도 좋다. 가령 단기 대출, 현금 서비스를 갚지 못하는 고객은 돈을 갚지 않을 수 없으므로, 다른 데서 체면을 구겨가며 빌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카드에서 고리의 장기대출, 카드론 대출을 받아 단기 대출 현금서비스를 갚을 것이다. 어떤 경우에도 은행은 손해를 보지 않는다. 국가 간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독일 은행에 대한 빚을 갚아주기 위해 스페인과 그리스가 국가부도 사태를 맞는다. 그리스와 스페인의 국민들은 독일 국민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일하는데도, 그들이 버는 돈은 자신들의 복지가 아니라 독일의 은행 부채를 갚는 데 사용되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은 당연한가? 그런데, 사실은 좀 이상하지 않은가? 왜 덜 일하는 자가 열심히 일하는 자보다 여유롭고 풍족하게 사는가? 어떻게 해서 덜 일하는 자, 보다 정확히 말하면 잘 사는 집안, 잘사는 나라에 태어난 자, 한마디로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자가 더 많은 시간을 일하는 자, 더 열심히 일하는 자보다 더 여유롭고 안락한 삶을 누리는가? 대안도 없으면서 이런 책을 쓰는 저자는 무엇인가? 이 모든 것은 이 세계의 변화 불가능한 ‘필연적’ 운행법칙, 또는 ‘불가피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자본의 운동법칙인가?

그렇다. 정말 ‘대안’은 없는 것일까? 원래 없는 것일까? 아니면, 아직 없는 것일까? 마우리치오 랏자라또의 『부채통치』는 그 대안이 ‘원래’ 있을 수가 없는 것이 아니라, 다만 ‘아직’ 없을 뿐이라고 말하는 책이다. 이 책은 그 대안을 사유하려는 책, 세계의 지금과는 다른 운동법칙을 사유하려는 책, 아직 도래하지 않은 미-래(未-來)를 사유하려는 책이다.



책 속에서 : 『부채 통치』와 현대 자본주의의 공리계


부채인간의 통치에 사용되는 주요한 무기는 세금이다. … 통화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세금은 상업적이 아닌 직접적으로 정치적인 기원을 가질 뿐이다.

― 1장 들어가면서 ― 주요 개념들, 15쪽


신문을 읽고 전문가들이나 정치가들의 말을 듣다 보면, (노동자, 은퇴자, 실업자, 환자, 사회보장 대상자 등) 모든 사람이 유죄이다. 오직 금융업자들 그리고 은행들만을 제외하고!

― 2장 이윤·금리·세금, 세 가지 포획 기구, 54쪽


미국의 대학생들은 금융 사회의 이상을 표상한다. 이 사회적 집단은 다수의 채무자들과, 소수의 부유한 채권자 자식들로 구성되어 있다. 지식의 공장에서, 계급 분할은 더 이상 자본가와 임금노동자 사이의 대립이 아닌, 채무자와 채권자 사이의 구별 짓기를 통해 이루어진다. 이는 자본주의 엘리트들이 사회 전체에 확산시키고 싶어 하는 모델이다.

― 3장 부채사회의 모델로서의 미국 대학, 80쪽


질서자유주의는 통치성 기술의 새로운 구성 과정을 열어젖힌다. 질서자유주의적 통치성은 국가를 제조해 내야 하고, 국가는 측정 및 ‘포획 장치’로서의 시장이 존재하고 또 기능할 수 있도록 사회를 제조해 내야 한다. (푸코가 말하는) ‘경제’ 국가와 ‘사회의 경제화’라는 이중의 조건이 충족되지 못할 경우, 시장은 결코 존재할 수 없다. 시장의 자율성과 자발성은 생산되는 것으로, 그것들은 대부분 국가의 개입과 그 성공 여부에 달려 있다.

― 4장 통치성 비판 1 ― 자유주의적 통치성은 과연 존재했는가?, 128쪽


금융의 공리계는 한편으로는 세계화된 경제에 의해, 다른 한편으로는 국가나 (학교, 복지, TV 등과 같은) 집단적 장치 혹은 대량소비만이 아니라, 종교적 전통주의, 인종주의, 국수주의, 성차별주의 및 애국주의 등 다양한 형태의 신 -복고주의를 포함하는 (재영토화의) 현실화 모델들에 의해 구축된다.

― 5장 통치성 비판 2 ― 자본과 흐름의 자본주의, 174쪽


신경증은 발달한 자본주의의 병리학이다. 21세기의 ‘질병’은 ‘우울증’ 안에서 자신을 드러낸다. 우울증은 행동할 수 없는 무기력, 결정 장애, 계획을 수행할 수 없는 무기력을 보인다. 우울증은 일반적인 동원, 능동적이 되어야 한다는 명령, 계획을 가져야 한다는 명령, 무엇이든 열심히 해야 한다는 명령에 대한 수동적이고 개인적인 저항이다.

― 6장 통치성 비판 3 ― 누가 누구를, 무엇을, 그리고 어떻게 통치하는가?, 218쪽


레닌은 이 ‘새로운 자본주의’ 메커니즘의 핵심적인 정치적 지점들을 적절히 포착한다. 레닌의 눈에 비친 제국주의의 단계에서 자본은 이윤율의 추락으로 인해 더 이상 자신의 한계를 확장하지도 그 동력을 제공받지도 못하고 있다. … 이 한계를 넘어서는 유일한 방법은 고정자본·가변자본(노동력)과 사회의 대량 파괴, 인구와 그들이 살고 있는 ‘자연적’ 환경의 대량 파괴이다. 위기와 전쟁을 향한 경향은 A-A’에 각인되어 있다. 자본의 발전은 결코 평화롭지 않다.

― 7장 레닌을 다시 읽으며 ― 금융자본주의의 어제와 오늘, 263쪽


노동, 생산, 생산자는 공산주의 전통의 힘인 동시에 약점이었다. 노동으로부터의 해방, 또는 노동을 통한 해방? 출구 없는 모순. 어떤 의미이든, 노동에서 출발해서는 안 된다. 오직 노동의 거부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 8장 시작을 위한 결론 ― 노동의 거부에서 다시 출발하자, 282쪽



지은이·옮긴이 소개


지은이

마우리치오 랏자라또 (Maurizio Lazzarato, 1955~ )

이탈리아 출신의 사회학자이자 철학자. 1980년대 초에 프랑스로 망명, 파리 제8대학에서 커뮤니케이션 패러다임, 정보기술, 비물질노동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자율주의 잡지 『뮐띠뛰드』(Multitudes)지의 창간 발기인이자 편집위원이다. 비물질노동, 임금노동의 종말, ‘포스트사회주의’ 운동, 인지자본주의와 그 한계, 생명정치·생명경제 개념 등이 연구 주제이다. 저서 『부채인간』(메디치미디어, 2012)은 한국어를 포함하여 11개 언어로 번역되었고, 2013년 서울 일민미술관의 <애니미즘> 전시회에 시각예술가 안젤라 멜리토풀로스와 함께 작업한 영상 작품 <배치>와 <입자들의 삶>이 전시되었고 작품 소개를 위해 방한하기도 하였다. 저서로 『비물질노동과 다중』(공저, 갈무리, 2005), 『기호와 기계』(갈무리, 2017), 『사건의 정치』(갈무리, 2017), 『부채통치』(Gouverner par la dette, 갈무리, 근간), 『정치의 실험들』(Expérimentations politiques, 갈무리, 근간), 『발명의 힘』(Puissances de l’invention, 2002), 『불평등의 정부』(Le gouvernement des inégalités, 2008), 『전쟁과 자본』(공저, Guerres et capital, 2016) 등이 있다.


옮긴이

허경 (HUH Kyung, 1965~ )

고려대학교 불어불문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 대학원 철학과에서 「미셸 푸코의 ‘윤리의 계보학’에 대한 한 연구」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마르크 블로흐대학교에서 철학과에서 논문 「미셸 푸코와 근대성」으로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귀국 후, 고려대학교 응용문화연구소 및 철학연구소 연구교수를 역임했다. 옮긴 책으로 질 들뢰즈의 『푸코』, 미셸 푸코의 『문학의 고고학』, 마우리치오 랏자라또의 『부채인간』, 『부채 통치』 등이 있으며, 『미셸 푸코의 ‘지식의 고고학’ 읽기』,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등의 저작이 있다.



목차


한국어판 해제 / 김재준 9

1장 들어가면서 ― 주요 개념들 14

2장 이윤·금리·세금, 세 가지 포획 기구 37
생산 개념에 대한 첫 번째 재정의 41
화폐는 세금으로부터 탄생하는가? 44
위기 포획 기구들 48
불가능한 개혁주의 (그리고 불가능한 ‘뉴딜’) 52
위기의 주체적 생산 55
가치평가와 척도 56
칼 슈미트 59
‘내전’과 사회국가 64
생산 개념의 확장 70

3장 부채사회의 모델로서의 미국 대학 74
지식 제조는 하나의 금융 기업이다 78
채권자와 채무자 80
학생 부채 버블현상 82
통제·주체성·시간 84
전자칩 속에 새겨진 신용 관계 87
포획 기구로서의 부채 88
화폐와 부채 90
비주류 경제학의 부채 이론 93
희생의 인류학 98
『도덕의 계보』와 ‘무한한’ 부채 103

4장 통치성 비판 1 ― 자유주의적 통치성은 과연 존재했는가? 113
경제국가 120
신자유주의적 전회 124
사회통치로서의 사회국가 127
유로, 독일의 화폐 135
국가와 화폐 137
‘아나키스트’ 이론에 대해, 또는 어떻게
자본과 자본주의 없이 화폐를 다룰 것인가? 146
새로운 국가자본주의 152

5장 통치성 비판 2 ― 자본과 흐름의 자본주의 156
자본의 ‘개념’ 162
자본으로서의 화폐 167
생산에서의 무한한 것 169
흐름의 연결접속 171
공리계와 공리들 173
현대 자본주의의 공리계 178
현실화 모델로서의 국가 185
공리계는 자동적 혹은 초월적 기계가 아니다 193
부채의 통치성 196

6장 통치성 비판 3 ― 누가 누구를, 무엇을, 그리고 어떻게 통치하는가? 207
기계화 210
개인화의 극단 216
분할 가능한 것들과 새로운 종속화 218
자본은 하나의 기호학적 조작이다 220
지표화 과정 223
분할 가능한 것, 곧 개인의 탈영토화 224
신체의 제조 230
기술혐오와 기술선호 234
위기 시기의 사회적 예속화와 기계적 종속화 239

7장 레닌을 다시 읽으며 ― 금융자본주의의 어제와 오늘 245
금융자본주의로서의 제국주의 248
소유 250
금리생활자와 집단자본주의 251
자본주의의 시대 구분 253
자본수출과 식민주의 257
시장, 자유경쟁 그리고 노동계급의 통합 262
세계시장의 구축 268
전쟁? 275

8장 시작을 위한 결론 ― 노동의 거부에서 다시 출발하자 280

옮긴이 후기 : 내우외환 292
참고문헌 293
인명 찾아보기 297
용어 찾아보기 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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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호와 기계』(마우리치오 랏자라또 지음, 신병현‧심성보 옮김, 갈무리, 2017)

들뢰즈와 가따리의 기호론으로 자크 랑시에르, 알랭 바디우, 슬라보예 지젝, 빠올로 비르노, 주디스 버틀러, 그리고 부분적으로는 안또니오 네그리, 마이클 하트 등에까지 걸쳐 있는 언어중심적 정치이론을 비판하면서 물질적 흐름과 기계들의 흐름에 직접적으로 작용하는 기호들을 분석한다. “자본은 기호로 움직인다.”는 가따리의 주장에 근거하여 “오늘날 비판이론은 언어와 재현 중심의 사고를 넘어서고 있는가?”, “오늘날 기호들이 정치, 경제, 주체성의 생산에서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묻고 이로부터 자본주의 비판을 위한 새로운 이론과 비재현적 주체 이론을 전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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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의 정치』(마우리치오 랏자라또 지음, 이성혁 옮김, 갈무리, 2017)

이 책에서 랏자라또는 현대 사상의 급진적 정치성을 되살리면서 현 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권력에 저항하고 사회를 변혁하는 길을 모색한다. 그는 들뢰즈/가타리와 푸코 등의 급진적인 현대사상을 바탕으로 바흐친과 빠졸리니, 라이프니츠와 타르드와 같은 이들의 사상을 재평가하고 ‘구제’하며 현실화한다. 가능성의 발명으로부터 정치의 가능성을 사고하고 있는 『사건의 정치』는, 현대의 저항 정치가 가지고 있는 시적이고 예술적인 성격을 적실하게 드러내고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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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자본주의』(조정환 지음, 갈무리, 2011)

'인지자본주의'는 인지노동의 착취를 주요한 특징으로 삼는 자본주의이다. 우리는 이 개념을 통해서 현대자본주의를 다시 사유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노동의 문제설정을 새로운 방식으로 제기할 수 있다. 이 개념을 통해서 우리는, 금융자본이 아니라 인지노동이 현대세계의 거대한 전환과 사회적 삶의 재구성을 가져오는 힘이라는 생각을 표현할 수 있고, 그 노동의 역사적 진화와 혁신의 과정을 중심적 문제로 부각시킬 수 있다.

2018.02.02 |




보도자료 


근본적 경험론에 관한 시론

Essays in Radical Empiricism



‘순수경험’의 개념을 통해 ‘합리론’과 ‘실재론’의 한계를 넘어설 뿐만 아니라,
‘합리적 경험론’과 ‘일반적 경험론’의 문제를 ‘근본적 경험론’으로의 전환을 통해 해결하고자 하는
윌리엄 제임스의 최후 유고작!

실용주의 철학과 기능주의 심리학을 주도한 윌리엄 제임스의 이 책은
베르그손의 철학과 깊게 공명하면서 현상학을 비롯한 후대의 철학에 큰 영향을 미쳤다.


지은이  윌리엄 제임스  |  옮긴이  정유경  |  정가  18,000원  |  쪽수  304쪽

출판일  2018년 1월 31일  |  판형  사륙판 (130*188) 무선

도서 상태  초판  |  출판사  도서출판 갈무리  |  총서명  Mens, 카이로스총서 49

ISBN  978-89-6195-174-6 93130  |  CIP제어번호  CIP2018001600

도서분류  1. 철학 2. 서양철학

보도자료  180319-근본적경험론에관한시론-보도자료.hwp 180319-근본적경험론에관한시론-보도자료.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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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극적 실재에 대한 천착과 형이상학적 체계로의 전환이 『근본적 경험론에 관한 시론』의 중심 주제다.
윌리엄 제임스는 경험을 궁극적 실재로 선언하면서 관계의 문제에 대한 경험의 적용, 경험에서 느낌의 역할, 진리의 본성을 탐구한다. 그는 경험이 사물과 사건의 관계를 결정하는 절대적 힘에 준하여 규정될 수 있다는 것을 부정하면서 다원론적 우주를 옹호하는 입장을 편다.
관계는 그것이 사물들을 함께 취하든 따로 취하든 사물들 자체와 마찬가지로 실재적이다 — 관계의 기능은 실재적이며, 생명의 조화와 불화에 책임이 있는 숨겨진 요소는 없다.



『근본적 경험론에 관한 시론』 간략한 소개


윌리엄 제임스는 자신의 “철학적 태도”에 “근본적 경험론”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그것[제임스 자신의 철학적 태도]이 사실에 관한 가장 확실한 결론들을 미래의 경험이 펼쳐지면서 수정되기 쉬운 가정들로 여기는 데 만족하기 때문에 나는 ‘경험론’이라는 말을 하는 것이다. 또한 ‘근본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것이 일원론의 학설 자체를 하나의 가정으로 다루기 때문이다. 또한, 실증주의라거나 불가지론, 과학적 자연주의 등으로 불리는 저 많은 어중간한 경험론과는 달리, 근본적 경험론은 일원론을 모든 경험이 부합해야 하는 것으로 교조적으로 긍정하지 않는다.” 이렇게 기술한 “경험론”은 학설이라고 하기보다는 “철학적 태도” 또는 정신의 기질이며, 제임스의 모든 저작의 특성을 나타낸다. 그것은 이 책의 열두 번째 시론에서 제시된다.



『근본적 경험론에 관한 시론』 출간의 의미


『근본적 경험론에 관한 시론』에 대하여

『근본적 경험론에 관한 시론』은 1912년, 즉 저자의 사후에 출간되었다. 이 책의 편집자인 랠프 바튼 페리는 제임스의 제자이고 동료였으며, 나중에 제임스의 전기를 남기기도 한 인물이다. 페리가 밝히는 바에 의하면 ‘근본적 경험론’은 제임스가 자신의 글들을 모아둔 어느 서류철에 써놓은 표제였다고 한다. 여기에 포함된 시론들 중에는 제임스 생전에 각기 다른 지면을 통해 이미 발표된 것들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이를 추리고 기존에 들어 있지 않던 글들을 추가하여 현재 상태의 단행본이 나왔다.

‘근본적 경험론’이란 제임스가 자신의 사상을 철학사적으로 규정하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명칭 자체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그는 경험론의 전통을 계승하되 이를 근본적(radical)으로 검토함으로써 그가 생각하는 경험론의 한계를 넘어서고자 했다. 이러한 경향은 그의 초기 저작에서 이미 감지된다. 이를테면 그는 첫 번째 저작인 『심리학의 원리』(1890)에서 유명한 ‘사고의 흐름’(stream of thought) 개념을 제시하면서, 사고가 분리된 독립적 부분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본 흄의 교의를 비판했다. 우리의 사고가 고정된 관념들의 연쇄가 아니라 지속적인 흐름이라는 이러한 관점은 문학에 큰 영향을 끼쳐 의식의 흐름 기법을 출현시키기도 했다.

어쨌든 이 관념은 제임스의 저작 전반에 걸쳐 점진적으로 전개되었고, 마침내 ‘근본적 경험론’이라는 명칭으로 규정되기에 이르렀다. 그것은 『믿음의 의지』(1896) 서문에서 처음 등장하며, 그 뒤에는 『진리의 의미』(1909) 서문에서 거론된다. 앞서 말한 ‘근본적 경험론’이라는 표지의 글 묶음은 시간적으로는 이 두 개의 서문 사이, 즉 1907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여겨진다. 이것이 출간을 목적으로 한 사전 작업이었는지의 여부는 알 수 없으나, 어느 쪽이든 근본적 경험론 개념이 제임스 사상의 중요한 사상적 틀이고 지향성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근본적 경험론 ― 우리는 관계 자체를 경험한다

근본적 경험론은 경험을 바라보는 전통적인 이원론적 방식, 즉 주체가 대상과 관계를 맺는 것이 경험이라는 관점을 벗어나고자 관계 자체에 주목한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관계를 형성하는 항들인 주체와 대상, 의식과 내용, 주관과 객관 등을 구분하기 이전에 관계 자체를 경험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경험론에서 존재는 경험된 것이므로, 관계 또한 존재라고 제임스는 주장한다. 아울러 그 관계를 이루는 항들은 언제나 현재적 사건으로서의 경험이 발생한 후에 비로소 구별되는 일종의 ‘기능적 속성’으로 설명된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그는 파도의 예를 든다. 요컨대 우리는 언제나 전진하는 파고점의 앞쪽을 살아가고 있으며, 그 특정한 파도에 대한 지적 지식을 얻게 되는 것은 이미 그 파도가 소멸된 후, 새로운 파도에 실려 있을 때라는 것이다. 제임스는 이처럼 관계의 항들을 관계 자체로 아우르는 경험을 ‘순수경험’이라고 부른다. 그것은 ‘현재적 사건의 장’으로서 아직 내용으로 구성되지 않은 상태의 경험이기 때문에 ‘무엇’(what)이라 말할 수 없는 ‘저것’(that)이라고도 불린다.

근본적 경험론의 철학사적 위치

전체로서의 경험은 이러한 부분 경험들이 저마다 이행하고 교차하는 시간적 장이라고 볼 수 있으며, 따라서 경험의 주관과 객관은 고정된 것일 수 없다. 자연스럽게 근본적 경험론은 다원론적 세계관이 된다. 결국 우리는 여기서 주요하게 작동하고 있는 시간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는데, 이것이 제임스의 사상이 종종 베르그손의 철학과 함께 거론되는 이유라고도 할 수 있다. 생전에 이 두 사람 사이에는 교류가 있었으며, 둘의 관점이 정확히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들은 전통 철학이 ‘시간을 공간화하는’ 점에 대해 지적한 베르그손의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었다.

철학사에서 제임스의 사상을 계승한 것은 주로 후설(Edmund Husserl, 1859~1938)의 현상학러셀(Bertrand Russell, 1872~1970)이나 비트겐슈타인(Ludwig Wittgenstein, 1889~1951)의 분석철학이다. 특히 러셀은 『정신의 분석』(1921)에서 ‘순수경험’ 개념을 중요하게 활용하고 있다. 또한 넬슨 굿맨(Nelson Goodman, 1906~1998), 리처드 로티(Richard Rorty, 1931~2007), 힐러리 퍼트넘(Hilary Putnam, 1926~2016) 등으로 대표되는 ‘신실용주의’에서도 물론 제임스 철학의 자취를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사상적 흐름은 종종 산업 혁명 이후 유럽의 시대정신이라는 관점에서 설명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이를 아는 것은 동시대의 예술이 보여준 다양한 혁명적 시도들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앞서도 잠시 언급했지만 버지니아 울프나 프루스트, 그들 이전에 물론 헨리 제임스의 소설에서 도입된 의식의 흐름 기법을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제임스의 사상은 시지각의 문제에 천착한 인상주의 미술가들과, 이후로 조형예술에서 시간과 경험이라는 화두를 중심으로 계속된 다양한 시도들에 접근할 때도 참조할 만하다.

비교적 최근의 사례로 브라이언 마수미(Brian Massumi, 1956~ )의 저서 『가상과 사건』(갈무리, 2016)을 들 수 있다. 마수미는 제임스의 근본적 경험론을 지렛대 삼아 화이트헤드와 들뢰즈 등의 사상을 ‘활동주의 철학’이라는 범주로 묶어 읽으려 시도한다. 특히 순수경험 개념이 주요하게 등장하는 이 논의에서 마수미는 다양한 분야의 현대 예술 작품들을 가지고 경험과 지각작용이라는 문제를 설명하고자 한다.



이 책의 구성에 대한 편집자 랠프 버튼 페리의 설명(「편집자 서문」 7쪽)


편집자는 이 책을 준비할 때 두 가지 동기에 지배되었다. 한 가지는 제임스 교수의 여타 저작에서 찾아 볼 수 없는 중요한 글들을 보존하고 접근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것은 1, 2, 4, 8, 9, 10, 11장의 시론들에 해당한다. 다른 하나는 독립적이고 일관되며 기본적인 하나의 학설을 체계적으로 다루고 있는 일련의 시론들을 한 권의책으 로 묶어내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최초의 계획에 포함되어 있었지만 나중에 다른 책들에 발췌 출간된 세 편(3, 6, 7 장)의 시론과, 최초의 계획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 7장의 시론을 이 책에 함께 묶는 것이 최상이라 여겨졌다. 3, 6, 7장의 시론은 시리즈의 연속성을 위해 불가결하고, 나머지 시론들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으므로 연구자들에게 제공되어야 할 것이다. 7장의 시론은 저자의 일반적 “경험론”을 조명하는 데 중요하며, “근본적 경험론”과 저자의 여타 학설 사이의 중요한 연결고리를 형성하기도 한다.

요컨대 이 책은 논집이라고 하기보다는 전체가 한 편의 논문으로 구성되었다. … 이 책은 제임스 교수의 철학을 연구 하는 학자뿐 아니라, 형이상학과 지식 이론 연구자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 이 책은 “근본적 경험론”의 학설을 짧은 분량 안에서 체계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윌리엄 제임스의 영향을 받은 철학자들


윌리엄 제임스 같은 사람이 아니라면 누가 헤겔 철학을 바닷가 하숙집으로 비유할 수 있을 것인가?

― 버트란드 러셀, 『우리는 합리적 사고를 포기했는가』


참으로 근본적인 명제는, 관계가 관념들에 외재적이라는 것이다. … 이를 테면 윌리엄 제임스가 자신을 다원론자라고 말할 때 그는 원리상 다른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며, 버트란드 러셀이 자신을 실재론자라고 말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 질 들뢰즈, 『경험주의와 주체성』


윌리엄 제임스 특유의 활동주의 철학 … 근본적 경험론의 기본 교의는 경험된 모든 것은 어떤 점에서 실재적이며 실재적인 모든 것은 어떤 점에서 경험된다는 것이다. “변화가 일어남”이 정말로 세계의 기본적인 사태라면 근본적 경험주의자는 “변화 자체가 … … 직접 경험된다”고 여겨야 한다. 제임스는 변화의 경험을 관계로 논한다.

― 브라이언 마수미, 『가상과 사건』



책 속에서 : 근본적 경험론이란 어떤 것인가


내 말은 물질적 대상들을 구성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우리의 사고를 구성하는 시원적 재료(stuff)나 존재의 성질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경험에는 기능이 있으며, 사고가 그것을 수행하고, 그것의 수행을 위해 존재의 이러한 성질이 환기된다. 그 기능은 앎(knowing)이다.

― 1장 “의식”은 존재하는가? 19쪽


하나의 경험론이 근본적이려면, 그것을 구축할 때 직접 경험되지 않은 어떤 요소도 받아들여서는 안 되고, 직접 경험된 어떠한 요소를 배제해서도 안 된다. … 요소들은 실로 재분배될 수 있고, 사물들 원래의 위치 선정은 수정될 수 있지만, 최종적인 철학적 배치에서 항이든 관계든 모든 종류의 경험된 것의 실재적 위치가 발견되어야 한다.

― 2장 순수경험의 세계 54~55쪽


우리는 전진하는 파고점의 앞쪽에 산다. 그리고 앞으로 떨어지는 분명한 방향에 대한 우리의 감각이 우리 경로의 미래에 관해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전부이다.

― 2장 순수경험의 세계 79쪽


관계는 순수경험의 부인할 수 없는 부분이다. 그러나 상식과 내가 근본적 경험론이라고 부르는 것이 관계가 객관적이라는 입장을 지지하는 반면, 합리론과 통상적인 경험론은 모두 관계란 다만 “마음의 작품” ― 여기서 마음이란 경우에 따라 유한한 마음일 수도 있고, 절대정신일 수도 있다 ― 이라고 주장한다.

― 5장 순수경험의 세계에서 감정적 사실들의 위치 155쪽


우리는 무엇인가가 일어나는 중임을 발견하게 되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나 활동을 긍정하고 싶어 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가장 넓은 의미에서 보았을 때 무엇인가 일어나는 중임에 대한 포착은 활동성에 대한 어떤 경험입니다. … “변화가 일어남”은 경험 특유의 내용이며, 근본적 경험론이 그토록 열렬하게 재활시키고 보존하고자 하는 저 “연접적” 대상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 6장 활동성이라는 경험 167쪽


인본주의의 본질적 공헌은, 우리 경험의 한 부분은 저것이 고려될 수 있는 몇 가지 측면 중 어느 한 측면에서 저것을 현존재로 만들기 위해 다른 부분에 의존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전체로서의 경험은 자족적이고 어떤 것에도 의지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 7장 인본주의의 본질 200쪽


내가 파악한 바로는, 인본주의를 향한 운동은 하나의 정밀한 공식으로 이어질 수 있고, 그럼으로써 즉시 논리의 꼬챙이에 꿰어질 수 있는 특수한 발견이나 원리에 근거하지 않는다. 그것은 오히려 “너무 충만하여 소리도 물거품도 없는” 조수에 실려 와 하룻밤 새 대중의 의견과 조우하는 세속의 변화들 가운데 하나에 훨씬 가깝다.

― 11장 거듭하여, 인본주의와 진리 247쪽


‘경험론’이 ‘절대론’과 벌이고 있는 한 가지 기본적 논쟁은, 철학의 구축에서 사적이고 미적인 요인들에 대한 절대론의 이러한 거부에 관한 것이다. 우리 모두가 느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경험론은 매우 확실하게 느낀다. 그들이 우리가 가진 다른 어떤 것에 못지않게 진리를 예견하고 예언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들 중 일부는 다른 것들 이상으로 그러하다는 점은 도저히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절대론이, 이 공통의 기반 위에서 토론하려고 하지 않는 한, 또 절대론이, 모든 철학은 논리적이고 정서적인 우리의 모든 능력의 도움을 받는 가설이고, 그중 가장 참된 가설은, 사물들의 최종적 통합에서 전체에 대한 최고의 점술적 능력을 가진 사람의 수중에서 발견되리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한, 의견들을 조화시키고 합의에 이를 희망이 있겠는가?

― 12장 절대론과 경험론 281쪽



지은이·옮긴이 소개


지은이

윌리엄 제임스 (William James, 1842~1910)

19세기와 20세기의 전환기에 미국 사상계를 대표하는 인물 중 한 사람이었다. 그는 퍼스(Charles Sanders Peirce, 1839~1914)와 더불어 실용주의 철학을 정초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고, 분트(Wilhelm Wundt, 1832~1920)와 함께 실험심리학의 선구자로도 꼽힌다. 철학과 종교학, 심리학과 생리학을 넘나드는 그의 연구는 현상학과 분석철학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으며, 그 밖에도 후대의 많은 연구자들에게 영감의 원천이 되었다.
그의 부친 헨리는 스베덴보리 사상에 심취한 종교학자이고 문필가였다. 그는 슬하에 3남매를 두었는데, 윌리엄이 장남, 차남은 소설가 헨리 제임스(Henry James, 1843~1916)이고, 막내 앨리스는 일기가 출간되어 있다. 부친은 자녀들을 거의 학교에 보내지 않고 사교육으로 가르쳤으며, 이들은 제네바와 파리, 불로뉴쉬르메르 등 유럽 각지를 오가며 성장기를 보냈다. 한편 제임스는 십대 후반에 화가를 지망하여 1858년부터 3년가량 윌리엄 헌트(William Morris Hunt, 1824~1879)에게 그림을 배우기도 했으나 스스로 재능이 없음을 깨닫고 단념했다.
제임스는 1861년에 하버드 이과 대학에 입학하였다가 1864년에 하버드 의대로 전과했다. 1865년에 그는 루이 아가시(Louis Agassiz, 1807~1873)의 아마존 탐사 팀에 동행했다가 천연두를 앓았다. 이듬해 의대에 복귀한 뒤로도 안질, 척추 질환, 자살 충동 등에 시달렸다. 그는 1869년에 의학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나 임상실습은 하지 않았다. 1873년에는 하버드 대학에서 해부학과 생리학 강의를 제안 받았고, 1875~76년에는 심리학을 가르치면서 미국 최초의 심리학 연구소를 설립했다. 1880년에는 하버드 철학과 조교수에 임명되었다. 1907년에 교수직을 사임한 후로도 저작과 강연 활동을 했다.

주요 저서
『심리학의 원리』(The Principles of Psychology, 1890)
『믿음의 의지』(The Will to Believe, 1897)
『종교적 경험의 다양성』(The Varieties of Religious Experience, 1902)
『실용주의』(Pragmatism, 1907; 아카넷, 2008)
『다원론적 우주』(A Pluralistic Universe, 1909)
『진리의 의미』(Meaning of Truth, 1909)
『근본적 경험론에 관한 시론』(Essays in Radical Empiricism, 1912) 등


옮긴이

정유경 (Chung Yookyung, 1973~ )

성신여자대학교에서 서양미술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문명이 낳은 철학 철학이 바꾼 역사 2』 (길, 2015, 공저), 역서로 질 들뢰즈의 『경험주의와 주체성』(난장, 2012, 공역), 외젠 비올레르뒤크의 『건축강의』(아카넷, 2015), 브라이언 마수미의 『가상과 사건』(갈무리, 2016), 윌리엄 제임스의 『근본적 경험론에 관한 시론』(갈무리, 2018) 등이 있다.



목차


편집자 서문 5

1장 “의식”은 존재하는가? 16
I 20 II 24 III 29 IV 39
V 40 VI 41 VII 47 VIII 49

2장 순수경험의 세계 51
I 근본적 경험론 54
II 연접적 관계 56
III 인지적 관계 63
IV 대체 72
V 객관적 참조란 무엇인가 77
VI 서로 다른 마음이 동일한계를 가짐 85
VII 결론 95

3장 사물과 그 관계들 100
I 102 II 104 III 109 IV 114
V 117 VI 125

4장 두 마음은 어떻게 하나의 사물을 알 수 있는가 131
I 133 II 136 III 139 IV 142

5장 순수경험의 세계에서 감정적 사실들의 위치 144

6장 활동성이라는 경험 161

7장 인본주의의 본질 196
I 200 II 202 III 205 IV 208

8장 의식의 개념 211

9장 근본적 경험론은 유아론적인가? 235

10장 “근본적 경험론”에 대한 피트킨 씨의 논박 242

11장 거듭하여, 인본주의와 진리 247

12장 절대론과 경험론 267

옮긴이 후기 282
윌리엄 제임스 저작 목록 294
인명 찾아보기 296
용어 찾아보기 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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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과 사건』(브라이언 마수미 지음, 정유경 옮김, 갈무리, 2016)

사건은 늘 지나간다. 어떤 사건을 경험한다는 것은 그 지나감을 경험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어떻게 현실적으로 현전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방금-존재했던 것과 곧-존재하려고-하는-것을 포괄하는 경험을 지각하는가? <가상과 사건>에서 브라이언 마수미는 윌리엄 제임스, 알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 질 들뢰즈 등의 저작에 의존하여 ‘가상’이라는 개념을 이 물음에 접근하는 한 가지 방법으로 전개한다.

 


『가상계』(브라이언 마수미 지음, 조성훈 옮김, 갈무리, 2011)

윌리엄 제임스의 급진적 경험주의와 앙리 베르그송의 지각에 관한 철학을 들뢰즈, 가타리, 그리고 푸코와 같은 전후 프랑스 철학의 여과를 통해 재개하고 평가하면서, 마수미는 운동, 정동, 그리고 감각의 문제와 변형의 문화논리를 연결시킨다. 운동과 정동 그리고 감각의 개념들이 기호와 의미작용 만큼이나 근본적인 것이라면, 새로운 이론적 문제설정이 출현한다. 또한 그 개념들과 아울러 과학과 문화이론의 새로운 잠재적 가능성이 열린다.

2017.12.29 |



보도자료 


『문학의 역사(들)』
Histoire de la littérature



소설의 윤리와 변신 가능한 인간의 길


지금 한국문학은 근대에서 포스트 근대로, 역사적인 문턱을 건너고 있는 중이다.
네이션을 상상하는 장치로 기능했던 소설은, 
역사의 종언이라는 유사 사건의 여파 속에서 근대적 정체성의 구축이라는 역사적 과업을 중단하고, 
이제는 오히려 그러한 정체성들을 의심하고 파괴하는 쪽으로 돌아서려고 한다.


지은이  전성욱  |  정가  30,000원  |  쪽수  608쪽
출판일  2017년 12월 29일  |  판형  사륙판 (130*188) 무선
도서 상태  초판  |  출판사  도서출판 갈무리  |  총서명  Cupiditas, 카이로스총서 48
ISBN  978-89-6195-173-9 03800  |  CIP제어번호  CIP2017034729
도서분류  1. 문학 2. 문학비평 3. 철학 4.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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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언 이후에도 문학이 존재할 수 있는가, 라는 물음은 천박하다. 이제라도 모든 것을 무릅쓸 수 있는가, 에 대하여 물어야 한다. 우리가 진정 모든 것을 무릅쓸 수 있는 용기가 있다면, 문학은 수전 손택이 믿었던 바의 그 자유를 가능하게 해 줄 것이다. 물론 그 자유는 자유주의자의 그것으로 한정되지 않는다. … 문학은 아직 오지 않은 세상, 도착해야 할 세계에 대한 적극적인 무위의 기다림이다.



『문학의 역사(들)』 간략한 소개


『문학의 역사(들)』은 문학평론가 전성욱의 네 번째 책이고, 『바로 그 시간』(2010) 이후 두 번째로 출간하는 문학평론집이다. 기존의 글을 단순하게 수합하여 내는 관행화된 평론집과는 달리 나름의 일관된 주제의식이 담겨 있다. 그러므로 저자는 이 비평집이 단지 ‘문학평론집’이 아니라 ‘문학론집’으로 읽히기를 바란다.

비평집의 제목과 목차의 체제는 고다르의 <영화의 역사(들)>을 차용하고 변형하였다. 영화가 쇠퇴의 길로 접어들고 있을 때, 그는 이 영화의 제작에 착수했다. 그에게 영화의 쇠퇴는 단지 한 예술 장르의 퇴락이 아니라, 개인이 세계와 맺는 관계의 근본적인 변화를 야기하거나 반영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래서 저자는 소설의 쇠락을 목도하며 고다르의 역사적 사색을 떠올린 것이다.



『문학의 역사(들)』 출간의 의미

‘근대문학의 종말’을 근대적인 주체의 포스트모던한 갱신 속에서 읽어낸다

이 비평집은 근래에 나온 한국 소설들을 집중적으로 독해함으로써, 문학의 그 질적인 변화에서 역사적 전환의 기미를 포착하고 있다. 예술의 종말 혹은 근대문학의 종말이란 예술과 문학 그 자체의 종말이 아니라, 역사의 거대한 전환 속에서 낡은 것들이 허물어지고 새로운 것이 나타나는 어떤 전회 내지는 갱신을 일컫는다. 근대라는 한 시대의 역사적 종막을 ‘역사의 종말’이라고 한다면 탈냉전, 액체근대, 인지자본, 포스트휴먼과 같은 어휘들은 그 이후 펼쳐진 포스트 근대의 시간과 밀착된 개념들이라 할 수 있다. ‘포스트모던’은 그 전면적이고 급진적인 역사의 전환을 단적으로 집약하는 어휘이다.

이 문학론집의 핵심은 한국 소설을 통해 바로 그 역사적 전환의 요지를 근대적인 주체의 포스트모던한 갱신 속에서 읽어내는 데 있다. 근대적 주체란 모든 전제적 구속으로부터 자유로운 개인이다. 정치적 권력과 경제적 분배로부터의 배제, 합리적 지성과 문화적 향유로부터의 배제로부터 자기의 몫을 요구하고 역사에 등장한 것이 근대적 주체로서의 자유주의적 개인이다. 근대문학은 바로 그 리버럴한 주체의 지성과 정감을 바탕으로 성립된 일종의 제도였으며, 그러한 근대적 주체는 곧 네이션이라는 국민국가의 이념을 정초하는 핵심이었다. 근대문학은 신의 섭리라는 초월성으로부터 독립한 세속적인 개인의 예술이었다. 그 세속적 개인이 독창성과 자율성의 이념으로 고고하게 자기를 신성화하다가 마침내 파국에 이른 것이 근대문학의 종말이라는 것이다. 독창성의 이념이 새로운 것의 창조라는 강박을 낳았고, 그 강박이 낡고 진부한 것들의 부정이라는 증상으로 표출되었으며, 그렇게 극단적인 부정을 거듭하다가 끝내는 자기의 존재론적 기반까지 말소해버리는 파국에 이르렀다. 그것이 바로 모더니즘의 파국, 다시 말해 근대적 예술의 종언이다.

지성의 문학, 공감의 문학, 자유주의 문학에 대한 포스트모던한 비판

지금 한국문학은 근대에서 포스트 근대로, 역사적인 문턱을 건너고 있는 중이다. 근대적인 주체의 존재론적 근거가 무너짐으로써 새로운 주체가 탄생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고 있다. 확고부동하고 나르시시즘적인 근대적 주체는, 유동적이고 개방적인 주체로 변신 가능하다. 그렇게 변신 가능한 포스트모던한 주체는 아집과 독아론을 극복하고 외부의 타자와 접속함으로써 자기를 그 무엇으로도 변이시킬 수 있는 잠재성의 주체이다. 문턱 건너의 문학, 근대문학 종말 이후의 문학은 바로 그 변신 가능한 잠재성의 주체에 대한 모색과 성찰로 드러난다. 이 평론집의 부제로 삼은 ‘소설의 윤리와 변신 가능한 인간의 길’이라는 구절 속에 그런 뜻이 집약되어 있다. 그것을 극기복례(克己復禮), 천하위공(天下爲公)이라는 의고적인 표현으로 대신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전체를 위해서 멸사(滅私)하는 주체가 아니라, 자기 이외의 다른 세계와 만나기 위해 아집을 극복하는 극기(克己)의 주체. 그 주체가 이 세계의 정의와 공익을 위해 자기를 극복하는 것이 곧 윤리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 문학론집은 한국에서 근대적인 문학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지성의 문학, 공감의 문학, 그러니까 그 부르주아적인 자유주의 문학에 대한 포스트모던한 비판을 함축한다. 여기서 특히 주의할 것은 그 비판이 계급주의에 입각한 프롤레타리아적인 비판이나 배타적인 민족주의적 비판이 아니라는 것이다. 강조하기 위해 거듭 밝히지만, 이는 자유주의 문학에 대한 포스트모던한 비판이다. ‘지성’의 한계를 보완하는 ‘또 다른 인지적 역량’의 발굴, ‘공감’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적대’의 현실에 민감하게 맞서는 주체, ‘개체의 자유’를 넘어 ‘공공의 정의’로 도약하는 정치, ‘서구적 근대성’에서 비서구적인 가치를 포괄하는 ‘다원적 근대성’으로, 이러한 것들이 그 포스트모던한 비판의 대략적 요지이다. 그리고 그것을 한국소설의 맥락에 적용하면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 타자와의 충돌을 감당할 수 있는 주체, 그 충돌을 통해 스스로를 갱신하는 주체
◇ 낯섦을 소비하는 새로움이 아니라 낯섦으로부터 새로워지는 진부함
◇ 조화로 미봉되는 여행이 아니라 불화로 파열되는 여행
◇ 세상의 이치대로 교양되지 않는 아이들
◇ 도래하는 것이 아니라 도달해야만 하는 것
◇ 재현의 불가능성으로부터 불가능의 무릅씀으로
◇ 찬란한 하나의 별빛에서 별무리의 미약한 반짝임으로



이 책의 구성


이 책은 근래에 출간된 한국소설들에 대한 정밀한 비평이면서, 그 작품들의 저류를 흐르는 역사적 맥락에 대한 (인)문학적 고찰이다. 서문과 뒤이은 보론에서는 역사의 전환이라는 거시적 차원에 응대하는 새로운 문학의 논리를 구상하였다. 서구적 근대성에 치우쳐온 자유주의 문학론을 향한 포스트모던한 비판을 수행하면서, 우리가 도달해야 할 규제적 이념으로서의 문학적 이상을 ‘소설의 윤리와 갱신 가능한 주체’라는 논리를 통해 개진하였다.

본문은 모두 한국문학의 구체적 현장을 파고든 평문들이다. 염무웅, 미시마 유키오, 신경숙, 마광수, 장정일, 김원일, 윤정규, 조갑상, 권성우 등이 등장하는 I부는 한국의 파행적 근대화가 낳은 굴곡들이 낙인처럼 찍힌 한국문학의 표면과 심층에 대한 탐구이다. 황정은, 편혜영, 윤대녕, 손보미, 권여선, 정이현, 조해진, 고은규 등의 작품을 비평한 II부에서는 최근의 한국소설에서 드러난 역사적 변화의 기미를 포착하면서 앞으로 가능할 새로운 문학의 미래를 예감한다. I부가 지나간 시간에 대한 성찰이라면, II부는 현재의 시간에 대한 비판과 미래의 모색이다. 정영수, 조남주, 김사과, 김애란 등의 작품을 다룬 III부는 II부의 주제 중에서도 ‘현재의 시간’에 대한 심화된 접근으로서, 세속의 현실에 감응하는 소설의 예민함을 윤리적인고 미학적인 힘이라는 관점으로 독해하였다.



저자 인터뷰


1) 현재 제목은 이 책이 “문학사”를 쓴 책이라는 느낌을 줍니다. 부제 “소설의 윤리와 변신 가능한 인간의 길”을 보면 문학사보다는 좀더 큰 기획을 염두에 두고 쓰인 책이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듭니다. 제목과 부제에 대해서 책을 처음 접하는 독자들에게 간단히 설명을 해주실 수 있을까요?

이 책의 제목인 ‘문학의 역사(들)’에는 공허하고 균질적인 시간을 흐르는 연대기적인 문학사에 대한 비판이 담겨 있습니다. 서구적 근대성으로부터 주조된 한국문학은 ‘근대’나 ‘한국’과 같은 거대한 환영으로부터 조금씩 벗어나고 있습니다. 이제 문학은 그들 각자의 것으로 쓰이고 또 읽혀져야 할 것입니다. 부제가 의미하는 바는, 다른 그 무엇과 기꺼이 접속할 수 있고, 그 접속으로써 자기를 또 다른 무엇으로 갱신할 수 있는 윤리적 인간, 우리가 도달해야 할 소설의 미래는 그런 인간형의 모색을 통해 가능하리라는 믿음입니다.

2) 『82년생 김지영』처럼 2016~2017년에 독자들에게 많은 호응을 얻은 소설들에 관한 비평문이 책에 수록되었습니다. 독자들이 『문학의 역사(들)』에 좀더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몇몇 소설에 대한 저자의 독특한 관점을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82년생 김지영』은 많은 이들로부터 공감을 얻었던 소설입니다. 그 공감의 요지는 지금의 한국사회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의 의미를 대단히 사실적으로 그려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소설의 서사구조가 갖는 상투성이 여성의 현실을 통속화한다고 비판하였습니다. 소재나 주제로 여성을 전면화하였으나 정치적으로는 대단히 반여성적인 소설이라는 것입니다.

신경숙의 「전설」을 두고 벌어졌던 표절시비에 대해서도 저는 좀 다른 입장에서 접근하였습니다. 저는 한 작가의 인격에 대한 도덕적 비난 혹은 그를 옹위하는 세력에 대한 반권력적 비판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이른바 ‘문학권력’을 비판하는 이들은 자주 권력을 실체화하는 오류를 범하였습니다. 권력은 누군가 움켜쥐고 있는 것이라기보다 관계의 배치 속에서 발휘되는 것입니다. 신경숙 표절 논란은 그런 관계의 배치가 한국의 파행적 근대성과 깊이 연루하고 있다는 것에 주의를 기울일 수 있는 소중한 성찰의 기회였던 것입니다. 일일이 다 거론할 수 없지만, 이 책의 평문들에는 제가 놓인 위치에서 발생한 시차(視差)를 통해 각각의 작품들을 독해하려는 분명한 자의식이 담겨있습니다.

3) 이 책을 어떤 독자들이 읽었으면 하는지요?

널리 읽히기 보다는 깊이 읽히기를 바랍니다. 자기의지를 공고하게 하려는 이들보다 자의식이 깨어지기를 원하는 이들이 읽었으면 합니다. 공감하려는 이들보다 반론하는 이들에게 읽히기를 바랍니다. 혹은 공감하면서도 반론할 수 있는 이들에게 읽히기를 바랍니다. 문학을 사랑해서 그 문학에 분노하는 이들이 읽어주었으면 합니다. 지방에서 읽고 쓰는 저자에 대한 도도한 편견 없이 읽어주기를 바랍니다.

4) 우리 시대에 문학이 “불가능을 무릅쓰는” 방법이 무엇인지에 대해 조금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실 수 있는지요?

무릅쓰는 것, 그 자체가 불가능에 응대하는 방법입니다. 무릅쓴다는 것은 다가올 위험과 고통을 감수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의 이익에 몰두하는 자는 무릅쓸 수 없습니다. 자기를 드높이려는 의욕에 몸이 달은 자들이 불가능성을 소리 높여 이야기하곤 합니다. 자기의 이해관계가 아니라 공공의 이해에 대한 책임을 갖는 윤리적 인간만이 무릅쓸 수 있습니다. 재현 불가능하므로 그 아포리아를 표현해야 한다거나, 대의 불가능하므로 직접 참여해야 한다는 식의 발상은 가혹한 경험의 부담이 없는 공허한 언술이기 십상입니다. 자기 스스로 재현과 대의의 좌절을 그 자체로 생생하게 겪어내는 이가 무릅쓰는 사람입니다. 겪어내고 견뎌내려는 자, 그러니까 자기로부터 망명하는 이가 곧 무릅쓰는 사람입니다.



추천사


혹시라도 책을 펼치기 전, 이 문장을 먼저 만나는 독자가 있다면
여러 위치를 동시에 유지하려는 한 인간, 그 자리들을 모두 필요로 하는 한 인간, 그 영위들을 애써 관계지으려는 한 인간에게 문학비평은 무엇으로 어떻게 존재하는지
그 자는 비평의 손을 어디까지 뻗고 깊숙이 넣는지, 비평의 말은 얼마나 중층적이고 생생한지, 비평의 관계는 상대를 어떻게 두텁게 하고 펼쳐내는지, 그로써 비평의/이라는 존재는 어떻게 자신과 비평적 관계에 들어서는지
라는 물음을 지참해드리고 싶다.
― 윤여일 / 동아시아사상사 연구자


전성욱의 글은 세련됨과는 거리가 멀다. 문장도 길며 문단도 한 페이지가 넘는 것이 예사이다. 그렇다고 눈에 쏙쏙 들어오는 경구를 사용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는 마치 그것을 감수하겠다는 태도로 쉴 새 없이 이야기를 해댄다. 마치 일말의 타협도 없다는 듯이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데에 온전히 열중한다. 그 열기가 너무 뜨거운 나머지 손이 델 정도이다. 언제부터인가 한국의 비평은 동시대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존재가 되었다. 이 점에서 전성욱의 비평은 확실히 시대착오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하지만 비평이란 본래 ‘반시대적 고찰’로서만 비로소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그가 신경숙, 마광수, 장정일, 조남주 등을 호명하여 다룰 때 놀라게 되는 것은 이토록 자신의 감각에 철저한 비평가가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 조영일 / 문학평론가



책 속에서 : 『문학의 역사(들)』과 근대문학의 종말


지성의 역량에 의해 전개되어온 근대적인 문학은, 지성과 정서와 의지를 감싸고 또 떨쳐내는 새로운 감각을 통해 타자의 낯섦을 ‘경험’하는 또 다른 문학의 가능성으로 반전될 수 있지 않을까. 갱신되어 도착하여야 할 문학을 위하여, 비평은 그 믿음과 함께 그런 반전을 위한 열의에 동참하는 난해한 행동이어야 하리라.
― 보론 : 지성과 반지성, 80쪽


‘공감’이라는 역능을 통해 네이션을 상상하는 장치로 기능했던 소설은, 역사의 종언이라는 유사 사건의 여파 속에서 공공의 아이덴티티에 내러티브를 부여하는 이데올로기적 영향력을 망실했다. 그리하여 소설은 근대적 정체성의 구축이라는 역사적 과업을 중단하고, 이제는 오히려 그런 정체성들을 의심하고 파괴하는 쪽으로 돌아서려고 한다.
― 변이하는 세계, 변태하는 서사, 84쪽


창안된 개념으로서의 문학, 고안된 제도로서의 문학, 그것은 자연적인 실체가 아니라, 결국은 우리들의 막대한 욕망이었다. 그것은 누군가가 아비의 부재라고 명명하기도 했던, 그 역사적 결여와 공백을 메우는 위대한 망집이었다. 흠모하고, 모방하고, 답습하는 가운데, 마침내 환상은 실상을 대리하는 막강한 이데올로기로 자리를 잡았다.
― 서문 : 도착하지 않은 문학들, 15쪽


그렇다면 종언 이후에 남은 것은 무엇인가? 그 이후에 남은 것은 그야말로 온갖 포스트주의의 난립이었고, 적대적인 투쟁의 대상을 잃은 스놉들의 활개였다. 그리고 어떤 이들은 그 난립과 활개를 새로운 시대의 활력으로 오인했다. 이제 ‘종말’은 파국과 구원의 정치신학으로 일어서고, ‘혼란’은 창조적 분열의 아방가르드로 추앙된다.
― 변신하고 갱신하는 자의 사상, 109쪽


우리의 근대가 이처럼 번역과 중역으로 얼룩진 필사(筆寫/必死) 의 시간이었다는 것,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모두 신경숙이다. 일제의 식민지배를 받았던 비서구의 어느 반도 국가에서, 저 필사의 시간을 제대로 통과해낸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렇다면 신경숙이라는 한 인격체를 비판하는 것에 열을 올릴 것이 아니라, 필사로 구축된 신경숙이라는 주체성에 대하여 사유하는 일이 우선이다.
― 익명의 비평, 169쪽


미루어 짐작건대 정지돈에게 소설은 이미 근대적 장르로서 고형화된 문학의 한 형식이 아니다. 고다르에게 영화는 에크리튀르이고, 카메라는 펜이며, 찍는다는 것은 쓴다는 것과 다르지 않은 행위이다. 그러므로 어쩌면 그에게 가장 위대한 소설의 작가적 전범이 고다르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고다르에 대한 애호가 느껴지는 그의 소설들에서, 정작 역사가로서의 고다르를 발견할 수가 없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 박람강기의 저작술, 넝마주이의 글쓰기, 315쪽



지은이 소개


지은이
전성욱 (Jeon Seong Wook)
문학평론가. 동아대학교 한국어문학과 조교수. 계간 『오늘의문예비평』 편집위원과 편집주간으로 일했다. 동아대학교 국문학과의 학부와 대학원을 졸업했다. 경성대에서 소설론과 지역문화론을, 부경대에서 문예비평론을, 한국해양대에서 북한문화론을, 동의대에서 글쓰기를 강의했다. 지은 책으로 비평집 『바로 그 시간』(2010), 산문집 『현재는 이상한 짐승이다』(2014), 연구서 『남은 자들의 말』(2017)이 있다.



목차


책머리에 : 문턱을 넘는 동안 8
서문 : 도착하지 않은 문학들 14
보론 : 지성과 반지성 65

I 모든 역사
chapter 1A : 모든 역사들 82
변이하는 세계, 변태하는 서사 ― 소설의 힘에 대하여 83
변신하고 갱신하는 자의 사상 ― 염무웅과 그의 시대 109
익명의 비평 ― 미시마 유키오와 신경숙, 심층근대의 갈림길 153
위악의 유산 ― 마광수의 『즐거운 사라』와 장정일의 『내게 거짓말을 해봐』가 남긴 것 178

chapter 1B : 하나의 역사들 196
만년의 글쓰기 ― 김원일의 『비단길』과 윤후명의 『강릉』에 이르는 길 197
이인자의 존재론 ― 윤정규 소설집 『얼굴 없는 전쟁』에 남아있는 것 208
아비들의 역사 ― 조갑상 소설집 『다시 시작하는 끝』의 재출간에 붙여 229
자기로부터 멀어짐으로써, 돌아갈 수 있는 ― 비평가 권성우의 자의식 244

II 도착해야 할 시대의 역사
chapter 2A : 오직 문학만이 275
자기를 구원하는 사람 ― 황정은 소설집 『아무도 아닌』 276
박람강기의 저작술, 넝마주이의 글쓰기 ― 정지돈 소설집 『내가 싸우듯이』 301
아, 개인은 영원히 어리석다 ― 편혜영 장편소설 『홀』 333
믿을 수 없는 공동체 ― 윤대녕 장편소설 『피에로들의 집』 352
나르키소스의 끈질김에 대하여 ― 손보미 장편소설 『디어 랄프 로렌』 365

chapter 2B : 치명적인 것들 382
내 안의 장님이여, 시체여, 진군하라! ― 권여선 소설집 『안녕 주정뱅이』 383
연결되어야만 하는 ― 정이현 소설집 『상냥한 폭력의 시대』 402
박해받는 자들을 대신하다 ― 조해진 소설집 『빛의 호위』 419
농담처럼, 그렇게 슬픔은 웃음이 되고 ― 고은규 장편소설 『알바 패밀리』 438

III 고독의 역사
chapter 3A : 드러나지 않는 것들 452
역사의 끝에서 드러나는 것 ― 재난의 상상에 드리운 것들 453
이물감에 대하여 ― 이주노동자는 어떻게 드러나는가? 493

chapter 3B : 우리 사이의 기호 518
교통, 소통, 교환, 그 불투명한 열의 ― 정영수 소설집 『애호가들』 519
정치적인 것이 아니다 ― 조남주 장편소설 『82년생 김지영』 534
실패한 자들의 실존 ― 김사과 장편소설 『풀이 눕는다』 543
바깥에서 찌르고 들어올 때,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 ― 김애란 소설집 『바깥은 여름』 555

후기 : 비천함의 아방가르드 569

감사의 글 594
참고문헌 595
텍스트 찾아보기 602
인명 찾아보기 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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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인간의 탄생』(조정환 지음, 갈무리, 2015)

예술의 일반화, ‘누구나’의 예술가화, 모든 것의 예술 작품화라고 부를 수 있는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 예술의 범람에도 불구하고, 센세이셔널한 예술종말론들이 유행하고 있다. 어째서인가? 종말로 파악할 만큼 급격한 예술의 위치와 양태변화는 항상 새로운 주체성의 대두와 긴밀한 연관을 맺고 있다. 단토, 가라타니 고진, 벤야민 등의 예술종말론들은, 봉건제에서 자본주의로의 이행기에 나타난 예술적 변화를 예술종말로 파악한 과거의 관점들(헤겔, 맑스)을 산업자본주의에서 인지자본주의로의 이행이라는 다른 맥락에서 되풀이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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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자본주의』(조정환 지음, 갈무리, 2011)

'인지자본주의'는 인지노동의 착취를 주요한 특징으로 삼는 자본주의이다. 우리는 이 개념을 통해서 현대자본주의를 다시 사유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노동의 문제설정을 새로운 방식으로 제기할 수 있다. 이 개념을 통해서 우리는, 금융자본이 아니라 인지노동이 현대세계의 거대한 전환과 사회적 삶의 재구성을 가져오는 힘이라는 생각을 표현할 수 있고, 그 노동의 역사적 진화와 혁신의 과정을 중심적 문제로 부각시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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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민주주의』(조정환 지음, 갈무리, 2017)

전 세계적 정치상황과 사회운동에 대한 경험적 분석을 통해 직접민주주의와 대의민주주의 속에서 진동해온 민주주의 논쟁을 절대민주주의라는 새로운 지평의 발견과 발명을 통해 한 걸음 더 전진시키려는 것으로 이러한 주제의 단행본으로서는 국내외를 통틀어 최초의 책이다. 촛불 자유발언대와 만민공동회, 그리고 피켓, 깃발, 구호와 함께 하는 집회에서 누구나 정치가이듯이, 절대민주주의적 삶정치에서는 누구나 노동-정치가, 정치-노동자이다. 다중의 삶정치를 제도화한 절대민주주의 헌법에서는 다중이 직접적으로 정치가이듯이 다중을 대의하는 정치가들도 다중의 일부로서 다중에 복무하는 정치-노동자, 노동-정치가일 것이다.

2017.11.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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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일상생활의 혁명』
Traité de savoir-vivre à l'usage des jeunes générations



젊은 세대를 위한 삶의 지침서


우리는 지겨워 죽을 위험 대신에 굶어 죽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맞교환되는 세계를 원하지 않는다.
우리 세기에 더욱 빛을 발하는 프랑스 68혁명 세대의 지침서
우리가 얻을 것은 즐거움의 세계요, 우리가 잃을 것은 권태뿐이다!


2017년 전면 개역판

지은이  라울 바네겜  |  옮긴이  주형일  |  정가  24,000원  |  쪽수  432쪽
출판일  2017년 11월 30일  |  판형  사륙판 (130*188) 무선
도서 상태  초판  |  출판사  도서출판 갈무리  |  총서명  Virtus, 아우또노미아총서 58
ISBN  978-89-6195-171-5 03300  |  CIP제어번호  CIP2017029914
도서분류  1. 철학 2. 사회과학 3. 사회학 4. 정치학 5. 미학


인터넷서점 바로 가기 : 알라딘 교보문고 YES24 인터파크 반디앤루니스 영풍문고



삶은 인간의 특성이다. … 인간을 포함한 전 세계 모든 종들의 생존이 위협받고 있다. 그래서 나는 삶의 의지가 폭발하는 것에 기대를 건다. 아무리 황폐해졌다고 하더라도 폐허로부터 다시 일어나는 데 성공하지 못한 사회는 역사상 없었다. … 프랑스 대혁명 때 나온 그 말은 불손한 참신함을 전혀 잃어버리지 않았다. “거인이 크게 보이는 것은 우리가 무릎을 꿇었기 때문이다. 일어서자!”

라울 바네겜 (『라 리브르』와의 인터뷰)



『일상생활의 혁명』 간략한 소개


“논쟁의 여지가 없을 만큼 중요한 이 책의 출간 덕택에 이제 옛날의 <상황주의 인터내셔널>은 끝날 것이다.”
기 드보르, 『스펙터클의 사회』의 지은이

“『일상생활의 혁명』은 1968년 5월 봉기의 진정한 바이블이었다.”
뱅상 카우프만, 『기 드보르 : 시에 봉사하는 혁명』의 지은이


기 드보르와 함께 <상황주의 인터내셔널>의 핵심 이론가였던 라울 바네겜의 주저. 상황주의자들은 현대 자본주의를 스펙터클의 시대로, 즉 축적된 이미지가 지배하는 시대로 진단했다. 상황주의자들에게 상황이란 스펙터클 자본주의의 물질적, 사회적, 정치적 조건들이 모인 상태를 깨뜨리면서 만들어지는 새로운 삶의 순간이다. 기 드보르가 『스펙타클의 사회』에서 거대 미디어에 의해 노동자들이 구경꾼으로 전락한 사회에서 혁명적 상황을 창조할 방법을 모색했다면, 바네겜은 『일상생활의 혁명』에서 현대 복지국가가 제시하는 권태로운 생존(subsistance)에서 벗어나 열정적 삶(vie)의 상황을 창조할 방법을 탐구한다.

이 책은 1967년에 출간되어 1968년 5월 혁명을 이끄는 이론적 동력이 되었다. 프랑스에서 초판이 출간된 지 50년 만에 새로운 한국어판이 출간된 셈이다. 2017년은 러시아혁명 100주년이며, 또 68혁명 50주년(2018년)을 목전에 두고 있는 역사적인 시기다. 1968년의 투사들이 거부했던 권태와 생존의 상태로부터 우리는 지금 자유로운가? 이 책은 오늘날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생존이 아니라 무엇보다 우선 삶을!” 요구하고 발명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일상생활의 혁명』 출간의 의미

“우리는 지겨워 죽을 위험 대신에 굶어 죽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맞교환되는 세계를 원하지 않는다.”

『일상생활의 혁명』의 원제목은 『젊은 세대를 위한 삶의 지침서』(Traité de savoir-vivre à l'usage des jeunes générations)이다. 제목에서 보이듯이 이 책은 젊은이들에게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를 역설한 책이다. 1960년대 말 서유럽 젊은이들은 2차 세계대전 이후 태어난 전후 세대로서 점점 더 고도화되는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커다란 문제에 봉착해 있었다. 자본주의 경제의 발전이 가져다 준 물질적 풍요를 받아들이는 대신, 일상생활의 미세한 영역까지 장악한 규율과 통제를 받아들일 것인가? 다시 말해, 시스템에 길들여진 채 안전하게 생존하는 것에 만족할 것인가, 아니면 시스템을 거부하고 삶의 쾌락을 추구할 것인가? 자본주의 체제를 위해 봉사하는 기계 부품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두려움 앞에서 많은 젊은이들이 기꺼이 시스템을 거부하고자 했다. 상황주의 인터내셔널 운동은 바로 그런 젊은이들의 생각이 드러난 결과였다.

상황주의에서 상황(situation)이란?

상황주의자들이 말하는 상황이란 물질적, 사회적, 정치적 조건들이 모인 상태가 아니다. 그들이 말하는 상황은 사람들이 집단적, 의도적으로 만들어내는 구체적인 삶의 순간이다. 그것은 기존의 물질적, 사회적, 정치적 조건들이 모인 상태를 깨뜨리면서 만들어지는 새로운 삶의 순간이다. 다시 말해 구속과 속박의 상태가 아니라 해방과 자유의 상태가 바로 상황이다. 상황주의자의 활동이란 바로 이 해방과 자유의 상태, 즉, 상황을 창조하는 활동이다. 이것은 주어진 물질적, 사회적, 정치적 조건들을 극복하고 초월하는 활동이라는 점에서 혁명적 활동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이런 조건들이 일상생활을 제약하는 조건들이란 점에서 상황을 창조하는 것은 ‘일상생활의 혁명’이다. 상황주의자가 일상생활의 혁명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일상의 삶 자체가 상품으로 전환돼 교환됨에 따라 인간은 삶으로부터 분리, 소외되고 오직 스펙터클을 통해 매개된 방식으로만 존재하고 생존하게 됐기 때문이다. 사회를 지배하는 스펙터클의 논리는 인간을 파편화하고 일상생활을 단편적으로 쪼갬으로써 인간을 수동적이고 비참한 관객, 진정한 쾌락을 느끼지 못한 채 지겨움 속에서 죽어가는 소비자로 전락시킨다. 따라서 삶의 풍요로움을 되찾아 직접 체험하는 총체적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상황을 창조해야 한다.

YOLO와 상황주의?

상황주의자들이 생각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이유는 발달된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는 여전히 생존에 급급할 뿐 삶을 즐기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회자되고 있는 YOLO(you only live once) 문화는 어떤 측면에서는 상황주의 인터내셔널 운동의 현대적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자본주의 체제는 YOLO를 끊임없이 소비문화의 한 형태로 환원시키려 한다. 한 번 사는 인생이니 미래를 생각하지 말고 아낌없이 소비하라. 이것이 자본주의 체제가 주입하고자 하는 YOLO의 모토이다.

하지만 YOLO는 그런 소비지상주의의 정확히 반대 지점에 서 있다. 사실 YOLO가 의미하는 바는 체제가 당신에게 제시한 정해진 길을 벗어나 완전히 다른 길을 걸으라는 것이다. 우리는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당연히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를 가고 학교를 졸업하면 당연히 취업을 해야 하고 취업을 하면 당연히 결혼을 하고 아기를 낳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 그것이 당연한가? 그것이 당연한 삶인가? 사실 그것은 생존하는 것에 불과하지 않은가? 이런 의문이 바로 YOLO의 출발이고 바탕이다. 자본주의의 온순한 노동자이자 수동적 소비자로 길들여지는 것을 거부하는 것이 바로 YOLO의 본질이다.

혁명은 무질서한 놀이를 통해 가능해진다

우리는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 정해진 시간에 일을 시작하고 끝내며 주어진 시간 동안 논다. 정해진 방식대로 길과 통로를 이동하며 정해진 공간에서 놀고 자고 정해진 공간에서 일한다. 이런 정해진 시간과 공간의 배분을 어지럽히는 일은 위험하거나 개념 없는 짓으로 간주된다. 무질서를 위험하고 폭력적인 것으로 배척하면서 자본주의 사회는 질서와 평화를 찬양한다. 그런데 질서는 평화를 만들지만, 이 평화는 진정한 평화가 아니라 순종과 예속의 평화일 뿐이다.

질서가 만든 평화는 지겨움만을 줄 뿐, 진정한 쾌락을 만들어내지 않는다. 혁명은 질서가 만든 평화를 깨는 일이다. 혁명은 무질서한 놀이를 통해 가능해진다. 처음에는 무질서한 놀이였더라도 놀이가 반복되는 순간, 놀이는 경직되고 창조적 힘을 잃는다. 바네겜은 “종종 봉기는 시작하자마자 눈부신 승리를 거두는데 그 이유는 봉기가 적에 의해 지켜지는 놀이의 규칙들을 깨뜨리고 새로운 놀이를 발명하고 각각의 투사들이 유희적 개발에 완전히 참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창조성이 갱신되지 않으면, 그것이 반복되는 경향이 있으면, 혁명군이 정규군의 형태를 취하면, 우리는 점차 열의와 히스테리가 헛되이 전투적 취약함을 보충하고 옛 승리들에 대한 추억이 끔찍한 패배를 준비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라 주장했다.

정해진 길을 따르는 일이 초래하는 근본적인 지겨움을 쉼 없이 거부하고 계속 새로운 놀이를 찾고 새로운 상황을 구축하는 것이 바로 YOLO의 의미이고 일상생활의 혁명이다. “지겨워 죽겠다”라는 외침 앞에서 자본주의는 상품을 소비하는 쾌락을 통해 지겨움에서 벗어날 것을 권유한다. 그러나 그것은 지겨움으로부터의 일시적 도피일 뿐이다. 지겨움에서 근원적으로 벗어나기 위해서는 생존의 안락함을 버리고 진정으로 삶을 만끽하겠다는 의지를 가져야 한다. 그것이 바로 자본주의의 톱니바퀴가 되기를 거부하는 젊은이에게 이 책이 전하는 이야기이다.



책 속에서 : 『일상생활의 혁명』의 몇 가지 키워드들


생존의 인간
생존의 인간은 위계화된 권력의 메커니즘 안에서, 조합된 간섭들 안에서, 프로그램된 사상가들의 참을성 있는 프로그래밍만을 통해 정돈될 수 있는 억압적 기술의 혼돈 안에서 잘게 부서진 인간이다.
― 서론, 20쪽


모욕
벽돌처럼 무감각하고 다루기 쉬운 것이 되라는 것이 바로 사회조직이 각자에게 친절하게 요구하는 것이다. 부르주아지는 모욕을 가장 공평하게 배분할 줄 알았다.… 사람들이 자신의 모욕을 선택하면 할수록 더욱 그들은 “산다”. 그럴수록 더욱 그들은 사물들로 정돈된 삶을 산다.
― 2장 모욕, 40~42쪽


거짓말
인간은 거짓말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달리 행동할 방법이 없으므로 거짓말을 한다. 인간 자신이 자기 자신의 거짓말에 의해 연결된 거짓말이다. 상식은 모두의 이름으로 진실에 반대해 선포된 규정에만 서명을 한다. 그것은 거짓말의 통속화된 법전이다.
― 14장 겉모습의 조직, 170쪽


역할
역할의 임무는 사람들을 사회조직의 규범들에 적응시키고 사물들의 평온한 세계에 통합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사방에 숨겨져 있는 몰래카메라가 평범한 존재들을 점령해 애정문제를 상담란의 소재로 만들고 불필요한 털을 아름다움의 문제로 만드는 것을 볼 수 있다.
― 15장 역할, 185쪽


소비
소비사회는 틴에이저라는 명찰하에 소비자로 전환해야 할 새로운 집단을 발견하지 않았는가? 소비하는 사람은 자신을 날조해 소비한다. 그는 스펙터클을 위해서 그리고 진정한 삶을 희생하며 겉모습을 가꾼다. 그는 상품, 역할들과 같은 죽은 사물들에 매달리기 때문에 그가 매달리는 곳에서 죽는다.
― 16장 시간의 유혹, 215쪽


모두가 예술가다
예술가가 그렇게 간절히 바라던 커뮤니케이션은 일상생활의 가장 단순한 관계들 안에서까지 단절되고 금지된다. 그 결과로 커뮤니케이션의 새로운 양식들의 추구는 화가나 시인에게만 한정돼 있기는커녕 오늘날 집단적 노력에 속한다. 이렇게 예술의 오래된 전문화는 끝이 난다. 이제 더는 예술가는 없다. 모두가 예술가가 되기 때문이다. 앞으로의 예술 작품은 열정적인 삶의 구성이다.
― 20장 창조성, 자발성 그리고 시, 276쪽



지은이·옮긴이 소개


지은이
라울 바네겜 (Raoul Vaneigem, 1934~ )
벨기에 에노주(州)의 레신느에서 태어난 바네겜은 프랑스 영화감독이자 작가인 기 드보르와 함께 “20세기 최후의 아방가르드”로 불리는 <상황주의 인터내셔널>을 이끈 핵심 이론가이다. 1952~56년 브뤼셀자유대학에서 로망스어 문헌학을 공부한 뒤 1961년 <상황주의 인터내셔널>에 가입한다. 1970년 <상황주의 인터내셔널>을 탈퇴하기까지 10여 년간, 바네겜은 수많은 논문과 팸플릿을 통해 정치체제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을 변혁하는 것이 진정한 혁명이라는 상황주의자들의 구호를 체계화하는 데 공헌했다. 특히 드보르의 『스펙터클의 사회』와 같은 해(1967년)에 출간된 『일상생활의 혁명』은 68혁명의 숨은 원동력이었는데, 『스펙터클의 사회』가 현대 사회를 지배하는 스펙터클에 관한 정치적, 이론적 분석이라면, 『일상생활의 혁명』은 이런 스펙터클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급진적 주체성에 관한 철학적, 실천적 사색이었다. 당시 프랑스의 학생들은 이 책의 몇몇 구절들을 점거된 학교 담벼락에 쓰는 것으로 자신들의 지침서가 된 『일상생활의 혁명』과 그 지은이 바네겜에게 경의를 표했다. 1970년 자신의 무능함을 고백하며 <상황주의 인터내셔널>을 탈퇴한 바네겜은 『인류의 권리선언문: 인권의 지양으로서의 삶의 주권』(2001), 『시장사회의 철폐를 위하여, 살아 있는 사회를 위하여』(2002) 등을 발표하며 시장과 임금체계의 논리를 거부하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개인의 욕망을 해방시킬 수 있는 정치학, 자유롭고도 자기규율적인 사회질서 등을 구상하는 데 전력을 다하고 있다.


옮긴이
주형일 (Joo Hyoungil, 1968~ )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 졸업. 프랑스 파리 5대학, 1대학에서 공부했다. 현재 영남대학교 언론정보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저서로 『사진: 매체의 윤리학, 기호의 미학』(2006), 『영상매체와 사회』(2009), 『랑시에르의 무지한 스승 읽기』(2012), 『문화연구와 나』(2014), 『이미지가 아직도 이미지로 보이니?』(2015), 『자크 랑시에르와 해방된 주체』(2016) 등이 있고 역서로 『소리 없는 프로파간다』(2002), 『미학 안의 불편함』(2008), 『가장 숭고한 히스테리환자』(2013), 『문화의 세계화』(2014), 『정치 실험』(2018, 근간) 등이 있다.



목차


2판 서문 : 삶의 일상적 영원성 8
서론 18

1부 권력의 관점 1장 의미 있는 무의미함 23

불가능한 참여, 또는 구속의 총합으로서의 권력 32
2장 모욕 33
3장 고립 48
4장 고통 57
5장 노동의 실추 70
6장 감압과 제3의 힘 77

불가능한 커뮤니케이션, 또는 보편적 매개로서의 권력 87
7장 행복의 시대 88
8장 교환과 증여 100
9장 기술, 그리고 기술의 매개된 사용 111
10장 양적인 것의 지배 119
11장 매개된 추상화와 추상적 매개 128

불가능한 실현, 또는 유혹의 총합으로서의 권력 145
12장 희생 146
13장 분리 161
14장 겉모습의 조직 169
15장 역할 180
16장 시간의 유혹 210

생존, 그리고 생존에 대한 거짓된 항의 216
17장 생존의 고통 217
18장 불안정한 거부 224

2부 관점의 전복
19장 관점의 전복 252
20장 창조성, 자발성 그리고 시 259
21장 노예 없는 주인들 279
22장 체험의 시공간과 과거의 교정 302
23장 통일된 삼위 326
24장 중간세계와 새로운 순수 372
25장 당신들은 그리 오래 우리를 우습게 여기지 못할 거요 378

혁명적 노동자들에게 축배를 383

옮긴이 후기 390
후주 396
라울 바네겜 저작 목록 415
인명 찾아보기 424
용어 찾아보기 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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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인간의 탄생』(조정환 지음, 갈무리, 2015)

예술의 일반화, ‘누구나’의 예술가화, 모든 것의 예술 작품화라고 부를 수 있는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 예술의 범람에도 불구하고, 센세이셔널한 예술종말론들이 유행하고 있다. 어째서인가? 종말로 파악할 만큼 급격한 예술의 위치와 양태변화는 항상 새로운 주체성의 대두와 긴밀한 연관을 맺고 있다. 단토, 가라타니 고진, 벤야민 등의 예술종말론들은, 봉건제에서 자본주의로의 이행기에 나타난 예술적 변화를 예술종말로 파악한 과거의 관점들(헤겔, 맑스)을 산업자본주의에서 인지자본주의로의 이행이라는 다른 맥락에서 되풀이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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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듬분석』(앙리 르페브르 지음, 정기헌 옮김, 갈무리, 2013)

시간, 공간, 도시, 일상성, 미학과 관련해 진행했던 리듬에 대한 그의 평생의 연구를 집대성한 책이다. 르페브르 사후에 친구이자 동료였던 르네 루로에 의해 출판되었다. 이 책은 왜 르페브르가 20세기 가장 중요한 맑스주의 사상가들 중 한 명인지를 보여준다. 르페브르는 맑스, 바슐라르, 니체, 하이데거, 쇼펜하우어 등 다양한 철학자들의 사유들을 창조적인 방식으로 혼합하여 ‘리듬분석’이라는 새로운 과학, 새로운 지식의 영역을 정초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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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럭서스 예술혁명』(조정환, 전선자, 김진호 지음, 갈무리, 2011)

플럭서스 예술운동에 대한 한국 최초의 본격연구서이다. 2011년은 플럭서스 예술가 백남준(1932~2006) 사후 5주기, 플럭서스 예술운동 50년, <플럭서스 선언문> 작성자 조지 마키우나스 탄생 70년이었다. 플럭서스는 전통적이고 경직된 재현적 예술체제를 타파하고 예술을 삶과 통합시킬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모색하고 실험하고 실천하였다. 예술과 비예술의 경계를 해체하고, 예술적인 것에 대한 제도적, 전통적 통념을 넘어, 예술과 삶 그리고 존재와 생명의 통일을 실천했던 플럭서스 총체예술을 분석한다.

2017.11.03 |



보도자료 

『사건의 정치』
La politica dell'evento



재생산을 넘어 발명으로


균형(정치경제학)과 통합(뒤르켐), 재생산(부르디외),
대립(맑스주의), 경쟁(다위니즘), 평등(랑시에르)을 넘어

생성변화, 발명, 창조, 특이화의 사건을 사유할 수 있는 길이 무엇인가?


지은이  마우리치오 랏자라또  |  옮긴이  이성혁  |  정가  19,000원  |  쪽수  332쪽
출판일  2017년 10월 31일  |  판형  신국판 (139*208) 무선
도서 상태  초판  |  출판사  도서출판 갈무리  |  도서분류  Mens, 아우또노미아총서 57
ISBN  978-89-6195-170-8 93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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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저항 정치는 ‘시-예술’적인 것과의 삼투작용 속에서 전개되고 있으며
더욱 사건적인 성격을 띠어가고 있다.
그래서 앞으로 저항 정치는 시적 상상력이 더욱 요구될 것으로 예상된다.
가능성의 발명으로부터 정치의 가능성을 사고하고 있는 『사건의 정치』는,
현대의 저항 정치가 가지고 있는 시적이고 예술적인 성격을 적실하게 드러내고 있는 책이다.



『사건의 정치』 간략한 소개

이 책에서 랏자라또는 현대 사상의 급진적 정치성을 되살리면서 현 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권력에 저항하고 사회를 변혁하는 길을 모색한다. 그는 들뢰즈/가타리푸코 등의 급진적인 현대사상을 바탕으로 바흐친빠졸리니, 라이프니츠타르드와 같은 이들의 사상을 재평가하고 ‘구제’하며 현실화한다.

랏자라또는 타르드의 ‘신모나드론’에서, 미시와 거시의 영역을 횡단하면서 사회의 변화를 사유할 수 있는 개념들과 방법론을 찾아낸다. 이 ‘모나돌로지’는 사회와 개인, 전체와 부분,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관계를 구조주의와는 다르게 사고할 수 있는 길을 열며, 최근 논의되고 있는 ‘정동이론’을 심화시킬 돌파구를 마련한다.

랏자라또에 따르면, 현대 자본주의는 발명과 창조가 이루어지는 자신의 외부를 포위·감금하고 포획하여 사유화함으로써 부를 축적하고 있다. 저자가 말하는 ‘사건의 정치’란, 자본과 권력에 의해 포획된 발명의 사건성과 그 가능성을 자유롭게 해방시키는 것이다. 그것은 저항과 함께 차이화를 증폭하여 현대 사회의 통제와 관리를 넘어서면서 ‘구성 권력’의 힘을 증대하는 정치다.

랏자라또는 다수자의 척도로부터 탈주하고 차이를 생성하면서 자신의 삶을 자유로이 구성하는 ‘소수자-되기’에서 대안적인 정치적 주체화를 찾아낸다. 이 관점에서 볼 때, 랑시에르의 ‘평등의 정치학’은 다수자의 척도 자체를 문제 삼지 않고 있으며 평등의 요구를 넘어서서 전개되는 차이화의 운동을 생각하지 않는다. 랏자라또는 평등의 쟁취와 함께 차이의 생성을 추구하는 정치학을, 즉 ‘평등의 정치학’을 넘어서 ‘소수자의 정치학’ 또는 ‘차이의 정치학’을 우리에게 제시한다.



『사건의 정치』 출간의 의미

이 책의 저자인 랏자라또는 정치철학자 안또니오 네그리의 제자로서, 잡지 『뮐띠뛰드』(Multitudes)지의 창간 발기인이자 편집위원이며, 반(反)WTO·반G8 운동과 (이 책에도 등장하는) 엥떼르미땅이나 불안정생활자(프레카리아트) 등의 연대조직 활동에 참가하는 등 실천적인 지식인이기도 하다. 최근 그의 책 『부채인간』과 『기호와 기계』의 한국어판 출간으로, 랏자라또는 한국에서도 꽤 알려져 있는 현대 사상가이다. 2004년에 원서가 출간된 이 책 『사건의 정치』는 랏자라또의 이론적·철학적 바탕을 다진 책으로 평가받는다.

랏자라또의 책이 가지는 미덕 중 하나는, 그의 이론적 탐구가 항상 사회 현실에서 벌어지는 ‘사건’에 대한 성실한 대응 속에서 그 사건을 이해하고, 급진적인 입장에서 대안적인 전망을 찾아나가면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 책도 역시 그러한데, ‘사건의 철학’은 이 책의 서두에서 사건의 예로서 소개되고 있는 1999년의 ‘시애틀 봉기’에서 촉발되어 사유되고 있다. 랏자라또는 시애틀 봉기라는 사건에 대해 사유하면서, 주체의 철학은 더 이상 이러한 사건들이 열어 놓는 정치적 시공간을 사유하거나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다고 평가한다. 이에 그는 사건의 특이성에 대해 사유해 왔던 라이프니츠와 가브리엘 타르드의 모나드론, 미하일 바흐친의 대화주의의 의의를 들뢰즈의 잠재성의 철학을 경유하여 재조명하고 재구성한다.

또한 그의 정치 철학과 실천 이론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변동과 긴밀한 관련을 맺는다. 포스트포디즘과 신자유주의로 특징지을 수 있는 현 자본주의에서는, 예전과는 다른 양상의 사회가 펼쳐지고 있다. 사회적·경제적 약자에 대한 사회적 배제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노동에 관한 여러 규제가 없어지면서 비정규고용이 확대되고, 홈리스, 워킹 푸어 등이 문제로 나타났다. 정규직 노동자들 역시 치열한 경쟁 속에서 우울증에 빠지거나 과로로 인한 자살을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분리되어 협력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에서는 기존의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의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하는 노동운동은 변화된 자본주의 아래에서 보수적인 성격을 띠게 되는 경향이 생기고 있다. 『사건의 정치』를 관통하고 있는 것은 인지적 노동과 다운사이징, 고용의 유동화를 특징으로 하는 포스트포디즘 시대의 현 자본주의에서, 이 시대를 극복할 대항책은 기존의 노동운동의 연장선상에서는 찾을 수 없다는 문제의식이다.

변화된 자본주의에 대항하기 위한 이론을 모색하는 일은 매우 어려운 과제로, 근본적인(radical) 사유가 필요하다. 이 책의 많은 부분이 철학적 논의로 채워지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하지만 이 점이야말로 이 책이 지닌 장점으로, 이 책이 노동문제에 관한 일반적인 책이나 아카데믹한 철학서와는 그 유를 달리하는 요인이기도 하다. 책의 앞부분인 1~2장에서 전개된 철학적 담론은 3장과 4장의 현대 사회와 문화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 그리고 5장에서의 프랑스에서 전개된 ‘엥떼르미땅’의 투쟁이 지닌 현대적 의의의 도출과 ‘차이의 정치학’에 대한 논의와 긴밀하게 결합된다. 그의 책은 현대사회에서 나타난 사건들에 대한 이론적 응답이며 그 사건이 열어놓는 지평에서 대안을 찾아가는 작업의 산물이다.

사건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사건의 철학에 대하여

랏자라또 사상의 철학적 바탕을 가장 잘 보여준 부분은 1장 「사건과 정치」이다. 1장은 주로 라이프니츠와 타르드의 모나드론, 그리고 들뢰즈의 철학을 통해 ‘사건’과 ‘가능성’에 대해 철학적으로 해명하고 있다. 랏자라또는 사건의 철학을 ‘헤겔-맑스’의 전통이 제시한 ‘주체의 철학’과 선명하게 대조하면서 설명한다. 주체의 철학이 동일성의 철학이라면 사건의 철학은 차이의 철학이다. 노동을 핵심 개념으로 삼고 있는 주체의 철학에서 가능성은 결국 동일성의 반복에 불과한 것으로 취급된다면, 사건의 철학에서 가능성은 차이의 생성과 반복으로 인식된다. 주체의 철학은 사건을 ‘객체’로서 인식하여 주체의 동일성으로 회수하고 그 사건의 차이성이 지닌 역능을 박탈한다. 이와는 달리 사건의 철학은 사건이 열어놓는 시공간에서 그 차이성을 더욱 가동하여 새로운 일관성을 구축해나간다.

랏자라또의 사상에서 사건이란, 계획된 것이 아니라 예측 불가능한 것, 조리에 맞는 것이 아니라 부조리한 것, 필연적인 것이 아니라 우연적인 것이다. 또한 사건은 균질적이고 정지된 공간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이질적인 것이 서로 혼합된 동적인 공간에서 일어난다. 균질적이고 정지된 공간으로 보여도, 거기에 이질적인 것이 혼입된다면 혼합에 의해 예상 밖의 사건이 일어나면서 공간 전체가 변모될 수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사건은 앞으로 어떠한 꽃을 피울지 아무도 모르는 식물의 종자와 비슷하다. 그 종자는 모두가 이종혼교적(異種混交, hybrid)이고 각자가 고유의 미래의 꽃 ― 바꾸어 말하면 고유한 가능세계 ― 을 자신 안에 숨기고 있다. 사건을 그와 같이 포착할 때, 우리들은 ‘가능태’로부터 ‘현실태’로의 이행으로서 세계를 포착하는, 예전의 자연철학 계보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

근세 말의 철학자 라이프니츠개개의 사건(모나드)이 내포하고 있는 무수한 가능세계신의 은총에 의해 ‘유일한 세계’ 안에서 조화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근대가 되면, 이번에는 국가가 그때까지의 신을 대신하여 초월적인 입장에서 개개의 사건(주체)을 총괄하고 무수한 가능세계를 ‘규율훈련’에 의해 균질화하고, 관리하게 된다. ― “여러 규율사회는 라이프니츠의 신처럼 작용한다.” 푸코의 ‘생명권력론’이 보여주듯이, 탄생, 노화, 병, 죽음이라는 인간의 삶에 얽혀 있는 사건(결국 ‘삶’은 사건이다)은 권력에 의해 관리되어야 할 대상이 된다. 또 노동은 계획에 의거하여 ‘유일한 세계’를 표현하기 위한 본질적 수단이 된다.

통제사회의 도래와 인지정치

19세기 말부터 진행된 미디어와 교환수단의 급속한 발달은 그 이전과는 이질적인 노동과 사회의 상태를 부상시켰다. 19세기 말의 사회학자 타르드는 거리를 둔 사람들 사이의 ‘뇌의 협동’으로서의 노동과 미디어를 통해 사고하는 다양한 ‘공중’들의 등장을 밝혔다. 그와 같은 세계는 국가와 당이라는 초월자의 계획에 의해 변화되는 것이 아니라 ‘집합화된 뇌’가 산출하는 사건(발명)에 의해 변화되는 세계이며, 무수한 가능세계가 공립(共立)하는 세계이다. ‘유일한 세계’에 입각한 권력은 그와 같은 가능세계의 증식을 막아야만 한다. 그때 미디어는 ‘유일한 세계’와 ‘무수한 가능세계’ 사이의 투쟁의 무대가 된다. 즉 그것은 ‘단일언어주의’와 ‘복수언어주의’ 사이의 투쟁(바흐친)이다. 랏자라또는 이러한 상황에서 생겨나는 새로운 정치를 ‘인지정치’라고 이름붙이고, 독자적인 분석을 행한다.

그와 같이 새로이 등장한 사회의 잠재성은 자본주의 생산양식이 변화하여 공장노동의 모델이 기능하지 않게 되고, 권력의 움직임이 외재적인 작용양식(규율훈련)에서 내재적인 작용양식(통제)으로 이행하면서 뚜렷하게 현재(顯在)화했다. 이러한 시대 변화에 맞추어 자본주의는 노동양식을 크게 변화시켰지만(포디즘에서 포스트포디즘에로), 이에 대해 노동운동 쪽은 변함없이 공장노동 모델에 의거하면서 예전의 자본주의와의 타협의 산물(복지국가)에 그대로 매달려 있다는 문제를 갖게 되었다. 자본주의가 이미 사건을 ‘포획’하여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는(무력화하는) 것에 비해 노동운동 쪽은 여전히 사건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랏자라또의 진단이다.

오늘날 자본주의 기업은 무엇을 착취하는가?

랏자라또는 오늘날의 자본주의 ‘기업’을 공장과 구별한다. 기업은 미리 가능세계를 생산함으로써 ‘대안은 없’는 세계를 창출하여 이를 통해 착취를 행한다. 다시 말하면, 기업은 자신이 만든 가능세계만이 가능하며 다른 세계의 도래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도록 사람들을 변조하고, 그들이 그 한정된 세계 속에서만 욕망하게 만들며, 그럼으로써 착취의 우주를 형성한다.(그래서 이에 대항하여 대안세계화 운동은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는 구호를 내세웠다.) 가능성을 한정하여 절취하는 작금의 자본주의는 부채로 운영되는 현 금융 자본주의 시스템과 직결된다. 이는 이제 현대 자본주의는 노동자의 현재 시간만을 착취하는 것뿐만 아니라 미래의 시간을 착취함으로써 작동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랏자라또는, 현 자본주의가 마이크로소프트사나 구글에서도 볼 수 있듯이 ‘뇌의 협동’이 형성한 공통적인 것을 절취하면서 가치를 축적하고 있다는 점도 지적한다. 그에 따르면, 기업보다 먼저 존재하고 있는 것은 자본주의 시스템 외부에서 형성되는 집단적 뇌의 공통적인 발명과 창조이다. 기업은 이를 통해 창출된 공통재를 포획하여 사유화하고, 발명되고 있는 가능성을 회수하여 가치 회로 속으로 구깃구깃 집어넣는다. 이에 따라 이루어지는 가능성의 봉쇄란 자본주의 시스템에 의한 ‘외부의 감금’이라고 할 수 있다.

자본주의 시스템과 기업은, 발명과 창조가 이루어지는 자신의 외부를 포위·감금하고 포획하여 사유화함으로써 부를 축적한다. 사건을 발명하고 구성하는 정치를 생각하는 랏자라또에게 ‘사건의 정치’란, 이렇듯 자본과 권력에 의해 포획된 발명의 사건성과 그 가능성을 자유롭게 해방시키는 것, 그러니까 저항과 함께 차이화를 증폭하여 현대 사회의 통제와 관리를 넘어서는 동시에 ‘구성 권력’의 힘을 증대하는 것이다. 정치에서 가능성의 발명과 그 사건성을 증폭하기 위해서는 정치의 실험이 필요하다.

‘사건론적 전회’ ― 바흐친의 대화이론에 대하여

랏자라또에 따르면, 사건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바흐친의 사건론적 전회’를 인식할 필요가 있다. 바흐친에게서 모든 발화행위는 사회적 행위이다. 바흐친에 의하면, 언어행위(즉 ‘발화행위’)와 분리된 낱말과 문법형식, 명제는 단순히 잠재적인 의미작용에 봉사하기 위한 ‘기술적 기호’에 불과하다. 이러한 언어의 잠재성은 언어행위에 의해 개체화되고, 특이화되며, 현실화되는(달성되는) 것이며, 그것은 우리들을 또 하나의 존재영역, 즉 ‘대화’의 영역으로 들어가게 한다. 언어를 구성하는 단어와 명제를 하나의 완전한 언어행위로, 즉 하나의 ‘전체’로 변용하는 것은 전(前)-개체적인 정동의 힘, 논리-정치적인 힘이다. 그것은 언어의 바깥에 있으면서 언표행위의 안쪽에 있는 힘이다.

모든 언표행위는 그 속에 이해와 ‘능동적 책임’, ‘입장표명’, ‘관점’, ‘적극적 평가’ 등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한 내용은 화자가 그때 기대하고 있었던 것과는 무관하게 야기된다. 이와 같은 대화성의 개념을 사용하여 우리들은 공공(公共) 공간의 변천을 생각할 수 있다. 봉기와 같은 사건에서, 우리들이 발견하는 것은 바흐친이 기술한 것처럼 전략적 행위이다. 즉 한편으로 언표는 다른 언표와 서로 대립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것들은 서로 보완하고 기댄다. 바흐친의 대화주의는, 언표는 그 자체가 다른 언표에 대한 응답임을 밝힌다. 그것은 다른 언표와의 차이를 분명히 하면서 다른 언표를 확인하고, 다른 언표에 의거하면서 공공 공간 안으로 파고든다. 그래서 언표행위를 언어 안에 폐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포스트사회주의 정치운동 ― 평등의 정치를 넘어 차이의 정치로

들뢰즈/가타리의 개념인 ‘소수자’는 어떤 신원에 국한되기보다는 다수자의 척도로부터 탈주하면서 다른 존재로 변화하는 존재, 생성 변화하면서 운동해나가는 존재를 지칭한다. 흑인이나 여성 중에도, 어떤 한계에 부딪칠 수는 있겠지만 다수자가 되어버린 이가 있을 수 있다. 그가 어떤 신원이든 사회의 척도에서 벗어나면서 자신을 생성 변화시킬 수 있을 때, 비로소 그는 ‘소수자’에 합당한 존재가 될 수 있다. 랏자라또는 현대인들이 다수자에 편입되기를 욕망하면서 다수자의 척도에 자신의 삶을 맞추고 스스로 통제하고 있는 것에 주목한다. 그것은 그가 여성이든지 동성애자든지 흑인이든지간에, 다수자에 종속된 삶을 사는 것이다. 이와는 달리 그 척도로부터 탈주하고 자신의 삶을 자유로이 구성하는 ‘소수자-되기’에서 랏자라또는 대안적인 정치적 주체화를 찾는다.

‘평등의 정치’를 주장하는 랑시에르의 논의를 랏자라또가 비판하고 있는 것은 이와 관련된다. 불평등의 사회에서 평등의 획득은 중요하지만(라자라또가 평등을 위한 운동을 부정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몫이 없는 자가 평등하게 몫을 요구한다’는 랑시에르의 ‘평등의 정치’는 다수자의 척도 자체를 문제 삼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리고 평등과 함께 차이화 하는 운동을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고 랏자라또는 평가한다. 그는 평등의 권리를 넘어 차이화의 생성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모범적인 예로 다나 해러웨이나 로지 브라이도티의 페미니즘을 들고 있다. 그 페미니즘들은, 남성이라는 다수자의 거울로서의 여성을 남성과 평등한 위치로 끌어올리는 것을 넘어서, 다수자의 척도를 형성하는 자기동일성의 논리를 해체(이는 ‘여성’이라는 주체를 해체하는 것이기도 하다)하고 차이를 생성하는 주체를 모색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듯 랏자라또는 평등의 쟁취와 함께 이러한 차이의 생성을 추구하는 정치학, 즉 ‘평등의 정치학’을 넘어서는 ‘소수자의 정치학’ 또는 ‘차이의 정치학’을 우리에게 제시한다.

랏자라또는 ‘사건’에 기반한 새로운 운동을 만들어내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다양한 사건들을 어떻게 내재적인 방식으로 결부시킬지를 질문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비록 힘든 일이라고 해도 복지국가의 재건과는 다른 대안을 탐구해야만 한다. 복지국가 시대가 다양체로서의 소수자를 단일성으로서의 다수자에 복종시키는 논리에 기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 저자가 이론적으로 중시하는 것은 라이프니츠 이래 ‘사건의 철학’에서 과제로 되고 있는 ‘조정’(調整) 개념, 특히 들뢰즈의 ‘조정’ 개념이다. 그리고 현대의 구체적인 ‘조정’ 시도로서 저자는 프랑스에서의 엥떼르미땅과 불안정생산자들의 ‘연대조직’을 들고 있다.

한국에서 『사건의 정치』 출간의 의의

한국의 촛불 운동이 보여주었듯이 사회의 심대한 변화는 아무도 예측 못한 사건을 통해 벌어진다는 것, 이 사건에 어떻게 대응하고 그 가능성을 현실화하고 실효화하는가가 사회 운동의 미래에 중요한 열쇠가 되리라는 것은 노동운동가를 포함한 많은 이들이 인정하고 있을 것이다. 세월호 참사와 그 이후의 상황 전개에서도 보았듯이, 사건에 잠재해 있는 가능성의 중요성은 점차 한국사회에서도 커져가고 있으며, 사건이 벌어진 이후에 어떠한 표현을 전개하고 어떠한 행동을 물질적으로 조직하느냐가 사회 변화에 관건이 되고 있는 것이다.

어떤 사건에 대해, 그 사건의 성격을 ‘동일성의 철학’으로 재단하여 대응한다면, 그것은 그 사건이 지니는 잠재성과 가능성을 도리어 협소하게 만들고 특정한 틀에 가두는 결과를 가져올 위험이 있다. 또한 그러한 틀에 박힌 대응은 사건의 장에서 더 이상 영향력을 가지지 못하게 될 것이다. 사건이 가지고 있는 미지의 힘에 대해서는 많은 이들이 인지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가능성을 발명하면서 사건의 시공간으로부터 차이를 생성해나가자고 주장하는 이 『사건의 정치』가 뜻 가진 이들 사이에서 널리 읽히고 활발하게 토론된다면, 이 책은 앞으로 한국에서 전개될 실천적인 이론 담론과 사회운동에 어떤 ‘가능성’(이 책의 핵심 개념이다)을 열 수 있을 것이다.



책 속에서 : 『사건의 정치』와 새로운 정치의 발명

모든 발명은 (위대하든지 사소하든지간에) 사건이다. 그 사건은 그 자체 안에는 어떠한 가치도 포함하지 않지만, 가능태를 새롭게 창조하기에 모든 가치의 전제조건이 된다. 발명은 여러 믿음과 욕망의 흐름 사이의 협동이고, 연결이며, 그들의 흐름을 새로운 방법으로 재편성하는 것이다.
― 1. 사건과 정치, 50쪽


생명정치의 기술은 삶에 표적을 두고 있고, 그것은 인류라는 생물 존재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 생명정치의 기술은, 병과 실업, 노화와 죽음에 관계하면서 삶을 통제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 통제 기술이 대상으로 하고 있는 것은 또 다른 삶 (및 생명체)의 개념이다.
― 2. 통제사회에서 삶과 생명체의 개념, 92~93쪽


현대 자본주의가 행하는 일은 뇌의 협동의 파괴다. … 자본주의가 공중과 공중의 집단적인 지각 및 지성을 만들어 내는 방식은 완전히 반-생산적으로 작용한다. 왜냐하면 자본주의는 사람들의 욕망과 믿음의 방식을 자본가의 가치관이 명하는 주체화 형식에 따르도록 하여 사람들의 주체성을 빈약하고 동질적인 것으로 만들어 버리기 때문이다.
― 3. 기업과 신모나돌로지, 173~174쪽


권위에 대한 비판이 사건의 철학과 가능성을 만들어 내는 실천의 전제가 되는 것일까? 권위주의적 발화는 창조를 촉발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창조를 방해하기 때문이다. 권위주의적 발화(“종교적 발화, 도덕적 발화, 성인의 발화, 교수의 발화 … . 그 발화들은 이른바 ‘아버지들’의 발화이다”)는 우리에 대해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일 것을 요구하지만, “우리의 마음속에 자유로이 들어오는” 것은 아니다.
― 4. 표현과 소통의 대립, 211쪽


현대의 전쟁은 다수자/소수자 장치가 가지고 있는 또 하나의 측면을 명확히 한다. 즉 모든 인간은 잠재적으로는 소수자이며, 다수자의 사실은 개인의 사실이 아니라는 측면이다. 즉 다수자의 모델은 구체적인 개개의 인간에 관여하지 않는 공허한 모델이지만, 생성변화는 세계 전체와 관련된다.
― 5. 포스트사회주의 정치운동에서 저항과 창조, 301쪽



지은이·옮긴이 소개

지은이
마우리치오 랏자라또 (Maurizio Lazzarato, 1955~ )
이탈리아 출신의 사회학자이자 철학자. 1980년대 초에 프랑스로 망명, 파리 제8대학에서 커뮤니케이션 패러다임, 정보기술, 비물질노동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자율주의 잡지 『뮐띠뛰드』(Multitudes)지의 창간 발기인이자 편집위원이다. 비물질노동, 임금노동의 종말, ‘포스트사회주의’ 운동, 인지자본주의와 그 한계, 생명정치·생명경제 개념 등이 연구 주제이다. 저서 『부채인간』(메디치미디어, 2012)은 한국어를 포함하여 11개 언어로 번역되었고, 2013년 서울 일민미술관의 <애니미즘> 전시회에 시각예술가 안젤라 멜리토풀로스와 함께 작업한 영상 작품 <배치>와 <입자들의 삶>이 전시되었고 작품 소개를 위해 방한하기도 하였다. 저서로 『비물질노동과 다중』(공저, 갈무리, 2005), 『기호와 기계』(갈무리, 2017), 『사건의 정치』(갈무리, 2017), 『부채통치』(Gouverner par la dette, 갈무리, 근간), 『정치의 실험들』(Expérimentations politiques, 갈무리, 근간), 『발명의 힘』(Puissances de l’invention, 2002), 『불평등의 정부』(Le gouvernement des inégalités, 2008), 『전쟁과 자본』(공저, Guerres et capital, 2016) 등이 있다.

옮긴이
이성혁 (Lee Seong Hyuk, 1967~ )
한국외국어대학교 일본어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석사와 박사 과정을 마쳤다.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와 세명대학교에 출강하고 있으며 2003년 『대한매일신문』 신춘문예 평론부문에 「경악의 얼굴 ― 기형도론」이 당선된 후 현장 평론 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는 『불꽃과 트임』(푸른사상, 2005), 『불화의 상상력과 기억의 시학』(리토피아, 2011), 『서정시와 실재』(푸른사상, 2011), 『미래의 시를 향하여』(갈무리, 2013), 『모더니티에 대항하는 역린』(새미, 2015)이 있으며, 번역서로는 이마무라 히토시, 『화폐 인문학』(자음과모음, 2010, 공역)이 있다.



목차

책머리에 6

1 사건과 정치 7
신모나돌로지/노마돌로지 28
포위에서 포획으로 37
가능세계의 선별 42
집단적인 것에 대한 비판 46
배분적 전체와 집단적 전체 54
자연과 사회 61
괴물 65

2 통제사회에서 삶과 생명체의 개념 68
감금되는 것은 외부이다 78
규율사회에서 통제사회로 84
군중, 계급, 공중 88
삶과 생명체 92
노동운동과 규율사회 102

3 기업과 신모나돌로지 107
소통/소비 110
노동과 가능성의 생산 120
자본-고객 123
모나드로서의 노동자, 그 자율과 책임 124
금융계와 표현기계 129
기업과 뇌의 협동 134
‘생산’이라는 개념 145
집합화한 뇌의 활동과 그 협동 149
뇌의 협동에 의한 생산-공통재 152
측정과 그 외부 156
공통재를 둘러싼 투쟁 160
자본주의와 빈약한 삶의 양식 165

4 표현과 소통의 대립 175
대화와 여론 181
텔레비전 188
대화와 내셔널리즘 192
시간의 테크놀로지 197
인터넷 203
권위주의적 발화와 설득적 발화 210
미하일 바흐친과 차이의 정치학 213
철학적 노트/존재론으로서의 대화주의 221

5 포스트사회주의 정치운동에서 저항과 창조 228
다수자의 기준으로서 임금노동자 271
다수자/소수자 279
생명체, 저항, 권력 285
전쟁 체제 292

감사의 말 303
옮긴이 후기 304
참고문헌 318
인명 찾아보기 322
용어 찾아보기 325


함께 보면 좋은 갈무리 도서 (표지를 클릭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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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호와 기계』(마우리치오 랏자라또 지음, 신병현‧심성보 옮김, 갈무리, 2017)

들뢰즈와 가따리의 기호론으로 자크 랑시에르, 알랭 바디우, 슬라보예 지젝, 빠올로 비르노, 주디스 버틀러, 그리고 부분적으로는 안또니오 네그리, 마이클 하트 등에까지 걸쳐 있는 언어중심적 정치이론을 비판하면서 물질적 흐름과 기계들의 흐름에 직접적으로 작용하는 기호들을 분석한다. “자본은 기호로 움직인다.”는 가따리의 주장에 근거하여 “오늘날 비판이론은 언어와 재현 중심의 사고를 넘어서고 있는가?”, “오늘날 기호들이 정치, 경제, 주체성의 생산에서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묻고 이로부터 자본주의 비판을 위한 새로운 이론과 비재현적 주체 이론을 전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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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민주주의』(조정환 지음, 갈무리, 2017)

전 세계적 정치상황과 사회운동에 대한 경험적 분석을 통해 직접민주주의와 대의민주주의 속에서 진동해온 민주주의 논쟁을 절대민주주의라는 새로운 지평의 발견과 발명을 통해 한 걸음 더 전진시키려는 것으로 이러한 주제의 단행본으로서는 국내외를 통틀어 최초의 책이다. ‘절대민주주의’라는 개념을 통해, 대선 이후 초미의 관심으로 부상할 수밖에 없는 ‘사회대개혁’이라는 문제를 어떤 방향으로 구체화해 나가야 할지를 사유할 개념적 틀과 근거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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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인간의 탄생』(조정환 지음, 갈무리, 2015)

예술의 일반화, ‘누구나’의 예술가화, 모든 것의 예술 작품화라고 부를 수 있는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 예술의 범람에도 불구하고, 센세이셔널한 예술종말론들이 유행하고 있다. 어째서인가? 종말로 파악할 만큼 급격한 예술의 위치와 양태변화는 항상 새로운 주체성의 대두와 긴밀한 연관을 맺고 있다. 단토, 가라타니 고진, 벤야민 등의 예술종말론들은, 봉건제에서 자본주의로의 이행기에 나타난 예술적 변화를 예술종말로 파악한 과거의 관점들(헤겔, 맑스)을 산업자본주의에서 인지자본주의로의 이행이라는 다른 맥락에서 되풀이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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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자본주의』(조정환 지음, 갈무리, 2011)

'인지자본주의'는 인지노동의 착취를 주요한 특징으로 삼는 자본주의이다. 우리는 이 개념을 통해서 현대자본주의를 다시 사유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노동의 문제설정을 새로운 방식으로 제기할 수 있다. 이 개념을 통해서 우리는, 금융자본이 아니라 인지노동이 현대세계의 거대한 전환과 사회적 삶의 재구성을 가져오는 힘이라는 생각을 표현할 수 있고, 그 노동의 역사적 진화와 혁신의 과정을 중심적 문제로 부각시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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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물질노동과 다중』(마우리치오 랏자라또 외 지음, 갈무리, 2005)

'신자유주의, 정보사회, 탈산업사회, 주목경제, 신경제, 포스트 포드주의란 무엇인가'에 대한 자율주의적 맑스주의의 응답을 한 권에 엮은 책. '물질노동이 헤게모니에서 비물질노동의 헤게모니'로의 노동형태 변화를 주요 현상으로 지적하고, 비물질노동의 두 축인 정동노동과 지성노동을 분석한 후, '다중'이라는 새로운 주체성의 형성에 비물질노동이 미치는 영향을 살핀다.

2017.10.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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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김명환 시집

젊은 날의 시인에게



지은이  김명환  |  정가  7,000원  |  쪽수  104쪽

출판일  2017년 10월 27일  |  판형  신국판 변형 (139×208)

도서 상태  초판 / 무선철  |  출판사  도서출판 갈무리  |  도서분류  마이노리티시선 04

ISBN  978-89-6195-169-2 04810

보도자료 젊은날의시인에게-보도자료-시집.hwp 젊은날의시인에게-보도자료-시집.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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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환 시인은 “스스로를 바꾸는 것이 세상을 바꾸는 것보다 어렵다는 걸” 알아버렸다. … “비바람 강을 건너 눈보라 산을 넘어” 여기까지 달려온 시인이여! 어쩌랴, 세상은 변했는데 “변하지 않는” 시인이여!

― 서정홍 / 농부시인


그의 시에는 ‘푸른 깃발’이 자주 등장한다. 푸른 깃발은 철도차량을 연결하고 분리할 때 쓰는 신호용 깃발이다. 멈춰선 기관차를 달리게 하는 신호다. 그의 시는 푸른 깃발로 펄럭였다.

― 송덕원 / 철도노동자


김명환의 시가 이토록 가슴을 진동시키는 것은 만들어진 언어가 아니라 그의 삶 자체이기 때문이다.

― 안재성 / 소설가

 

 

젊은 날의 시인에게』 출간의 의미

 

시집 『젊은 날의 시인에게』는 지난 해 나온 산문집 『젊은 날의 시인에게』의 쌍둥이다. 제목과 표지가 같다. 한 노동자의 고뇌와 아픔과 절망과 좌절과 분노와 희망이 산문으로, 운문으로 그 형식을 달리해서 기록된 것이다.


김명환은 노동자에서 시인으로, 다시 문예운동가로, 다시 선전활동가로,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며 살아온 노동자다.


제5부는 “시인 시절의 시”들을 묶었다. 이 시기 그는 분단과 억압의 시대를 살아가는 고뇌와 자유와 통일에 대한 갈망을 노래하고 있다.


제4부는 “문예운동가 시절의 시”들을 묶었다. 80년대 후반기 노동현장에서 솟아오르는 노동자들의 꿈과 희망을 노래하고 있다.


“선전활동가 시절의 시”들은 제3부, 제2부, 제1부에 묶여있다. “현실사회주의의 실패” 이후 소시민으로 살아가는 시인의 절망과 좌절과 고뇌, 그리고 그 극복과정의 지난함과 치열함을 반성문처럼 기록하고 있다.


이 시집에 실린 글들을 쓴 30여 년 동안 그는, 시를 쓰며 문예운동을 하며 선전활동을 하며 살았다. 이 시집을 거꾸로 읽으면 그의 삶의 궤적이 드러난다. 시집은 시인의 삶의 궤적이고 산문집은 그 궤적의 자료집이다. 같은 제목과 표지의 쌍둥이 시집과 산문집 『젊은 날의 시인에게』는 격동의 시대를 살아온 어느 늙은 선전활동가의 “문학적 활동보고서”다. 한 시인의 “지난하고 치열한 자기 자신과의 싸움”의 기록이다.


시대의 역순으로 묶어진 이 시집을 읽은 소설가 안재성은 “30년 전의 김명환이 지금의 김명환”이라고 말했다. 서정홍 시인은 “세상은 변했는데, 변하지 않는 시인”이라고 말했다. 이한주 시인은 “시집의 제4부와 제1부는 30년의 시차가 있다. 그런데 김명환 시인의 절망과 분노와 희망이 일치한다. 하지만 제3부와 제2부를 보면 그의 절망과 좌절이 분노와 희망으로 변해가는 걸 볼 수 있다. 시인이 변하지 않은 게 아니라, 변하고 변해서 한 바퀴 돈 것”이라고 말했다.



서시 ― 「젊은 날의 시인에게」
 
나는 세상을 바꾸지 못하고
스스로를 바꾸며 살았다

스스로를 바꾸는 것이
세상을 바꾸는 것보다 어렵다는 걸
미리 알았다면
이렇게 먼 길을 돌아
몸과 마음을 상하진 않았을 것이다

살아온 날들을 되돌리기엔
너무 먼 길을 걸어왔다
날은 어둡고 바람은 찬데
너는 아직도 거기
황량한 벌판에 서 있느냐
젊은 시인아



추천사


김명환 시인은 “스스로를 바꾸는 것이 세상을 바꾸는 것보다 어렵다는 걸” 알아버렸다. “지나온 날들 아픔 아닌 것이 없”는데, 오늘도 책상머리에 앉아 시를 쓰지 않고 “황량한 벌판”에서 시를 쓴다. 머리로 쓰지 않고, 발로 쓴다. 발로 쓴 시를 읽다가 ‘머리 좋은 것이 마음 좋은 것만 못하고 마음 좋은 것이 손 좋은 것만 못하고 손 좋은 것이 발 좋은 것만 못하다’는 말이 생각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비바람 강을 건너 눈보라 산을 넘어” 여기까지 달려온 시인이여! 어쩌랴, 세상은 변했는데 “변하지 않는” 시인이여!
― 서정홍 / 농부시인

그의 시에는 ‘푸른 깃발’이 자주 등장한다. 푸른 깃발은 철도차량을 연결하고 분리할 때 쓰는 신호용 깃발이다. 멈춰선 기관차를 달리게 하는 신호다. 그의 시는 푸른 깃발로 펄럭였다. “기관차에 올라타고 전진! 전진!” 펄럭이는 푸른 깃발을 따라 철도노동자들이 울고 웃으며 투쟁에 나섰다. 그의 시와 함께 “힘차게 힘차게” 펄럭였다.
― 송덕원 / 철도노동자

삼십 년 가까운 세월을 친구로 살아왔건만 그를 만나고 돌아올 때면 꼭 어둡고 깊은 산속에 홀로 버려두고 나오는 기분이다. 경쟁과 착취의 자유만이 무한 증식하는 암울한 세상에 홀로 저항하고 홀로 절망하는 선한 시인의 모습이 나를 정화시킨다. 김명환의 시가 이토록 가슴을 진동시키는 것은 만들어진 언어가 아니라 그의 삶 자체이기 때문이다.
― 안재성 / 소설가



지은이 소개


김명환은 1959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1984년 사화집 『시여 무기여』에 시 「봄」 등을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1989년 월간 『노동해방문학』 문예창작부장, 2000년 ‘철도노조 전면적 직선제 쟁취를 위한 공동투쟁본부’ 기관지 『바꿔야 산다』 편집장, 2007년 철도노조 기관지 『철도노동자』 편집주간으로 활동했다. 산문집 『젊은 날의 시인에게』가 있다.



목차 


1부 참회록 : 2009~2017

어느 KTX 여승무원 이야기 13

나는 쓴다 17

가다오 나가다오 21

참회록 23

파이팅, 우리 아빠 26

푸른 깃발 펄럭인다 28

이하역 30

봄날에 31

압해도에 가면 32

와온해변에서 33


2부 망실공비를 위하여 : 2000~2008

망실공비를 위하여 1 37

망실공비를 위하여 2 38

첫사랑 39

돋보기 41

계약직 42

마침표 44

자전거 45

지하철 1호선 46

돌 47

오십 48


3부 죽은 자의 노래 : 1991~1999

고요한 돈강 51

신촌블루스 52

시인의 죽음 53

오류동 까치 54

팔푼이 이권필 55

죽은 자의 노래 1 57

죽은 자의 노래 2 58

야간열차 59

열차감시 60

어색한 휴식 62

송별회 64

봄비 65

갈매기의 꿈 66


4부 우리들의 꿈 : 1987~1990

사북에 이르면 69

지장천 70

활화산 71

물줄기 73

우리들의 꿈 75

여린 손 곱게 들어 77

이제 가자, 네 형제들 내 살붙이들과 79

우리를 헤어져서 살게 하는 세상은 1 81

우리를 헤어져서 살게 하는 세상은 2 85


5부 고향의 봄 : 1983~1986

봄 91

봄타령 93

꽃지면 95

나무 96

내가 죽어 97

소양강에서 99

병기수입을 하며 100

옛 전우의 뼈를 묻은 밤에는 101

햄버거 102

고향의 봄 103

2017.10.10 |



보도자료 

『영화와 공간』
The Spatiality in Korean Documentary Films



동시대 한국 다큐멘터리 영화의 미학적 실천

시공간의 예술인 영화에서 공간이 해방되고 있다.

비판 정신에서 출발한 한국 다큐멘터리 영화의 역사를 공간으로 재편성하는 동시에
2010년 이후 부상한 영화의 공간(들)을 정리해서 공간의 의미를 펼치며 다양한 함의를 부여한다.


지은이  이승민  |  정가  17,000원  |  쪽수  304쪽
출판일  2017년 9월 26일  |  판형  사륙판 (127*188) 무선
도서 상태  초판  |  출판사  도서출판 갈무리  |  도서분류  카이로스총서 47
ISBN  978-89-6195-164-7 03680


인터넷서점 바로 가기 : 알라딘 교보문고 YES24 인터파크 반디앤루니스 영풍문고



다큐멘터리는 새로운 질문과 발견에 주목하는 탐구의 결과다. … ‘공간성’을 화두로 한국 다큐멘터리의 새로운 프레임을 제시하는 이 책은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하다.

― 홍형숙 / 다큐멘터리 감독, <경계도시>


‘현장’이 아니라 ‘공간’이다. … ‘빈 틈,’ 그 사이 공간에서 새로운 방식의 성찰을 위한 시간이 소환되는 것이다. … 결과적으로 이 책의 가장 큰 성과는 한국적 특수성을 포기하지 않고도 다큐멘터리 작업에 담론적 확장성과 미학적 실험성을 부여하는 데 성공했다는 점일 것이다.

― 남수영 / 한예종 영상원 교수, 『이미지 시대의 역사기억 : 다큐멘터리, 전복을 위한 반복』의 지은이



『영화와 공간』 간략한 소개

한국 다큐멘터리 영화의 어제와 오늘을 ‘공간’을 키워드로 하여 비평하고 재편성하였다. 다큐멘터리 영화 연구자이자 비평가인 이승민의 첫 번째 단독 저서이다.

시공간의 예술인 영화에서 공간이 해방되고 있다. 영화에서 공간은 사건에 귀속되거나 시간의 연속성에 매여 있거나 배경으로 한정되지 않고 고유의 독자성을 획득하고 있다. 공간을 다루는 이미지는 왜 지금 우리에게 자율적으로 드러나는 것일까? 이 책은 ‘왜 공간이 부상하기 시작했을까?’에 대한 거시적 물음에서부터 ‘재개발 투쟁과 은폐된 역사를 파헤치는 비판 정신에서 출발한 한국 다큐멘터리 영화에서 공간은 지금 어떤 기능을 하고 있을까?’라는 로컬적 질문까지 아우르면서 한국 다큐멘터리 영화의 역사를 공간으로 재편성하는 동시에 2010년 이후 부상한 영화의 공간(들)을 정리해서 공간의 의미를 펼치며 다양한 함의를 부여한다.



『영화와 공간』 출간의 의미

무심코 지나쳤던 영화 속 ‘공간’에 주목하다

오늘날 현대 영화에서 공간은 인물과 사건의 배경이라기보다는 인물과 사건을 모두 응축하고 있는 존재이다. 저자 이승민에 따르면 그간 한국 다큐멘터리 영화 연구에서 공간에 대한 연구는 거의 전무하였다. 그 이유에 대해서 저자는 “영화가 시간을 … 조각하는 예술로 주목 받았고, 그중에서도 다큐멘터리 영화는 현실 사건을 기록하고 알려 내는 특성에 초점이 맞추어졌다”(7쪽)고 진단한다.

저자가 참조하는 ‘공간의 철학자’ 앙리 르페브르에 따르면 공간은 “현상이 아니라 사회적 생산물”이고 “자연적인 동시에 사회적이며, 실천적인 동시에 상징적인 것”(르페브르, 『공간의 생산』, 23~38쪽)이다. 이 책은 르페브르의 공간사회학의 연장선에서 유기적으로 변화하는 사회적 생산물로서의 공간 개념을 한국 다큐멘터리 영화 분석에 활용한다.

‘공간’을 키워드로 살펴보는 한국 다큐멘터리 영화의 변천사

이 책은 동시대 한국 다큐멘터리 영화에서 공간이 새롭게 의미를 획득하는 미학적 프레임에 주목한다. 책에서 공간은 현실의 공간이기도 하고, 영화 스크린 내부의 공간이기도 하고, 영화 장치로서 스크린 자체이기도 하고, 영화를 상영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저자는 한국 다큐멘터리 영화에서 ‘공간성’이 계몽적/설명적 시기, 성찰적 시기를 거쳐 이제 미학적 시기에 다다랐다고 본다. 책의 1부 「동시대 한국 다큐멘터리 영화의 흐름」에서 이 세 시기를 시간순으로 살펴보는데, “1980년대를 계몽적 시기, 1990년대 중후반을 성찰적 시기, 2000년대 후반에 들어선 지금의 시기를 미학적 시기”로 분류한다.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1980년대 한국 다큐멘터리 영화는 사회운동의 일환으로 출발했고, 현장 기록과 교육 선전의 역할을 하였으며, 계몽적 성격이 강했다. 1990년대에 세계정세가 변화하고 시민사회 영역이 확장되면서 다큐멘터리 영화가 계몽적 성격을 탈피하고 ‘자기 성찰적인 태도’를 취하게 되고, 1990년대 중반에 이르면 감독 ‘개인’의 시각과 개성이 중요해진다. 마지막으로 2000년대 후반부터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미술 등 다양한 분야와 ‘경계를 넘나드는 횡단성’을 보인다. 예컨대 영상이 미술관에서 상영 및 전시되고, 영화와 미디어아트를 넘나들며 작업하는 작가들이 등장한다. 책은 각 시기에 해당하는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이 시기 구분과 전환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2000년대 후반 한국 다큐멘터리 영화의 새로운 지점들

2부 「새로운 공간의 등장」은 한국 다큐멘터리 영화 속에 등장하는 공간들을 ‘근대적 잔여’로서의 공간과 ‘미학적 질료와 매개’로서의 공간 등 유형에 따라 분류한다. 저자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한국 사회는 후기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의 극점에 이르렀고 공간에 대한 사람들의 감각을 강제로 변화시켰다. 저자는 자고 일어나면 건물이 허물어지고 철거민이 되는 일이 다반사인 현실을 “ ‘비장소화’ ‘탈역사화’되는 공간”, “사람들의 ‘뿌리뽑힌 감각’ ” 등의 표현으로 설명한다. 공간의 사회적 성격과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감각이 변화함에 따라, 한국 다큐멘터리 영화 속에서 공간도 변화를 겪게 된다. 다큐멘터리 영화에서 공간은 이제 “인물과 사건에 종속된 배경 혹은 사건이 발생하는 현장을 넘어서, 단독적이고 즉자적인 이미지 혹은 스크린 안과 밖을 감각적으로 매개하는 장치로서 존재”(14쪽)한다.

3부 「‘공간 이미지’의 출현」은 2000년대 후반 이후 발표된 작품들에서 등장한 공간을 ‘공간 이미지’로 명명하고, ‘공간 이미지’를 담은 작품들을 분석한다. 5장에서는 강원도 춘천시 약사동 재개발 지역 한복판에 있는 망대와 주변의 아리랑 골목길을 담은 영화 <망대>(문승욱, 2014)를 중심으로 공간 이미지가 작품 안에서 어떻게 미학적 자리를 찾아가는지를 추적한다. 7장은 경기 북부 지역의 기지촌을 다룬 <거미의 땅>(김동령, 박경태, 2012)과, 제주 4·3 사건을 주제로 제주의 공간을 탐색하는 <비념>(임흥순, 2013)을 중심으로 ‘기억과 공간의 직조’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비평했다.

4부 「확장된 개념의 공간」이 주목한 작품에서 공간은 “스스로 수행적 행위자가 된다.” 9장은 <저수지의 개들>(최진성, 2010, 2011), <막>(이원우, 2014), <손의 무게>(임민욱, 2010), <안개와 연기>(차재민, 2013) 등의 작품 분석을 통해 ‘장소 특정적 수행’의 구체적인 지점들을 포착한다. 장소 특정적 수행 다큐멘터리 영화는 “특정 공간을 기반으로 퍼포먼스를 행하고 기록한 작품”을 말한다. 예를 들어서 <막>은 수년째 해군기지 건설 반대 운동이 벌어지고 있는 제주도 강정마을 바닷가에서 임산부인 감독이 바닷속을 걷는 모습을 촬영하였다. 10장은 <논픽션 다이어리>(정윤석, 2013)를 분석하는데, 이 영화는 지존파 사건을 기점으로 성수대교 붕괴, 삼풍백화점 붕괴, 전두환과 노태우 사면 등 1990년대의 시대 풍경을 엮었다. 영화 중간중간 지존파의 본거지인 전라남도 영광을 찍은 장면들이 틈입하는데, 책은 영화의 맥락과 언뜻 무관해 보이는 이러한 공간 이미지의 활용이 갖는 독특한 효과에 주목한다. 11장과 12장에서는 다큐멘터리 영화와 타 예술 분야의 혼융 사례들을 다룬다. 저자의 분석에 따르면 최근 한국 다큐멘터리 영화는 상영 장소가 다변화되었을 뿐 아니라, 동영상만이 아니라 사진, 그림, 문자 등 다양한 질료를 창조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대기업 멀티플렉스관에서 상영되는 상업영화가 대중의 시선을 독차지하고 있는 오늘날 이승민의 『영화와 공간』은 흥미롭고 새로운 분석을 통해 독자들을 한국 다큐멘터리 영화의 세계로 안내한다. 오랜 기간 한국 다큐멘터리 영화의 관객이자 비평가로 활동해온 저자의 애정 어린 문장은 각 작품의 사회적 맥락과 매력을 독자에게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다.



저자 인터뷰

1) 한국 다큐멘터리 영화 연구를 하게 된 이유나 계기는 무엇인가?

한국 사회의 역동성을 가장 잘 반영하고 있는 예술이자 영화 장르가 한국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198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한국 독립 다큐멘터리 영화는 특유의 “독립성”을 영화 안과 밖에서 실천하고 실험해왔다. 한국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는 것은 나에게 연구이기 이전에 삶에 대한 많은 배움을 얻는 곳이고 그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2) 다큐멘터리 영화 장르만의 장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현실을 질료로 하는 다큐멘터리 영화는 무심하기 쉬운 우리 주변의 작고 소소한 부분을 열린 촉수를 가지고 읽어내면서 여전히 세상의 변화를 시도하고 꿈꾼다. 현실에 일어나는 크고 작은 사건들을 관습적으로 주어진 의미와 해석에 갇히지 않고, 그 자체의 의미를 포착하고 사고하게 하는 것 또한 다큐멘터리 영화 장르의 장점이다. 한 편의 다큐멘터리 영화는 나와 내 주변에 일어나는 일들, 그 사건에, 그 공간에, 그 인물에 대해 오랫동안 고민한 사람들과 깊게 대화를 나누며 나의 자리를 돌아보게 한다.

3) ‘공간’이라는 키워드를 연구방법으로 선택한 특별한 이유는?

영화는 시간과 공간을 다루는 예술이다. 한국 다큐멘터리 영화 장르는 태생부터 공간투쟁을 주요 축으로 하고 등장했다. 그럼에도 공간은 배경이나 혹은 사건을 대변하는 매개 정도의 제목으로만 존재해 왔다. 마침 2010년대 들어서면서 한국 다큐멘터리 영화 화면 속에서 의미화되지 않는 이미지들이 출현하기 시작했고, 한국 다큐멘터리 영화에서 공간의 의미, 영화에서 공간의 의미, 현대 예술에서 공간의 의미로, 다층적으로 짚어보고 싶었다.

4) 이 책의 내용에 나오는 다큐멘터리들과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직접 감상할 수 있는 경로와 방법은 무엇인가?

이 책에서 나오는 다양한 다큐멘터리 영화는 대기업 멀티플렉스관 중심의 상업 배급망에서는 찾기 힘들다. 그럼에도 시네마달, 인디스토리 배급사가 있고, 극장으로는 독립영화 전용관 인디스페이스가 다큐멘터리 영화뿐 아니라 독립 영화를 지속적으로 배급 개봉하고 있으며, 활발히 개최되는 영화제를 통해 다큐멘터리 영화들이 소개되고 회자된다. 한국 다큐멘터리 영화를 가장 많이 소개하는 곳은 인디다큐페스티발 (3월)이다. 또 DMZ 국제다큐영화제 (9월), EBS 국제다큐영화제 (8월), 전주국제영화제 (5월), 부산국제영화제 (10월), 서울 여성영화제 (6월), 서울 독립영화제 (12월) 등이 있다. 온라인에서는 독립영화 전문다운로드 사이트 인디플러그 www.indieplug.net) 에 많은 작품들이 올라 있으며 책에서 다룬 작품들의 일부도 인디플러그에서 구해서 볼 수 있다.



프리뷰어 추천사

다큐멘터리 영화 속에 재현된 공간에 대한 미학적 패러다임의 변화를 분석하는 시도는 매우 의미 있는 것 같다. 시대의 흐름에 따른 매체 기술의 변화와 그에 따른 재현 방식(생산 방식)이 달라지는 것에 대한 분석들도 흥미로웠다.
― 익명의 프리뷰어


다큐멘터리 영화가 지닌 성격으로 인해 사회적 이슈에 대해서도 성찰해 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다. 다큐멘터리 영화 속 공간이라는 주제를 통해서 한국 다큐멘터리 영화의 흐름을 설명하고 있는 점이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 한태준 (일본 영화 연구자, 『나 자신이고자 하는 충동』 옮긴이)


영화의 전개 방식을 설명하는 부분들이 실제로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과 같은 긴장과 흥분이 느껴져서 좋았고, <거미의 땅>과 <비념>에 대한 서술이 특히 더 기억에 남는다.
― 박영대 (다중지성의 정원 세미나 회원)



책 속에서 : 한국 다큐멘터리 영화와 공간

2000년대 후반 한국 다큐멘터리 영화가 주로 포착해 온 공간은 21세기에 들어와 지표적 기호로도 거의 사라진 근대화의 잔여를 형상화한 공간이다. 이를 크게 세 축으로 유형화해 보면, ‘재개발의 공간’, ‘은폐된 역사의 공간’, 그리고 마지막으로 근대화의 상징적 건물이나 장소를 다룬 ‘기념비적 공간’이다.
― 2장 근대적 잔여로서의 공간, 42쪽


초창기 한국 다큐멘터리 영화에서도 ‘공간’은 주요한 소재였다. 그러나 여기에서 ‘공간’이란 ‘사건의 현장’을 의미하고, 당시의 사회 정치적 환경은 영화가 그 ‘현장’을 있는 그대로 포착하는 것조차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어떤 의미에서 ‘현장’에 접근하는 행위 자체가 ‘투쟁’이었다.
― 3장 미학적 질료와 매개로서의 공간, 69쪽


실제 <낮은 목소리 2>는 할머니들이 스스로 기록을 원해서 제작이 이뤄졌음을 영화 초반부에 밝히고 있다. 구술자 스스로 기록되어 자신에게 쓰인 오욕의 역사를 직시하려는 의지의 산물인 셈이다. 이때 구술은 구술자와 감독(질문자)이 함께 만들어가는 창조적이고 협동적인 성격을 지닌다.
― 6장 구술과 공간의 직조 : 역사 다큐멘터리 영화, 123쪽


바비엄마(박묘연)의 공간은 문산 기지촌 선유리의 한 분식점의 기억과 맞물린다. 박인순의 삶은 의정부 기지촌 뺏벌 골목의 기억 속에 존재한다. 안성자와 페허가 된 기지촌 건물은 존재론적으로 일치한다.
― 7장 <거미의 땅> : 공간의 기억, 135쪽


이 작품은 4·3 사건의 생존자 인터뷰조차 ‘공간 이미지’화한다. 영화는 인물의 진술과 화면 내용을 일치시키지 않는 전략을 구사함으로써, 진술의 파장을 극대화시킨다. 아흔셋의 한신화 할머니의 인터뷰는 그녀의 모습 대신 감귤 과수원 풍경 위에 겹쳐진다.
― 8장 <비념> : 기억의 지도 그리기, 153쪽


<저수지의 개들>, <막>, <손의 무게>, <안개와 연기>는 모두 파헤쳐진 재개발 현장의 공간에서 낯선 행위를 시도하면서 현실의 본질에 대한 물음을 던지게 한다. 개발하는 공간이 아닌 사용하는 공간, 상품의 공간이 아닌 가치의 공간이 될 수 없는 것일까?
― 9장 장소 특정적 수행 다큐멘터리 영화 : 암시적 공간-투쟁, 193쪽


상영 공간들의 확장과 죽음, 그리고 복원은 현재에도 지속적으로 실험되고 구현되는 과정에 놓여 있다. 영화가 전시공간으로 진입하고 미술 영상이 영화극장 공간으로 진입하는 것처럼 극장 스크린에서 갤러리 설치 공간 나아가 개인 온라인 공간을 넘나드는 다큐멘터리 영화의 공간성은 ‘죽지 않고’ 계속될 전망이다.
― 12장 <이로 인해 그대는 죽지 않을 것이다> : 공간의 전복적 전유, 250쪽



지은이 소개

지은이
이승민 (Lee Seung Min)
캐나다 요크 대학 영화학과에서 다큐멘터리 연구를 시작해, 중앙대학교 영화학과에서 다큐멘터리 영화로 석사와 박사 학위를 했다. 2009년부터 중앙대학교, 한국예술종합학교, 가톨릭대학교, 수원대학교, 용인대학교 등 여러 대학에서 영화이론을 강의했다. 부산국제영화제, 서울여성영화제, DMZ 국제다큐영화제, 서울환경영화제 등에서도 다양한 역할을 하며 현장 비평가로 활동 중이다. 연구서와 저서로는 『한국다큐멘터리 영화의 배급과 해외시장 개발을 위한 연구』(공저, 영화진흥위원회, 2010), 『아시아 다큐멘터리의 오늘 ― 허구가 아닌 현실』(공저, 본북스, 2013), 『한국 다큐멘터리 영화의 오늘』(공저, 본북스, 2016)이 있고, 『독립영화』와 『KMDb』의 필진으로도 활동 중이다.



목차

책머리에 6

1부 동시대 한국 다큐멘터리 영화의 흐름
1장 한국 다큐멘터리 영화의 세 가지 지표 25

2부 새로운 공간의 등장
2장 근대적 잔여로서의 공간 41
(재)개발 논리와 폐허화된 공간 42
트라우마적 역사와 파편화된 공간 50
반기념비적 기능과 유령화된 공간 58
3장 미학적 질료와 매개로서의 공간 67
사건 현장으로서의 공간 68
정동의 매개로서의 공간 71
수집된 데이터베이스로서의 공간 77
4장 비재현적, 비서사적 공간 이미지 88

3부 ‘공간 이미지’의 출현
5장 <망대> : 견자의 응시를 통한 시적 사유 105
6장 구술과 공간의 직조 : 역사 다큐멘터리 영화 120
7장 <거미의 땅> : 공간의 기억 133
8장 <비념> : 기억의 지도 그리기 151

4부 확장된 개념의 공간
9장 장소 특정적 수행 다큐멘터리 영화 :암시적 공간-투쟁 165
수행적 다큐멘터리에서 ‘공간적 실천’의 의미 166
암시적 공간-투쟁 171
<저수지의 개들 : 강의 노래> 연작 175
<막> 179
<손의 무게> 185
<안개와 연기> 189
10장 <논픽션 다이어리> : 교란적 공간-형상의 콜라주 197
11장 <철의 꿈> : 공간의 건축적 연동 212
다층적인 시선 218
다채널 영상 224
12장 <이로 인해 그대는 죽지 않을 것이다> : 공간의 전복적 전유 236
13장 한국 다큐멘터리 영화의 미학적 실천 252

후주 265
참고문헌 287
사진 목록 298
인명 찾아보기 300
용어 찾아보기 302


함께 보면 좋은 갈무리 도서 (표지를 클릭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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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만 관객의 영화 천만 표의 정치』(정병기 지음, 갈무리, 2016)

대선에서 경쟁력 있는 제3후보가 적어도 한 명이라도 출마한다면, 1,000만이라는 숫자는 유효 투표의 약 3분의 1에 해당해 당선 확정에 근사한 수치다. 2005년 이후 천만 관객을 넘은 한국 영화들은 권력과 관련되는 내용을 다루었거나 그렇지 않을 경우에도 사회 부조리와 관련된 이슈들을 주로 다루었다. 1,000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한 영화는 한국 사회의 정치 문화를 반영하는 대표적인 문화적 사건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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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뢰즈의 씨네마톨로지』(조성훈 지음, 갈무리, 2012)

씨네마톨로지란 영화(cinema)와 증후학(symptomatology)의 합성어로 들뢰즈가 <시네마> 1권, 2권에서 제시한 이미지 분류학을 말한다. 이미지를 질적 차이에 따라 어떻게 분류할 수 있을까? 그러한 분류학은 우리 삶에 어떤 함의를 가질까? 이것이 이 책의 문제의식이다.

2017.08.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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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집안의 노동자』
Family, Welfare, and the State : Between Progressivism and the New Deal



뉴딜이 기획한 가족과 여성

자본주의 복지 국가는 어떻게 계급, 성, 인종에 걸쳐 차별적인 질서를 구성하고 유지하였는가?

우리의 복지 정책은 여성의 자율성을 추구하는가, 종속을 강화하는가?
자본의 착취와 국가의 통제에 맞서 여성의 자율성을 모색하는 마리아로사 달라 코스따의 역작!


지은이  마리아로사 달라 코스따  |  옮긴이  김현지‧이영주  |  정가  17,000원  |  쪽수  304쪽
출판일  2017년 8월 24일  |  판형  사륙판 (127*188) 무선
도서 상태  초판  |  출판사  도서출판 갈무리  |  도서분류  아우또노미아총서 56
ISBN  978-89-6195-168-5 03330


인터넷서점 바로 가기 : 알라딘 교보문고 YES24 인터파크 반디앤루니스 영풍문고



『집안의 노동자』에서 뉴딜은 노동계급이 혁명을 일으킬 위험으로부터
‘자본주의를 구하는’ 최후의 수단이자 본질적으로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제안이다.
또한, 뉴딜은 가부장적이고 인종 차별적인 질서를 지속시켰다.
사회 보장 제도는 임금 노동자를 위해 마련되었지만, 가사노동자는 임금을 받고 일할 때조차 사회 보장을 받지 못했다.
― 실비아 페데리치



『집안의 노동자』 간략한 소개

마리아로사 달라 코스따는 1972년 여성학의 고전 『여성의 힘과 공동체의 전복』을 발표하였고, 가사노동에 임금을 지급하라 캠페인을 국제적으로 조직하는 데 선봉에 서 있었다. 10년 후, 『집안의 노동자 : 뉴딜이 기획한 가족과 여성』이 출간되었다. 이 책에서 달라 코스따는 뉴딜을 둘러싼 투쟁의 역사를 되짚는다. 이 투쟁의 흐름 속에서 노동자는 국가와 새로운 관계를 맺고 사회 재생산의 지형을 새롭게 그려나간다. 그렇다면 뉴딜과 복지 국가가 설립한 여러 기관은 노동계급을 구한 구원자였는가, 아니면 노동계급이 자율적으로 재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망가뜨린 파괴자였는가? 달라 코스따는 여성과 국가가 맺고 있는 관계를 중심으로 복지 체계를 종합적으로 분석한다. 즉, 저항과 투쟁의 역학, 가정 안팎에서 기꺼이 일하려는 또는 일하기 꺼려 하는 상황, 대공황 기간 미국에서 여성이 구호 체계와 맺고 있던 관계를 살펴봄으로써 복지 체계를 포괄적으로 살펴보고 있다.



『집안의 노동자』 출간의 의미

뉴딜이란 무엇인가?

뉴딜은 1932년 프랭크린 루즈벨트 미국 대통령에 의해 제안된 것으로, 1929년 대공항 이후 미국 사회에서 국가가 공공 인프라를 조성하여 새로운 일자리와 소득을 만들어내어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방안이었다.

루즈벨트가 취임한 1933년 미국 실업자 인구는 1,500만 명에 이르렀고, 전국에서 실업자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초기 뉴딜의 양상을 보면, 1933년 5월 12일 연방긴급구제국이 신설되어 정부는 “국가 원조 기관을 설립하고 5억 달러를 배정했다.” 연방긴급구제국은 “정부가 실업자를 직접 책임져야 한다는 의무를 최초로 확립”하였다.(145쪽) 1933년 11월에는 토목사업국이 설립되어 실업자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였다. 이처럼 뉴딜은 “국가가 소득을 직접 분배하는 역할을 강화하는 것과 함께 생산을 재개하는 것이 특징”이었다.(151쪽) 이후 1938년경까지 루즈벨트 정부에 의해 집행된 사회보장, 사회원조 정책들을 뉴딜이라고 한다.

이 책의 서문을 쓴 실비아 페데리치(『캘리번과 마녀』의 저자)에 의하면 1970년대 이탈리아에서 발전하기 시작한 ‘오뻬라이스모’(Operaismo, 노동자주의) 이론가들에게 뉴딜은 “계급 관계 관리의 전환점이자, 자본 성장 계획에 계급투쟁을 의식적으로 통합한 최초의 사례”(10쪽)이다. “뉴딜은 임금 상승이 노동 생산성과 교환되고 그것과 상응해야 한다고 보는 케인즈 정책의 일환으로, 이 안에서 국가와 노조는 균형 상태를 보장하는 보증인 역할을 한다.”(10쪽)

뉴딜과 ‘집안의 노동자’인 여성

이 책은 지금까지 뉴딜 분석에서 ‘여성과 국가의 관계’에 대한 분석이 간과되었다고 보면서 여기에 초점을 맞추었다. 임금 상승과 노동 생산성을 연동한다는 뉴딜의 전략에서 “여성은 무엇보다도 임금 상승에 대한 실질적인 역량을 확보할 책임을 위임받았다.”(211쪽) 당시 대공황으로 인해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는 일이 흔했고 미국 사회의 가족은 전반적으로 ‘붕괴’된 상황이었다. 가사노동자, 집안일 전담자로서의 여성의 역할이 붕괴된 가족을 재건하려는 기획에 반드시 필요했다. 1930년대에 뉴딜의 집행자들은 여성이 집안에서만 일해야 한다는 관점을 가지고 있었다. 예를 들어서 당시 미국 정부는 17만 명가량의 여성을 ‘가사서비스시범사업’ 강사로 고용을 하여 식사 준비, 아이 양육, 빨래, 다림질 등을 가르쳤다.

실업이 만연한 상황에서 계속해서 노동력을 재생산하고 유지하는 것도 가정 내 여성의 역할이었다. “가족이 맡은 임무는 임금의 상품 구매력을 유지하는 것, 지금 경제 활동을 하지 않는 개인을 재흡수·재생산하는 것, 새 노동력을 성공적으로 생산하는 동시에 경제 활동을 하고 있는 노동력을 재생산하여 전체 소비력을 지키는 것이었다.”(211쪽) 결국 뉴딜 시대의 사회구조는 자본주의로 통합된 가족과 여성의 가사노동으로 유지되었다는 것을 이 책은 보여 준다.

뉴딜과 20세기 초 사회 투쟁

이 책은 1910~1930년대 미국 사회의 매우 역동적인 사회투쟁 지형을 보여준다. 당시 미국 노동자, 실업자, 흑인, 여성들은 파업, 시위, 행진으로 목소리를 냈을 뿐 아니라 위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 여러 형태의 자율 조직을 만들어 자체적으로 재생산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였다. 1932년 말까지 30여 개 주에 1백 개가 넘는 자립 및 교환 협동조합이 생겨나 상호 협력에 기초한 대안적인 생존 방법을 강구했다.

또 이 책은 여성이 당시의 사회 투쟁에서 창의적인 역할을 하였음을 보여 준다. 1936~37년 플린트에 위치한 제너럴 모터스 공장 점거 당시 여성들은 공장 밖에서 ‘여성비상단체’라는 반(半) 군대식 조직을 결성하여 “경찰이 발포하기를 원한다면 먼저 우리에게 총을 쏴야 할 것이다”라고 선포했다.(183쪽) 1937년은 미국 전국에서 연좌농성이 폭발한 해였는데, 여성들도 공장, 사무실, 카페, 구제기관, 상점 등에서 임금 인상과 노동시간 단축 등 다양한 요구사항을 관철시키기 위해 연좌농성을 진행하였다.

문재인 정부 집권 이후 복지가 새로운 화두로 등장하면서 ‘뉴딜’(New Deal, 새로운 합의)이 다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20세기 초 미국의 복지국가 시대에 대한 달라 코스따의 문제의식은 우리 사회에서 복지의 주체, 구조, 조건 등을 사고하고 실효적 대안을 수립하는 데에 유익하고 중요한 참고자료를 제공해 준다.




프리뷰어 추천사

미국의 대공황 시기의 계급투쟁에 대한 연구는 많겠지만, 이 책은 대공황에서 뉴딜에 이르기까지의 노동자 재생산에 주목한다. 대공황 시기를 기존의 노동자 재생산이 붕괴하는 시기로, 뉴딜을 새로운 노동자 재생산 체제를 구성하는 지점으로 본다. 뉴딜 프로젝트를 통해 국가는 노동력 재생산에 개입하게 되며 이는 가족제도 강화라는 방식으로 드러난다. 이는 노동자들의 전략과는 다른 점이 있다. 대공황 시기의 재생산을 위한 노동자들의 전략은 한편으로는 국가의 지원과 역할을 요구하는 것이기도 했으나 자립협동조합으로 대표되는 다른 방식의 경제 공동체의 실험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이에 더해 AFL-CIO를 중심으로 논의되는 미국의 노동운동사에서 여성노동조합연맹의 위상과 그 활동내용 및 대공황 시기 여성들의 저항과 투쟁을 소개한 부분 역시 많지는 않지만 그 당시 미국의 노동운동에 대한 다른 관점을 제시한다.
이와 같이 노동자 재생산을 중심으로 본 해당 시기는 단순히 자유시장과 복지국가의 대립이라기보다는 극렬한 계급 투쟁과 이데올로기의 충돌, 그것을 통제하고 조율하려는 총자본의 지성으로서의 국가의 노력을 보여준다. 이와 동시에 그에 갇히지 않는 새로운 실험과 시도가 등장하는 시기이기도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책의 중요 지점은 뉴딜프로젝트가 가족제도 강화로 귀결되는 과정을 차근차근 폭넓게 그려낸다는 점이다. 뉴딜 프로젝트 이후, 가족은 노동력을 심리적, 정서적, 육체적으로 재생산하는 핵심 공간이자, 실업자와 비노동인구를 부양함으로써 계급 투쟁을 조절하는 역할까지 떠맡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가족이 제대로 기능하도록 하는 책임은 여성들에게 전가되었다. 서문에서 페데리치가 지적했듯이 ‘집안의 노동자’인 여성들은 뉴딜의 성패를 좌우하는 전략적 주체였다. 이 책은 대공황 시기와 뒤이은 뉴딜 프로젝트의 시기를 통해 가족과 여성이 노동력을 통제하고, 자본주의를 원활하게 굴러가게 하는 핵심적 중심축으로 작동하는 방식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 남승현 (이화여대 여성학과 석사수료)


1920년대와 30년대의 후버에서 루즈벨트로 지나가는 과정에서 복지 정책의 변화를 연대별로 자세히 알 수 있었습니다. 루즈벨트의 뉴딜정책이 여성의 가사노동을 어떻게 착취하고 가족 제도를 어떤 식으로 재편해서 국가주도의 시장을 유지해갔는지 마리아로사 달라 코스따의 매우 치밀하고 꼼꼼한 이해가 돋보였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복지정책의 한계를 잘 드러내주는 저서였습니다. 국가 주도의 공공사업에 대한 한계를 냉철하게 관찰한 마리아로사 달라 코스따의 이 저서와 국가주도의 소득주도성장과 새로운 복지국가를 주장하는 문재인 정부를 비교해가면서 읽을 수 있어 지금 이 시대에 매우 필요한 책이라 느껴졌습니다. 자본주의라는 토대에서 이루어졌던 케인스 정책과 하이에크 정책이 둘 다 실패한 정책이라면 다른 토대를 생각해 봐야 하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책을 읽으면서 들었습니다. 뉴딜 정책이 가족을 중심으로 노동력의 소득과 재생산이라는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지만 그 과정에서 여성의 가사노동을 헌신과 희생이라는 덕목으로 바꾼 기만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이 책의 장점은 길고 복잡한, 또는 접하기 쉽지 않았던 역사적인 사건들을 일반 독자들도 이해하기 쉽게 서술했다는 점입니다. 가족이라는 제도와 국가의 관계 사이에서 배제되어 온 여성의 가사노동에 대해 새롭게 생각할 수 있었던 책이었습니다.
책이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특히 가사노동을 전담하고 계신 많은 여성분들에게 이 책이 알려지길 바랍니다.
― 한태준 (일본 영화 연구자, 『나 자신이고자 하는 충동』 옮긴이)



책 속에서 : 『집안의 노동자』와 가족, 복지, 국가

이 책은 … 뉴딜이 도입한 여성과 국가의 새로운 관계 및 새로운 재생산 체제의 발전 과정을 주로 다룬다. 이 새로운 재생산 체제에서 노동자 계층 주부는 노동력의 생산자 및 노동자가 벌어오는 임금의 관리자로서 전략적인 역할을 한다.
― 실비아 페데리치의 서문, 9쪽


뉴딜은 국가와 노동계급이 맺은 최초의 포괄적 합의로, 국가가 노동 생산성 증가를 대가로 노동계급에 일정 수준의 재생산 보장을 약속했다. 이 합의는 특히 가족을 재편성하고 여성의 가사노동을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나타났다.
― 머리말, 21쪽


완벽하게 청소해서 마지막 한 마리 세균까지 남김없이 죽이는 것은 노동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을 아끼는 방법이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나쁜 아내, 나쁜 엄마가 되었다.
― 1. 대량 생산과 새로운 도시 가족 질서, 48쪽


남성 임금에 의존하지 않는 독특한 역사를 가진 흑인 여성의 잠재력은 특히 1960년대에 표출된다. 흑인 남성보다는 흑인 여성이 임금 일자리를 얻을 가능성이 더 컸다. 실제로 많은 흑인 여성과 이민 여성이 식당 종업원, 가정부, 세탁부, 저임금 노동자로 일했다.
― 2. 1929년 대공황과 가족 붕괴, 82쪽


실업자는 시위를 통해 분노를 결집하고 배가시켰으며, 소득 보장을 목적으로 국가를 향해 분노를 폭발시켰다. 이제는 국가도 소득 보장 요구를 무시할 수 없었다. … 국가는 계급이 정치적으로 재구성되는 모습을 처음으로 마주하였다.
― 3. 투쟁 방식과 실업자 결집, 112쪽


어머니 투쟁은 이후 1960년대에 확립된 투쟁의 새 국면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1960년대 여성은 정부로부터 받는 돈에 ‘지원’이라는 꼬리표가 붙는 것을 거부한다고 천명하면서, 대신 이 돈이 자녀 양육이라는 노동에 대한 임금임을 주장하였다.
― 4. 후버와 루즈벨트, 174쪽


한층 복잡해진 아내 및 어머니상은 주로 중산층 여성을 겨냥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모든 여성에게 하나의 모범으로 자리 잡게 된다. 즉 이민 1세대 여성과 최근에 시골에서 이주해 온 여성에게도 똑같이 적용된 것이다. 심지어 최악의 상황에서 육체 가사노동을 하고 있는 여성도 예외 없이 중산층 여성과 비교를 당했다.
― 5. 여성과 가족, 복지, 유급노동, 206쪽


노동계급을 ‘조직하여’ 생산이 재개되도록 하기 위해서 가족이 필요했다. … 정부 차원에서든 학계 차원에서든 가족과 여성을 다루는 많은 연구에서 가족과 여성을 사회 조직의 중심축으로 삼아 노동력을 통제하는 체계를 구축하고 싶은 욕망이 드러나는 것은 결코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 5. 여성과 가족, 복지, 유급노동, 215쪽



지은이·옮긴이 소개

지은이
마리아로사 달라 코스따 (Mariarosa Dalla Costa, 1943~ )
1943년 4월 28일 이탈리아 동북부 트레비조에서 태어났다. 이탈리아 빠도바 대학의 정치법학부 및 국제학부 교수, 국제적으로 영향력 있는 저자이자 저명한 페미니스트 활동가이다. 자본주의 발전 과정에서 여성이 처해 있는 환경을 연구하기 위해 이론 및 실천적 노력을 기울여 왔으며, <포떼레 오뻬라이오>, <로따 페미니스따> 활동을 하였고, 가사노동에 임금을 지급하라 캠페인 등 다양한 반자본주의 운동에 수십 년간 참여, 자율성의 발전을 이끄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셀마 제임스와 함께 쓴 대표 저작 『여성의 힘과 공동체의 전복』은 여섯 개의 언어로 번역되었고, 2009년에는 선집 『돈, 진주, 꽃, 그리고 여성주의 재생산』이 스페인에서 출간되었다. 저서로 『여성, 개발, 재생산 노동』(G. F. 달라 코스따와 공동 편집), 『자궁 절제술. 여성에 대한 학대라는 사회적 문제』, 『우리의 어머니인 바다』(모니카 킬레스와 공저) 등이 있다. 다수의 논문은 웹진 『커머너』(The Commoner, www.commoner.org.uk)에서 볼 수 있으며 저자의 자세한 활동은 이 책의 「부록」에서 볼 수 있다.


옮긴이
김현지 (Kim Hyun Ji)
이화여대와 서강대에서 영문학을 공부했고 이화여대 교양영어실 스텝 및 통번역연구소 연구원으로 근무하였다. 아기 다원이 출산 후 현재는 육아에 전념하고 있다. vanitasji81@gmail.com


이영주 (Lee Youngju)
서강대에서 영문학을 공부하였다. 여성, 젠더, 공간 등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 중이다. 현재 경일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iamleeyj@gmail.com



목차

실비아 페데리치의 서문 9
머리말 17

1 대량 생산과 새로운 도시 가족 질서 28

2 1929년 대공황과 가족 붕괴 59
대공황 60
가족 붕괴 74

3 투쟁 방식과 실업자 결집 91

4 후버와 루즈벨트 127
후버 정부 128
뉴딜 : 최초의 복지 정책 142
뉴딜 : ‘사회 보장’ 체제를 향하여 165

5 여성과 가족, 복지, 유급노동 178
대공황과 여성의 저항 및 투쟁 활동 180
여성과 유급노동 188
가족 제도 강화 204
결론 209

감사의 말 216
옮긴이 후기 218
후주 222
참고문헌 266
부록 : 마리아로사 달라 코스따의 주요 활동 / 저작 목록 283
찾아보기 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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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의 영점』(실비아 페데리치 지음, 황성원 옮김, 갈무리, 2013)

페데리치는 가사노동에 대한 임금지불을 요구했던 1970년대 여성운동에서 출발하여 1990년대 이후 여성운동의 제도화에 대한 비판과, 신자유주의의 등장으로 더욱 열악해진 삶의 조건들을 회복하기 위한 공유재 재구축을 위한 운동까지, 급진주의 여성운동에 몸담아 왔다. 『혁명의 영점』은 이러한 여성투쟁의 본질에 대한 페데리치의 40년간의 연구와 이론 작업을 집대성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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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번과 마녀』(실비아 페데리치 지음, 황성원·김민철 옮김, 갈무리, 2011)

자본주의의 역사에 있어서, 남성이 임금 노동자로 탈바꿈된 것만큼 여성이 가사노동자이자 노동력 재생산기계로 되었다는 점 역시 중요하다는 것을 역설하는 페미니즘 역사서이다. 저자는 자본주의의 물질적 토대를 닦았던 이 폭력적인 시초축적 과정에서 마녀사냥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건이었음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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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부장제와 자본주의』(마리아 미즈 지음, 갈무리, 2014)

『에코페미니즘』, 『자급의 삶은 가능한가』의 저자로 알려진 에코페미니스트 마리아 미즈의 고전적 저작. 가사노동, 비공식 영역의 노동, 식민지에서의 노동과 자연이 만들어 내는 생산(물)이 경제의 수면 아래 있는 보이지 않는 부분을 구성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지난 4, 5백년 동안 여성, 자연, 식민지는 문명사회 외부로 축출되고, 가려져 왔다. 『가부장제와 자본주의』는 이 ‘빙산의 보이지 않는 부분’이 왜 가려졌는지, 이 부분의 가치와 비중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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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물질노동과 다중』(안또니오 네그리, 질 들뢰즈 외 지음, 갈무리, 2005)

'신자유주의, 정보사회, 탈산업사회, 주목경제, 신경제, 포스트 포드주의란 무엇인가'에 대한 자율주의적 맑스주의의 응답을 한 권에 엮은 책. '물질노동이 헤게모니에서 비물질노동의 헤게모니'로의 노동형태 변화를 주요 현상으로 지적하고, 비물질노동의 두 축인 정동노동과 지성노동을 분석한 후, '다중'이라는 새로운 주체성의 형성에 비물질노동이 미치는 영향을 살핀다. 1부에는 '정동'에 관한 질 들뢰즈의 연속 강의, 2부에는 마우리찌오 랏짜라또와 삐올로 비르노의 글을 실었다. 3부에서는 새로운 주체성, 미적 생산, 시간의 재구성의 문제를 실마리로 비물질노동 개념을 발전시켜 보려는 나름의 이론적 개입을 담았다.

2017.07.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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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기호와 기계』
Signes, Machines, Subjectivité



기계적 예속 시대의 자본주의와 비기표적 기호계 주체성의 생산

인공지능 시대,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 『부채인간』의 저자가 제시하는 새로운 자본주의 비판

부채인간 이후에 자본주의는 새로운 주체성을 만들어내고 있는가?
전 세계적 금융붕괴 이후에 비판이론은 새로운 주체성을 고민하고 있는가?
『기호와 기계』는 주체성의 구축에서 자본주의와 비판이론 모두가 드러낸 실패에서 시작한다.


지은이  마우리치오 랏자라또  |  옮긴이  신병현·심성보  |  정가  21,000원  |  쪽수  400쪽
출판일  2017년 7월 14일  |  판형  신국판 변형 (139*208) 무선
도서 상태  초판  |  출판사  도서출판 갈무리  |  도서분류  아우또노미아총서 55
ISBN  978-89-6195-167-8 93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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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의 개념은 엄격한 의미에서 인간을 기계와 연결할 뿐만 아니라
물질적, 기호적, 비실체적 요소 등의 다양체를 기계와 연결하는 하나의 기능적 전체로 확장되어야 한다.”
“예술가는 어떤 종류의 영감이든 그것이 올 때까지 마냥 기다리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정치적 행동은 경제적, 사회적, 언어적인 것 대신에 주체성의 생산을 일차적 목표로 설정하고,
그것에 필요한 실험도구, 절차, 조사, 개입을 구상하고 발명해야 한다.”
― 본문 중에서



『기호와 기계』 간략한 소개

랏자라또는 들뢰즈와 가따리의 기호론으로 자크 랑시에르, 알랭 바디우, 슬라보예 지젝, 빠올로 비르노, 주디스 버틀러, 그리고 부분적으로는 안또니오 네그리, 마이클 하트 등에까지 걸쳐 있는 언어중심적 정치이론을 비판하면서 물질적 흐름과 기계들의 흐름에 직접적으로 작용하는 기호들을 분석한다. “자본은 기호로 움직인다.”는 가따리의 주장에 근거하여 “오늘날 비판이론은 언어와 재현 중심의 사고를 넘어서고 있는가?”, “오늘날 기호들이 정치, 경제, 주체성의 생산에서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묻고 이로부터 자본주의 비판을 위한 새로운 이론과 비재현적 주체 이론을 전개한다. 이 책은 가짜뉴스, 혐오표현, 등록금과 담보대출, 인터넷과 인공지능 등이 움직이는 통제사회에서, 우리가 어떤 식으로 예속되고 또 스스로 자신을 예속하는지를 고찰한 후 신자유주의 아래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런 예속과 결별하고 ‘평등’과 ‘자유’를 실현할 방법을 설득력 있게 규명한다. 자본과 국가가 생산하는 주체성을 극복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도구가 무엇이고, 사회적 복종과 기계적 예속을 넘어설 주체성을 생산하기 위해 어떤 조직화가 필요한지를 밝히는 것이 이 책을 관통하는 문제의식이다.



『기호와 기계』 출간의 의미

이 책은 이탈리아 출신의 철학자이자 행동하는 지식인, 마우리치오 랏자라또가 지난 10년 동안 각종 사회적·정치적 현안과 이론적 문제에 개입한 흔적을 모은 글이다. 저자는 탈산업화 이후의 자본주의의 궤적을 구체적으로 추적하고, 신자유주의에서 배제된 사람들(비정규직 노동자, 청년 실업자, 빈민층 등)의 처지와 그들이 촉발한 투쟁과 운동을 적극적으로 옹호한다. 이를 위해서 랏자라또는 들뢰즈·가따리에서 바흐친 등을 거쳐 푸코에 이르는 이론적 자원에 의지하며, 이들 사상가를 계승하고 극복했다고 알려진 비판이론가들(지젝, 버틀러, 비르노, 바디우, 랑시에르 등)의 주장을 하나씩 비판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 :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바야흐로 기계의 시대다. 작년에는 알파고의 충격으로 사람들이 두려움에 떨었다면, 올해부터는 테슬라의 전기차와 자율주행차에 열광하고 곳곳에서 ‘4차 산업혁명’을 노래한다. 인공지능이 인간과 노동을 대체한다고 호들갑을 떨다가, 어느새 그런 두려움은 거대한 산업전환과 새로운 사업기회, 새로운 일자리 창출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 속에 사라진 것 같다.

인공지능과 ‘4차 산업혁명’에 대해서 사람들은 두 가지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하나는 새로운 기술을 찬양하는 유토피아적 비전이다. 더 정확히는 인공지능과 ‘4차 산업혁명’이 전지구적 금융위기 이후 좀처럼 회복 기미를 보이지 않는 자본의 수익(그리고 금융의 이윤)을 만회하기 위한 새로운 혁명이라는 것이다(그러나 일부 지역의 경기 회복은 다른 국가나 지역으로 위기를 떠넘기는 것에 불과하다). 인공지능과 ‘4차 산업혁명’은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인식된다. 새로운 기술로 어느 누구는 손해를 보지만 경제 전체로 봐서는 새로운 직업과 고용이 창출되기 때문에 고용 절벽도 극복될 수 있다는 것이다.

긍정적인 반응 이면에는 그런 혁명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디스토피아적 비관론이 존재한다. 이것은 ‘4차 산업혁명’이란 자본주의가 탄생한 이래 늘 있어 왔던 기계에 의한 인간의 대체에 불과하며, 따라서 자본과 기득권층에 ‘독점적’ 이윤을 보장할 뿐이지, 평범한 노동자, 소비자, 시민들에게 착취와 실업, 저임금, 불평등, 파편화되고 지루한 노동을 가져올 뿐이라는 비판이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금융자본의 성장이 보여주듯이 인공지능과 ‘4차 산업혁명’은 실물 경제의 생산성 증가와 고용의 증대에는 거의 영향력이 없을 것이라고 비판한다.

세계는 기계로 구성되어 있다

4차 산업혁명에 대한 두 입장은 일견 어느 정도 현실 타당성이 있으며 그 나름대로의 과거 경험에 기대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이렇게 질문을 던질 수 있지 않을까? 과연 기계와 인간은 대립하거나 구분되는 존재인가? 기계는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는 존재일 뿐인가? 이 책의 저자에 따르면, 인간과 기계는 반드시 대립하지 않으며 그럴 필요도 없다. 오히려 인간과 기계는 상호접속하며, 심지어는 서로 구분되지도 않는다. 문제는 우리의 인간중심적 사고와 실천에 있다. 저자에 따르면 적어도 근대 자본주의 이래 인간보다는 기계가 인간을 이용했으며, 더 정확히는 인간 자체가 기계이고 기계 자체가 인간이었다.

이런 시각에는 기계와 인간에 대한 관점 전환이 내포되어 있다. 저자가 말하는 기계는 기술적 기계만이 아니라, 자신의 ‘환경’과 상호 접속하는 모든 존재, 예를 들어 화학적 결정체를 이루는 분자들에서부터 언표들을 거쳐 가족, 교육 등의 사회적 시스템까지 포함한다. 이런 측면에서 기계와 ‘환경’(또는 인간)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복수의 기계들이 존재하고, 이들 사이의 다양한 접속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저자는 들뢰즈·가따리의 표현을 빌려 이런 접속들의 연결, 분리, 통합을 기계, 또는 기계적 배치라고 부른다.

랏자라또에 따르면 아직 기계에 대한 이론화는 너무나 부족하다. 무엇보다 우리는 주체/대상, 자연/문화의 대립을 의심하고 무효로 만들어야 한다. 그럴 때 “기계는 기술의 부분집합이 아니라 인간 본질에 참여한다. 실제로 기계는 기술의 전제 조건”(116쪽)이라는 통찰이 가능해진다. 이런 관점에 서면 “공공 기관, 미디어, 복지국가 등의 장치도 … 인간, 절차, 기호계, 기술, 규칙 등”(117쪽)을 배치하는 기계이다. 예술도 마찬가지이다.

자본주의의 주체성 생산 : 사회적 복종과 기계적 예속

랏자라또에 따르면 “자본주의 아래에서 주체성의 생산은 … 사회적 복종(social subjection)과 기계적 예속(machinic enslavement)”이라는 두 가지 방식으로 작동한다.

사회적 복종은 “개체화된 주체”를 생산한다. 사회적 복종은 우리에게 성, 신체, 직업, 민족성 등을 할당한다. 사회적 복종은 노동의 사회적 분업 내에서, 그런 분업에 어울리는 개개인의 위치와 역할을 생산하고 분배한다.(32쪽) 신자유주의 시대에 우리에게 “인적 자본”과 “기업가형 자아”가 강요되었던 것, 그리고 그 명령이 차츰 ‘부채인간’으로 변형되었던 것이 사회적 복종의 예이다.

주체성 생산의 다른 축인 “기계적 예속”에서 개체는 “경제적 주체”(예를 들어서 인적 자본, 기업가형 자아, 시민)가 아니라 “기업” “금융시스템” “복지국가” “미디어” 등의 배치 속에 있는 하나의 부품으로 간주된다.(34쪽) 랏자라또에 따르면 프랑스의 철학자 질 들뢰즈가 이런 이중적 권력 장치를 정확히 묘사하였다. “복종은 개체들을 생산하고 지배하지만, 예속을 통해서는 ‘개체들이 … ‘분할 가능한 것’이 되고 대중들(masses)이 표본·데이터·시장·[자료] ‘은행’이 된다.”(35쪽)

“사회적 복종”과 “기계적 예속”은 랏자라또가 자신의 논지를 전개하기 위해 사용하는 핵심 개념들이다. 그는 이 두 가지 권력 장치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주체성 생산이 일어난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책 『기호와 기계』가 두 장치의 차이와 상보성을 검토하고 “복종의 양식들과 예속의 양식들에 관한 지도제작을 추적”함으로써 “자본주의가 장악한 주체성, 그것의 생산 양식, 삶의 양식들에서 벗어나 그것들과 무관한 자율적인 과정을 개시”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쓴다.

기표적 기호계와 비기표적 기호계

사회적 복종과 기계적 예속은 서로 다른 기호계와 관련된다. 사회적 복종은 기표적 기호계, 특히 언어적 기호계를 동원하며, 의식을 겨냥한다. 그와 달리 기계적 예속은 비기표적 기호계를 동원한다. 비기표적 기호계는 예컨대 “주가지수, 통화, 방정식, 다이어그램, 컴퓨터 언어, 국민 계정, 기업 회계” 같은 것들이다. “비기표적 기호계는 의식과 재현에 관여하지 않으며 주체를 준거대상[지시대상]으로 삼지 않는다.”(55쪽)

우리가 사는 세계 자체가 기계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인간(의 부분들)도 일종의 기계들이 접속된 산물이다. 이런 기계들이 서로를 끌어들이고 밀어내고 결합하는 힘들의 작동방식, 그러니까 일종의 코드가 기호(기호계의 기능)이다. 여기서 기호는 언어적 표현뿐만 아니라 비언어적 표현들, 예를 들어 소리, 냄새, 느낌, 전자, 분자 등의 신호들을 포괄하는 광범위한 개념이다. 그것들은 비기표적으로, 우리의 의식이 의미로 인식하기도 전에 작동한다.

예를 들어 보자. 운전할 때 우리는 의식적으로 차를 몬다기보다는 발과 팔이 자동차의 일부처럼 ‘무의식적으로’, 즉 의식을 우회해서 작동한다. 우리의 의식적 주체는 수많은 부품들로 분해되어 자동차의 부품들과 어느 정도 자동적으로 작동한다. 개체화된 주체의 의식은 운전 중 어떤 예상치 못한 돌발 상황이 발생할 때 다시 작동하기 시작한다. 이런 사례에서 우리는 “주체성의 이중화 과정을 최초로 경험”한다. 이것은 가따리가 『분열분석적 지도제작』(Schizoanalytic Cartographies)이라는 책에서 제시한 사례인데, 가따리는 이런 이중화 과정이 오늘날 “모든 기구와 제도가 작동하는 방식”(130쪽)이라고 본다. 오늘날의 자본주의에서는 비기표적 기호계와 기호적 기호계를 다양하게 흡수한 ‘혼합적 기호계’가 작동한다. 이 점을 이해하는 것이, 특히 언제나 기표적 기호계에 정복당해 잘 보이지 않는 비기표적 기호계의 성격을 이해하는 것이, 현대 자본주의를 분석하고 실천적 대안을 모색하는 데 반드시 필요하다.

기계, 기구, 다이어그램, 방정식, 비기표적 기호계가 없다면 아마도 인간은 탈영토화 과정들을 이해하고 그것에 개입할 수 없는 “실어증자”가 될 것이다. 즉 그들은 이런 [기계 중심적] 세계들에 대해서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기계 중심적 세계에서 말하고, 보고, 냄새 맡고, 행동하기 위해서 우리는 기계들과 같은 편이 되어야 하며 비기표적 기호계와 같은 종류가 되어야 한다. 바로 이런 의미에서 비기표적 기호계가 언표행위의 초점을 구성하고 주체화의 벡터를 구성하는 것이다.(130쪽)

공장이나 사무실이나, 주식 시장에서 움직일 때 우리는 의식을 가진 개인으로서 일한다기보다 손과 팔, 우리의 눈, 우리의 두뇌가 각종 장비, 모니터, 스크린과 접속해서 움직인다. 예를 들어 전형적인 기술적 기계와 노동자의 상호작용을 살펴보자. 노동자는 자신의 의식 속에서는 기계를 하나의 대상으로 대할 수 있지만, 실제의 노동과정에서는 기계의 보철로 기능하고 기계를 움직이는 에너지로 변환된다. 공장에서 인간은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행위자가 아니라 에너지와 생리적 피로도, 동작과 시간의 독특한 리듬으로 분절되고 변형되어 기술적 기계(그리고 노동조직의 사회적 기계)의 부품이 된다.

우리는 빅데이터에서 다양한 정보 더미로 분해되고, 자신의 소비패턴, 신용정보, 재무상태, 정치성향 등으로 재조합된다. 이것은 논리적으로 금융시장에서 파생상품이 만들어지는 메커니즘과 다르지 않다. 우리의 정보는 데이터 공학의 재료가 되어, 어느 순간 우량고객이 되거나 신용불량자가 되거나 그 무엇도 아닌 어떤 주체의 형태로 표면에서 제시될 뿐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사회적·직업적 분업과 역할에 적응한 존재이기보다는 기계적으로 조합되는 존재(데이터로 변환된 존재)일지도 모른다.

자본주의도, 저항운동도, 주체성 발명에 실패하고 있다

현대 자본주의는 장기 불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우리가 ‘신자유주의’라고 부르는 새로운 체제는 1970년대 이후 수익률 하락에 직면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위로부터의 구조조정에 나섰다. 하지만 2차 대전 이후처럼 급격한 생산성 증가는 없었고, 금융자본으로 자본 내에서 분배를 옮겨간 것에 불과하였다. 저자에 따르면 1990년대 이후 신기술의 개발은 일시적 경기회복을 가져오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고용 없는 성장’으로 이어졌다. 이런 시각은 전통적인 정치경제학적 비판이나 최근에 대두하고 있는 소득주도 성장론, 피케티 식의 자본주의 비판과 결론에서는 그리 다르지 않다.

저자 고유의 새로운 시각은 자본주의가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서, 생산력 자체를 증진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주체성의 생산, 또는 사회적 관계의 변형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발전주의 시기에는 국민으로 대중을 동원할 필요가 있었고, 신경제와 정보화 시대에는 기업가형 주체가 필요했으며 금융화 시대에는 금융 투자자(즉 빚을 얻어서 투자 포트폴리오를 운영하는 주체)인 ‘부채인간’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이른바 ‘고용 없는 성장’은 부채를 통한 금융화된 경제를 전제할 뿐만 아니라, 부채를 통해서 자산을 증식하는 주체성이 없이는 정당화될 수 없다.

그런데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대중적 동의를 획득한 새로운 주체성은 등장하지 않았다. 전지구적으로 위기가 확산되자 부채인간이라는 주체성 형태는 투자자로서 수익을 남기기보다는 1% 소유자 집단의 수익을 늘려주는 빚쟁이로 판명되었고, 심지어는 긴축이라는 이름으로 경제적 리스크(risk)를 전담하는 노예로 드러났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부채인간’ 자체도 인간중심적인 주체성이 아니란 점이다. 부채인간은 빚쟁이로서 사회적 규범을 따르기도 하지만, 금융상품의 리스크 계산, 간단히 말해 신용등급에 따라 자신의 행위방식이 조정되는 일종의 자동화된 기계인 셈이다. 저자가 볼 때 부채인간 이후 자본주의는 새로운 주체성을 발명하지 못했다. 문제는 비판이론과 저항운동도 새로운 주체성을 발명하지 못하고, 대중의 동의를 얻는 데 실패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과거의 공산주의, 혹은 사회민주주의, 급진민주주의의 안에서 인민, 시민적 주체, 혁명적 주체 등이 수행했던 역할이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

새로운 주체성의 발명이 필요하다

오늘날처럼 호모 에코노미쿠스(경제적 인간)가 사회체의 지배적 모델로 작동할 때, 호모 폴리티쿠스(정치적 인간)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경제가 하나의 영역으로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정치와 사회 등 모든 영역으로 확장되고, 심지어는 다른 영역의 운영 모델이 될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여러 논자에 따르면 호모 에코노미쿠스의 최후 판본인 ‘부채인간’이 지배적인 주체성이 될 때, 우리는 더는 인민도, 계급도, 시민도 아닐 것이다. 오늘날 사람들은 인민이나 계급이나 시민으로 정치의 장에 등장하지 않는다. 어쩌면 그들은 자기 삶의 리스크를 투자 포트폴리오로 분산시키는 계산적 주체이다. 이런 주체들에게 권력기구가 자기 자신을 대표한다는, 그것도 집합적으로 대표한다는 근대 정치의 상상력은 정치권력의 단순한 허구로 그칠 가능성이 높다. 오늘날 비판이론과 실천의 고민은 아마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그리고 기계론의 혁신을 통해 비기표적 기호계 주체성이라는 새로운 주체성 대안을 내놓는 이 책은, 이런 고민을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새로운 시각을 열어줄 것이다.

랏자라또에 따르면 기존의 비판이론은 (요즘 유행하는 지젝, 버틀러, 바디우, 랑시에르에서 인지자본주의에 이르기까지) 어떤 관점이든 너무나 인간중심적이고, 의식·인지·언어 중심적이다. 인간=인지=의식=언어 중심성은 결국 인간, 인지, 언어 등이 기존의 공고화된 권력 체제를 전제하는 한 권력의 관점을 재생산한다. 예컨대 아무리 우리가 권력의 언어를 (수행적으로) 전유하더라도 어쨌든 우리는 권력의 언어로 들어가야 한다.

그러나 저자에 따르면 현실의 운동과 저항은 이런 권력의 호명이 없어도, 혹은 공동체를 전제하지 않아도 이미 작동하고 있다. 따라서 이런 권력의 시각을 비판하기 위해서 우리는 권력이 공고화되기 이전의 상태, 그러니까 기계적인 소통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으며 이런 분석을 통해서 탈인간-기계들의 접속을 새롭게 전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가 보기에 이런 시도는 우리가 아직까지 상상하지 못한 가능성을 개방하는 단초가 될 수 있다.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디스토피아, 혹은 유토피아를 문제 삼기 위해서는 자본의 비기표적 작동방식을 우리가 분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프리뷰어 추천사

흥미진진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촛불봉기 이후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시의적절한 방향키를 제시하고 있는 책이라고 봅니다. 현재 한국에서 수용되고 있는 비판이론에 대한 비평도 흥미롭습니다. 특히 마지막 장인 후기 푸코와 랑시에르의 이론을 비교하고 있는 부분은 긴박감까지 느끼게 됩니다. 사회적 복종과 기계적 예속이라는 틀로 현 자본주의에서의 삶을 분석하고 있는 부분 역시 매우 중요한 분석적-실천적 논의를 담고 있습니다. 어서 한국어판이 출간되어서 많은 이들에게 읽히고 논의되었으면 하는 책입니다.
― 이성혁 (문학평론가)



책 속에서 : 『기호와 기계』와 새로운 주체성의 발명

신자유주의적 탈영토화에서는 주체성의 새로운 생산이 전개되지 않는다. … 자본은 언제나 시장과 기업 그 이상의 영토를 요구하며 기업가적 주체를 벗어난 주체성 형태를 요구한다. 기업가, 회사, 시장이 한편으로는 경제를 구성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바로 그들이 사회 자체를 파괴하기 때문이다.
― 서론, 10~11쪽


비인간들은 인간들만큼이나 행동의 틀과 조건을 규정하는 데 기여한다. 사람들은 기계들, 객체들, 기호들이 자기 자신과 동일한 “행위자”로 존재하는 배치 속에서, 또는 집합체(collective) 속에서 언제나 행동한다.
― 1장 생산과 주체성의 생산, 42쪽


사유의 주체는 개체가 아니며 창조의 주체도 개체가 아니다. 사유하고 창조하는 개체는 제도(학교, 극장, 박물관, 도서관 등), 기술(책, 전자회로, 컴퓨터 등), 공적·사적 투자의 네트워크 속에서 등장한다. 따라서 개체는 그/녀를 사유하고 창조하도록 강제하는 ― 그리고 기호, 개념, 작업의 순환에 접속된 ― 사유의 전통들과 미적 실천들에 둘러싸인다.
― 기호론적 작동자로서의 자본, 65쪽


우리는 언어를 사용하지 않고 어떻게 타자의 주관적 경험과 연결될 수 있는가? 어떻게 타자의 정동을 공유할 수 있는가? 가따리와 시몽동(또는 스피노자)이 주장하듯이 우리는 “타자에 의해 작동하는” 주체성을 통해서, “주체들 사이를 횡단하는” 주체성을 통해서 그렇게 할 수 있다.
― 3장 혼합적 기호계, 152쪽


다른 모든 존재에게 없는 것, 즉 언표행위와 표현의 역량이 인간에게 있다고 말하는 것은 일종의 “제국주의적” 주장이다. 그러나 이런 “제국주의적” 역량이 사라진다고 해도 인간에게는 “또 다른 표현 수단이 존재한다. 비언어적 수단 말이다.” 언어적인 언어의 기호들은 비언어적 언어의 기호들, 특히 행동 언어를 번역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 3장 혼합적 기호계, 199쪽


만일 우리가 “합법적인” 대표와 평범한 사람들 사이에 빈틈을 열고자 한다면, 우리는 엄청난 소음을 일으키거나 “비이성적으로” 행동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겨우 우리는 뉴스에 등장해서 자신을 알릴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여전히 충분한 대응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미디어는 자신이 미리 선점한 “쟁점들”의 한계 안에서 소통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 4장 갈등과 기호 체계, 245쪽


가따리가 묘사하듯이 우리는 목소리에서 자연과 우주의 활력(물활론)을 발견한다. 언어학 및 언어철학의 주장과 달리 여기서는 기표화 이전의 신체적 기호계(제스처, 자세, 동작, 안면표정 등)가 결정적 역할을 수행한다. 왜냐하면 가치들이 신체를 통해서 가장 먼저 출현하기 때문이다.
― 5장 “쓰레기”와 수행성 비판, 271쪽


삶, 실존, 생명과 같은 개념은 우리를 생기론으로 돌려보내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복종과 단절하는 주체화, 즉 자기에 대한 관계를 통해서 이런 미시 권력 관계를 어떻게 정치화할 수 있는지에 관해서 질문하게 해준다.
― 7장 언표행위와 정치, 367쪽



지은이·옮긴이 소개

지은이
마우리치오 랏자라또 (Maurizio Lazzarato, 1955~ )
이탈리아 출신의 사회학자이자 철학자. 1980년대 초에 프랑스로 망명, 파리 제8대학에서 커뮤니케이션 패러다임, 정보기술, 비물질노동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자율주의 잡지 『물티튀드』(Multitudes)지의 창간 발기인이자 편집위원이다. 비물질노동, 임금노동의 종말, ‘포스트사회주의’ 운동, 인지자본주의와 그 한계, 생명정치·생명경제 개념 등이 연구 주제이다. 저서 『부채인간』(메디치미디어, 2012)은 한국어를 포함하여 11개 언어로 번역되었고, 2013년 서울 일민미술관의 <애니미즘> 전시회에 시각예술가 안젤라 멜리토풀로스와 함께 작업한 영상 작품 <배치>와 <입자들의 삶>이 전시되었고 작품 소개를 위해 방한하기도 하였다. 저서로 『비물질노동과 다중』(공저, 갈무리, 2005), 『부채통치』(Gouverner par la dette, 갈무리, 근간), 『사건의 정치』(La politica dell’evento, 갈무리, 근간), 『정치의 실험들』(Experimentations politiques, 갈무리, 근간), 『발명의 힘』(Puissances de l’invention, 2002), 『자본주의 혁명』(Les Revolutions du capitalisme, 2004), 『불평등의 정부』(Le Gouvernement des inegalites, 2008), 『전쟁과 자본』(공저, Guerres et Capital, 2016) 등이 있다.


옮긴이
신병현 (Shin Byung Hyeon, 1958~ )
홍익대학교 경영대학, 홍익대학교 대학원 문화예술경영학과 교수이다. 저서로 『문화, 조직, 그리고 관리』(한울), 『작업장 문화와 노동조합』(현장에서미래를), 『노동자문화론』(현장에서미래를), 『사라진 정치의 장소들』(공저, 천권의책), 『포스트모던 조직론』(공저, 다인아트), 『노동자 정체성은 있는가? 재현과 가부장체제』(액티비즘) 등이 있다. 논문으로 「푸코의 파르헤지아 개념과 교육론적 함의 : 교사의 형상과 대안적 교육 주체화 과정을 중심으로」, 「금융화 시기 지대의 독점적 조직화와 문화과정」, 「비고츠키와 랑시에르 : 교육문화운동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찾아서」 등 다수가 있다.


심성보 (Sim Sung Bo, 1976~ )
킹콩랩 연구원. (전)문화연구시월 연구원. 비판이론, 문화연구, 담론분석, 연구방법론에 관심을 갖고 있다. 저서로 『사라진 정치의 장소들』(공저, 천권의책), 번역으로 『금융자본주의의 폭력』(갈무리), 『시민을 발명해야 한다』(갈무리), 『푸코효과』(공역, 난장), 『일회용 청년』(공역, 킹콩북), 『생명정치란 무엇인가?』(그린비) 등이 있다.



목차

서론 8

1장 생산과 주체성의 생산 : 사회적 복종과 기계적 예속 사이에서 31
1 사회적 복종과 기계적 예속 32
2 인간/기계 대 인간들/기계들 40
3 이집트의 거대기계 : 예속의 최초 형태 43
4 복종의 기능 48

기호론적 작동자로서의 자본 : 기표적 기호계와 비기표적 기호계 55
“생산”의 개념 60
욕망과 생산 71
“인적 자본”의 실패 76

2장 생산과 주체성의 생산에서 기표적 기호학과 비기표적 기호계 80
1 구조주의의 잔재 : 구조 없는 언어 83
2 기표적 기호학 95
3 비기표적 기호계 114

3장 혼합적 기호계 137
1 주식딜러의 기계적 주체성 138
2 “인간”의 혼합적 기호계 147
3 영화의 혼합적 기호계 157
4 노동 분업에서 기표적 기호계와 비기표적 기호계 164
5 주체성의 이중적 기능과 가공 177
6 빠졸리니와 새로운 자본주의의 내재적 기호계 182

4장 갈등과 기호 체계 203
문제화 211
선전구호의 해석과 전파 216
갈등에 개입하는 학자 219
실업과 비가시적인 노동 224
기표적 기호계의 내러티브 기능 229
복종 기계 232

5장 “쓰레기”와 수행성 비판 247
1 “절대적” 수행문 249
2 수행성을 통한 해방 253
3 바흐친과 최초의 언표행위 이론 259
4 목소리와 제스처의 미시 정치 268
5 담론 전략들 271
6 재생할 수 있는 것과 재생할 수 없는 것 276
7 “주체에 선행하고 주체를 초과하는” 언어 281
8 언어에서의 초월과 죄의식 288
9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 291
10 “쓰레기”에 더하여 294

6장 주체성 생산에서 담론적인 것과 실존적인 것 298
1 기계장치와 실존적인 것 299
2 담론적인 것과 실존적인 것의 이접과 통접 306
3 미적 패러다임 311
4 오늘날의 위기 322

7장 언표행위와 정치 ― 민주주의에 대한 평행적 독해 : 푸코와 랑시에르 334
1 두 개의 평등론 335
2 “진실-말하기” 337
3 파르헤지아, 폴리테이아, 이세고리아, 두나스테이아 340
4 언표행위와 화용론 344
5 파르헤지아의 위기 349
6 정치적 행동의 두 모델 353
7 로고스와 실존, 극장과 행위예술 358
8 감각적인 것의 분배, 또는 분할과 생산 363
9 평등과 차이 367

옮긴이 후기 : 기호와 기계, 주체성에 관한 새로운 사유의 모험 372
참고문헌 386
인명 찾아보기 393
용어 찾아보기 3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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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민주주의』(조정환 지음, 갈무리, 2017)

전 세계적 정치상황과 사회운동에 대한 경험적 분석을 통해 직접민주주의와 대의민주주의 속에서 진동해온 민주주의 논쟁을 절대민주주의라는 새로운 지평의 발견과 발명을 통해 한 걸음 더 전진시키려는 것으로 이러한 주제의 단행본으로서는 국내외를 통틀어 최초의 책이다. ‘절대민주주의’라는 개념을 통해, 대선 이후 초미의 관심으로 부상할 수밖에 없는 ‘사회대개혁’이라는 문제를 어떤 방향으로 구체화해 나가야 할지를 사유할 개념적 틀과 근거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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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인간의 탄생』(조정환 지음, 갈무리, 2015)

예술성이 협의의 예술사회는 물론이고 생산사회와 소비사회 모두를 횡단하면서, 예술의 일반화, ‘누구나’의 예술가화, 모든 것의 예술 작품화라고 부를 수 있는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 예술의 범람에도 불구하고, 센세이셔널한 예술종말론들이 유행하고 있다. 어째서인가? 종말로 파악할 만큼 급격한 예술의 위치와 양태변화는 항상 새로운 주체성의 대두와 긴밀한 연관을 맺고 있다. 단토, 가라타니 고진, 벤야민 등의 예술종말론들은, 봉건제에서 자본주의로의 이행기에 나타난 예술적 변화를 예술종말로 파악한 과거의 관점들(헤겔, 맑스)을 산업자본주의에서 인지자본주의로의 이행이라는 다른 맥락에서 되풀이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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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자본주의』(조정환 지음, 갈무리, 2011)

'인지자본주의'는 인지노동의 착취를 주요한 특징으로 삼는 자본주의이다. 우리는 이 개념을 통해서 현대자본주의를 다시 사유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노동의 문제설정을 새로운 방식으로 제기할 수 있다. 이 개념을 통해서 우리는, 금융자본이 아니라 인지노동이 현대세계의 거대한 전환과 사회적 삶의 재구성을 가져오는 힘이라는 생각을 표현할 수 있고, 그 노동의 역사적 진화와 혁신의 과정을 중심적 문제로 부각시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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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물질노동과 다중』(마우리치오 랏자라또 외 지음, 갈무리, 2005)

'신자유주의, 정보사회, 탈산업사회, 주목경제, 신경제, 포스트 포드주의란 무엇인가'에 대한 자율주의적 맑스주의의 응답을 한 권에 엮은 책. '물질노동이 헤게모니에서 비물질노동의 헤게모니'로의 노동형태 변화를 주요 현상으로 지적하고, 비물질노동의 두 축인 정동노동과 지성노동을 분석한 후, '다중'이라는 새로운 주체성의 형성에 비물질노동이 미치는 영향을 살핀다. 1부에는 '정동'에 관한 질 들뢰즈의 연속 강의, 2부에는 마우리찌오 랏짜라또와 삐올로 비르노의 글을 실었다. 3부에서는 새로운 주체성, 미적 생산, 시간의 재구성의 문제를 실마리로 비물질노동 개념을 발전시켜 보려는 우리 나름의 이론적 개입을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