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학] 플럭서스와 그 예술가들 (존 케이지, 요제프 보이스, 백남준을 중심으로)

강사  전선자
개강  2011년 4월 1일부터 매주 금요일 저녁 7시 30분 (8강, 104,000원)
강의큐레이터(쿠쿠)  하나래

강좌취지
원래 예술에는 적어도 종교적, 철학적, 도덕적 역할이 종합적으로 침투해 있었고, 표현형식도 인간 경험의 총체성과 결부된 것에서만 도출해 냈다. 그런데 근대부터 망막에 비춰진 것만을 표현한 예술이 등장한다. 이렇게 망막에 귀속된 예술은 본연의 역할을 폐기한 상태이며, 그래서 이 같은 예술은 변해야 한다는 각성이 이미 마르셀 뒤샹에게서도 나타났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으로부터 반세기 전까지만 해도 서구문명은 여전히 물질의 진보와 새로운 대상을 발견하는 시대였고, 이에 상응한 예술도 망막에 비춰진 대상의 물질성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만큼 서구의 사고는 ‘선형적’인 것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런 가운데서도 실존의 탐색은 집요했고, 지속적인 실존에 관한 사유 속에서 20세기의 예술도 함께 발전해 왔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으로 문명에 대한 회의와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2차 세계대전 이후의 젊은이들이 더 나은 세상의 구현이라는 이상을 갖게 만든다. 1950년대의 젊은 예술가들은 ‘새 포도주는 새 주머니에’ 라는 구절처럼 자신의 삶을 이미 새로운 세상과 새로운 관계 속에서 출발하기를 원한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이 품은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예술과 삶의 결합을 추구했다. 그리고는 문화적 속물근성과 타협하지 않기 위해 ‘다다-정신’에 회귀한다. 이러한 개념 내에서 예술이 실생활과 일치를 이루려는 것은 삶을 더 ‘진솔’하게 표현하고자 하는 일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젊은 예술가들은 가장 먼저 예술계의 주류와는 달라야 했다. 이 같은 이상을 끊임없이 추구한 무리들이 <플럭서스>라는 이름으로 그 뜻을 표출하기 위해 여러 대륙(북아메리카, 아시아, 유럽)에서 독일로 왔고, 특수한 독일의 전후 상황 속의 ‘문화자유지대’를 형성한 라인 지방에서 그들의 실험적인 예술을 세상 속으로 관철시키려 노력했다. 이 강의는 이런 예술가들이 어떻게 이처럼 모일 수 있었으며, 어떻게 그들의 실험적인 예술을 이해했고 또 표출했는가를 몇몇의 역사적인 사례와 예술가들을 통해서 알아 볼 것이다.

1강 플럭서스란 무엇인가? 존 케이지와 플럭서스
2강 플럭서스란 무엇인가? 존 케이지와 독일 라인지역 아방가르드
3강 1962년 첫 플럭서스 공연 이전(前) (백남준의 행위음악을 중심으로)
4강
1962년 첫 플럭서스 공연 이후(後) (백남준과 요제프 보이스를 중심으로)
5강 플럭서스와 요제프 보이스 I
6강 플럭서스와 요제프 보이스 II
7강 플럭서스와 백남준
8강 플럭서스 예술가들의 활동들

참고문헌
『1962 Wiesbaden FLUXUS 1982』, 전시카탈로그 1982.
『Berlinart 1961-1987』, 전시카탈로그, 뮌헨 1987.
르네 블록,『플럭서스』, 열화당, 1990.
백남준아트센터, 『백남준: 말에서 크리스토까지』, 2010.
시케코 구보다 & 남정호, 『나의 사랑, 백남준』, 이순, 2010.
에디트 데커, 『백남준 비디오』, 김정용 옮김, 궁리, 2001.
이경희, 『백남준 이야기』, 열화당, 2000.
조정환, 전선자, 김진호, 『플럭서스 예술혁명』, 갈무리, 2011.

강사소개
‘현대인에게 이콘이란 무엇인가’라는 명제를 놓고 이콘과 성화의 영험적인 표현매체를 연구했으며, 독일 예술인 생태공동체에서 예술가와 예술작품의 상관관계를 연구하면서 플럭서스와 그 주요 멈버인 요제프 보이스의 역량을 사회적, 예술적 또 생태적이고도 종교적인 측면에서 연구하였다. 이를 통해 플럭서스와 백남준의 관계와 그 외의 주요 멤버에 관한 심화 연구를 수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