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갱이라구 해요(*>ㅁ<)/

 

어제! 정남영 샘의, <자본과 그 한계: 맑스의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읽기> 강좌가 있었습니당!

1강 때는 앞으로 어떤 내용들을 배우게 될 것인 지에 대한 간략한 설명과 함께,

맑스의 이론들을 꿰뚫어볼 눈을 제공해주는,

하비, 네그리·하트의 이론에 대해서도 살펴보았습니다.

 

제일 감명 깊었던 건 '한계'라는 개념을 다시 명확히 하는 거였어요.

그리고 지금까지 '자본'에 대해 오해를 갖고 있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당.

삶정치적 생산성을 자본이 강탈한다는 네그리 하트의 이론이 특히 뇌리 속에 팍~팍~ 꽂혔는데,

이 내용을 배우면서 문득,

09년 4분학기 자율광장 때 카오모님이 발표하셨던 <약속의 기록 : 위기에서 공통의 것으로>이 생각났습니다.

그 "공통의 것"이 바로 이 "공통의 것"을 말하는 거였구나, 라는 생각도 들구요!!

 

강의를 듣는 내내 너무 재미있고 감명 깊었는데,

어떻게 그 감정을 글로 잘 못 옮기겠네요....해서!!

미약하나마.. 강의를 좀 정리하는 차원에서 요약해보고..제가 문득문득 든 생각도 좀 같이 써보려고 해요.

틀린 부분이 있거나 하면 가차없이 지적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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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스는 <가치, 가격, 이윤>이라는 책에서, "자본가의 의지는 분명 가능한 한 많이 취하는 것이다.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은 그의 의지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힘을 연구하는 것, 그의 힘의 한계를 연구하는 것, 그 한계의 성격을 연구하는 것이다." 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한계'를 연구한다는 건 어떤 것일까? 칸트는, 한계를 밝히고, 그 한계와 어떠한 관계를 맺을 것인지를 연구하는 것이 '한계'를 연구하는 것이라고 보았던 반면, 푸코는 한계 그 너머에 있는 것을 사유하여야 한다고 했다. 이 <자본과 그 한계>라는 강의는, 바로 푸코의 한계 연구에서 시작한다. 자본의 한계를 명확하게 바라보고, 그 너머에 있는 것을 사유하는 공부를 지향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공부가 어떻게 진행될 수 있을 것인가? 먼저, 하비와 네그리·하트의 이론을 살펴봄으로써 이러한 연구가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에 대해 개괄해보았다.

 

데이비드 하비는, 자본의 한계에 대하여 과잉축적의 문제를 짚는다. 자본주의가 발전할수록 불변자본 : 가변자본의 비율에서 가변자본의 비중이 줄어들어 이윤율이 저하된다. 하비는 이러한 자본의 자가모순점을 짚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한 자본의 행동으로는 룩셈부르크가 말했던, "비자본주의적 사회구성체와의 교역"을 언급한다. 그러니까 자본은, 자본주의의 체제에서 벗어나 있는 여타 사회 구성체를 점령하여 자신의 모순을 해결하고자 하는 것이다. 즉 자본은 그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하여 자본의 외부, 타자를 필요로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는 전 지구적으로 자본주의 체제가 지배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이 "비자본주의적 사회구성체"는 어떻게 구성되는 것일까? 이에 대해 하비는, 자본이 자본 내부에서 내-외부를 갈라낸다고 본다. 이를테면 문화나 교육의 영역과 같이, 아직 프롤레타리아화되지 않는 부문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이전부터 지속적으로 논의되온 교육시장화 문제가 바로 이러한 맥락에 맞닿아 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 또 하나의 질문이 제기된다. 그렇다면 이렇게 내부-외부를 갈라내는 자본주의의 작업은, 어떻게 진행되는가. 하비에 따르자면, 생산과 소비의 영역을 확대재생산하는 것이 '내부'의 영역이고, 강탈로써 자본을 축적하는 작업이 '외부'의 영역이다. 특히 중요한 것은, 이러한 내부와 외부의 영역이 서로 동떨어져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들은 서로 유기적인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데, 이는 앞서 보았던 것처럼 내부의 문제(과잉축적)을 해소하기 위한 방법으로서 외부를 강제로 생산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외부의 강제적 생산은, 맑스가 이야기했던 시초 축적의 문제와는 조금 다르다. 자본이 행했던 시초 축적은 어느 정도 진보성을 담지하고 있었지만 현대 사회에서 횡행하는 자본의 강탈은 어떠한 진보성도 존재하지 않은 채로 단지 스스로 생산한 외부에 대한, 폭력만이 난무하고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네그리·하트는, 하비가 말하는 (자본이 행하는) 외부의 강탈에 대해 동의하면서, 한편으로 그러한 외부 강탈의 면면들이 단순히 신자유주의적인 정책으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보다 더 확장되어 삶정치적 노동의 착취로 나타난다고 본다. 삶정치적 노동이라는 것은, 네그리·하트가 주요하게 사용하는 개념어인데, 어떤 개별적인 소비를 위한 상품을 생산하는 노동이 아닌, 주체성을 생산하는 노동을 지칭한다. 따라서 이것은 어떤 생산의 최종 결과물이 도출되는 것이라기보다, 관계성을 뜻하며, 1차적인 재화 생산 등은 이 삶정치적 노동의 계기로서 존재한다.

 

자본이 작동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맥락인데, 자본은 바로 이 삶정치적 노동이 생산하는 "공통의 것"을 착취한다. 자본은 "공통적인 것"을 왜곡하거나 신비화하며, 한편으로 그것을 착취하는 것이다. 금융이 바로 이 대표적인 예다. 금융은 한편으로 "공통의 것"을 지칭하지만, 현재의 금융 경제는 "공통의 것"을 신비화하고 왜곡시켜, 개인의 삶을 파탄내고 크게는 한 국가의 경제를 뒤흔들어 놓기도 한다. 그러나 이 지점에서 네그리·하트는 바로 이러한 자본의 작동 방식을 포착하여, 이 내부에서의 전복을 꾀한다. 자본 자체의 모순이 심화되었을 때 자본이 종식한다고 언급했던 맑스와 달리, 네그리·하트는 위기 자체가 붕괴를 초래한다고는 보지 않는다. 그렇지만 이러한 자본 내부의 파열들은 한편으로 그 틈새를 통한 해방을 상징하며, 이 해방을 이룩하기 위하여 구체적으로는 정치적 조직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네그리·하트는 역설한다.

 

 

*네그리·하트가 말한 자본의 유기적 구성의 변화! 이 부분은 아직 잘 모르겠어서, 정리를 못했습니다.(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