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강좌는 제가 서울에서 했던 마지막 강좌이기도 하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강의여서 자세한 강의록을 공유하고 싶습니다.

 

공동체를 위한 회의  1.


1. 민주주의는 언제부터 어떻게 시작되었나?


우리는 흔히 민주주의는 고대 그리스 사회의 아고라 광장에서 시작되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고대 그리스 직접 민주주의에서 민주주의가 시작되었고, 그것이 확대되어서 지금과 같은 평등 선거권에 기반한 대의제 민주주의로 발전해 왔다고 생각합니다.

평등한 권리를 위해 여성과 노예에게도 선거권이 생기는 오랜 과정은 역사가 진보하고 발전하는 것으로 믿는 사람들에게는 역사 해석의 중요한 근거가 되곤 했습니다.

그러나, 역사가 진보하는 것이라고 믿는 역사관은 대부분 무지하거나 오류인 경우가 많습니다.

점성술에서 천문학으로, 연금술에서 화학으로, 기하학 중심의 수학에서 통계 중심의 수학으로 변화되는 과정 대부분에서 전일성(모든 관계는 서로 이어져 있다.)의 가치를 잃고, 눈에 드러나는 결과만 가지고 모든 것을 평가하는 좁은 관점으로 바뀝니다.

민주주의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우리가 민주주의라고 생각하는 평등 선거권에 기초한 다수결 대의 민주주의는 민주주의를 아주 편협하고 좁게 본 결과에 불과합니다.

조금 심하게 말하는 분들은 '대의 독재 혹은 대의 귀족정'이라고도 부릅니다.


민주주의는 크게 봐서 세 곳 정도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는 너무나 잘 알려진 고대 그리스 민주주의입니다.

그리스 민주주의는 다수결 민주주의가 아닙니다.

그리스 민주주의의 핵심은 '제비뽑기'입니다.

시민 누구나 공공의 과제를 위한 책임과 권리가 있다고 생각했고, 이 가치를 실현하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제비뽑기를 택했습니다.

다수결 결정은 제비뽑기에 대한 보조 수단으로 공직을 맡은 사람이 독재의 가능성이 있을 때 보조적으로 사용했습니다.

도편추방제라는 방식의 다수결 결정은 통에 조개껍데기를 넣어 과반수 이상이 나오면 그 대상자를 그리스 밖으로 추방하는 제도입니다.

선출에서 다수결을 쓰지는 않았습니다.

 

둘째는 북아메리카 원주민 사회의 '원탁 회의'입니다.

둥글게 둘러 앉아서 회의에 참가한 사람들이 담배를 돌려 피우며 '말하는 지팡이(토킹 스틱)'을 든 사람이 말하는 것을 잘 경청한 다음 드러난 다수의 입장에 대해 사회자가 정리하면 그 의견이 공동체 전체의 의견을 대표하고, 하나의 대표 의견만 가지고 상위의 전체 의견에 참여해서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회의입니다.

현재 미국의 대통령 선거는 북미 원주민의 공동체 회의에서 나온 모델입니다.

 

셋째는 고대 동아시아 '화백회의'입니다.

화백회의는 신라의 회의 제도가 아니라 동아시아 전역에서 이루어진 회의였습니다.

아마 신라가 가장 늦게까지 그 원형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 사회라는 의미 정도로 보면 될 겁니다.

고대 그리스 아고라 회의와 북아메리카 원탁회의가 변형된 형태로라도 그 모습을 현실에서도 유지하고 있지만, 동아시아 화백회의는 사실상 현실에서 모습을 감추었습니다.

형식으로는 모습이 없지만 60-70년대 일본 기업들이 채택한 '인화 경영' 같은 것에서 정신으로 남아있는 모습은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생활협동조합, 한 살림 이런 활동의 근원을 따라가봐도 그 곳에는 화백회의의 지향점이 많이 있습니다.


화백회의 강의를 여러번 해봤는데, 어렵다는 분들이 많습니다.

모든 제도는 학습을 통해 정착합니다.

지금 우리가 하는 다수결 민주주의도 처음 하게되면 사실 쉽지 않습니다.

의결 정족수, 일사부재리 원칙, 판정의 공정성, 과반수...

이런 말들을 처음 들어서 알 수 있는 말이 아닙니다.

자꾸 연습했기 때문에 쉬워진 겁니다.

화백회의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번 다지원 강의에서 안상수 선생님께서는 처음 화백회의를 했을 때는 무슨 말인지 몰랐는데, 두 번째 해보니까 알겠다는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두 번 정도 해보면 이해가 되는 방식이면 상당히 쉬운 제도입니다.

회의라는 게 제도 자체가 어려우면 쉽게 자리를 잡을 수 없습니다.

다수결 회의를 두세번 해보면 누구나 익숙해지듯이 화백회의도 그 정도면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화백회의는 여전히 어렵습니다.

이건 제도의 어려움이 아닙니다.

화백회의는 제도 이전에 하나의 가치체계입니다.

지금의 민주주의도 단순히 선출 방식이 아니라 현대 사회의 가치 체계를 담고 있습니다.

화백회의가 담고 있는 가치와 현대 민주주의의 가치는 굳이 비유를 들자면 점성술과 천체 관측학의 차이 정도입니다.

지금 우리는 점성술을 과학으로 인정하지도 않고, 하늘과 사람의 삶이 서로 이어져 있다는 생각을 받아들일 마음도 없습니다.

천체 망원경으로 세밀하게 관찰한 우주는 개발과 모험의 대상이지, 공경의 마음으로 바라보지는 않습니다.

화백회의는 회의를 통해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 우주의 어울림을 현실화한 제도입니다.

현재의 민주주의는 철저하게 정치 공학으로 계산됩니다.

현대 민주주의는 자연을 파괴하고 개발하는 동의 과정을 계산하는 통계학이고, 자본주의 모순을 숨기기 위한 하나의 정치 쇼에 가깝습니다.

화백회의의 진정한 어려움은 이런 가치 체계의 차이가 워낙 크기 때문입니다.


인류는 물질적으로 진보해왔지만, 그 나머지 영역에서는 대부분 후퇴했습니다.

대부분의 중요한 가치들이 물질 영역을 보조해주는 도구로 전락했습니다.

민주주의는 인간, 사회, 자연, 우주적 관점을 가진 가치 체계에서 시작해서 자본주의의 도구가 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